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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기
한반도의 본래 위치 10 비슬산 빙하기 돌강 유적 12 한반도의 지형 형성 14 구석기 시대 인류의 진화 20 선사와 원시 21 채집 경제, 뗀석기 사용 22 신석기 시대 신석기 혁명, 토기 사용 24 원시 종교 발생 25 청동기 시대 하늘에서 내려왔다? 28 사유 재산과 계급 발생 29 전쟁과 신분 차별 31 정복자의 지배 논리 33 고조선의 세력 범위 34 고조선의 발전 35 철기 시대 연맹왕국 성립 37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39 삼한, 중앙 집권 국가 태동 41 가야 멸망 43 삼국 탄생 45 삼국 초기의 권력 행사 47 삼국 시대 관료 제도 정비 50 신분 제도 정비 52 왕위 세습, 율령 반포 54 불교 공인 56 삼국의 경쟁 58 고구려의 승리 60 삼국 통일 62 금관가야와 대가야 멸망 63 남북국 시대, 후삼국 시대 통일 후 왕권 강화 68 통일신라의 행정과 군사 조직 70 신라의 경제, 청해진, 신라로 72 발해의 역사 74 멸망의 역사 76 후삼국 78 삼국 문화의 일본 전파 80 고려 시대 노비안검법, 과거 실시 88 전시과, 시무28조 90 유학 증진 92 거란의 침입 93 자주냐 굴복이냐, 문벌 귀족 94 조선 역사 1천년 가장 큰 사건 96 외적 침입과 고려 문화 97 무신 정변과 농민 봉기 98 백성들이 지킨 자주 국가 100 원의 횡포, 권문세족의 횡포 102 공민왕의 개혁과 외적 침입 104 친명이냐 친원이냐 106 고려의 성리학 수용 107 조선 시대 왕권이냐 신권이냐 113 세종과 민본 정치, 사육신 115 사화 117 붕당 발생, 향약 119 임진왜란의 피해 121 의병 122 호란과 북벌 125 실학 등장 127 탕평책 128 정조와 실학 129 조선 시대 문학 130 민란 131 조선 후기 정치 132 대원군의 쇄국 정책 133 사창 134 과학 기술 136 승군 137 개항, 위정척사 운동 139 척화비 140 임오군란, 갑신정변 141 동학 농민 혁명 143 갑오개혁 145 을미사변, 단발령, 의병 147 아관파천, 독립협회 149 을사늑약 151 의병 전쟁의 의의 152 국권을 빼앗기다 153 국채보상운동 157 독립운동 시대 무단 통치 160 신민회 161 3‧1운동 전의 국내 독립운동 162 3‧1운동 전의 국외 독립운동 164 3‧1운동 166 파리장서 사건 171 1920년대 국외 독립운동 174 1920년대 국내 독립운동 176 1930년대 국외 독립운동 178 일본의 침략 전쟁 180 1940년대 건국 준비 활동 182 현대 독립, 남북 분단 200 전쟁이 일어나다 202 4‧19혁명 206 5‧16군사정변 208 1980년대 210 1990년대 212 대구경북 주요 역사유적 시대별‧주제별 답사 일람 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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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본래 위치〉 3억6천만 년 전, 한반도는 적도 부근에 있었다. 그 후 천천히 움직여 2억∼1억5천만 년 전 현재 위치에 닿았다. 〈공룡 시대의 대구경북〉 공룡이 많이 살았던 1억4500만∼6500만 년 전, 대구경북은 거대 호수였다. 공룡들은 호숫가를 거닐며 풀을 뜯고 물을 마셨다. 그래서 경북은 지금도 16개 광역 중 가장 많은 5,547개(전국 17,505개의 32%)의 호수를 보유하고 있고, 공룡발자국 화석化石 또한 전국 100여 곳의 반 이상인 50여 곳이 경북에 있다.
--- p.10 〈고분〉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자리를 철기시대에는 고분古墳이 차지한다. 고인돌 시대는 돌널무덤과 돌덧널무덤이었지만 철기에는 널무덤과 독무덤이 만들어진다. 철기 고분군은 대구 불로 고분군(사적), 경주 금척 고분군(사적), 부여 능산 고분군(사적), 공주 송산 고분군(사적) 등이 유명하다. 특히 704기나 되는 경북 고령 대가야 고분군은, 초기 가야연맹 맹주 금관가야가 400년 광개토대왕의 왜구 정벌 이후 급속히 쇠락하여 532년 신라에 투항한 이래 후기 가야연맹을 주도했던 대가야가 남긴 것으로,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순장殉葬 흔적이 남아 있는 돌방무덤과 돌덧널무덤을 보여주는 대가야 고분군은 침입해온 외적이 멀리서도 볼 수 있도록 산 능선 높이 조성된 점이 특징이다. (Naver블로그 ‘현진건학교’ 보충자료 13 참조) --- p.43 〈달성 녹동서원〉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좌左선봉장 사야가沙也可는 부산 상륙 직후 3천 조총 부대를 이끌고 조선에 투항했다. 그의 문집에는 ‘조선의 문화가 일본보다 더 발달했다. 학문과 도덕을 숭상하는 나라를 짓밟을 수는 없다‘고 밝혀져 있다. 사야가는 일본에 있을 때부터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집권 세력에 반대해온 무장이었다. 그는 조선에 총 제작법과 다루는 기술을 전수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군 격퇴에도 많은 공을 세웠다. 선조는 그에게 김충선金忠善이라는 성명을 내렸다. 김충선은 인종반정 뒤 일어난 이괄 반란과 병자호란 때에도 크게 활약했다. 이에 조선인 선비들이 그를 기릴 것을 상소, 정조 13년(1789) 녹동서원이 세워졌다. 〈대구 모명재〉) 대구 만촌동에 두사충 묘소와 그를 기리는 재실 모명재慕明齋가 있다. 두사충은 명나라 장수로 임진왜란에 참전했다가 조선에 귀화한 인물이다. --- p.1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