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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1
제2판에 붙여3 제3판에 붙여7 제1장 법에 관한 학문13 §1. 좁은 의미의 법학13 §2. 법사학과 비교법학16 §3. 법사회학18 §4. 법심리학21 §5. 루돌프 예링(1818-1892)24 §6. 법철학의 과제27 제2장 법의 이념35 §7. 정의35 §8. 합목적성39 §9. 법적 안정성43 §10. 가치 이념들의 서열46 제3장 실정법49 §11. 법의 개념49 §12. 법의 효력52 제4장 법과 다른 문화 형태56 §13. 법과 도덕56 §14. 법과 관습60 §15. 법과 종교63 제5장 주요 법문화68 §16. 로마법68 §17. 영미법71 §18. 프랑스 민법전(Code civil)76 §19. 독일 민법전(BGB)79 §20. 교회법(Codex Juris Canonici)82 제6장 법의 표현 양식85 §21. 주관적 권리와 객관적 법85 §22. 공법과 사법90 §23. 실체법과 절차법93 제7장 법학의 여러 경향96 §24. 법학의 시대구분96 §25. 법학적 실증주의121 §26. 자유법운동123 제8장 법의 역사철학128 §27. 역사의 법철학128 §28. 법의 역사의 철학130 제9장 법의 미학134 §29. 법의 표현형식134 §30. 회화 속의 법철학138 §31. 법과 문학145 제10장 현시대의 법철학적 문제153 §32. 법개념으로서의 인간성153 §33. 사회적 법156 §34. 민주주의 사상164 §35. 세계법168 §36. 초법률적 법174 부록 법철학에서 상대주의(1934년)179 법의 목적(1937년)187 5분간의 법철학(1945년)205 법의 혁신(1946년)209 법률과 법(1947년)213 법의 혁신(1947년)220 옮긴이 후기231 |
Gustav Radbr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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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후기
라드브루흐의 제자 아르투어 카우프만은 1970년대부터 스승의 전집을 출간할 구상을 품었다. 『구스타프 라드브루흐 전집(Gustav Radbruch Gesamtausgabe)』 제1권은 1987년에 출간되었고, 총괄 편집자였던 카우프만이 2001년 세상을 떠난 뒤인 2003년에야 제20권이 출간되었다. 스무 권으로 완간된 『전집』의 분량은 모두 9,444쪽이다. 라드브루흐가 남긴 방대한 문헌은 일정한 주제나 형식에 따라 분류되어 『전집』의 각 권에 배정되어 있다. 이러한 기준은 각 권의 제목에 압축적으로 반영되어 있는데, 제목을 이루는 단어들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법철학, 문화철학, 문화사, 문학사, 미술사, 포이어바흐, 형법, 형법개혁, 행형, 형법사, 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사법, 교육정책, 종교정책, 국가, 헌법, 비교법 ……. 예나대학교 법철학 교수였던 게르하르트 하나이Gerhard Haney는 『전집』 제1권에 대한 서평에서 라드브루흐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하나이는 1997년에 출간된 『전집』 제6권의 편집자이기도 하다). 라드브루흐라는 이름은 학문적 업적과 인간적 태도의 동의어(Synonym)이자, 생산적인 철학 정신과 사회적 정의를 향한 헌신의 동의어이며, 엄밀한 법학을 철학과 역사뿐만 아니라 예술과 문학, 더 나아가 교육까지 함께 결합한 성공적인 법률가의 동의어이다. 이처럼 라드브루흐는 학문의 경계를 쉼 없이 가로질렀다. 그 가운데서도 라드브루흐가 법철학에 남긴 족적은 특별했다. 『전집』 제1권부터 제3권까지의 제목이 모두 “법철학”이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라드브루흐는-한스 켈젠과 함께-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호명되는, 20세기 최고의 법철학자로 손꼽힌다. 법철학자로서 라드브루흐의 주저는 1932년의 『법철학』이다. 『법철학』은 라드브루흐가 1914년에 출간한 『법철학 기초』를 대폭 손질한 책이다. 『법철학』 서문에서 라드브루흐는 작심한 듯 다음과 같이 썼다. 