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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우를 찾아라
100년 만에 찾은 한국 최초의 근대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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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며
감사의 글
추천사

1장 이훈우를 찾아라
우연한 시작
연구팀 결성
논문 투고
이훈우를 찾아서

2장 삶을 추적하다
가족과 고향
일본 유학
조선총독부 근무와 내직
이훈우건축공무소
경성의 건축계
낙향

3장 건축가로 활동하다
시대 배경
이훈우의 주요 작업

4장 이훈우를 기억하다
이훈우에 대한 평가
이훈우의 레거시

부록
이훈우 연보
관련문헌 원본
참고문헌
근대사 디지털 데이터베이스

저자 소개 3

金玄耿

1984년 서울생으로 서울대학교에서 학사 및 석사, 일본 교토대학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은 일본 고중세사로, 현재 명지대학교 일어 일문학전공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中世的身分秩序と家格の形成(중세적 신분질서와 가격의 형성)』(思文閣出版, 2025), 『일본사 시민강좌』(연립서가, 2024, 공저) 등, 역서로는 『일본 중세적 세계의 형성』(이시모다 쇼 지음, AK, 2024), 『무의 나라, 일본』(사에키 신이치 지음, 마르코폴로, 2024), 『일본의 고대 국가』(이시모다 쇼 지음, AK, 202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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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서울생으로 서울대학교와 예일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현재 황두진 건축사사무소의 대표다. 대표작으로 캐슬오브스카이워커스, 원앤원 63.5, 춘원당 그리고 일련의 현대 한옥 작업이 있다.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해냄출판사, 2005), 『한옥이 돌아왔다』(공간사, 2006), 『무지개떡 건축』(메디치미디어, 2015), 『가장 도시적인 삶』(반비, 2017), 『공원 사수 대작전』(반비, 2019), 『은퇴 없는 건축』(시티폴리오, 2025), 『사대문 안 인구 30만 프로젝트』(해냄출판사, 2026)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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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lan Yu

1967년 부산생으로 서울대학교와 뉴욕시립대학교 버룩칼리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뉴욕에서 금융정보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역서로 『일본에 간 베이브 루스』(로버트 피츠 지음, 시간낭비, 2020)와 『아무도 모르는 뉴욕』(윌리엄 헬름라이히 지음, 글항아리, 2022), 저서로 『항해사 흰닭, 파드레, 그리고 오렌지 반란군의 기이한 모험』(뿌리와이파리, 2025)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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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0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468쪽 | 758g | 148*210*26mm
ISBN13
9791187071495

책 속으로

1장 이훈우를 찾아라, ‘논문 투고’ 중에서
2020년 2월 6일 나눈 대화를 통해 우리는 그때까지 모인 재료만 갖고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에 당시까지 찾아낸 내용을 바탕으로 이훈우를 소개하는 논문을 쓰기로 결정하고, 각자 분야를 나눠 글을 쓴 후 취합해 논의하기로 했다. 그에 맞춰 김현경은 지금까지 발견한 이훈우 관련 정보와 그의 행적을, 황두진은 건축계의 당시 상황과 이훈우의 시대적 맥락을, 딜런 유는 일본과 조선에서 근대 건축교육이 도입된 과정과 유학생들의 배경 등을 정리했다. 외인부대가 본진으로의 입성을 결심한 격이었다.
---p.67

2장 삶을 추적하다, ‘일본 유학’ 중에서
이 개명에는 한 젊은 지식인의 내면적 혼란과 자각, 그리고 시대적 감성이 담겨 있는 듯하다. 희망이 사라진 시대, 그는 이상을 말하기보다 차라리 취한 사람처럼 현실을 피하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일본 유학을 통해 건축을 배웠고, 그 기술 덕분에 이후 조선총독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식민지 기술자로 살아간다는 처지에 대한 모순과 균열의 갈등이 늘 존재했을 것이다. 그 모순이 바로 이 이름 안에 은유처럼 녹아 있는 것이다. 요컨대 이희우에서 이훈우로의 개명은 개인의 정체성을 가꾸는 사적 행위이면서, 동시에 민족과 함께 아픈 시대를 겪은 사람으로서의 흔적일 것이다. 그가 남긴 도면과 글, 그 시대 사람들의 기록, 그리고 후손들의 기억은 단순한 호칭을 넘어 한 건축가의 삶과 정신을 증언하는 역사적 단서다.
---p.177~178

