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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종교 인생 목표 방법과 수단 구루 영적 수행 믿음 지속적 기억 내맡김 깨달음 사하즈 마르그 문장 옮긴이의 글 감수자의 글 용어 해설 |
Ram Chand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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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인간이 자유의 길로 나아가도록 준비하게 하는 예비 단계일 뿐이다. 자유의 길 위에 발을 내딛는 순간 그는 이미 종교의 한계에서 벗어난다. 종교의 끝은 영성의 시작이며, 영성의 끝은 실재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 실재의 끝은 진정한 지복이다. 그마저도 사라질 때 우리는 목적지에 도달한다. 이것은 거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장 높은 경지다.
--- p.26 내가 영적 수행에서 체험으로 깨달은 바는, 영적 수행을 위해 내게 온 이들의 마음속에 형성된 그 견고한 껍질을 깨뜨리는 게 참으로 고되고 지난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들 중 누군가가 그러한 영혼의 속박에서 벗어나길 원한다면, 한계에 가두는 그런 수행 탓에 마음 위에 쌓인 거칠고 굳은 층을 반드시 걷어내야 한다. --- p.34 우리의 다음 생(生)은 그것이 무엇이든 죽음 이후 시작된다. 현재의 삶 이전에 우리가 다른 형태들로 존재했듯 죽음 이후에도 우리는 다양한 형태로 계속 존재한다. 개별 영혼의 환생을 믿든 믿지 않든 생사(生死)의 순환은 끝없이 이어진다. 우리의 당면 과제는 이번 생만의 해답이 아니라 앞으로 이어질 모든 생의 해답을 찾는 일이다. 더 큰 관점에서 이 과제는 서로 다른 시간을 거쳐 우주의 종말, 즉 마하프랄라야(mahapralaya, 대사멸)라고도 알려진 시간까지 거칠거나 미묘한 온갖 형태로 존재하는 영혼 전체의 실존을 아우른다. --- p.42 이 같은 견해를 지지하며 제기된 또 다른 오류는 특정 목적을 염두에 두고 수행하는 헌신은 결코 니슈캄(nishkam, 무욕)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바가바드 기타』에서 설한 니슈캄 우파사나(nishkam upasana, 욕망 없는 헌신) 이론에서는 어떤 특정 목적을 품지 않은 채 헌신해야 함을 강조한다. 실제로 이는 우리가 세속적 대상이나 욕망 충족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헌신을 실천해야 함을 뜻한다. 욕망 없는 헌신을 할지라도 인생 목표에 마음을 두는 일을 멈춰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영적 정진에 나선 이들에게 절대적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 p.48 진정한 무집착이란 세상 사물에 집착하지 않는 상태를 말하며 물건을 소유하지 않는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물건을 소유하고 세속적 인연을 맺는 것이 필수인 가정생활은, 우리가 관계 맺는 대상에 지나치게 집착하지만 않으면 깨달음에 이르는 이욕의 길을 절대 방해하지 않는다. 평생 가정을 꾸리고 살면서도 최고 경지에 도달한 성자의 사례는 무수히 많다. 사실 무집착이란 하나의 내면 상태 또는 조건이다. 이는 덧없고 변하는 만물의 본질을 꿰뚫어보게 함으로써 대상에 집착하지 않는 마음을 일으킨다. 매 순간 우리의 시선을 변치 않는 영원한 실재에 고정할 때, 우리는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집착과 거부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바이라갸다. 이러한 마음 상태에 도달하면 모든 욕망에서 자유롭다.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만족을 느낀다. --- p.71 대다수 사람에게는 어떤 방식으로든 신을 향한 본능적 이끌림이 있으나, 실제로 신을 깨닫는 데 성공한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 원인은 잘못된 안내와 그릇된 수행에 있으며 이때 사람들은 참된 길에서 벗어나 영원히 길을 잃고 만다. 보통 사람이 자신의 훈련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판단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구루로 받아들인 이의 지시를 아무 의심 없이 순종적으로 따르고 구루가 하라는 대로 수행한다.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이들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다. 특히 깨달음 문제에 생소한 이들에게 이는 아주 큰 문제다. --- p.129 흔히 매우 높은 성취라고 여기는 진정한 아함 브라마스미 상태조차 그리 높은 성취라고 볼 수 없다. 이 단계에 이른 사람은 마야의 얽힘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긴 했으나 실제로 최종 한계 지점을 넘어선 것은 아니다. 