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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1. 동아시아 담론,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 - 제국주의로부터 제국주의를 넘어서 2. 동아시아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3. 동북아 시대에서 한국사 서술과 역사 교육 - 국사를 넘어서 4. '기억의 장'으로서 동아시아 - 국사에서 동아시아사로 맺는 말 주석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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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공동체 만들기. 흡사 과거 일본 제국이 아시아 여러 지역을 식민지화하면서 내건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용어가 떠오르면서, 그 주장이 누구에 의해 어떤 배경으로 제기되었는지 의구심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이웃 나라의 성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멈추지 않고 있고, 중국은 동북공정이라해서 고대사 왜곡에 여간 힘을 기울이는 게 아니다. 타이완과 중국 정부 사이의 냉랭한 기류는 지금도 여전하다. 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는 인도를 서로 끌어안기 위해 한ㆍ중ㆍ일뿐만 아니라 태평양 건너 미국까지 피 말리는 경쟁을 벌인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리고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동아시아 어느 지역은 공동체 만들기는 커녕 지금 당장 먹고살기 힘든 지경에 처해 있기도 하고, 민족ㆍ종교 갈등으로 총성이 끊이지 않는 곳도 있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동아시아 공동체 만들기 프로젝트는 그것이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인가, 그리고 그것의 본질적인 목적이 무엇인가 회의하게 만든다. 이 책은 궁극적으로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미래지향적인 시각으로, 민족이나 국가 안에서 맴도는 닫힌 시각을 좀 더 열린 시각으로 확대하고자 기획되었다. 우리에게 동아시아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동아시아 공동체는 왜 필요한가?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가? 동아시아 담론은 이미 15년 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이미 그때부터 중국은 경제적으로 급부상했고, 상대적으로 미국은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 그에 따라 서구의 타자로 규정되어온 동아시아 개념을 이제는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른바 '리오리엔트'다. 유럽은 이미 1979년부터 미국 경제의 쇠퇴를 대비해서 유럽통화 단위인 '에쿠ECU'를 도입했고, 1999년부터는 단일 통화인 유로를 발행해 경제적 통합을 이룩했다. 지금은 속도를 조절하고 있지만 곧 정치적 통합을 이루고 유럽헌법을 통과시킨 후 유럽합중국을 출범시킬 전망이다. 동아시아 공동체의 필요성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제적 일방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동아시아의 집단 안전 보장체제 구축이 필요하다는 데 각국이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이러한 경제적 이해관계보다 더 절박한 이유가 있다. 냉전 체제가 붕괴하면서 한국은 한반도의 균형추 역할을 상실했고, 등을 기댈 언덕을 잃어버린 북한은 핵을 무기로 삼아 한반도를 냉전 상황으로 계속 유지시키는 벼랑 끝 전술을 펼쳐왔다. 한반도 핵문제를 해결할 6자회담의 중심축은 미국과 중국으로 일찌감치 기울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을 연착륙시키려는 전략을 구사했지만 미국의 힘 앞에서 근본적인 한계에 부딪힌 게 사실이다. 노무현 정부는 미국이나 중국 어느 한편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다른 편과도 적대적이지 않고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묘책으로 '동북아균형자론'을 내놓았다. 이를 통해 한반도 문제에서 능동적인 균형자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 역시 미국의 패권주의적 세계 전략에 가로막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분단국가인 한국 입장에서 미국이냐 중국이냐 양자택일은 그 자체가 위험한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바로 동아시아 공동체가 한국의 이러한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동아시아 공동체라는 테두리가 확고히 구축되어 있을 때 한국은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그 테두리 안에서 '균형자' 역할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의 유럽공동체, 즉 유럽연합을 구축해 미국의 세계 전략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처럼 동아시아 공동체 토대 위에서만 탈미국적인 동아시아 지역 질서가 성립할 수 있다. 따라서 이제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동아시아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역사를 통한' 동아시아 공동체 만들기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각국은 공동체 구축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몇 년 전부터 그것의 현실화를 위한 물밑 작업을 해왔다. 장밋빛 전망들이 쏟아져나왔다. 그런데 동아시아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한ㆍ중ㆍ일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뜻을 같이 했지만 그 모습이 구체적으로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동상이몽을 하고 있다. 말 그대로 '상상의 공동체'에 불과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2005년 11월 말레이시아ㆍ콸라룸푸르에서 동아시아 16개국 정상이 모여 동아시아 공동체 구성 방안을 논의했다. 이 회담은 그동안의 탁상공론에서 벗어나 동아시아 공동체를 구체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었다. 