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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大峙洞의 여름
2. 에필로그 3. 흔적 4. 上下左右 |
KIM,CHUN-SOO,金春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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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귀에 들린다. 아직은
오지 말라는 소리, 언젠가 네가 새삼 내 눈에 부용꽃으로 피어날 때까지, 불도 끄고 쉰다섯 해를 우리가 이승에서 살과 살로 익히고 또 익힌 그것, 새삼 내 눈에 눈과 코를 달고 부용꽃으로 볼그스름 피어날 때까지, 하루 해가 너무 길다. --- p.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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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그 모서리에서 퍼 올린 불립 문자의 세계
김춘수 시인은 1945년 유치환, 윤이상, 김상옥 등과 <통영문화협회>를 결성하면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다. 초기에 릴케의 영향을 받아 1950년대 말까지 존재론적 고독과 그 본질에 대한 탐구에 몰두하였으며, 이후 몇 년간의 암중모색을 거쳐 1960년대부터 <무의미시>를 주창한다. <한계에 부딪힌 존재론적 시에 대한 지양태가 바로 관념과 대상으로 부터의 자유라는 무의미시>였고 실험적인 시작 양태는 1970년대 말까지 이어지면서 더욱 극화된 양상을 띤다. 1991년에 발표한 연작 장시『처용단장』은 이러한 무의미시 실험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변화의 폭이 극심한 시작 과정을 보여주는 시인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원초적인 동일성의 공간>이다. 그곳은 시인이 태어나 유년기를 보내면서 감각에 눈을 뜨게 해준 통영이라는 불립 문자(不立文字)의 세계이다. 이 세계는 <평화로운 저 깊은 바닷속의 공간이며, 시인의 무의식 속에 각인되어 있는, 말을 배우기 이전에 공유하던 아늑하고 평화로운 공간이며, 또한 인간과 사물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곳이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그간에 보여주었던 <존재 양식 탐구> 작업을 결산하고 그가 지향하는 원초적 동일성이 회복된 불립 문자의 세계를 깊은 서정적 울림으로 가득 채운다. 언어는 점점 더 단조로워지고 시적 대상은 점점 더 작아져, 마침내 언어와 대상과 서정적 자아가 구분되지 않고 서로 농밀하게 어우러져 하나의 울음이 되고 울림이 되고 흔적이 된다. 그것은 말이 아니고 <말의 날갯짓>으로서 존재가 아닌 존재의 비폭력적인 자기 증명이다. 읽는 이는 빈 여백만 따라가도 사물이 조화로움을 회복한 복된 세계로 인도될 수 있다. 여든의 나이로 접어드는 시인이 최근 이 년간 쓴 시, 89편을 묶은 이 시집은 첫머리의 헌사에서 보듯 아내에게 바치는 시편이 대부분이다. 그것은 짧은 시행을 바꿔 읽는 사이마다 앞자리가 빈 식탁에 혼자 앉아 있는 허전함으로, <......어딘가 먼데로 하염없이/ 눈을 주>는 먹먹한 그리움으로, 마침내는 <부용꽃 피는/어느 둑길에서 마주치는> 슬픔으로 각각 변주되고 있다. 이태 전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시인은 여전히 아내의 존재를 느낀다. 그런 <느낌은 진실이다>, 아내는 피안의 세계에서 천사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 이때 피안은 시인에게 거울의 이미지로 대치되고 이승의 풍경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 속은 이곳과 같이 비바람이 불고 나무가 뽑히고 지붕이 날아간다. 그러나 거울 속은 <뿌리가 뽑히지 않고> 고요하기만 하다. 그 고요함 속에서 시인을 응시하는 눈이 있다. 그것을 가리켜 시인은 <천사의 눈>이라고 인식한다. 아내는 거울 속에서 천사의 눈으로 시인을 응시하면서 시인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부여한다. 그것은 시인에게 여전히 시를 쓰게 하는 추동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