모든 저술가에게는 남은 기간의 삶을 다른 과제에 바치기 위해 지금까지 자신이 수행했던 과제들을 정리해 마감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는 시점이 오기 마련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지은이의 법철학적 연구를 마감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라드브루흐는 『법철학』을 출간함으로써 법철학자로서 자신의 연구를 매듭지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법철학』이 출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폭주하기 시작한 독일의 역사는 라드브루흐의 공언을 무위로 돌렸다. 1933년 1월 히틀러가 수상 자리에 올랐고, 그해 5월 라드브루흐는 하이델베르크대학교 교수직에서 해임되었다. 1939년 9월 나치 독일은 이웃 나라 폴란드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라드브루흐는 해임된 날부터 종전까지 12년 동안 대체로 하이델베르크에 머물렀지만, 키케로의 『의무론(De Officiis)』 번역서에 대한 서평 한 편을 제외하고는 독일에서 어떠한 글도 발표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훗날 이 시기를 “커다란 환난에 부딪히면 기도하는 것을 배울 뿐만 아니라, 철학적 사유도 배우게 된다”라는 말로 규정한다. 라드브루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법철학』 개정판을 출간할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라드브루흐가 자신의 『법철학』 소장본 사이사이에 끼워 넣은 간지에 손수 적은 주석은 『전집』 제2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라드브루흐는 이르면 1946년 가을부터 『법철학』 개정판에 실을 후기를 쓰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개정판은 끝내 출간되지 못했다. 1940년대 초에 접어들면서 악화한 파킨슨병은 라드브루흐를 갈수록 괴롭혔고, 나치 패망 후 불과 4년이 지난 1949년 11월 23일 라드브루흐는 만 71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 때문에 라드브루흐가 생전에 직접 집필한 법철학 저서는 『법철학 기초』와 『법철학』이 전부였다. 하지만 죽음의 그림자가 찾아올 무렵 라드브루흐의 법철학 강의가 기록된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왔다. 1945년 6월 하이델베르크대학교 법과대학에 복귀한 라드브루흐는 1946년에서 1947년으로 이어지는 겨울 학기에 법철학 강의를 맡았다. 징집 탓에 뒤늦게 대학생이 된 1921년생 동갑내기 청년 두 명이 이 강의를 받아 적는 일을 자청했다. 하랄드 슈베르트Harald Schubert와 요아힘 슈톨첸부르크Joachim Stoltzenburg가 작성한 강의 기록은 라드브루흐의 검토를 거쳐 1948년경 출간되었다. 이 책이 바로 『법철학 입문(Vorschule der Rechtsphilosophie)』이다. 라드브루흐는 1914년의 『법철학 기초』와 1932년의 『법철학』에 이어 『법철학 입문』도 평생의 벗 헤르만 칸토로비치에게 헌정한다. 특히 이 책의 §24에는 칸토로비치가 1914년에 발표한 논문 「법학의 시대구분」이 수정 없이 그대로 수록되어 있다. ‘형식주의와 목적주의 사이의 대립’이라는 관점에서 법학의 역사를 개관하는 칸토로비치의 글은 법철학 ‘입문’을 위한 절묘한 통로가 된다. 그러나 『법철학 입문』은 ‘입문’의 기능을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라드브루흐가 『법철학』 개정판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드브루흐는 서문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이 작은 책은 입문서라는 과제와는 별개로 나의 『법철학(제3판, 1932년)』의 보충 및 확장과 관련해 내가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대강이나마 지적하는 역할도 한다. 