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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의 동지들
중국과 북한의 우의, 그 감정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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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한국어판 서문

서론

1장 지도자
2장 중국인민지원군
3장 간부
4장 문화 교류
5장 중조우의 시대의 종언

결론

감사의 말 / 주 / 참고문헌 / 그림 출처 / 찾아보기

저자 소개 2

저그렉 브라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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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gg A. Brazinsky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 역사학·국제관계학 교수. 엘리엇 국제관계대학원 아시아학 석사과정 주임도 맡고 있다. 위스콘신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코넬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의회도서관 클루지 펠로십, 스미스리처드슨 재단 신진교수 펠로십, 우드로윌슨센터 펠로십 등을 받았다. 미국-동아시아 관계사와 동아시아 국제사를 연구하며, 특히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그리고 태평양을 가로질러 오간 상품·사상·문화의 흐름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한국어와 중국어에 능통해 한국과 중국의 1차 사료를 직접 읽고 분석한다. 한국에 대한 애정이 깊어, 스스로 지은 한국 이름 ‘배투호’로 불리기를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 역사학·국제관계학 교수. 엘리엇 국제관계대학원 아시아학 석사과정 주임도 맡고 있다. 위스콘신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코넬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의회도서관 클루지 펠로십, 스미스리처드슨 재단 신진교수 펠로십, 우드로윌슨센터 펠로십 등을 받았다. 미국-동아시아 관계사와 동아시아 국제사를 연구하며, 특히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그리고 태평양을 가로질러 오간 상품·사상·문화의 흐름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한국어와 중국어에 능통해 한국과 중국의 1차 사료를 직접 읽고 분석한다. 한국에 대한 애정이 깊어, 스스로 지은 한국 이름 ‘배투호’로 불리기를 좋아한다.
한국어로도 번역 출간된 첫 책 《대한민국 만들기, 1945~1987: 경제 성장과 민주화, 그리고 미국》에서 미국의 국가 건설 정책과 한국인의 주체적 대응이 어떻게 맞물려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이끌었는지 규명했고, 두 번째 책 《제3세계 쟁탈전: 냉전기 중-미 경쟁(Winning the Third World: Sino-American Rivalry during the Cold War)》에서는 아시아·아프리카 신생 독립국을 무대로 벌어진 중국과 미국의 경쟁을 새로운 사료로 복원했다. 중국과 북한의 동맹 관계를 ‘감정의 역사’로 읽어낸 《냉전의 동지들》은 그의 세 번째 책이다.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교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에서 미국 현대사와 냉전 연구, 군사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아메리카학회, 한국군사사학회, 한국전쟁학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주로 한국전쟁, 냉전시기 군사사, 한국군 역사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주요 논저로 《군사작전을 통해 본 6·25전쟁》, 《전쟁의 역사》(공저), 〈한국전쟁 중 한국 육군의 재편성과 증강, 1951~53〉, 〈백마고지 전투의 재조명〉 등이 있고, 번역한 책으로 《제1차 세계대전》(공역), 《대한민국 만들기, 1945~1987》, 《군사전략 입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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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0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424쪽 | 152*225*30mm
ISBN13
9791124618219

책 속으로

책 전반에 걸쳐 나는 중조우의의 정서 규범이 양국에서 어떻게 계속 주입되고 수행되었는지에 주목했다. 이러한 규범은 중국공산당과 조선노동당의 각급 간부들 간에 상호작용을 형성했으며, 이들의 발언과 행동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상호 공감과 감상주의가 언제나 정책을 결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정책이 결정되는 맥락을 조성했으며, 거의 결코 넘어서는 일이 없었던 관계의 한계도 설정했다. 더구나 중조관계와 그에 수반된 정서 규범은 압록강 양측에서 근대적 사회주의 주체를 구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수많은 중국과 북한 사람들은 상호작용과 과거의 트라우마에 대한 공유된 감정을 통해 자신을 더욱 큰 혁명 운동의 일부로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궁극적으로, 중조동맹이 오래 유지된 이유와 중국과 북한이 권력 강화에 성공한 원인도 양국이 함께 구축한 정서 체제를 고려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서론」중에서

왜 중국과 북한, 두 국가는 지도자들 사이에서 긴장이 고조되는 순간에도 이 ‘신화’를 그렇게 열심히 전파하고, 인민들에게 믿도록 장려했는가? 만약 중조우의라는 ‘신화’가 양국 지도층 사이에 내재된 긴장을 드러내지 않게 하는 장막 역할을 했다면, 실제로 수백만 명의 중국인과 북한인이 이 신화를 받아들였던 것은 아닐까? 그들이 이 신화를 믿었다면, 그것은 그들의 행동, 태도,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중국공산당과 조선노동당 지도자들은 왜 서로 불편했던 시기에조차 이처럼 감정이 강하게 드러나는 관용구들을 계속 말하고 활자화하는 데 집착했을까?
---「서론」중에서

