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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성채, 검은 성의 비밀
무법과 생존, 욕망이 뒤엉킨 홍콩 누아르의 발원지
곽한영 저
흐름출판 2026.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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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구룡채성 공원의 지도
추천하는 글_구룡성채는 살아 있다
들어가며_검은 성의 문 앞에서

1. 이야기의 시작

첫째 날

2. 하늘에서 본 홍콩의 역사
3. 첵랍콕 공항과 거리 풍경
4. 빈민촌의 억만장자 호텔

둘째 날

5. 구룡채성의 탄생
6. 역사의 틈바구니에 빠진 요새
7. 삼합회, 세 가지 악의 그림자

셋째 날

8. 검은 성의 영화들
9. 무허가 증축과 공장
10. 디스토피아의 공동체

넷째 날

11. 구룡채성의 죽음
12. 우산혁명, 정체성의 싸움

마치며_새로운 대안적 삶은 가능한가?
덧붙이는 글_영화 〈구룡성채〉와 홍콩의 미래
구룡채성 연혁
참고 자료

저자 소개 1

郭漢榮

서울대학교 사회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다가 지금은 부산대학교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로 있다.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수집한 다방면의 지식을 왕성한 필력으로 직조해 세상에 내놓고 있다. 법과 관련한 『청소년을 위한 법학 에세이』 『법으로 배우는 논술』을 비롯해 『피터와 앨리스와 푸의 여행』 『배구, 사랑에 빠지는 순간』 『우리가 놓친 위대한 한 컷』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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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0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469g | 138*198*23mm
ISBN13
9788965968719

책 속으로

구룡채성은 오랜 세월 홍콩 내에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마치 《해리 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최고의 악당 볼드모트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그를 너무 두려워한 나머지 그의 이름을 입 밖에 차마 꺼내지 못하고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자(You-Know-Who)’라고 불렀다. 구룡채성의 육중한 몸체를 홍콩 사람들은 애써 못 본 척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홍콩 최대이자 세계 3대 폭력 조직 중 하나인 삼합회(三合會)의 본거지였기 때문이다. 마약상들의 온상이자 매음굴의 성이며 불법 도박의 천국이기도 했다.
--- p.70

구룡채성에 청나라 군대가 진입하자 홍콩 내 영국인들은 제2차 베이징조약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라며 흥분했다. 관리들만 남아 있기로 한 구룡채성에 군대가 들어간 것은 홍콩의 방어를 위협하는 군사 행동이라는 이유였다. 실상 이 부대가 그들의 요청에 따라 신계 장악을 돕기 위해 파견된 것이었는데 말이다. 결국 홍콩 식민정부는 자신들을 도우러 온 청나라 부대를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영국의 입장에서는 눈엣가시 같았던 구룡채성 문제를 뿌리 뽑고 싶었던 차에 생긴 기회였다. 억지스러운 핑계로 군대를 동원했다는 점에서 제2차 아편전쟁의 빌미가 된 애로호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 p.125

일본의 홍콩 점령으로 구룡채성의 운명도 크게 달라졌다. 아문 건물은 철거가 취소되면서 살아남았지만, 그 대신 성벽이 된서리를 맞았다. 일본군이 바로 옆에 있던 카이탁 공항을 군용 비행장으로 쓰기 위해 활주로를 확장하면서 구룡채성을 둘러싸고 있던 성벽을 헐어 버린 것이다. 성벽을 이루던 돌들은 중국 본토와 동남아시아 지역을 공략하기 위한 교두보로 개펄 바닥에 까는 데 사용되었다. 아직 아문이 남아 있었으니 형식적으로 구룡채성은 아직 존재했으나, 성벽이 모두 사라져 경계선만 남은 헐벗은 상태였다. 이제 ‘울타리를 두른 성’이라는 의미의 채성(寨城)으로서의 기능은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다.
--- p.136~137