인류가 경험했던 최악의 독재와 그 패망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겪으면서 라드브루흐는 『법철학』에서 전개한 이론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조짐은 이미 1930년대에 프랑스어로 발표한 두 편의 논문 「법철학에서 상대주의」와 「법의 목적」에서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법철학의 방법으로 방법이원주의와 상대주의를 채택한 점, 실정법이 지향하는 이념을 정의.합목적성.법적 안정성의 모순적 조합으로 구성한 점, 정의와 법적 안정성은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보편적 가치이지만 합목적성의 내용은 사람에 따라 개인주의적 가치체계.초개인주의적 가치체계.초인격주의적 가치체계 가운데 어느 하나로 채워진다고 보는 점 등의 이론적 기초는 『법철학 입문』에서도 변함없이 유지된다. 그렇다면 『법철학』과 『법철학 입문』의 이론적 궤도는 어디에서 갈라지는가? 가장 뚜렷한 분기점은 다음의 질문을 통해 가늠할 수 있다. “법관은 언제나 실정법에 구속되어야 하는가?” 1932년의 『법철학』에서는 일반 시민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체계에 따라 실정법을 평가할 수 있다고 본다. 즉 사람은 누구나 개인주의적 가치체계, 초개인주의적 가치체계, 초인격주의적 가치체계 가운데 어느 하나를 신봉한다. 실정법을 어떻게 평가하든, 이를 위반하기보다 복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정법에 복종하는 것 자체가 법적 안정성, 즉 평화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가치체계와 극심하게 충돌하는 법률에는 복종을 거부할 수 있다. 라드브루흐는 이러한 법률을 ‘치욕스러운 법률’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라드브루흐 법철학에서 실정법의 궁극적 효력은 개인의 양심에 맡겨진다. 그렇지만 법관은 언제나 실정법에 구속되어야 하는 존재로 규정된다. 즉 법관에게는 ‘치욕스러운 법률’이 존재하지 않는다. 법관에게는 법률의 효력의지가 효력을 발휘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 직업적 의무이고, 법의 권위적 명령을 위해 자신의 법감정을 희생시키는 것 또한 직업적 의무이며, 단지 무엇이 법적으로 타당한지를 물어야 할 뿐, 결코 법률이 정의로운지를 물어서는 안 된다 … 법관이 자신의 개인적 정의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법률에만 봉사한다면, 법관은 결코 자의에 따른 우연적인 목적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다. 이 법관이 비록 법률이 의욕하는 대로 행동하면 더 이상 정의의 봉사자가 될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그는 여전히 법적 안정성의 봉사자로 남아 있게 된다. 우리는 자신의 확신에 반해 설교하는 목사는 경멸하지만, 자신의 반대되는 법감정에도 불구하고 법률에 대한 충실에 아무런 혼란도 겪지 않는 법관은 존경한다. 1948년의 『법철학 입문』에서도 법관이 실정법에 구속되어야 할 직업적 의무를 부담하는 사람임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이제 법관은 ‘끔찍하리만큼 부정의한 법률’의 적용을 거부할 수 있다. 실정법의 내용은 개인주의적 가치체계, 초개인주의적 가치체계, 초인격주의적 가치체계 가운데 어느 하나로 확정.평가되지만, 『법철학 입문』에서는 ‘인권’이 절대적 가치로 부상한다. 어떠한 가치체계를 신봉하든 관계없이 인권은 필연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인권을 완전히 부정하는 실정법은 ‘끔찍하리만큼 부정의한 법률’로 평가되어 효력을 가질 수 없으며, 이러한 결론은 법관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법적 안정성은 여러 가치 가운데 하나의 가치일 따름이다. 따라서 어떤 법률에 내재하는 부정의가 실정법을 통해 보장되는 법적 안정성이 더 이상 비중을 갖지 못할 정도에 도달한 경우라면 … 실정법을 통해 보장되는 법적 안정성은 가치를 상실한다. 다시 말해 원칙적으로는 실정법의 효력이 법적 안정성을 통해 정당화될 수는 있지만, 끔찍하리만큼 부정의한 법률이라는 예외적인 사례에서는 이 법률의 부정의를 이유로 법률의 효력을 박탈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이러한 이론적 변화를 라드브루흐가 직접 서술한 논문이 1946년 8월에 발표된 「법률적 불법과 초법률적 법」이다. 