중국과 북한의 지도자들이 반복적으로 자국 인민들에게 “동고동락해야 한다”고 강조하거나, 양국 간의 ‘심오한’ 혹은 ‘깨질 수 없는 우의’를 찬양했을 때, 그들은 단순히 익숙한 관용구를 반복한 것이 아니라 인민들이 무엇을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을 내린 것이었다. 그들은 인민들이 지속적으로 준수하고 재생산하게 될 공통의 정서 규범과 표현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대중이 국가가 승인한 정서 표현 방식에 순응하는 것이 그들의 의식을 장악하고 인민들의 충성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
---「서론」중에서

모든 전쟁에는 그 전쟁만의 이야기가 있고, 모든 전쟁 이야기에는 그 나름의 영웅이 존재한다. 한국전쟁도 다르지 않다. 미국인들에게는 매슈 리지웨이 장군과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가장 익숙하지만, 중국인과 북한 사람들은 뤄성자오를 더 잘 알고 있다. 1952년 혹독한 겨울 동안, 중국인민지원군 제141사단 정찰중대 소속이던 뤄성자오는 중국과 북한 모두에서 기억하는 용감한 희생의 주인공이 되었다. … 젊은 지원군 병사는 전혀 망설이지 않고 옷을 벗은 뒤, 익사 위기에 처한 북한 소년을 구하기 위해 얼음 구멍 속으로 뛰어들었다. 여러 차례의 시도 끝에, 뤄성자오는 최영을 얼음 밖으로 밀어 올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살아 나오지 못했다. 온 힘을 다해 소년을 구조한 뤄성자오는 탈진한 상태였고, 동료들이 끌어내기 전에 이미 얼음물에서 익사하고 말았다. 그 후 몇 달 동안 뤄성자오의 영웅적 행동을 둘러싼 이야기는 널리 알려졌고, 중국과 북한은 그를 열사로 기렸다.
---「2장 중국인민지원군」중에서

최승희에게 배운 이후 중국무용교육협회장이 된 리정이는 〈어머니〉가 “조선의 어휘와 리듬을 사용해 매우 강한 감정을 표현했다”고 회고했다. 공연 전반에 걸쳐 “춤이 감정에 의해 이끌리고, 감정이 춤을 통해 전달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눈물을 흘리게 했다”라고 설명했다. 최승희의 제자들 중 다수는 그녀를 북한 출신이라는 국적보다는 탁월한 예술성과 엄격한 지도력 때문에 더 강하게 기억했지만, 그녀에게 배운 뒤 북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중조우의 활동에 참여한 경우도 있었다. 제자 중 한 명인 리바이청은 1953년 한국전쟁 정전 직후 북한을 잠시 방문한 위문단의 일원으로 공연을 했으며, 자신의 극단 공연에 최승희를 직접 안내할 수 있었다. 이처럼 최승희가 제자들에게 미친 영향은 예술적 영감과 중조연대의 결합인 셈이었다. 최승희는 중국 무용의 진화에 기여하는 동시에 중국과 북한 사이의 상호 공감을 체현하는 존재가 되었다.
---「4장 문화 교류」중에서

중국공산당과 조선노동당 지도부 사이에 이견이 적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에게 진정으로 공감하기가 불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책은 공산주의 공식 서사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관점을 제시한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서사가 오직 대중을 교화할 목적으로 지도자들에 의해 냉소적으로 제시되었다고 너무 쉽게 가정해왔다. 물론 정서적 교화가 지도자와 국가의 이익에 봉사한 실천이었다는 인식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은 때에 따라 도구성과 진정성이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지도자들이 요구된 정서를 끊임없이 수행해야 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러한 정서를 오히려 강화하기도 했다
---「결론」중에서

결국 중국의 대북 정책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리라고 기대하거나, 베이징이 평양을 압박해 미국과 협력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희망하는 이들은 실망하게 될 것이다. 양국 사이에 간헐적 마찰은 앞으로도 틀림없이 불거질 것이다. 그러나 중조우의의 이상과 정서는 양국의 유전자에 깊이 각인되어 있으며, 과거만큼 두드러지지 않더라도 앞으로도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결론」중에서