2장 삶을 추적하다, ‘조선총독부 근무와 내직’ 중에서
분명한 것은 이훈우가 당시 점점 자신의 이름을 건 건축을 향한 열망을 키워갔다는 것이다. 그는 이름 없는 ‘기술자’가 아니라, 이름을 가진 ‘건축가’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바꾸어가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개업을 해야 했는데, 이 역시 한국 건축계에서 아무도 간 적이 없는 길이었다. 그가 처음으로 간 길을 따라 수많은 한국 건축가들이 그 뒤를 이었다. 이훈우의 초기 경성 생활은 이후 민간 건축사무소 개업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고, 이는 단순한 경력의 전환이 아니라 활동 공간과 자신의 정체성, 실천의 방향까지 바꾸는 결단이었다.
---p.203

2장 삶을 추적하다, ‘조선총독부 근무와 내직’ 중에서
이훈우의 건축에서 나타나는 공공성과 도덕성, 교육성과 실용성은 천도교의 사상과 맞닿아 있다. 그는 개인의 영달보다는 조선인의 삶의 질 향상, 더 나은 생활환경 조성을 고민한 건축가였으며, 그런 점에서 천도교의 근대성은 그의 작품과 삶의 태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훈우와 천 도교의 동행은 그가 개업한 이후 ‘대신사출세백년기념관’이라는 최고 대표작으로 결실을 맺게 된다. (204~205쪽)

2장 삶을 추적하다, ‘이훈우건축공무소’ 중에서
독립은 이제 그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였고 부모의 사망이라는 개인적 충격은 그 결정을 더욱 앞당긴 계기가 되었다. 그가 선택한 독립은 경성에서 민간 건축사무소를 열고 직접 설계를 수주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더이상 상명하복의 관료 조직 안에서 익명의 건축을 하지 않는 대신,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야 했다. 식민지배자의 관청일 망정 더이상 그를 보호해 줄 조직도 없었다. 이제 혼자서 뛰어야 한다! 그는 기민하게 움직였다. 그해 12월 10일 수은동 60번지의 오쿠다 사진관 3층에서 개업을 했다. 한국인 최초의 건축사무소였다.
---p.215

2장 삶을 추적하다, ‘이훈우건축공무소’ 중에서
일단 수은동에 자리 잡고 나자 이훈우는 활발하게 활동을 시작했다. 1920년대 초, 이훈우는 민립서울병원(일명 ‘피병원’)의 설계에 참여했다. 병원의 정식 명칭은 ‘민립병원’으로, 일본의 통제하에서도 조선인 주도로 설립하려 했던 의료 기관이었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단순한 건축 실무가 아니라 민족적 이상이 담긴 공공건축의 하나로 받아들였고, 병원이라는 근대적 공간이 지닌 위생성과 공공성을 설계에 반영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재정 문제로 인해 결국 완공되지 못했다.
---p.227

3장 건축가로 활동하다, ‘시대 배경’ 중에서
근대 초기, 건축이라는 신학문은 우선적으로 자국 결정권자들의 인식 부족, 그리고 이어진 식민지 시대의 왜곡된 교육 정책 등으로 인해 사회적 안착 과정이 불완전했다. (…) 건축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이를 공공적 방식으로 기록하는 문화는 처절하리만큼 부족하다. 건축물의 주민등록증에 해당하는 건축물대장에 설계자의 이름을 적는 난이 생긴 것도 1990년에 들어서였다. 그러다 보니 한국 근대 건축사는 ‘유령 건축가들의 역사’라는 자조적인 표현까지 등장한다. (…) 청산되지 않는 식민 잔재의 대표적 사례라 할 것이다. 존재 자체가 그토록 오래 가려져 있었다는 점에서 이훈우야말로 그러한 비극의 상징적 인물이기도 하다. 최초의 한국 근대 건축가라는 명예로운 타이틀 이면에는 이러한 애환의 서사가 감춰져 있는 것이다. 한국 건축계가 이루어 온 그간의 성취는 바로 이러한 뿌리 깊은 태생적 차별 구조 속에서 지속적으로 싸우며 만들어 왔다는 데 그 진정한 가치가 있다.
---p.312~313