흔히 ‘라드브루흐 공식’으로 불리는 유명한 문단은 이 논문의 중반부에 등장하는데, 그 내용은 『법철학 입문』 § 10(“가치 이념들의 서열”), § 11(“법의 개념”), § 12(“법의 효력”)에 체계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법률적 불법과 초법률적 법」을 발표하기 약 1년 전에도 라드브루흐는 신문에 기고한 짧은 글에서 이러한 변화를 예고했다. 이 예고편은 1945년 9월에 발표된 「5분간의 법철학」인데, 그 중반부(“3분”)에서 라드브루흐는 다음과 같이 썼다. 만일 정적을 살해한 것을 칭송하고, 다른 인종에 대한 살상을 명령하면서도, 자기들 편 사람들에 대한 살인은 극도로 무자비하고 잔혹한 형벌로 처벌한다면, 그것은 정의도 법도 아니다. 예를 들어 제멋대로의 기준에 따라 어떤 사람에게는 인권을 인정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인권을 부정하는 것과 같이, 법률이 정의를 향한 의지를 의식적으로 부정한다면, 그러한 법률은 효력이 없으며, 따라서 국민은 그 법률에 복종할 의무가 없고, 법률가들 역시 그러한 법률로부터 법적 성격을 박탈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5분간의 법철학」을 발표한 지 넉 달이 지난 1946년 1월, 라드브루흐는 「법의 혁신」이라는 글을 신문에 게재했다. 이 짧은 기고문에서도 「법률적 불법과 초법률적 법」, 그리고 『법철학 입문』에서 나타난 이론적 변화가 아래와 같이 관찰된다. 우리는 법률 자체가 부정의와 범죄를 노골적으로 허용했던 시기를 되돌아보게 된다. 독일의 법률가들을 지배했던 견해인 실증주의, 즉 절차와 질서에 부합해 성립한 법률이라면 모두 법의 성격과 효력을 인정하는 실증주의는 부정의와 범죄를 허용한 법률에 대항하지 못하는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견해였다. 우리는 모든 법률보다 더 상위에 있는 인권 그리고 정의에 적대적인 법률의 효력을 부정하는 자연법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1932년의 『법철학』과 1948년의 『법철학 입문』 사이에서 일어난 이론적 변화는 “법관은 언제나 실정법에 구속되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비추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라드브루흐 법철학의 변화와 변신이 단순히 이론적 차원에만 머물지 않고, 현실에서도 커다란 의미가 있다는 점은 시공간을 뛰어넘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 대법원의 판결문에는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해 유죄판결을 선고한 법관의 불법행위책임을 둘러싼 논쟁(2022년 8월)이나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가족의 위자료 청구에 대한 국가의 소멸시효 항변을 둘러싼 논쟁(2026년 1월)이 등장한다. 국가에 의해 자행된 폭력을 다룬 이 두 차례의 판결에서 어느 대법관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거듭해서 던진다. 국가권력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가 회전하고 있다고 가정할 때 법관은 바퀴에 달린 톱니 하나에 불과하여 외부적 요인으로 톱니바퀴의 회전이 멈추지 않는 한 톱니바퀴와 함께 회전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아니면 톱니바퀴의 외부에 존재하는 제동장치로서 필요한 경우에는 톱니바퀴의 회전을 멈출 수 있는 존재인가? 1932년의 『법철학』이 첫 번째 질문의 방향으로 대답한 반면, 1948년의 『법철학 입문』에서는 두 번째 질문에 힘을 실어 대답하는 이론이 펼쳐진다. 만일 라드브루흐가 생전에 『법철학』 개정판을 출간했더라면, 그 책에는 두 번째 질문에 대한 한층 섬세한 대답이 제시되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라드브루흐는 『법철학』에서 확립한 이론적 토대를 얼마나 수정해야 했을까? 라드브루흐 법철학은 상대주의에서 더 멀리 물러나야 했을까? 라드브루흐는 인권의 구체적인 목록을 제시하는 데까지 나아갔을까? 