출판사 리뷰

‘피로 맺어진 우의’는 신화인가, 수백만 인민이 살아낸 현실인가
한국전쟁의 공동 트라우마에서 원조·외교·예술교류까지
중국과 북한을 ‘동지’로 만든 공감과 눈물, 애정의 정치

2026년 6월 9일 아침,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평양의 중조우의탑을 찾았다. 7년 만의 국빈 방문 이틀째 일정이었다. 두 정상 부부는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들에게 화환을 바치고 묵념했고, 양국이 함께 싸운 1950년대를 ‘영원한 역사적 기억’이라 부르며 항미원조전쟁(한국전쟁)의 정신과 전통적 우의를 대대로 이어가기로 했다. 1961년 체결된 중조우호합작상호원조조약이 65주년을 맞는 해였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2019년 6월 시진핑의 평양 방문 때 북한은 성대한 매스 게임으로 손님을 맞았고, 신화통신은 “중조우의(中朝友誼)는 산처럼 높고 강처럼 길어 지극히 소중하다”고 썼다. 북한의 핵실험과 중국의 대북 제재 동참으로 불협화음이 공공연해지고 최근에는 북한이 러시아와 급속히 가까워졌지만, 고비마다 두 나라는 70여 년 전 전쟁에서 ‘피로 맺어진 우의’를 다시 불러냈다.

미국의 언론과 정책 분야는 오랫동안 중국이 ‘북한 문제’를 풀 열쇠를 쥐고 있다고 여겼고, 중국이 기대와 달리 북한을 계속 원조하면 동북아의 안정을 중시하는 전략적 계산으로 설명했다. 조지워싱턴대학교 역사학자 그렉 브라진스키는 이런 분석이 중요한 요소 하나를 놓치고 있다고 본다. 바로 감정이다. 이 책 《냉전의 동지들》은 중조동맹의 절정기인 1949~1965년을 중심으로 1992년 한중 수교까지, 중국공산당과 조선노동당이 ‘중조우의’의 이름으로 서로를 향한 공감과 감사, 애도와 분노를 어떻게 만들고 가르치고 연출했는지 추적한다. 저자의 주장은 분명하다. “만약 이러한 우의가 없었다면, 중국과 북한은 결코 공산주의 국가로서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2026년 초에 출간된 원서의 결론에서 저자는 “중국의 대북 정책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리라고 기대하거나, 베이징이 평양을 압박해 미국과 협력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희망하는 이들은 실망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원서가 나온 지 반년도 되지 않아 평양에서 벌어진 장면은 이 진단을 그대로 확인해주었다.

중국과 북한의 1차 사료를 직접 탐독해 써낸
동아시아 국제사 연구자 그렉 브라진스키의 역작

그렉 브라진스키는 조지워싱턴대학교 역사학·국제관계학 교수다. 엘리엇 국제관계대학원 아시아학 석사과정 주임을 맡고 있으며, 대학의 냉전 연구 모임인 ‘조지워싱턴 냉전그룹’을 이끌고 있다. 코넬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 의회도서관 클루지 펠로십, 스미스리처드슨 재단 신진교수 펠로십, 우드로윌슨센터 펠로십을 받았다.

미국-동아시아 관계사와 동아시아 국제사를 연구해온 그는 한국과 중국을 모두 깊이 파고들었다. 첫 책 《대한민국 만들기》(2007, 한국어판 2011)에서는 미국의 국가 건설 정책과 한국인의 주체적 대응이 맞물려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끈 과정을 밝혔고, 두 번째 책 《제3세계 쟁탈전》(Winning the Third World, 2017)에서는 아시아·아프리카 신생 독립국을 무대로 벌어진 중국과 미국의 경쟁을 새로운 사료로 복원했다. 한국어와 중국어에 능통해 두 나라의 1차 사료를 직접 읽는 그에게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두 연구 축이 만나는 자리였다.

《냉전의 동지들》의 신뢰는 사료의 폭에서 나온다. 저자는 접근이 비교적 자유로웠던 2013년 이전에 중국 외교부 기록보관소에서 상당한 양의 문서를 확보했고, 이후에는 선즈화 등 중국 냉전사 연구자들의 소개장을 받아 지방 기록보관소에서 문화 교류와 연수 프로그램, 당 간부 회의 기록을 발굴했다. 여기에 미국 의회도서관과 국사편찬위원회의 북한 신문·잡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의 한국전쟁 노획 문서까지 아울러, 국가가 인민에게 요구한 감정과 인민이 남긴 목소리를 함께 읽어낸다. 연구에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지원도 보태졌다.