출판사 리뷰

공동 연구로 뭉친 외인부대, ‘이훈우를 찾아라’
경운동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열린 서울시향의 ‘퇴근길 콘서트’. 이 프로그램의 사회를 맡았던 건축가 황두진은 건물에 대한 해설을 진행하기 위해 자료를 검색하다 이동초 선생의 블로그에서 흥미로운 한 문장을 발견한다. 중앙대교당 옆에 현재 멸실된 건물인 ‘대신사출세백년기념관’(1924년 기공, 1000석 규모)이 있었는데 그 건물의 “설계는 이훈우가 하였고”라고 소개되어 있었던 것이다. 황두진은 “어떻게 이훈우를 제쳐두고 박길룡이 ‘최초의 한국인 근대 건축가’가 되었는지 의문을 갖게”(본문 51쪽) 된다. 그리고 2018년 5월 10일 페이스북에 자신의 의문을 담아 글을 남겼다. 그러자 평소 한국 근대사에 관심을 갖고 있던 지인인 딜런 유에게 연락이 왔다. 데이터베이스 검색을 통해 천도교 잡지 『개벽』의 1921년도 간행본에 ‘李醺雨’라는 이름이 실린 것을 확인했다고 페이스북 댓글로 알린 것이다. 이후 두 사람이 이훈우를 찾는 과정을 꾸준히 페이스북에 게시했고, 2020년 1월 26일에는 김현경이 댓글로 ‘근대기 유학생 연구를 하던 중인데, 역사 연구자로서 도움이 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한다. 서로 학문적 배경이 다른 세 사람이 외인부대처럼 뭉쳐 이훈우를 찾아나가는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세 사람은 1월 30일 페이스북 단톡방을 개설해 정식 연구팀을 발족했다. 이 단톡방(연구팀)의 이름이 바로 ‘이훈우를 찾아라’다.

“건축·역사·학술 세 분야의 전문가이면서 서로의 분야에서는 아마추어인 세 연구자가 이룬 성과라는 점도 특별하다. 각자의 전문 영역을 나누어 맡고 나중에 합치는 통상적인 공동 연구와 달리, 이들은 영역의 분담 없이 SNS라는 가상 공간에서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생각을 이어나가는 새로운 융합 연구의 방법을 사용했다. 그래서 이들의 작업에선 전문 연구의 정연함과 함께, 스스로 좋아서 하는 아마추어적 연구의 즐거움과 힘이 느껴진다.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공자님 말씀 그대로다.”_전봉희(서울대학교 교수) 추천사(39쪽)

이훈우는 누구인가
이훈우는 일제강점기인 1920년 한국인 최초로 건축설계사무소를 개소하고 보성고등보통학교(현 고려대학교), 동덕여학교(현 동덕여자고등학교), 천도교 및 조선일보 관련 건물을 설계한 역사적 인물이다. 연구팀은 2020년 「건축가 이훈우에 대한 연구」, 2021년 「건축가 이훈우에 대한 추가 연구 및 관련 자료」라는 제목의 논문을 한국건축역사학회지에 발표하며 그가 한국 최초의 근대 건축가일 가능성을 학계에 제시했다. 또한 『서울신문』 기고(2018), 영추포럼(2021), 『한겨레신문』 인터뷰(2022) 등을 통해 대중에게도 그 이름을 알려 나갔다.