이 단계에는 자아의식이 여전히 존재하며 이는 미묘한 형태이긴 해도 결국 거칢일 뿐이다. 이를 더 이상 성취할 것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즈냐나의 최정점으로 설교하는 이는 실제로 오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종착지가 아니며 다음 단계를 위해 거쳐가는 지점일 뿐이다. 이 경지를 실재나 최종 목표라고 생각하며 집착하는 이들은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는 셈이다. 우리가 도달해야 할 지점은 아함(Aham), 즉 ‘나’라는 생각을 비롯해 모든 것이 소멸하는 곳이다. --- p.149 겉으로 드러나는 지식 과시나 위압적 모습에 매료되어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추종해서는 안 된다. 인도자나 스승의 진정한 가치를 제대로 판단하려면, 그가 영적 영역에서 실제로 무엇을 성취했는지 고려해야 한다. 그에게서 우리가 갈망하는 실재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확신이 들면 자연스럽게 그에게 내면의 끌림을 느끼고, 그가 진정 내 운명을 실현해줄 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 감정은 서서히 믿음으로 발전해 그분을 사랑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마땅히 그분의 인격을 존중하고, 그분의 견해에 따르며, 그분의 인도에 따라 수행의 길을 나아간다. 수행 과정에서의 성취 경험은 스승님의 비범한 능력을 더 신뢰하게 만들고, 그분을 초인적 존재로 우러러보게 된다. 이 단계에서 믿음은 영적 진보에 큰 도움을 준다. 믿음은 의심과 불확실성이라는 어둠을 떨쳐버리고 우리가 가는 길에서 마주치는 어려움과 장애물을 제거한다. --- p.158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여러 가지 세속적 일에 몰두하며, 자기 삶에서 마주하는 문제에 마음을 빼앗긴 채 살아간다. 그들은 흔히 무시할 수 없는 다른 중요한 이익을 포기하지 않고는 명상 수행을 위한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느낀다. 그 탓에 사람들은 사다나에서 멀어진다. 물론 이따금 수행의 필요성을 의식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은 매 순간 세속적 삶의 여러 문제를 생각하는 데 빠져 있어, 극심한 고통이나 괴로움에 빠진 때가 아니면 신을 향하는 일이 드물다. 끊임없이 눈앞에 머무는 세속적 이득에 최우선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어느 단계에서도 마야 안에 얽매여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한다. --- p.165 구루마트 제자란 모든 영역에서 스승님의 인도에 따르며, 온 힘을 다해 그분의 의지에 복종하고자 노력하는 이들을 말한다. 참된 순종은 복종과 함께 시작된다. 영성에서 높은 성취를 이룬 스승님의 위대한 힘에 깊이 감명받을 때, 우리 내면에서 그분의 명령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런데 그 영향력은 간혹 스승이 있을 때만 나타나고 스승과 떨어지면 그분을 잊는다. 한동안 계속해서 스승과 교류하면 그 거룩한 영혼과 더 깊이 연결되며, 가슴속에 스승의 지고함이 자리 잡기 시작한다. 우리는 영적 진보와 관련된 모든 문제에서 그분을 우리의 인도자로 받아들인다. 그 결과 스승을 자주 기억한다. 그분의 탁월한 능력을 온전히 확신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순종이 시작된다. 우리는 계속 순종하며 스승의 안내대로 수행한다. 또한 우리는 어떻게 하면 그분을 기쁘게 해드릴지 생각한다. 이때 가슴속에서 옳음과 그름의 생각이 명확해지며 악을 멀리하려 한다. 결국 우리는 위대한 스승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덕(virtue)의 길을 택한다. 스승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우리의 주된 동기인데, 이는 우리가 다음 생의 고통에서 구원받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 p.1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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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초판 출간, 70년 넘게 읽혀온