지도자의 의례에서 지원군과 간부의 일상까지
동맹은 ‘무엇을 어떻게 느껴야 하는가’를 가르쳤다

저자는 인류학자 윌리엄 레디의 ‘정서 체제’ 개념으로 중조동맹을 읽는다. 모든 정치권력은 일련의 정서 규범을 세우고, 사람들이 그것을 표현하고 내면화하도록 만든다. 중국과 북한에서는 지도자부터 당 간부, 군인, 농민까지 모두 동맹국 전우에게 공감을 보이도록 요구받았다. 책은 지도자, 중국인민지원군, 간부, 문화 교류라는 네 무대에서 이 ‘상호 공감’이 어떻게 주입되고 수행되었는지를 차례로 보여준다.

1장은 최고지도자들이 무대 위에서 연출한 우정을 다룬다. 김일성의 국빈 방문을 앞두고 중국공산당은 환영단 지도자들이 충분한 열정으로 노래하도록 특별 훈련을 시켰고, 혹시 모를 소란을 막으려 ‘반혁명분자’를 미리 체포하기까지 했다. 한국전쟁에서 장남 마오안잉을 잃은 마오쩌둥은 아들의 유해를 북한 땅에 묻어 ‘공동의 고난’의 상징으로 삼았다. 1956년 ‘8월 전원회의’ 뒤 숙청 문제로 틀어진 두 지도자의 관계는, 이듬해 11월 모스크바에서 마오쩌둥이 북한 내정에 개입하려 했던 일을 이례적으로 사과하면서 회복되었다.

2장의 주인공은 압록강을 건넌 중국인민지원군이다. 1952년 1월 2일 평안남도 성천군에서 얼음 구멍에 빠진 북한 소년 최영을 구하고 숨진 지원군 병사 뤄성자오는 두 나라 모두에서 우의의 화신이 되었다. 김일성이 그를 기리는 비문을 직접 썼고, 2011년에는 평안남도의 한 중학교가 그의 이름을 얻었다. 북한 주민들은 지원군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릴 만큼 감동해야 했고, 지원군을 돌본 북한 여성들은 ‘지원군의 어머니’로 찬양받았다. 정전 당시 북한에 남아 있던 80만 명이 넘는 지원군은 도로를 닦고 학교와 병원을 다시 지었다. 마지막 부대가 귀국한 이듬해인 1959년 10월 25일, 평양 중심부 언덕에 약 30미터 높이의 중조우의탑이 문을 열었다. 2026년 시진핑과 김정은이 헌화한 바로 그 탑이다. 탑 내부의 벽화를 디자인한 이는 정전 뒤 북한행을 택한 남한 출신 화가 이쾌대였다.

3장은 우의를 실제로 실어 나른 당 간부와 실무자들을 따라간다. 1951년부터 1959년까지 수천 명의 북한인이 연수생으로 중국, 주로 상하이에 보내졌고 그중 상당수는 전쟁고아였다. 교류는 동물원과 주방으로도 이어졌다. 1963년 북한 대표단이 표범과 호랑이를 데리고 베이징에 왔고, 1965년 중국은 평양 동물원에 자이언트 판다를 보내 북한을 소련에 이어 판다를 받은 두 번째 나라로 만들었다. 북한 요리사들은 베이징 오리 요리로 이름난 취안쥐더에서 오리 굽는 법을 배웠고, 취안쥐더 지배인은 평양 옥류관과의 교류를 제안했다.

최승희, 〈꽃 파는 처녀〉, 그리고 가장 짧은 회담
일상으로 스며든 우의와 그 퇴조

4장은 무대 위의 우정을 다룬다. 미군의 폭격이 계속되던 1953년 봄, 중국은 여성 배우들로 이뤄진 월극 공연단을 북한에 보냈다. 단원 왕원주안 등은 북한 배우들에게서 들은 〈춘향전〉을 중국 무대에 올렸고, 1950년대 중반 〈춘향전〉은 중국에서 널리 알려지고 자주 공연되는 작품이 되었다. 특히 눈길을 끄는 인물은 북한 무용가 최승희다. 중국에서 수많은 제자를 가르친 최승희는 무용극 〈어머니〉를 통해 전쟁 속 조선인의 슬픔과 분노를 표현했다. 그의 중국인 제자들은 “춤이 감정에 의해 이끌리고, 감정이 춤을 통해 전달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눈물을 흘리게 했다”고 회고했다. 최승희는 중국 무용의 발전에 영향을 미친 예술가인 동시에, 중국과 북한의 상호 공감을 체현하는 존재였다. 전쟁 중에도 양국이 문화 교류를 중단하지 않은 것은 공연과 예술이 중조우의의 형성과 유지에서 얼마나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했는지를 보여준다.

