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김춘수 전집 1》
나비 《구름과 ?薇》 서시 구름과 ?薇 少年 歸蜀道 노래 窓에 기대어 西風賦 神話의 季節 바람결 《늪》 가을 저녁의 時ㆍ1 가을 저녁의 時ㆍ2 늪 山을 등진 거리 山嶽 潭 《旗》 旗 《隣人》 最後의 탄생 《제1시집》 봄 B 《꽃의 素描》 雨季 부다페스트에서의 少女의 죽음 꽃밭에 든 거북 구름 꽃 돌 描水 꽃의 素描 꽃을 위한 序時 릴케의 章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壁이 裸木과 時 序章 《打令調ㆍ其地》 打令調ㆍ1 打令調ㆍ2 打令調ㆍ3 나의 하나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가을 埠頭에서 處容 봄 바다 忍冬 잎 幼年 時ㆍ1 幼年 時ㆍ2 라일락 꽃잎 時法 《處容》 눈물 《김춘수 시선》 忠武時 《꽃의 素描》 打令調ㆍ12 《南天》 리듬ㆍ1 假面 西녘 하늘 南天 李仲燮 《비에 젖은 달》 저녁 별 《라틴 點描ㆍ其地 》 제1부 눈, 바다, 山茶花 제2부 들리는 소리 《돌의 볼에 볼을 대고》 센티멘틀 자니 《서서 잠자는 숲》 낮잠 새 大餘 얼굴 門前雀羅 順命 雍齒 《김춘수 시 전집》 遠景 섬 《壺》 칸나 自由 알리바이 《들림, 도스토예프스키》 이반에게 어둠에게 들려준 이야기 혁명 《의자와 계단》 놀 계단 《거울 속의 천사》 슬픔의 하나 명일동 천사의 시 우나무노 오늘의 풍경 말의 날갯짓 《쉰한 편의 悲歌》 제1번 悲歌 제2번 悲歌 제15번 悲歌 제35번 悲歌 제41번 悲歌 悲歌를 위한 말놀이ㆍ6 悲歌를 위한 말놀이ㆍ8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
KIM,CHUN-SOO,金春洙
김춘수의 다른 상품
|
김춘수는 우리 시사에서 이상만큼이나 개성이 강한 시인이다. 그의 언어에 대한 탐구는 그것이 드러내는 의미와 무의미에 대한 시적 성찰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시는 무의미 시를 향한 방법론적인 긴 도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초기 시, 주로 ≪구름과 장미≫에 실려 있는 시들은 무의미보다는 의미에 가깝다. 이 시집에서 그가 추구한 시적 방법은 관념과 유추다. “구름과 장미”에서 구름은 누구나 흔히 보고 또 들을 수 있는 체험의 영역을 표상하지만 장미는 당시(1950년대) 실제 체험의 영역에서는 보지도 또 듣지도 못한 선험의 영역을 표상한다. 이것은 장미가 관념의 세계를 유추하는 질료라는 것을 말해 준다. 장미처럼 관념의 세계를 표상하는 질료를 <꽃을 위한 서시>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시인도 이야기하고 있듯이 이 시의 마지막 행에 등장하는 “얼굴을 가린 나의 신부”는 체험의 세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여기에서의 신부는 장미처럼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시적 대상인 것이다. 장미와 신부의 이러한 관념성은 그로 하여금 이 질료들이 말의 피안에 있다는 생각까지 가능하게 해서 일정한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이른다. 관념의 공포감은 다시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게 하는데, 이 과정에서 찾아낸 것이 바로 ‘서술적 이미지(descriptive image)’다. 서술적 이미지는 관념의 수단이 되는 이미지를 초월한 것을 말한다. 관념을 배제하기 위한 그의 방법적인 시도는 일정한 한계를 노정하지만 이것을 통해 그는 자유연상이라는 개념과 만난다. <인동 잎>은 관념의 공포감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인의 시도를 보여 준다. 이것은 사생(寫生)의 한계에 대한 자각으로 이어진다. 어떤 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인식, 다시 말하면 그 대상을 확대하고 초극하는 것만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시인은 어떤 대상을 자신의 자유로운 연상에 의해 선택하고 배열하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방법이 구현되고 있는 시로 <처용단장> 1부를 들 수 있다. 시인이 궁극적으로 겨냥하는 세계 대상에 대한 형상이 아닌 행위 주체(시 쓰기의 주체)의 에너지가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의 순서에 따른 계기성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한 탈시간성이라고 할 수 있다. 탈시간성의 세계에서는 순간순간이 영원의 세계를 재현한다. 순간의 영원화는 기본적으로 덧없음 곧 허무를 동반한다. 그래서 시인에게 허무는 ‘영원이라는 것의 빛깔’이 된다. 순간이 영원이 되는 세계는 의미를 통해서는 해명할 수 없다. 의미가 아니라 그 의미를 부수고 해체할 때 그 세계는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의미가 해체되면 남는 것은 허무의 빛깔로 가득한 무의미의 세계다. 시에서 의미가 사라지고 허무한(무의미한) 행위만 반복된다면 그것은 하나의 언어의 율동일 수밖에 없다. 시인의 <처용단장> 2부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시에서 보여 주는 세계는 단순한 언어유희와는 다르다. 이 시 속의 말들은 그 자체로 실존적인 긴장을 유발한다. 