구룡채성의 바깥쪽에 해당하는 네 면은 수평으로는 물론, 수직으로도 15층을 최대한 꽉 채워 증축되었다. 길에 접하고 있으면 월세를 더 많이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높이의 건물들이 달라붙은 형태는 멀리서 보면 건물로 세운 성벽처럼 보였다. 게다가 어차피 불법이니 비용을 아끼기 위해 외벽을 장식하거나 페인트조차 칠하지 않아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났다. 여기에 도로에서 날리는 온갖 먼지와 자동차 배기가스, 주변 공장에서 나오는 매연으로 검은 그을음이 끼면서 거무튀튀한 색깔을 띠게 되었다. 육중하고 검은, 막 쏟아져 내릴 듯이 불규칙한 건물들로 만들어진 장벽. 광둥어로 ‘학남(Hak Nam)’이라 불리게 될 암흑의 성이 드디어 최종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다.
--- p.215

하지만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구룡채성에 찾아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 부담을 줄여 주기 위해 큰 길에 접해 있는 북쪽 사면에 가게들이 밀집했지만, 여전히 그곳은 퉁타우췬 로드 안쪽으로 꽤 걸어 들어가야 하는 빈민촌의 한가운데였다. 거꾸로 말하자면 이런 두려움을 이겨 내고 여기까지 찾아오게 하려면 홍콩의 일반 병원들과 가격 차이가 큰, 비용이 가장 많이 드는 의료 과목이어야 했다. 그렇게 선택된 것이 바로 치과였다. 한창일 때는 구룡채성 내에만 치과가 자그마치 150개 넘게 난립해 있었다고 한다.
--- p.223~225

산업화, 공업화, 국제무역으로 그 빛이 더해질수록 짙어지는 어둠을 어찌하지 못하는 홍콩 식민정부의 입장에서 구룡채성은 꽤 유효한 투사체였다. 홍콩의 인구밀도에 비명을 지르는 이들에게 구룡채성을 가리키며 저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진정제가 되었다. 월세가 정 비싸다면 구룡채성에서 얼마든지 싼 가격으로 생활할 수 있는데 정말 거기 가서 살고 싶냐고 물을 수도 있었다. 당신들이 지불하는 월세는 쾌적한 생활환경, 안전한 치안, 상하수도와 전기를 마음껏 쓸 수 있는 ‘빛’이 포함된 비용임을 왜 모르느냐고 호통치면서. 결국 구룡채성은 세계 자본주의의 축소판이었던 홍콩이라는 도시를 다시 한번 야구장 1개라는 규모로 강력하게 압축해 놓은 홍콩의 복사판이었던 것이다.
--- p.238~239

현재 이 관짝 집들의 평균 월세는 35만 원이라고 한다. 관짝 집에 비해 구룡채성의 방 크기는 15.5배, 월세는 7분의 1 수준이었다. 인플레이션을 고려하지 않고 계산하자면 홍콩 빈민들의 주거비는 구룡채성 때보다 108배 가까이 높아진 셈이다. 물론 구룡채성에서도 한 방에 여러 명이 산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인원수로 다시 나누어 봐야겠지만, 평균 가족원 수인 4명으로 계산해도 27배, 최대 거주 인원인 20명으로 계산해도 5배 넘게 월세가 더 저렴했다. 게다가 구룡채성에서는 주민세, 재산세 등 각종 세금을 전혀 내지 않아도 되었으니 실주거비는 훨씬 더 낮았을 것이다.
--- p.296~297

출판사 리뷰

홍콩이라는 도시의 원형이 된
무법지대, 그 4년간의 추적
“역사상 최고의 인구밀도, 그 미궁 속의 진실”

아편전쟁을 거치며 홍콩은 총 세 차례에 걸쳐 영국으로 넘어갔다. 그 안에 자리한 해안요새 구룡채성의 관할권은 청나라에 남은 채였다. 어느 쪽의 힘도 미치지 않은 이곳으로 빈민과 중국 본토의 난민이 몰려들었다. 불법 가건물이 끊임없이 들어서며 옛 성터는 어느새 직사각형의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로 변했다. 삼합회와 무면허 의사들, 법의 사각지대를 노리는 사업주들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도박과 마약, 매춘이 판치는 무법지대이자 제도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마지막 보금자리. 야구장만 한 땅에 5만 명이 부대끼며 살아가던 구룡채성에는 식당은 물론 병원과 학교까지 있었다. 홍콩 누아르와 여러 SF 영화에 영감을 준 풍경 속에서 사람들은 생계를 꾸리고 이웃과 일상을 나누었다.