일제강점기 지식인의 삶이 던지는 메시지
책은 크게 내용의 성격에 따라 크게 4장으로 구성된다. 먼저 ‘1장 이훈우를 찾아라’는 세 사람이 연구팀을 결성하게 된 계기에서 시작해 신문기사, 개업광고, 고등공업학교 일람 등 다양한 사료를 하나둘씩 찾아내며 논문을 투고하고 출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연구기’다. 이 과정에서 이훈우의 후손인 이재완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해 그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 일화 또한 소개한다.
‘2장 삶을 추적하다’는 이훈우의 일생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결과를 정리한 ‘전기’ 형식의 글이다. 그의 출생과 가족관계부터, 일본 유학, 조선총독부 근무와 내직, 건축공무소 개소, 경성에서의 활동, 이후 낙향과 사망까지 연대기 순으로 이훈우의 삶을 복원한다. 그가 개소한 최초의 사무실이 종로구 수은동 오쿠다 사진관 3층이었음을 밝혀내고, 출퇴근의 경로, 경성과 하동(고향)을 오가며 활동한 이력까지 폭넓게 추적한다. 특히 건축의 특징과 변화를 사회적, 인적 네트워크의 관계망 안에서 추론하면서 조선인 일본 유학생 네트워크를 비롯해, 안톤 마르틴 펠러, 나카무라 요시헤이, 박길룡 등 동시대에 활약했던 건축가들의 면면과 관련성을 함께 소개한다.
한편 ‘3장 건축가로 활동하다’는 이훈우의 나고야고등공업학교 졸업작품을 시작으로 그가 건축가로 성장한 과정, 주요 활동 및 작업을 구체적으로 살핀다. 한편 이훈우의 건축적 토대가 되었을 건축교육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당대 조선과 일본의 교육제도와 건축교육의 커리큘럼을 상세하게 비교한다.
이어지는 ‘4장 이훈우를 기억하다’는 일제강점기 근대 지식인으로 건축가의 길을 개척해나간 이훈우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건축적 성향, 친일 여부 등을 살피고 현재적 평가를 덧붙인다. 연구팀은 이훈우가 작품성을 인정받은 ‘한국인 최초의 근대 건축가’로서 물꼬를 텄기 때문에 이후 박길룡, 박동진, 강윤 등 한국 건축가들이 속속 자리 잡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또한 ‘건축가의 유령화’와 같이 현재 한국 건축가들이 겪는 고질적 문제들을 가장 먼저 맞닥뜨린 ‘징후적 존재’로서 정체성을 짚으며, 우리 시대 건축가들이 풀어야 할 숙제가 무엇인지 숙고하게 한다.

“저술에서 가장 도드라진 성과는 식민지 조선의 속민으로서 처음 건축사무소를 개설하고 근대적 건축가 활동을 시작한 선구자의 존재를 찾아냈다는 점이겠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집요한 탐구로 한국 건축문화사 초창기 단면들을 발굴한 내용 또한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다른 문화계 인사들과의 관계가 엿보이는 희귀 사료들을 캐내어 당대 건축을 중심으로 한 식민지 사회 문화상의 미시적 단면들을 일부나마 드러낸 것이기에 또 다른 문화사의 비경들을 찾는 연쇄 고리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노형석(『한겨레』 미술문화재 전문기자) 추천사(41~42쪽)

연구 관련 문헌과 사료, 데이터베이스 수록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편집과 구성에 여러 요소를 적용하고, 향후 연구를 위해 관련 문헌과 사료, 데이터베이스를 정리해 부록으로 담았다. 먼저 연구의 엄밀성을 해치지 않기 위해,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저자들이 추정한 내용은 글자색을 달리해 구분했다. 1장 끝에는 공조 수사처럼 전개된 ‘이훈우를 찾아라’ 팀의 연구 과정을 알아보기 쉽게 정리한 ‘타임라인’도 수록했다. 또한 당대 시대상이나 역사적 사건, 주변인들의 행적 등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저자들이 덧붙인 다양한 해제를 소제목별로 원고 뒷부분에 삽입했다. 마지막 ‘부록’에는 연구 과정에서 발견한 관련문헌과 이훈우가 직접 작성한 신문기사 글 등을 현대어로 옮겨 보다 생생하게 이훈우 관련 자료를 독해하도록 했다. 이 책을 계기로 이훈우나 한국 근대 건축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게 될 미래 연구자들을 위해 ‘이훈우 연보’를 비롯해 근대사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성격에 따라 구분해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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