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프롤로그 | 교양, 질문의 시작
1. 교양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아는 만큼 보인다?-결정적 순간 ‘교양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개인적 차원 상식의 지층-사회적 차원 2. 교양은 누가, 왜 가르치는가 교양 교육의 시작, 신에게 더 가까이 개인의 탄생, 교양인의 탄생 왜 모두 학교를 다녀야 하는가 3. 교양은 어떻게 확산하는가 언어와 기록, ‘역사’의 시작 책의 탄생과 인쇄술의 시대 TV의 시대, “너 어제 그거 봤어?” 4. 고전의 의미, 교양의 힘 어떤 책이 고전일까? 사람과 사회를 살리는 고전의 힘 시가 사람들을 정의롭게 만든다? 현대인의 교양, 잡다한 지식은 쓸데가 없을까? 5. 그리고 이제부터의 교양 책이 죽어도 뒤에 남는 것 뉴미디어 그리고 AI 시대의 교양 배우는 일의 즐거움 |
郭漢榮
곽한영의 다른 상품
|
모든 구성원에게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민’이라는 관념을 심어주려면 당연히 모든 사람에게 이런 내용들을 전달하는 거대한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등장한 제도가 바로 ‘의무교육 제도’입니다. 과거엔 상류 계층 혹은 특정한 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그런 지식들을 필요로 하는 소수에게만 이루어졌던 교육이 실제 쓸모를 가리지 않고 모든 국민에게 폭넓게 확대 보급되기 시작합니다.
--- p.77 최초의 아동용 도서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꼽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작품이 1865년에 등장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즉 이전까지는 꼭 필요한 내용을 담은 책, 진지하고 심오한 책을 비싼 가격에 찍어내고 있었는데 아이들만을 위한 책을 출판하고 이걸 사람들이 구입할 정도로 책이 대중화되었다는 뜻이니까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아동도서 출판도 봇물을 이루게 됩니다. 『보물섬』(1883), 『정글북』(1894), 『오즈의 마법사』(1900), 『피터 팬』(1911) 등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어린이 명작동화의 상당수는 이 무렵 출간되었습니다. --- p.109 돈만 아끼면 된다는 이 말도 안 되는 결정이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믿게 만드는 것이 기계적 효율성의 한계입니다. 이런 문제는 우리의 ‘상상력 부족’에서 비롯합니다. 숫자 뒤에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어떤 고통과 어려움을 겪을지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니 사람이 숫자 그 이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 pp.167-168 교양을 쌓는다는 것은 정보를 많이 안다는 것을 넘어서서 결국은 ‘생각의 힘’을 기르는 작업입니다. 힘을 기르려면 의식적으로 운동을 해서 근육을 단련시켜야 하죠. 힘들게 사고를 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교양이 생기기를 바란다면, 야구 경기 중계를 열심히 보기만 해도 언젠가 프로야구 선수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텍스트는, 종이가 아닌 다른 매체의 형식을 빌린다 해도 책은 우리가 예측 가능한 미래에는 사라질 수 없다고 저는 단언합니다. --- p.203 교양에도 두 가지 변화의 방향이 생겼습니다. 심화와 분화입니다. 심화는 내가 원하면 얼마든지 깊이 있는 내용을 학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을 뒤져서 폭탄 만드는 법을 배웠다는 얘기에 더 이상 놀라지 않는 세상입니다. 외국어 학원에 다니지 않고 유튜브로 독학하는 사람도 늘었습니다. 궁금한 내용이 있으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질문을 올려서 ‘집단지성’을 통해 금방 답을 찾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죠. 사회의 기반으로서 교양의 역할에 보다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분화의 측면입니다. 파편화라고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정보의 선택성이 너무 커지다 보니 서로 갖고 있는 지식과 사고의 이질성이 커지는 문제입니다. --- p.206 이 글을 통해 여러분에게 교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교양의 복원이 곧 상식의 복원, 합의의 재구성 그리고 공동체의 재생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교양은 타인에게 으스대기 위한 나만의 지식이 아닙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공유해야 할 사회적 토양입니다. 그 토양이 깊고 넓고 비옥할수록 우리는 시대의 충격을 더 유연하고 부드럽게 받아낼 수 있습니다. 그런 토대를 제대로 쌓지 못하면 가벼운 충돌에도 서로 부러지고 부서지며 커다란 상처를 입은 채 쪼개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뭐든 물어보기만 하면 AI가 다 알려줄 테니 인간이 굳이 뭔가를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이 시대에, 인간 스스로 갖추어야 하는 교양의 가치는 더 절실해지고, 거대해지고 있습니다. --- p.217 |