어떻게 국가 안에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곳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그곳은 정말 아무런 질서도 없는 무법지대였을까? 그토록 많은 사람이 법의 보호와 통제 없이 어떻게 함께 살아갔을까? 오랫동안 법을 연구해 온 곽한영 교수는 구룡채성의 존재를 알게 된 뒤, 이 질문들에 사로잡혔다.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해외 자료를 닥치는 대로 찾아 읽고, 직접 홍콩을 찾아가 사라진 성채의 흔적 위를 두 발로 걸었다. 그렇게 책상 위와 현장을 오가며 구룡채성을 파고든 시간만 4년에 이른다.

이 책은 악명에 가려진 구룡채성의 본모습을 밝히고, 그 탄생과 소멸을 통해 오늘날 홍콩의 주인이 누구인지 묻는다. 영국과 중국, 식민지와 본토, 법과 무법의 경계에 자리했던 구룡채성에는 홍콩의 역사가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다. 전쟁과 빈곤을 피해 건너온 사람들, 통치권을 둘러싼 갈등, 급격한 산업화와 재개발은 이 독특한 공간을 빚어낸 동시에 많은 관광객이 찾는 홍콩을 만든 힘이기도 하다. 구룡채성은 어떻게 생겨났고, 누가 그곳에서 살았으며, 왜 끝내 사라져야 했을까. 그 흥망을 좇는 여정은 홍콩이 어떤 도시였고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사라진 공간과 그곳의 사람들이 홍콩에 무엇을 남겼는지 묻는 여정으로 이어진다.

영국과 중국의 힘겨루기에서 태어난
시대의 초상, 구룡채성에 관한
최초이자 마지막 르포르타주

영국의 깃발이 나부끼는 땅 한가운데, 청나라의 관할로 남은 작은 요새가 있었다. 구룡채성이었다. 사람들은 가난과 혼란을 피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판잣집이 바다를 이루었고, 두 차례의 대화재를 거치며 그 자리에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더는 집을 지을 땅이 없자 사람들은 위로, 더 위로 건물을 지어 올렸다. 건물은 어느덧 15층 높이까지 솟아올랐다. 그렇게 국가의 질서가 닿지 않는 작은 요새 안에 무려 5만 명의 삶이 쌓여 갔다.

법에서 역사와 고전,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곽한영 교수의 관심사는 넓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은 어떻게 함께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이 자리하고 있다. 그를 구룡채성으로 이끈 계기도 다르지 않다.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곳에는 어떤 형태로든 규범과 질서가 생겨난다. 국가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공간도 마찬가지다. 구룡채성 주민들은 자신들만의 규칙과 관계망을 만들어 ‘카이퐁(가방회)’이라는 자치 조직을 이루었다. 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방치된 채 썩어 가는 마약중독자들의 시체를 처리하는 것이었다. 카이퐁은 쓰레기 수거, 이정표 설치, 부동산 거래 등 점차 그 영역을 넓혀 가기 시작했고, 구룡채성이 철거되는 마지막까지 함께했다.

곽한영 교수는 이 기이하고 매혹적인 공간의 흥망을 보여 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구룡채성의 흔적 위로 서울 강남의 판자촌 구룡마을을 겹쳐 보고, 홍콩 거리에서 야식을 파는 한 가족의 삶을 통해 삼대에 걸친 시대상의 변화를 짚어 본다. 과거와 오늘, 한국과 홍콩을 교차하며 펼쳐지는 이야기는 사라진 공간에 남겨진 질문들을 우리의 삶으로 끌어온다. 질문을 좇던 시선은 22년간 구룡채성의 네모난 방에서 자를 깎으며 살아온 노인의 인터뷰에 머문다. 그리고 그 물음은 우리 자신을 향한다. “우린 그저 이 노인보다 약간 더 넓은 곳에 갇혀 살고 있을 뿐 아닌가?”라고.

디스토피아인가 유토피아인가
빈민과 난민 등 사회적 약자들의
집을 지키기 위한 싸움

철창으로 빽빽하게 두른 창문과 발코니, 거무튀튀한 벽과 녹슨 철문,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검은 미로…. 외부인들에게 구룡채성은 악의 소굴이자 냄새나고 더러운 지상의 지옥, ‘디스토피아’였다. 그러나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그랬을까? 구룡채성은 그저 구제할 수 없는 악으로 점철된 무법의 디스토피아였을까?

