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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왜 지금 커먼즈의 자치를 말하는가 - 5
1장. 대학 자치의 위기 (시라이 사토시) - 13 2장. 자본주의에서 자치는 가능한가?: 함께 살기 위한 거점으로서의 가게 (마쓰무라 게이이치로) - 51 칼럼1. 자치의 현장에서: 교토 산조 라디오카페가 잇는 인연 (후지하라 다쓰시) - 84 3장. 커먼즈와 돌봄의 뮤니시펄리즘 (기시모토 사토코) - 93 칼럼2. 자치의 현장에서: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진구 가이엔 재개발 반대 운동 (사이토 고헤이) -130 4장. 무기로서의 시민과학을 (기무라 아야) - 139 5장. 정신의료와 그 주변에서 자치를 생각하기 (마쓰모토 다쿠야) - 181 칼럼3. 자치의 현장에서: 노숙인 지원에서 시작된 앙트러프러너십 (사이토 고헤이) - 221 6장. 먹거리와 농사로 시작하는 자치: 곤도 세이쿄의 자치론 비판과 그 너머 (후지하라 다쓰시) - 229 7장. 자치의 힘을 키우는 커먼즈의 현장 (사이토 고헤이) - 273 나가며. 진흙탕 같고, 귀찮고, 어려운 자치를 위하여 (마쓰모토 다쿠야) - 320 옮긴이의 글 - 326 주(註) - 331 |
?藤幸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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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조사 항목에 대한 답변은 일본의 젊은 층이 얼마나 가혹한 정신 상태에 몰려 있는지 말해줍니다. 스스로를 사회의 일원이라고 느끼지 못하며, 사회에 희망을 갖지도 못하고, 공적인 사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상대도 없습니다. 그러한 사막 같은 생활에 정신적 충실함이 있을 리 없습니다. 실제로 현재 대학에서는 학생들의 ‘마음의 문제’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로 하여금 공적 관심을 잃게 하고, 사회비판적 의식을 빼앗아 무균실에 가두고, 정신을 완전히 관리하
는 환경을 완성한 순간, 관리 대상인 학생의 정신이 버텨내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 p.47 가게에서 만들어지는 공동성이란, 다양한 배경을 갖고 각기 다른 삶의 방식을 살아가는 개인들이 자신의 선택이나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사회 안에서 찾아낸 ‘공통의 거처’를 유지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상품교환처럼 한순간에 끝나는 관계보다는 길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과거 공동체처럼 영속적인 것이 아닌, 일시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거처가 되지만 다른 사람 에게는 거처가 아닌 것, 즉 개개인에 따라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곳에 통치를 위한 엄격한 법이나 벌칙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발길을 옮기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만 관여하면 되는, 열려 있고 자유로운 관계가 유지되는 공간인 것입니다. --- p.74 뮤니시펄리즘이란 지자체를 뜻하는 ‘뮤니시펄리티(municipality)’에서 유래한 말로, 직역하면 ‘지자체주의’ 또는 ‘지역주권주의’ 정도로 옮길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지역주권주의’와 같은 딱딱한 단어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풍성함이 뮤니시펄리즘에는 담겨 있습니다. 우선 중요한 점은, 시민의 삶을 무너뜨려온 신자유주의를 연대와 사회정의로 극복하려는 ‘시민의 도전’이라는 점입니다. 지자체의 관공서나 단체장이 주체가 아닙니다. 주인공은 시민입니다. --- p.106 나와 우리 가족의 건강은 괜찮은 걸까? 건강을 지킬 방법은 없는 걸까? 정부를 단순하게 믿어도 되는 걸까? 