그러나 공동체의 확대 방안을 둘러싸고 각국이 첨예한 의견 차를 드러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각국이 여전히 민족과 국가를 중심으로 각자의 동심원을 그려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공동체는 초국가적 지역 질서다. 국가주의적 발상으로는 그 어떤 구체적 전망조차도 내놓을 수 없는 것이 저자가 이 책에서 줄기차게 지적하는 문제다. 아울러 지금 이 시점에서 공동체 구성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선행 작업은 동아시아 공동체의 전망이 아닌, 그동안 역사 속에 존재해왔던 '동아시아'의 모습을 성찰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지금까지 우후죽순처럼 나온 동아시아에 대한 논의가 담론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일차적 이유는 동아시아에 대한 역사적 성찰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종래의 동아시아 담론은 역사로서 동아시아를 살펴보는 것을 생략하고 전망으로서 동아시아만을 관념적으로 주장함으로써 현실성을 획득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과거의 동아시아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었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깨져나갔는지, 한계와 모순을 철저히 성찰했을 때만이 동아시아의 미래를 꿈꿀 수 있다. 결국 무작정 동아시아 공동체 만들기가 아니라 이 책의 제목이 제시하는 것처럼 '역사를 통한' 동아시아 공동체 만들기여야만 하는 것이다. 역사 속의 동아시아는 어떤 모습이었나 그렇다면 동아시아는 역사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었을까. 아니 동아시아라고 규정할 수 있을 만한 그 무엇이 존재하기는 했을까. 동아시아는 왕조나 국가와 같이 실재 존재한 정치 공동체는 아니지만 지역 질서로서 엄연히 역사 속에 존재했다. 이 책은 바로 하나의 지역 질서로 존재했던 동아시아의 역사성을 고찰하고자 한 것이다. 근대적 의미에서 동아시아는 서구에 의해 발명된 것이었다. 이른바 지리상의 '발견'을 통해 동방의 아시아, 곧 동양은 서구에 소개되었고, 서구의 상대적 개념으로서 동양, 즉 서구의 타자가 된 것이다. 이것이 동아시아의 오리엔탈리즘적 기원이다. 동아시아는 한동안 오리엔탈리즘의 포로가 되어 본래의 정체성을 상실한 채 존재했다. 물론 근대 이전에도 동아시아는 하나의 지역 질서로 존재했다. 중화사상, 즉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질서 체제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는 사대라는 도덕적 코드와 조공체제라는 연성권력을 토대로 구현된 지역 질서였다. 사대주의에 입각한 중화제국 질서는 1895년 청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돌아감으로써 붕괴했고, 일본이 새로운 강자로 부상했다. 일본은 '동양'이라는 개념을 창안해 중국을 이 지역의 일원인 '지나'라는 하나의 국민국가로 상대화시킴으로써 동아시아를 일본 제국주의가 주도하는 세력권으로 재편성하고자 했다. 일본 제국 역시 오리엔탈리즘의 족쇄를 벗어던지지 못한 것이다. 일본에게 동아시아는 서구가 주도하는 세계화에 편승하고자 하는 열망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동아시아'가 풍기는 지역적 정체성은 이 같은 일본 제국주의의 욕망으로 만들어졌다. 동아시아를 호령하는 주체가 되고자 했던 일본은 서구 열강과의 제국주의 경쟁에서 곤란을 겪자 스스로도 동아시아라는 지정학적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일본은 아시아의 맹주가 되어 서구에 대한 저항 에너지를 총집결해야 될 필요성을 깨닫고 '아시아주의'와 '대동아공영권' 개념을 만들어냈다. 중화제국에 이은 새로운 동아시아 공동체의 출현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동아시아 구상은 실현되기도 전에 '대동아전쟁'에서 패망함으로써 자연스레 좌초되었다. 중국이 연성권력을 토대로 동아시아를 제패했다면 일본은 무력에 의거한 강성권력을 기반으로 아시아를 장악하려 했다.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과거의 동아시아 지역 질서는 평화와 공동 번영을 목적으로 하는 수평적 관계가 결코 아니었다. 오늘날 각 국가의 수평적 결합을 통한 동아시아 공동체가 과연 가능한 것인가를 논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위와 같은 제국적 또는 제국주의적 욕망으로부터 성립한 동아시아의 역사성을 먼저 규명해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그러한 성찰이 가능할 때만이 '탈제국적', '탈국가적' 지역 질서로서 동아시아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논의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한국사를 넘어 동아시아로 한반도가 처한 절박한 현실적 문제를 타개할 대안이 동아시아 공동체라면, 한국사가 가지고 있는 자기모순을 탈출할 수 있는 출구도 동아시아요, 그렇게 모순을 털어낸 한국사가 다시금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에 좋은 발판이 될 수 있으니, 결국 우리에게 동아시아 공동체 만들기는 한국사의 재정립과도 아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가와 민족을 넘어 동아시아 공동체로 나아가야만 하는 중요한 길목에서, 그것도 '역사를 통한' 동아시아 공동체 만들기를 주장하는 시점에서 아이러니하게 한국사(국사)는 이러한 시대적 방향성을 담아내기엔 틀이 너무 좁다. 좁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방향을 왜곡할 우려마저 있다. 종종 지적되듯 한국 근대 역사학은 철저하게 서구 중심주의에 입각해서 성립했다. 서구 역사학의 잣대인 고대, 중세, 근대의 3시대구분에 의거해서 세계사적인 보편성 속의 한국사적 특수성을 구현해낼 수 있다는 믿음은 오늘날 동아시아가 극복해야 할,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의 발로다. 한국사,동양사, 서양사의 역사 3분법에 의거해서 자국사의 독자성을 확보하고자 하면서, 자국사의 발전 과정을 고대, 중세, 근대라는 서구 역사의 잣대로 재는 국사의 에피스테메는 자기모순이다. 동아시아 관점은 이런 국사의 자기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다. 신라의 삼국통일, 고려의 성립과 조선의 건국, 대한제국의 멸망과 일제의 식민지화는 모두 동아시아사의 맥락 속에서 이루어졌다. 이처럼 동아시아사의 맥락과 한국사의 그것을 동일선상에서 바라보았을 때, 한국사의 개체성과 고유한 발전 방식을 해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 민족 중심의 역사인식에서도 한 걸음 멀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우리는 동아시아 공동체가 현실과 괴리된 '상상의 공동체'가 아니라, 현실 문제를 풀어나갈 '대안 공동체'이자 미래를 함께 열어젖힐 '운명 공동체'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