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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의존할 만한 사람 보여줄 수 있는 프라이버시 당연히 누려야만 할 것 사랑받을 자격 에필로그_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 해설: 매듭 풀기-포틀래치도 굿도 없이_황유지 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상상치 못한 바를 발견하는 일 _심너울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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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문제가 있을 때는, 잠을 자야 한다. 그게 타조 같을지라도. 아니, 지극히 인간적인 행동일지라도.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방금 꿨던 악몽은 이미 기억에서 흩어지고 있었다. 생각보다 잠은 수월하게 찾아왔다.
---p.17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지? 이걸 계속한다고 어젯밤의 일이 없어지나? ---p.18 “외국에서는 스타들이 자기 꿈을 먼저 공개한다고도 해. 무의식적으로나, 의식적으로나 깨끗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려고. 왜? 대중이 사생활 깨끗한 사람을 좋아하잖아.” ---p.31 “그래, 그래. 곽은혜 선생이 요즘 아주 프라이빗하게 진행하는 클래스가 있다는 거야. 일종의 ‘꿈 꾸미기’ 혹은 ‘드림엔지니어링’이라고나 할까? 무의식의 저변을 바꿔서, 꾸는 꿈 자체를 깨끗하게 해준다는 거지.” ---p.34 “곽은혜 선생이 직접 봐준대. 한 달 안에 꿈 스캔이랑 해석까지 해준다고 하니, 우리가 그 자료를 가지고 깨끗한 꿈을 만들 수 있을 거야. 나도 이런 서비스가 있는지 간신히 알았다. 네트워크 만드는 것도 정말 힘들었어. 대중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거야. 그러면 〈히빙 시〉 제작사랑도 다시 이야기 잘해볼 수 있을 거고…” ---p.34 “무슨 일인데 꿈까지 검사받아?” ---p.78 그녀는 피식 웃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할 바에야 일에 집중해 하나씩 빠르게 쳐 내는 게 훨씬 나을 것이다. 강호연이 오랫동안 이 일을 하면서 깨달은 교훈이었다. 그 교훈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다시 일할 시간이었다. ---p.84 “나는 사랑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p.87 곽은혜는 자기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의 평가를 떠올렸다. 대중은 그녀를 이미 꿈 전문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있었다.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를 경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개는 소위 정신의학 전문의, 임상 상담심리사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드림스캔이 꿈을 드러낸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꿈으로 무의식을 읽어낸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곽은혜가 말하는 것은 그럴듯하지만, 누구나 그런 이야기는 지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p.89 “의사 선생님이 입원하라고 했어요. 저는 그런데… 어떻게 아이돌이 정신병원에 들어가요? 그것도 약물 중독으로요. 그게 알려지면 정말 끝이에요.” ---p.92 “수연 씨가 처방한 약을 먹고 자살한 사람이 생겨서잖아요? 그래서 제가 수연 씨를 거둬준 거고. 나는 수연 씨 덕에 의사 면허가 있어야 쓸 수 있는 드림스캐너도 쓰고 있는 거고. 아닌가요?” ---p.110 “그래도 말이야, 우리는 현실에 존재해야 해.” ---p.121 정성은은 친구의 재기를 두려워하는 자기 자신이 역겨웠다. ---p.134 ‘당신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저와 함께 그 자격을 찾아나가요.’ ---p.210 공인의 꿈 공개. 꿈을 아무렇게나 해석할 수 있는데 그걸 공개하고 곽은혜가 마음대로 해석하게 둔다고? 그건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권력이 될 터였다. ---p.220~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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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내밀한 공간이자 지점인 꿈
그마저도 꾸며 보여야 하는 현실 무의식까지 검증하는 비극 혹은 희극 꿈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침범할 수 없는 지점이다. 타인이 엿볼 수 없는 공간이다. 나의 고유 영역이다. 그런데 『내 꿈에 좋아요를 눌러줘』에서는 드림스캐너를 사용하면 꿈을 촬영하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할 수 있다. 나의 꿈이 깨끗하다는 것을 검증하기 위해서 깨끗한 꿈을 만들고, 꿈 해석까지 동원될 수 있다. 그런데 검증되지 않은 꿈 해석이 누군가의 욕망과 만나 진실이 되고, 권력의 힘을 빌려 복잡한 현실을 움직이는 이야기로 변해간다. 무엇이 사실인지보다, 사람들이 무엇을 믿고 싶어 하는가가 더 중요해지는 순간을 따라가며 소설은 이미지와 실재, 믿음과 조작, 진실과 무의식의 경계를 계속해서 뒤흔든다. 언뜻 판타지처럼 보이는 설정은 이 소설이 독자에게 거는 일종의 장르적 트릭이다. 