이런 절실한 마음과 고민이 자치의 작은 씨앗이며, 그 불안에 맞서 무언가 행동을 일으킨다면 그것을 자치의 시작이라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그 행동 중 하나가 바로 식탁에 오르는 식품을 스스로 계측하는 시민 방사능 측정소를 세우는 일이었던 셈입니다. --- p.142 제 생각에 자치란 누군가가 정한 기존의 (종종 억압적인) 구조에 복종하고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 주변 사람들과 함께 상의하면서 그 구조를 스스로의 것으로 파악하고, 자신들의 손으로 구조를 바꿀 방법을 궁리하며 재구성해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바꿔 말하면, 기존 구조 내부에서 단순히 ‘수혜자’에 불과했던 상태에서 그 구조에 스스로 관여하는 ‘당사자’가 되고, 그 ‘당사자’라는 상태를 유지해가는 부단한 과정을 ‘자치’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 p.187 곤도처럼 식을 출발점으로 삼으면서도 청빈 사상을 강요하거나, 도덕 모델을 획일화하거나, 자기통제의 결여를 비난하지 않는 자치를 꾸리기 위해서는 그의 사고를 꼼꼼히 되짚을 필요가 있습니다. 설령 선의와 정의로 점철되었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옳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입니다. 자치 사상의 그늘진 역사를 배우는 것은 진정한 자치의 실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자치를 굳건히 다짐으로써 작금의 증오정치에 대항할 수 있을 것입니다. --- p.271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우리에게 메뉴에 오른 선택지 중에서만 무언가를 고를 수 있는, 낮은 수준의 자유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우버이츠 덕분에 자취의 번거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졌고, 로봇청소기로 청소의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지만, 사실은 자유로워졌다는 기분이 들 뿐입니다. 기실 우리는 점점 수동적인 존재가 되고 있습니다.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스스로 요리도, 청소도 할 수 없는 타율적인 존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 p.2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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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먼즈’와 ‘자치’가 만나야 하는 이유
커먼즈는 물과 숲 같은 자연 자원부터 교육, 의료, 돌봄, 지식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살아가는 데 필요하며 함께 누리고 관리해야 할 것들을 뜻한다. 중요한 것은 공유물의 존재만이 아니다. 누가 운영에 참여하고 어떤 규칙으로 나눌지를 함께 결정하는 관계와 실천이다. 『커먼즈의 자치론』이라는 제목에는 공동의 자원을 되살리고 함께 관리하는 과정에서 자치의 힘을 키우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렇다고 모든 자치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공동체는 외부인을 배척할 수 있고, 내부의 위계와 차별을 강요할 수도 있다. 국가가 책임을 떠넘기는 명분으로 자치를 내세울 위험도 있다. 오래된 구성원이 권한을 독점하거나 외부인을 배척한다면 자치는 또 다른 지배가 된다. 이 책이 ‘자치’ 앞에 ‘커먼즈’를 놓는 이유다. 필요한 것을 함께 향유하되 타자에게 열려 있고, 구성원이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누가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지, 누구의 말이 묵살되는지 되묻는 일까지 자치의 일부다. 저자들은 공동체의 따뜻함을 낭만화하지 않으며, 자유와 평등을 갉아먹는 자치를 끊임없이 경계한다. 대학에서 정신병원까지, 일곱 개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질문 첫 두 장은 자치의 쇠퇴를 진단하면서 그 회복의 가능성을 찾는다. 1장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재편 속에서 대학의 자치가 약해지고 학생과 교직원이 고립되는 과정을 살핀다. 