이 시 속의 말이 실존적인 상황에 놓일 때 관념, 의미, 현실, 역사, 감상 등에서 벗어날 수 있다. 시인은 “말에 절대 자유를 주고 보니, 이번에는 말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말을 통해 드러나는 존재에 대한 절대 자유를 희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존재란 어떤 관념이나 개념화된 의미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탈은폐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도구적 연관성도 없이 그 스스로 은폐된 세계를 탈은폐하는 것이 바로 시인이 겨냥하는 말 혹은 언어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
|
김춘수는 우리 시사에서 이상만큼이나 개성이 강한 시인이다. 그의 언어에 대한 탐구는 그것이 드러내는 의미와 무의미에 대한 시적 성찰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시는 무의미 시를 향한 방법론적인 긴 도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초기 시, 주로 ≪구름과 장미≫에 실려 있는 시들은 무의미보다는 의미에 가깝다. 이 시집에서 그가 추구한 시적 방법은 관념과 유추다. “구름과 장미”에서 구름은 누구나 흔히 보고 또 들을 수 있는 체험의 영역을 표상하지만 장미는 당시(1950년대) 실제 체험의 영역에서는 보지도 또 듣지도 못한 선험의 영역을 표상한다. 이것은 장미가 관념의 세계를 유추하는 질료라는 것을 말해 준다. 장미처럼 관념의 세계를 표상하는 질료를 <꽃을 위한 서시>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시인도 이야기하고 있듯이 이 시의 마지막 행에 등장하는 “얼굴을 가린 나의 신부”는 체험의 세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여기에서의 신부는 장미처럼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시적 대상인 것이다. 장미와 신부의 이러한 관념성은 그로 하여금 이 질료들이 말의 피안에 있다는 생각까지 가능하게 해서 일정한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이른다. 관념의 공포감은 다시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게 하는데, 이 과정에서 찾아낸 것이 바로 ‘서술적 이미지(descriptive image)’다. 서술적 이미지는 관념의 수단이 되는 이미지를 초월한 것을 말한다. 관념을 배제하기 위한 그의 방법적인 시도는 일정한 한계를 노정하지만 이것을 통해 그는 자유연상이라는 개념과 만난다. <인동 잎>은 관념의 공포감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인의 시도를 보여 준다. 이것은 사생(寫生)의 한계에 대한 자각으로 이어진다. 어떤 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인식, 다시 말하면 그 대상을 확대하고 초극하는 것만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시인은 어떤 대상을 자신의 자유로운 연상에 의해 선택하고 배열하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방법이 구현되고 있는 시로 <처용단장> 1부를 들 수 있다. 시인이 궁극적으로 겨냥하는 세계 대상에 대한 형상이 아닌 행위 주체(시 쓰기의 주체)의 에너지가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의 순서에 따른 계기성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한 탈시간성이라고 할 수 있다. 탈시간성의 세계에서는 순간순간이 영원의 세계를 재현한다. 순간의 영원화는 기본적으로 덧없음 곧 허무를 동반한다. 그래서 시인에게 허무는 ‘영원이라는 것의 빛깔’이 된다. 순간이 영원이 되는 세계는 의미를 통해서는 해명할 수 없다. 의미가 아니라 그 의미를 부수고 해체할 때 그 세계는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의미가 해체되면 남는 것은 허무의 빛깔로 가득한 무의미의 세계다. 시에서 의미가 사라지고 허무한(무의미한) 행위만 반복된다면 그것은 하나의 언어의 율동일 수밖에 없다. 시인의 <처용단장> 2부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시에서 보여 주는 세계는 단순한 언어유희와는 다르다. 이 시 속의 말들은 그 자체로 실존적인 긴장을 유발한다. 이 시 속의 말이 실존적인 상황에 놓일 때 관념, 의미, 현실, 역사, 감상 등에서 벗어날 수 있다. 시인은 “말에 절대 자유를 주고 보니, 이번에는 말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말을 통해 드러나는 존재에 대한 절대 자유를 희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존재란 어떤 관념이나 개념화된 의미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탈은폐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도구적 연관성도 없이 그 스스로 은폐된 세계를 탈은폐하는 것이 바로 시인이 겨냥하는 말 혹은 언어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