『내 꿈에 좋아요를 눌러줘』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처음 믿었던 장르와 세계의 규칙을 다시 의심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 작가의 말 상상치 못한 바를 발견하는 일 여전히 꿈이 정확히 어떤 기능을 하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꿈은 수면 중에 기억을 재활성화하는 것일 수도 있고, 기억을 추상화하는 기능일 수도 있고, 감정을 처리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 셋 중 하나일 수도 있고, 모두일 수도 있다. 어쩌면 아무 기능도 없는 일종의 부산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꿈이 뇌의 구조와 매우 깊이 관련되어 있으며 꿈 자체를 연구하고 정량화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당분간은 꿈의 과학이 더 구체적이고 체계화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모르지, 이 작가의 말을 쓰는 지금은 2026년 9월 10일인데, 당장 내일 OpenAI에서 신묘한 인공지능 모델을 사용해서 꿈의 기능을 설명할지도. 하지만 어쨌든, 당장 이 순간에 꿈은 신비의 장막 뒤에 있다. 우리 인간은 장막 뒤에 있는 것을 상상하기를 좋아하도록 태어난 종족이다. 어떻게든 설명하고 이해하려 하는 우리의 욕망을 보이고자 하는 것이 이 소설의 출발이었다. 한 번 소재를 잡은 뒤 줄줄 쓰이기 시작한 내용은 내가 미처 상상하지 못하던 것이다. 바로 그 상상치 못한 내용을 발견하는 일이야말로 창작의 즐거움이다. 당신도 이 글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즐거움을 조금이나마 느꼈기를. 위태위태하지만, 내가 책을 계속 낼 수 있게 해주는 내 세상 그리고 내 세상 속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감사한다. 나는 항상 내 세상 속의 사람에게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조금이나마 그 목적을 이룰 수 있기를 기원한다. _심너울 작가 * 해설 매듭 풀기-포틀래치도 굿도 없이 심너울은 인물들의 정념과 행위가 결국 사랑에서 비롯됨을 알고 그 해법 역시 사랑에서 찾고자 한다. 소설의 전반부를 지배하는 것이 ‘사랑받는’ 일이라면 후반부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사랑하는’ 일이다. 성은이 사라진 자리에 남아 그의 삶을 살아내는 동안 성현은 그토록 외면해 온 자신의 다른 모습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동안 사랑받음으로써 저의 사회적 존재를 확인해왔던 성현은 사랑받는 자리를 잃고, 사랑받지 못했던 성은의 자리로 건너간 뒤에야 비로소 다른 가능성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사랑받지 않는 삶이 곧 사랑할 수 없는 삶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이 문장은 곽은혜의 꿈 꾸미기가 전제했던 세계를 정확히 뒤집는다. 꿈 꾸미기가 사랑받을 만한 나, 꿈마저 ‘좋아요’를 받을 만한 나를 만드는 작업이었다면, 정작 성현이 배워야 하는 것은 사랑받지 못할 수도 있는 자신을 자기의 삶으로 받아안는 법이다. 타인의 사랑을 확보하기 위해 자아를 표백하는 것이 아니라, 표백되지 않은 채로 살아가는 일. 사랑의 문제는 그렇게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놓여나 제 삶으로 들어온다. 복잡다단하게 꼬인 관계의 매듭을 끝까지 통과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제게로 되돌아오는 일 말이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성현이 얻는 것은 대중의 사랑을 되찾는 일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해 보려는 시도, 그 시작이지 않나. 성현과 성은 두 사람의 우정이라는 사랑의 모양새 역시 그렇게 매듭지어져 있다. 질투와 호의, 증여와 부채, 침범과 상실이 서로 얽혀 어느 하나만을 골라풀 수 없는 매듭을 푼다는 것은 깨끗한 실타래로 되돌리는 일이기는커녕 상당 부분 상처를 포함하는 유실 행위에 가깝다. 그러나 차라리 실패의 흔적일 그 자리에서 어떤 매듭은 느슨해지고 또 어떤 것은 풀어지기도 한다. 더불어 이 매듭 풀기는 성은과의 관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서연과의 관계에서도 성현이 알아갈 것은 사랑을 안전하게 소유하는 법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의 바깥에 놓아두는 법일 테고 서로는 이미 그 방법을 실천 중이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붙들고, 주었다는 이유로 돌려받으며, 잃을까 두려워 상대의 자리를 대신 결정하려 할 때 사랑은 언제든 다시 매듭이 된다. 사랑의 매듭을 푼다는 것은 그러므로 사랑 속에 있는 타자의 자리를 돌려주는 일일 테다. 잃지 않는 기술이 아니라 잃을 수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맺는 일이 사랑의 용기일 것이다. 그러므로 성현에게 필요했던 것은 더 큰 증여로 응전하는 포틀래치도, 누군가가 대신 치러주는 굿판도 아닐지 모른다. 스스로 잃은 것을 제 몫의 상실로 받아들이는 것. 사랑의 매듭을 푼 자리에 남는 것은 매듭 없는 매끈한 삶이 아니라 상대를 결박하지 않고도 맺어질 수 있는, 오히려 상실 쪽으로 열려있는 울퉁불퉁한 관계의 가능성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실패는 행복해지기 위해 자꾸만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소설을 빠져나오며, 책의 첫머리에 놓인 프로이트의 문장에 대한 응답으로 이 문장을 놓아둔다. “쾌락 원칙은 행복해지기 위한 프로그램을 우리에게 부과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결코 완수될 수 없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문명 속의 불만』) _황유지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