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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 능엄경의 개요 2.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칠처징심(七處徵心)” 3. 먼지를 털어 버리다 “견불객진(見弗客塵)” 4. 중생의 견해 “머리와 꼬리를 뒤바꿔 생각함” 5. 망상의 소굴을 소탕하다 “개장종탈(開章縱奪)” 6. 현상계 모두가 보리의 묘명(妙明)한 성품 7. 부루나의 의문 8. 삼마제(三摩提)를 말하며 일문(一門)으로 9. 한 문(門)에 들어가 망(妄)이 없어지면 10. 능엄주를 외우기 위한 단(檀) 차리는 법 11. 선나(禪那)를 말하다 12. 초심자의 긴요한 일 13. 오십마(五十魔)를 말하다 ①색음(色陰) 14. 오십마(五十魔)를 말하다 ②수음(受陰) 15. 오십마(五十魔)를 말하다 ③상음(想陰) 16. 오십마(五十魔)를 말하다 ④행음(行陰) 17. 오십마(五十魔)를 말하다 ⑤식음(識陰) 18. 결언 : 능엄경의 요약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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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노스님께서 ‘원아진생무별념 아미타불독상수(願我盡生無別念 阿彌陀佛獨相隨 원컨대 이 생이 다하도록 다른 뜻 없이 오로지 아미타부처님을 따르리)’란 구절에 관해 물으신 적이 있다.
“‘오로지 서로 따름[獨相隨]’이란 대목을 이해하기 어려운데, ‘서로 따른다[相隨]’면 ‘홀로[獨]’가 성립될 수 없고, ‘홀로[獨]’라면 ‘서로 따른다[相隨]’가 성립되지 못하는 셈이니 어떻게 봐야 좋을지 대답해 보아라.” 나는 머리만 긁적이다 말을 얼버무렸다. 그런데 노스님의 유고를 정리하면서 다시 읽게 된 ‘능엄경 염불원통장’에서 이게 혹시 ‘오로지 서로 따름[獨相隨]’에 대한 해답이 되지 않을까 싶은 대목과 만났다. 두 사람이 서로 생각하여 그 생각하는 마음이 간절하면, 이 생에서 저 생에 이르도록 형상에 그림자가 따르듯이 서로 어긋나지 아니하리라. 시방의 여래가 중생을 생각하는 것이 어미가 자식 생각하듯 하건마는, 만일 자식이 도망하여 가면 생각한들 무엇 하겠느냐? 자식이 어미 생각하기를 어미가 자식 생각하듯이 한다면, 어미와 자식이 여러 생을 지내도록 서로 어긋나지 아니하리라. 아미타 부처님의 본원(本願)은 중생을 극락정토로 이끌겠다는 ‘오로지 한마음[獨]’일 것이고, 염불행자의 바람은 ‘오로지 한마음[獨]’으로 아미타불에게 귀의함일 것이다. 능엄경의 염불원통장은 아미타불과 염불행자가 서원(誓願)을 각자 실천하는 게 아니라. ‘서로 감응하고 느껴야[相隨]’ 원통을 이루게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프롤로그」중에서 일반적으로 불경의 유통분은 단순하다. 부처님이 법문을 마치시자 천인과 아수라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환희하며 경전을 받들고 인사하며 물러갔다는 내용으로 끝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능엄경의 유통분은 좀 다른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부처님은 지옥에 떨어질 만큼 나쁜 죄업을 지은 중생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 다. ‘지옥에 떨어져야 할 중생을 구원하는 불가사의한 능엄경의 역량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하는 의문이 수반되지 않을 수 없다. 흔히들 사람들은 〈능엄경〉 하면 능엄신주를 떠올리고, 능엄신주를 수행하는 것이 능엄경의 요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능엄신주를 외우고 수행하는 것으로 우리는 악업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 p.2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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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권의 불경만을 후대에 남길 수 있다면 어떤 경전을 남겨야 할까? 그런 결정권이 주어진다면 단연코 능엄경이 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능엄경은 부처님께서 세상에 남겨주신 이른바 ‘최후수범(最後垂範)’이자 49년 설법의 마지막 총정리 법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문에도 언급한 것처럼 능엄경 수행자가 세상에 남아 있다면 ‘마왕의 궁전’이 무너지게 된다고 한다. 마구니의 장난으로부터 세상을 구원할 방법이 능엄경에 쓰여 있기 때문이리라.
능엄경은 수많은 천재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절벽을 체험하게 했으며 깨달음을 주었다. 고려 시대 보환스님, 이규보, 청평거사 이자현 등은 능엄경을 깊이 공부했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도 매월당 김시습, 율곡 이이 등이 능엄경에 달통하고 깨달음을 얻어 세상에 자신의 발자국을 아로 새겼다. 아쉬웠던 것은 능엄경이 너무 난해하고 길어서 보통의 근기(根機)로는 접근 자체가 어렵고, 요지를 파악하기는 더더욱 어려웠다는 점이다. 다행히 1974년 운허스님께서 아름다운 우리말로 능엄경 전부를 번역하고 주석을 달아주셨지만 아직까지도 이를 뛰어넘는 저술이 나오지 못했다. 또한, 능엄경의 핵심을 추리고 난해한 부분을 자세히 해설해 주는 개론서조차 지금까지 나오지 못한 실정이라 여전히 능엄경은 멀고 험한 난공불락의 요새로 느껴지기 일쑤였다. 이 책은 능엄경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시고자 하는 월운 노스님의 간절한 염원으로 탄생한 명저로 이른바 능엄경 입문자들을 위하 개론서이다. 장장 10권에 걸친 능엄경을 한 권으로 요약하신 것도 대단하거니와 간 단락마다 능엄경의 요점을 짚어 가며 상세히 해설하신 안목이 놀랍다. 아마도 평생에 걸친 능엄경 연구로 내공이 쌓여야 써낼 수 있는 괄목할 성과라 아니 할 수 없다. 자칫 무관심과 세월의 자취에 묻혀 원고가 유실될 뻔하다가 다시 발견된 경위도 신비하기만 하다. 쓰레기통으로 가기 직전 우연히 눈에 띄어 봉선사 스님에게 직접 전달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월운 노스님의 법력과 능엄경의 영험이 가슴을 뛰게 만든다. 관세음보살의 가피가 이근원통을 통해 이루어지는 원리는 뭔가 깊은 영감을 느끼게 한다. 원통의 문에 들어가기 위해 해조음(海潮音)-파도소리를 들으라는 관세음보살의 당부가 왜 절실하게 와 닿지 않았을까? 문득 능엄경을 들고 동해 바다로 해조음을 들으러 달려가고 싶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