가령 혼자 밥 먹는 모습을 감추려 화장실에서 식사하는 ‘변소밥’ 현상은 동아리 라운지처럼 편히 머물며 어울릴 공간을 잃은 대학생들의 고립을 보여준다. 한편 2장에서는 상품을 사고파는 가게에서도 경제적 거래를 넘어서는 관계가 싹트고, 함께 살아갈 거점이 만들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가게 주인이 아프자 단골손님들이 그의 역할을 대신하며, 이들은 판매자와 소비자라는 역할을 넘어 서로의 생활을 지탱한다. 3장에서는 시민이 지역정치의 당사자가 되는 길을 모색한다.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공약과 정책집을 만들고, 그를 실현해줄 구청장 후보를 뒤이어 찾는 능동적인 선거 과정의 사례가 인상적이다. 4장에서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시민들이 직접 방사능을 측정해온 경험을 통해 지식 생산과 과학의 민주화를 묻는다. 식품 오염을 걱정한다는 이유로 ‘방사뇌 엄마’라 조롱받으면서도 시민 측정소에 참여한 여성들의 사례는, 누가 과학의 주체로 인정받고 누구의 우려가 과잉 반응으로 치부되는지를 드러낸다. 이어 5장에서는 정신의료의 억압적 구조에 맞선 자주관리의 역사를 돌아보며, 환자와 의료진이 주어진 제도를 바꾸는 당사자가 되는 과정을 짚는다. ‘베델의 집’의 당사자들은 자신이 겪는 어려움을 동료들과 함께 탐구하는 ‘당사자연구’를 통해, 진단명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자신의 경험을 스스로의 언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6장에서는 농본주의 사상가 곤도 세이쿄의 자치론을 현장과의 연관성이 낮은 것으로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먹거리와 농사를 매개로 사람들을 잇는 실천에서 다른 가능성을 찾는다. 교토의 ‘일회용 시대를 고민하는 모임’에서는 농산물의 상태에 불만을 가진 소비자와 농사의 고충을 토로하는 생산자가 대화를 이어가며,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고 함께 해결할 방법을 찾는다. 마지막으로 7장에서는 일상의 자치가 사회변혁으로 이어지기 위한 조건을 탐색한다. 도쿄 진구 가이엔 재개발 반대 운동에서 참여자들이 각자 자신 있는 분야를 맡아 운동을 조직하는 모습은, 한 명의 지도자에게 의존하지 않고 여러 사람이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리더풀한 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긴 회의와 돌아오는 당번, 그래도 자치를 계속하는 사람들 자치는 멋진 선언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게시판의 전단지를 두고 벌이는 논쟁, 반복되는 회의와 당번, 비바람 속에서도 이어가는 배식처럼 자잘하고 번거로운 일들이 자치의 일상을 이룬다. ‘그냥 누가 좀 해주면 안 될까?’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다시 대화하고 역할을 나눈다. 자신의 삶을 남에게 관리하도록 맡기는 순간, 삶에 관여할 권한도 함께 넘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설득력은 갈등과 실패를 숨기지 않는 데 있다. 의견이 다르다고 관계를 끊거나, 효율을 위해 결정을 위임하는 대신 헤매고 고민하는 시간을 견딘다. 그 과정에서 자신과 타인의 필요를 이해하고,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역량이 쌓인다. 자치는 완성된 이상향이 아니라 그렇게 거듭 배우고 고쳐가는 실천이다. 책은 오랫동안 공동의 삶을 일구어온 사람들의 꾸준한 힘을 전한다. 광장의 열기를 일상의 민주주의로 잇기 위하여 우리는 광장의 폭발적인 힘을 경험해왔다. 그렇다면 그 이전과 이후의 일상은 무엇으로 지탱할 것인가. 광장에서 확인한 연대와 주권의 감각은 학교와 일터, 동네와 돌봄의 현장에서 어떻게 지속될 수 있을까. 『커먼즈의 자치론』은 민주주의를 삶 가까이에서 매일 연습하고 축적하는 문제로 확장한다. 한국과 일본의 학생자치, 주민운동, 농민운동은 서로 다른 역사 위에 서 있다. 따라서 일본의 사례가 곧바로 한국의 해답이 되지는 않는다. 이 책이 건네는 것은 각자의 조건에서 자치의 방식을 한 것을 함께 지켜내는 힘. 광장의 변화를 일상의 변화로 이어가려는 독자에게 이 책은 구체적인 토론 거리이자 실천의 참조점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