|
상식이 흔들리는 시대, 교양의 정체를 묻다
‘지금까지의 교양’부터 ‘이제부터의 교양’까지, 교양 그 자체를 이해하도록 돕는 가장 확실하고 친절한 안내서 ‘사흘’을 4일로, ‘심심한 사과’를 ‘지루한 사과’로 받아들인 사례가 잇따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리고 곧 ‘요즘 사람들의 문해력이 떨어졌다’는 논쟁으로 번졌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건 단순히 이런 단어의 맥락을 모르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함께 알고 있다고 믿어온, 서로 소통을 가능케 해주던 공통의 지식과 감각, 곧 ‘상식의 지층’이 얇아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상식의 지층은 왜 필요한가. 교양이 뭐길래 그렇게 중요하다고 말하고 교양을 쌓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들 하는가. 나아가 누가, 무엇을, 왜 교양이라고 정하는가.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 그 교양은 어떤 힘과 어떤 쓸모가 있는가. 『교양을 위한 교양』은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교양이라는 것 자체를 이해하도록 돕는 충실한 설명서이자 안내서다. ‘지금까지의 교양’이 만들어지고 교육, 전승되어온 과정을 긴 역사 속에서 ‘결정적 순간’들을 포착한 뒤 간결하게 재구성해 친절한 언어로 전달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급변하는 현 시점의 흐름과 그 의미를 조망하면서 ‘이제부터의 교양’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지금 시대의 교양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artes liberales부터 bildung, 敎養까지 파이데이아부터 다 빈치, 셜록 홈즈, 칼 세이건까지 교양이라는 키워드로 역사를 아우르는 광활한 지적 여행 레오나르도 다 빈치처럼 박학다식, 만능의 인물을 가리키는 uomo universale, 광범위한 문화 지식과 사회적 매력을 갖춘 사람을 뜻하는 honnête homme, 셜록 홈즈처럼 온갖 지식으로 무장하여 자신만만하고, 그래서 어떤 일이건 여유롭게 해결할 수 있는 gentleman. 시대와 장소에 따라 ‘교양인’을 가리키는 여러 표현이 있었다. 공통 분모라면 분야를 한정하지 않고 다채로운 지식을 균형 있게 갖춘 사람을 가리킨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이 교양의 의미이자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일 것이다. 교양의 시작도 비슷하다. 고대 아테네에서 도구적, 기능적인 기술을 가진 노예들과 달리 언어, 수학, 음악, 체육 등을 익혀 건강한 신체와 예술적 소양을 지닌 자유민(파이데이아)이야말로 인간다운 인간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자유인이 되는 교육이 바로 자유 기예(artes liberales), 교양이었다. 이러한 학문들이 대학에서 쌓아야 하는 학문의 기초 소양으로 자리 잡았고 이것이 대학 교양학부, 교양 교육의 기틀이 된다. 근대에 들어서는 지식과 학문이 자유로운 시민, 개인의 인격을 형성하는 데 있다고 강조되면서 bildung이라는 개념이 생겨났고, 이것이 일본으로 전파되어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과 스스로를 확장하고 기르는 수양의 특성이 합쳐졌기에 이를 ‘교양(敎養)’으로 부르게 된다. 학사는 영어로는 bachelor입니다. bachelor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으면 학사 학위라는 뜻과 함께 ‘미혼남, 솔로’라는 뜻도 나옵니다. 그러니까 ‘혼자 서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교양학부를 마치면 이제 이 사람은 혼자서 공부할 수 있는 기초적인 능력을 갖추었다는 뜻으로 그렇게 부른 것이지요. 이런 기초 능력을 기른 후에라야 전문 과정인 신학 공부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64쪽 ‘교양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교양을 위한 교양』은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묻지 않았던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자칫 장황하고 어려울 수 있는 설명 대신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과 사건을 제시하며 교양의 세계로 인도한다. 도대체 교양이 무엇인가에서 시작해 누가 왜 가르쳐왔는가, 어떻게 확산해왔는가, 교양의 힘이란 무엇이고 지금은 왜 교양이 중요한가까지. 