홍콩 시내의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한 이들에게 구룡채성은 마지막으로 삶을 꾸릴 수 있는 보금자리였다. 삼합회조차 조직원들이 성내에서만큼은 강력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단속했기에, 옛 주민들은 구룡채성이 홍콩 시내보다 안전하고 평화로웠다고 회고한다. 구룡채성의 존재에 혀를 차던 홍콩 사람들은 정작 그곳에서 만든 어묵과 고기를 사 먹고, 저렴한 틀니를 찾아 성채 안의 치과를 드나들었다. 제도권 밖으로 밀려난 이들에게 구룡채성은 다른 어디에도 없다는 어원에 딱 들어맞는 ‘유토피아’였고, 홍콩이라는 도시를 지탱하는 안전판이었다.

1987년 홍콩 식민정부는 주민들을 내보내고 구룡채성을 철거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곳에 가난한 세입자를 비롯해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주민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났다. 보상금을 받은 이들의 처지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돈으로는 홍콩 시내에서 같은 크기의 집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구룡채성이 무너진 지 30여 년,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홍콩의 상황은 그때보다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까? 닭장 집, 관짝 집으로 대표되는 홍콩의 주거난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구룡채성을 지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안의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몰았던 문제까지 지우지는 못했다. 그 모습은 반지하와 쪽방촌으로 내몰리고 개발의 그늘에서 삶의 터전을 잃는 이들, 우리 사회의 변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돌아보게 한다.

노스탤지어 너머,
‘시민’이라는 정체성의 탄생과
세대 교체의 의미

1989년 천안문 사태가 남긴 좌절과 1997년 반환을 앞둔 불안은 홍콩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어둡고 암울한 배경과 예정된 파멸을 향해 달리는 뒤틀린 인생, 그리고 폭력으로 점철된 비장미…. 과거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홍콩 누아르에는 그 시대의 불안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이후 2014년 우산혁명과 2019년 민주화 시위를 거치며 홍콩의 미래를 둘러싼 갈등은 거리로 번졌다. 잠시 머물다 떠날 곳으로만 여겨졌던 홍콩에서, 이제는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알던 홍콩은 이제 죽었다’라는 탄식 속에서 곽한영 교수가 주목한 것은 이 변화였다. 과거의 홍콩을 그리워하는 시선만으로는 지금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집을 지키려 했던 구룡채성 주민들과 오늘날 홍콩의 미래를 고민하는 젊은이들 사이에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 이 책은 사라진 구룡채성의 역사와 그곳 사람들의 삶을 복원하며, 이주민들이 정착한 땅에서 ‘시민’이라는 정체성이 형성되고 세대를 거치며 달라져 온 과정을 담아낸다.

홍콩의 새로운 세대가 물려받은 것은 앞선 세대가 일군 터전만이 아니라, 끝내 풀지 못한 모순과 과제이기도 하다. 이는 주거 불안과 구직난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모색하는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도 낯설지 않은 현실이다. 국경을 넘어 다음 세대는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얻고, 미래를 만들어 갈 기회를 보장받고 있을까? 구룡채성에서 시작한 질문은 우리가 어떤 사회에 기대어 살아가며, 그 사회를 다음 세대에 어떤 모습으로 넘겨줄 것인지 돌아보게 한다.