이 모든 물음을 품고 우리에게 남겨진 라드브루흐의 마지막 책 『법철학 입문』을 읽는 작업은 법을 ‘철학하기’의 소재로 삼을 때 떠오르는 다양한 스펙트럼과 함께 고전적 의미의 법철학이 제공하는 표준 식단을 맛보는 일이 될 것이다. * 내게 익숙한 『입문』은 1959년에 카우프만의 편집으로 Vandenhoeck & Ruprecht에서 출판된 단행본이다. 손안에 쏙 들어오고 책장의 질감도 고서의 느낌이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번역은 새로운 편집과 수정을 거친 『구스타프 라드브루흐 전집』의 제3권(‘법철학 Ⅲ’-빈프리드 하세머 편집)을 토대로 삼았다. 제3권에는 1932년의 『법철학』 이후에 라드브루흐가 발표한 법철학 저작을 모두 싣고 있는데, 그 가운데 앞에서 언급한 이론적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모든 글, 즉 나치 집권 때 프랑스어로 출간한 논문과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에 발표한 주요 논문을 번역해 부록에 실었다. 다만 이 맥락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논문 「법률적 불법과 초법률적 법」은 이미 출간한 『법철학』의 부록에 실려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배제했다. 역주는 읽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도록 최소화하려고 했지만, 다른 책에 비해 역사적 맥락이 더 많이 등장하는 편이라 어쩔 수 없이 그만큼 역주의 수도 늘어나고 말았다. 『입문』의 출간과 함께 라드브루흐가 남긴 세 권의 법철학 책 번역이 마감되었다. 딱히 긴 여정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은 그사이 코로나, 계엄, 탄핵, 인공지능, 기후변화 등 격난과 격변의 시대를 뚫고 온 탓인지도 모른다. 올해 2월에 라드브루흐 법철학에 관해 『법이념의 구조변동』이라는 제목의 두툼하고 치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박석훈 변호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여정을 함께 했다. ‘학문’이라는 막연하면서도 오묘한 말로 그 모든 것이 설명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지만 앞으로 걷게 될 학문의 길 또한 즐거운 고난의 길이 될 것임을 예감하면서, 고맙다는 말을 적어둔다. 『기초』의 후기에서도 밝혔듯이 박 변호사가 라드브루흐를 박사학위 논문 주제로 삼지 않았다면, 내가 『기초』와 『입문』까지 번역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박영사의 조성호 상무님과 이승현 차장님의 지속적인 노력은 세 권의 책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깊이 감사드린다. 또한 이 책의 출간은 고려대학교 「석탑연구비」의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도 밝혀둔다. 나의 학문적 작업을 늘 함께해 주시는 스승 심재우 선생님께 라드브루흐 법철학 책 번역 ‘완간’을 보고드려야 할 때가 왔다. 올해 기일에는 누워 계신 곳에 직접 찾아가야겠다. 세 권의 책과 함께. 분명 내 인사는 뒤로 넘기시고 곧장 “라드브루흐는 말이야 …”라고 말씀을 시작하실 것이다. ** 순간과 순간의 흡입이 지배하는 시대에 천천히 음식을 입에 넣고 어금니와 송곳니로도 모자라 앞니와 잇몸까지 써가며 곱씹는 일을 왜 하는지 회의할 때가 많다. 그리고 이제 이런 식의 작업 방식은 곧 사라지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 사실이 아득하고 아련하게 다가올 때 라드브루흐는 이렇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앞뒤 맥락을 끊고 읽으면 위로를 넘어 모든 시대의 징표로 여겨도 좋을 말이다. 사소하고 시대와 동떨어진 것에 몰두하는 이런 일에도 나름의 사명은 있다. 이런 시대에도 오직 학문 자체를 위해 지식을 갈구하며 학문에 헌신한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 뒤에 올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 바로 그 사명이다. 2026년 8월 안암동 연구실에서 옮긴이 윤 재 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