저자는 강의실에 선 듯 친절한 말투로 교양의 세계를 안내하는 길잡이가 된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교양을 위한 교양으로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을 만큼 교양이 쌓이는 경험이 된다. 우리는 왜 학교에 가고, 책과 TV는 어떻게 우리의 상식을 만들었을까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의 기원 이 책의 가장 직접적인 효용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의 기원을 알게 된다는 데 있다. 왜 사람들은 학교에 다녀야 하는가? 그리고 왜 모든 사람이 비슷한 내용을 배우는가? 왜 어느 시대에는 책이, 또 어느 시대에는 TV가 사람들의 상식을 만들었는가? 저자는 이런 질문을 따라가며 교양이 만들어지고 퍼져나간 과정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교양의 역사를 책의 역사로 한정하지 않고 학교라는 제도와 의무교육의 등장, 라디오와 TV 같은 대중매체의 발전까지 폭넓게 다룬다는 점이 이 책의 중요한 특징이다. 성직자와 귀족, 신흥 부르주아를 위한 대학 교육에서 모든 사람을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민’으로 묶기 위한 의무교육으로 확대되고, 그 동질성을 확보하기 위한 공교육이 만들어진 과정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또한 우리에게도 익숙한 문고본 책들이 탄생하고 전집이 유행한 배경, 라디오, TV 같은 대중매체의 영향을 살펴보면서 오늘날의 교양은 어떻게 형성되고 전파되었는지도 알아갈 수 있다. ‘교과서적 지식’이 가장 표준적이고 공인된 지식, 하지만 그래서 뻔하고 재미없는 지식을 의미하게 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공교육을 천편일률, 주입식, 암기식, 몰개성적이라며 비판하는 경우가 많지만, 제가 말씀드린 역사적 전개 과정을 살펴보면 이런 동질성의 확보야말로 국가적 과제로서 공교육이 지닌 본연의 역할이라는 점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현대 민주사회에서 교양은 다양성에 앞서 보편성이 중요할 수밖에 없고 이런 보편성을 확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교육 제도를 통한 교양의 습득이라 할 수 있습니다. 80-81쪽 이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교양은 단순히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가 구성원들에게 무엇을 공유하도록 해왔는지에 관한 역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지금의 학교, 책, 대중문화 등이 사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인류 사회의 변화의 결과임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이든 다 알려주는 시대, 그러나 뭐가 뭔지 모르겠는 시대 사람의 얼굴이 숫자와 효율성에 가려진 시대 더욱 긴요하고 절실하게 호출되는 교양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이것이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상식의 파편화, 가치의 파편화, 진실의 해체를 거쳐 더 이상 합의 가능한 옳음, 함께 지향할 가치를 잃게 될 위험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현재 처한 세계적인 위기의 본질입니다. 217쪽 지금은 어떤 시대인가. 뭐든 얼마든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 그러나 역설적으로 정보가 넘쳐 각자가 서로 다른 정보와 가치, 서로 다른 진실을 받아들이면서 그간 공유해온 상식의 토대가 무너지고 있는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상상력이 빈곤한 시대, 그래서 타인의 고통이나 처지를 헤아리지 못하는 시대, 숫자와 합리성에 매몰된 시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교양의 의미를 소환한다. 교양은 남보다 많이 아는 것,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생각의 힘’을 기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교양은 무엇을 믿을지, 서로 다른 주장을 어떻게 이해할지, 내가 모르는 것을 어떻게 판단할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그리고 저자는 세계를 조망하고 자기 자신도 관조할 수 있는 힘 역시 교양에서부터 비롯한다고 말한다. 길을 잃었을 때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현재 위치부터 확인하게 마련이다. 마찬가지다. 급변하는 이 시대는 무엇인지,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할 때 이 책은 조금 더 긴 호흡으로, 조금 더 해상도를 높여 세계를 이해하도록 돕는 쓸모 있는 도구가 되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