추천평

최근 거의 20년 만에 재개봉한 주성치 감독 겸 주연의 〈쿵푸 허슬〉에는 결정적으로 달라진 번역이 눈에 띈다. 〈쿵푸 허슬〉은 악랄한 조직폭력배 도끼파가 평범한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돼지촌을 접수하려 들자, 은둔 고수들이 그곳을 지키기 위해 나선다는 내용이다. 개봉 당시 ‘돼지촌’이라 불렸던 거대 연립주택은 재개봉과 함께 ‘저룡성채’라는 본래 이름을 되찾았다. 아마도 홍콩 사람들은 이 이름을 듣지 않고도 다닥다닥 붙은 집마다 장대에 걸린 옷가지와 긴 줄이 늘어선 수돗가를 보자마자 구룡성채를 떠올렸을 것이다. 사라져 가는 옛 홍콩의 향수를 담아 구룡성채(九龍城寨)의 첫 글자를 ‘돼지 저’로 바꾼 저룡성채(豬龍城寨)로 등장시킨 것이다. 최근 구룡성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저룡성채라는 본래 이름을 쓴 것으로 보인다.
장국영이 주연을 맡은 왕가위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아비정전〉의 마지막 신도 구룡성채와 연관이 있다. 낡은 집에서 담배를 입에 문 양조위가 외출을 준비하는 장면은 실제 구룡성채에서 촬영되었다. 1984년 중영공동성명으로 홍콩 반환이 결정되고, 1987년에 구룡성채의 철거가 발표되면서 감독은 촬영을 서둘렀다. 그런데 원래 장국영 주연의 1부와 양조위 주연의 2부로 구상되었던 영화가 1부로 끝나면서 구룡성채가 나오는 장면은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왠지 그 또한 구룡성채의 운명처럼 느껴져 비애감을 더한다. 구룡성채야말로 온갖 미완성이 모여 완성된, 설명과 분석 자체가
무의미한 곳이었다.
한국에서 홍콩 누아르 붐을 일으킨 〈영웅본색〉에도 구룡성채가 등장한다. 어느 높은 야산에서 홍콩을 떠나기로 결심한 마크(주윤발)가 피 묻은 안대를 하고 “버리기 아까운 야경이야”라고 말할 때 등장하는 장소가 바로 그곳이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모습은 지금의 첵랍콕 공항이 아닌 카이탁 공항을 배경으로 한다. 그 옆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구룡성채가 내려다보인다. 홍콩을 떠나기로 결심한 마크가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던 곳이 구룡성채와 카이탁 공항이라는 점은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그에게 아슬아슬한 도심 곡예비행을 볼 수 있었던 카이탁 공항과, 무서운 곳이라고들 하지만 자신이아는 누군가 분명히 살고 있었을 구룡성채는 ‘버리기 아까운’ 홍콩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곽한영 교수의 깊은 노고가 배어든 《구룡성채, 검은 성의 비밀》은 구룡성채의 탄생과 성장부터 우산혁명까지 방대한 홍콩 현대사를 아우르며 그 정체성을 들여다보는 실로 놀라운 책이다. 홍콩의 역사나 대중문화를 잘 아는 사람부터 이제 막 호기심을 가진 사람에 이르기까지, 현지를 답사하며 써 내려간 그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홍콩’이라는 공간과 사회의 독특한 특성을 이해하게 된다. 나 또한 습관적으로 ‘구룡성채’라 쓰고 있지만, 이 책에서 왜 제목만 빼고 ‘구룡채성’이라고 쓰는지 그 이유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이 책은 구룡성채 그 자체에 집중한 최초의 단독 저서라는 무게감에 값하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이 책에는 앞서 언급한 영화들은 물론, 구룡성채 자체를 영화의 무대로 삼은 〈구룡성채: 무법지대〉에 대한 글이 실려 있다. 이 영화를 만든 정바오루이 감독의 목표는 하나였다. 구룡성채로 들어간 주인공과 그를 잡으려는 삼합회의 위협 뒤편에서 그 공간을 묵묵히 채우고 살아갔던 ‘보통 사람들’을 따뜻하게 묘사하는 것이었다. 액션 장르이다 보니 무림이나 강호처럼 구룡성채를 묘사하고 있지만, 주성치가 ‘저룡성채’라는 이름으로 이곳을 친숙하게 그려내고자 했던 것처럼, 깊은 그리움의 정서를 담아 구룡성채를 홍콩의 축소판으로 보여 주고자 했다.
그래서 홍콩 영화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 이들이라면, 〈구룡성채: 무법지대〉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울컥할 수밖에 없다. 구룡성채, 그곳에는 아침마다 밀가루를 반죽하고 에그타르트를 굽고 돼지고기를 삶으며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일과가 끝나면 그들은 함께 TV 앞에 둘러앉아 시간을 보냈다. “홍콩을 향한 나의 변함없는 사랑을 담고 싶었다”라는 〈구룡성채: 무법지대〉 감독의 말처럼,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 사랑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구룡성채는 사라졌지만 그곳을 채웠던 삶은 영화와 책 속에, 그리고 이를 보고읽는 이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 구룡성채는 그렇게 여전히 살아 있다. - 주성철 (영화평론가,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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