5장은 1965년부터 1992년까지 우의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문화대혁명기 홍위병은 북한을 ‘수정주의 세력’으로 낙인찍고 김일성을 비난했다. 그러나 1972년 9월 중국에서 상영되기 시작한 북한 영화 〈꽃 파는 처녀〉는 이듬해 베이징에서만 6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은 것으로 추산될 만큼 ‘신드롬’을 일으켰다. 1975년 4월 마지막으로 김일성을 만난 마오쩌둥은 “나는 올해 여든두 살이오. 거의 죽어가고 있소. 나는 정치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소”라며 정책 논의를 피했다.

1992년 한중 수교 소식을 전하러 평양에 간 첸치천 외교부장을 맞은 것은 환영 군중이 사라진 공항이었고, 김일성과의 만남은 “김일성이 중국 대표단과 가진 모든 회담 가운데 가장 짧은 회담”이었다. 같은 대표단의 일원으로 훗날 초대 주한 중국대사가 된 장팅옌은 2000년 올림픽 유치 활동을 도운 남한 동료들의 노력이 “나를 깊이 감동시켰다”고 썼다. 중국공산당이 오랫동안 북한을 향해 표출하라고 요구해온 감정이 이제 남한을 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론에서 저자는 두 나라가 상호 공감을 ‘장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탈적 감정 표현을 억압하고 처벌하며 감정을 ‘강요’한 권위주의 국가였음을 분명히 한다. 동시에 미중 경쟁이 격해지고 시진핑이 여러 면에서 마오쩌둥을 모방하면서, 중국의 공식 담론에서 북한에 공감할 공간은 넓어지고 비판의 여지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국익만으로 보이지 않는 동맹의 내면
오늘의 중조관계를 읽는 새로운 역사

《냉전의 동지들》의 가장 중요한 성취는 중조우의를 진실과 거짓, 진정성과 선전 가운데 하나로 단순화하지 않는 데 있다. 중국과 북한의 지도자들은 공감과 사랑을 정치적으로 이용했지만, 그렇다고 그 감정이 언제나 거짓이었던 것은 아니다. 국가가 요구한 정서를 반복해서 표현하는 과정에서 연출된 감정은 실제 감정으로 변하기도 했고, 도구성과 진정성, 강요와 자발성은 서로 얽혔다. 중조동맹은 인민의 정서적 자유를 제한하고 일탈적 감정을 처벌한 엄격한 체제인 동시에, 일부 사람들에게는 진정한 애정과 연대감을 경험하게 한 체제이기도 했다.

저자는 이러한 양면성을 외면하지 않는다. 중국과 북한의 권위주의를 미화하는 대신, 두 정권이 사회주의 건설을 명분으로 정서의 자유를 제한하고 감정 규범을 사회 지배의 메커니즘으로 활용한 과정을 비판적으로 밝힌다. 동시에 그 체제 속에 살았던 사람들의 고난과 희생, 그들이 실제로 느꼈던 연민과 열의를 함께 복원한다.

이 책은 북한 주민을 비이성적으로 ‘감정적’인 사람들로 바라보는 통념과, 중국과 북한의 관계를 오직 전략적 거래로만 설명하는 관점을 동시에 넘어선다. 모든 사회에는 장려되는 감정과 억압되는 감정이 있으며, 권력은 사람들이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를 규정함으로써 작동한다. 중조우의의 역사는 바로 그 정서 통치가 외교와 전쟁, 국가 건설과 일상의 영역을 어떻게 연결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북핵 문제와 미중 경쟁, 북러 밀착이 얽힌 지금, 중국이 왜 북한을 쉽게 놓지 않는지 이해하려면 전략의 언어 너머를 보아야 한다. 저자는 이 책이 “두 국가에서 지속되어 온 권위주의를 미화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못 박고, 감정을 통제하고 동원한 체제를 비판적으로 해부한다. 동시에 독자가 지원군 병사와 북한 주민이 겪은 고난에 연민을 느끼면서, 그런 체제가 인민을 어떻게 통제했는지 더 깊이 이해하기를 바란다. 베이징과 평양 사이의 관계가 의심과 의존, 우정이 복합적으로 뒤섞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당장의 국익뿐 아니라 두 국가가 오랜 시간 함께 만들고 반복해온 감정의 언어를 살펴보아야 한다. 《냉전의 동지들》은 외교사와 정치사에 감정사의 시선을 결합함으로써, 한국전쟁 이후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동맹의 내면을 새롭게 드러낸다. 오늘의 북한과 중국, 그리고 한반도 정세를 더 현실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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