현대 인도 영성의 대표작 “진리는 가장 단순한 곳에 있다” 1954년 인도에서 처음 출간되어 전 세계 수행자들이 읽어온 이 책은, 라자 요가에 기반한 사하즈 마르그(Sahaj Marg, 자연의 길)의 핵심 사상을 담은 람 찬드라의 대표 저작이다. 종교와 삶의 목표에서 출발해 영적 수행, 스승, 믿음,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궁극의 실재를 향해 나아가는 길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을 관통하는 질문은 단순하면서도 근원적이다. 인간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돌아가는가.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그곳에 이를 수 있는가. 람 찬드라는 종교의 형식과 의례만으로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고 말한다. 종교의 본질은 외적인 형식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든 내적인 정신이며, 진정한 영성은 지식으로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경험하고 내면화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수행의 목적은 더 많은 것을 얻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온 복잡성을 하나씩 벗어버리는 데 있다. 욕망과 집착, 자아가 만들어낸 수많은 겹을 걷어내고 점점 더 단순하고 미세한 상태로 나아갈 때, 인간은 마침내 존재의 근원, 그가 ‘실재(Reality)’라고 부르는 곳에 가까워진다. 세상을 떠나지 않고도 가장 높은 영적 상태에 이를 수 있는가 람 찬드라는 1922년 자신과 이름이 같은 파테가르의 영적 스승 람 찬드라(Ram Chandra of Fatehgarh), 일명 ‘라라지(Lalaji)’를 만나면서 수행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았다. 이후 라라지의 가르침을 계승해 수행 체계를 발전시키고 이를 ‘사하즈 마르그’라 이름 붙였으며, 1945년에는 슈리 람 찬드라 미션(Shri Ram Chandra Mission)을 설립했다. 그 수행 전통은 오늘날 하트풀니스(Heartfulness) 명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명 속의 실재』는 그 사상적 출발점에 놓인 책이다. 출간 후 70여 년. 세상은 람 찬드라가 이 책을 쓰던 시대보다 훨씬 복잡해졌지만, 그가 던진 질문은 오히려 더 절실해졌다. 우리는 왜 이렇게 복잡해졌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그리고 모든 것을 걷어낸 뒤 마지막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이 책은 그 오래된 질문 앞에 다시 독자를 세운다. 이 책이 지금까지 읽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람 찬드라가 영성과 일상을 분리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 역시 세상을 등진 수행자가 아니었다. 인도 샤자한푸르 지방법원에서 30년 넘게 서기로 일했고, 열아홉 살에 결혼해 두 딸과 네 아들을 둔 가장이었다. 그는 바로 그 일상 안에서도 인간이 가장 높은 영적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믿었으며, 가족을 떠나고 직업을 버리고 세상과 단절해야만 영적으로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가정을 이루고 일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삶과 영적 성장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 책의 번역 저본인 2019년판 『Reality at Dawn』 역시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면서도 가장 높은 영적 발전에 이를 수 있다는 저자의 확신’을 강조한다. 이 책은 영적 수행을 위해 세상을 떠나는 법이 아닌, 세상 속에 머물면서 그 너머를 향해 가는 법에 관한 책이다. 더하는 대신 덜어내는 것 람 찬드라가 말하는 ‘단순함’의 영성 람 찬드라가 거듭 강조한 것은 ‘단순함’이다. 궁극의 실재가 단순하다면 그에 이르는 길 역시 단순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과 욕망, 지식과 관념을 거듭 덧붙이며 본래 단순했던 존재를 스스로 복잡하게 만든다. 즉 영적 수행은 새로운 것을 계속 쌓아가는 일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과정이다. 람 찬드라는 이 길에서 이론적 지식보다 경험을 중요하게 여겼다. 영성에 관한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다면 궁극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런 이유인지 이 책은 독자를 설득하기 위해 모든 것을 친절하게 설명하지는 않는다. 대신, ‘신’, ‘인생의 목표’, ‘영혼’, ‘중심’, ‘실재’ 등과 같은 개념을 따라가며 독자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한 번 읽고 이해하기보다 여러 번 돌아가 읽게 되는 책이다. 『여명 속의 실재』는 복잡해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하기보다 덜어내고, 삶의 바깥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서 답을 찾으라고 말한다. 1954년에 시작된 이 오래된 질문이 지금 다시 우리에게 도착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