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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로그 내가 살아 본 집 이야기
1 추억을 만드는 집 꿈같은 어린 시절 집 기억 / 살아 보고 싶은 집 기억을 찾아서 / 기억의 복선이 많은 집 / 집이란 문화의 기억 2 체험 동선 긴 집이 좋은 집 집은 기계다 / 한옥의 체험 동선과 아파트의 짧은 동선 / 시각 동선, 청각 동선, 심리 동선 / 어떻게 체험 동선 긴 집을 만들까 / 계단은 환상적인 체험 동선 / 방향감각을 주는 장면의 전개 / 걸으면 튼튼해진다 3 구석구석 많은 집 자기만의 구석 / 이야기가 담긴 구석들 / 동양 문화권 집마다 다른 구석 / 서구 문화권 집의 구석 / 아이들이 잘 노는 집이 좋은 집 4 중심 잡힌 집 마당 / 거실은 마루일까 마당일까 / 부엌 새로운 중심 / ‘미래의 마당’이 되는 부엌 / TV와 컴퓨터와 인터넷을 다스리는 법 / 집의 중심에 집의 기를 모아 볼까 / 중심 있는 집에서는 사람도 중심이 잡힌다 / 집의 중심은 마음의 중심 5 신과 함께 사는 집 탄생과 죽음과 결혼 / 집이 새롭게 탄생하는 순간들 / 신과 함께 사는 집 / ‘물’과 ‘불’로 정화되는 그 순간 / 집이름 짓기는 시쓰기 6 여자의 집, 남자의 집 집에서 ‘센’ 여성 / 여성의 입장은 피곤하다 / 남성의 입장은 측은하다 / 누구 편을 들어줄까 / 남자도 변하고 여자도 변해야 하는데 / 집이 변하면 남자 여자도 변한다 / 여성 취향, 남성 취향, 양성 취향 / 음양의 이치를 집에서도 7 에로스를 즐기는 집 성에 대한 편견과 환상 / 집은 자신의 몸을 아는 배움터 / 성은 즐겨야 한다 / 부부 남녀 사이의 메이팅 콜 / 집 안의 에로틱한 상징 / 운우가 내리는 집 8 나 역시, 집 역시 자연 눈 소리를 듣고 싶고 흙 내음을 맡고 싶다 / 식물과 동물은 자연의 친구 / 기를 느낀다 / 빛의 요술과 어두움의 마력 / 오줌, 똥, 쓰레기를 배설하며 / 숨 쉬는 집, 기분 좋은 집의 풍수 / 도시는 사람이 만드는 자연, 도시 속의 집을 위해서 / 자연으로 돌아간다 9 시간의 갤러리가 되는 집 집 역사 찾아보기 / 새집처럼 보이는 집은 격이 낮다 / 항상 있었던 듯, 항상 있을 듯한 집 / 나이 먹어가는 집 / 시간마다 새로운 집 / 가족의 역사, 시간의 역사를 전시하는 집 / 집은 시간의 갤러리 10 길에서 창문에서 동네에서 보는 집 ‘도시 아이’와 ‘단지 아이’ / 맹모삼천? / ‘단지 이기주의’와 좋은 도시 이웃 / Eyes on the Street(길 위의 눈) / 집은 사람, 창문은 집의 눈, 대문은 집의 입 / 길에서, 창문에서, 동네에서 11 길들이며 사는 집 아파트도 집같이 / 집도 하나의 생명체 / 집 고를 때의 요령 / 살 집을 지을 때의 요령들 / 집을 고칠 때의 요령들 / 사는 동안의 요령들 / 물리적인 안전에 대한 요령 / 방범에 대해서 / 각종 하자에 대한 안전 요령 / 집을 고치며 살아 보자 12 혼자 있어보는 집 ‘우리 집’과 ‘내 집’ / 혼자 있어도 몸 편하고 맘 편하다 / 문제가 생겨도 해결할 수 있다 / 집에 대해서 항상 무언가 제안한다 / 자기 손으로 기여하는 그 무엇이 있다 / 주부 집 리더로서 좋은 리더십을 갖추자 / 꼭 가족이 살아야 집인가 / 집은 어떠해야 한다에서 자유로워지자 / 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 |
김진애,金鎭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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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보면 사람이 보인다, 사람을 보면 집이 그려진다
‘이 집은 누구인가’ 라는 책 제목을 보고 사람들은 무엇을 떠올릴까? 나는 저자로서 호기심이 난다. 이 제목은 물론 집을 의인화시킨 것이다. 집을 사람으로 봄으로써 집의 모습을 새롭게, 자연스럽게, 생생하게 느껴보자는 의도를 담고 있다. ‘사람이 사는 집, 삶이 담긴 집’ 같은 말도 있겠지만 ‘이 집은 누구인가’는 좀 더 상징적인 제목일 것이다. 집에 사는 사람이 과연 어떤 사람일까 하고 궁금증을 갖게 한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그런데 구태여 집을 의인화 시킬 필요가 있는가. 그럴 필요도 없이 사람 없는 집이란 생각할 수 도 없고 사람이 없다면 집도 필요없고, 사람이 살아야 집도 비로소 집다워지는 것일 텐데 말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하곤 한다. 집은 바로 사람 아니냐고. 그런데. 나는 이 책에서 ‘집은 바로 사람 아니냐’는 그 당연한 것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게 하고 싶었다. ‘멋있는 집, 편한 집, 근사한 집, 아름다운 집, 행복한 집, 따뜻한 집’ 등 집이란 무한하게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이 집은 누구인가’ 하는 의문에 대해 나름대로 고유한 답을 가질 수 있다면, 집과 사람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포개진다면, 그래서 사는 의미를 무엇인가 새롭게 느낄 수 있다면, 우리의 집은 비로소 사람 사는 집이 되는 것 아닐까. 사람들은 나에게 묻곤 한다. 집을 보면 어떤 사람이 사는지 정말 알아맞힐 수 있는지, 사람을 보면 어떤 집에 살고 있는지 상상이 되는지, 사람을 만나면 어떤 집을 설계해야 한다고 그려지는지 하는 질문들이다. 나는 그렇다고 본다. 물론 내가 전문인으로서 훈련된 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상상력이 발휘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모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런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을까? 집을 보면 사람이 보인다. 집은 사는 사람의 품성, 사는 사람의 성향, 사는 사람의 정서를 드러낸다. 집은 사는 사람의 스타일을 드러낸다. 사람을 보면 집이 그려진다. 물론 집을 보고 사람을 그리는 것 보다 맞추기 어렵다. 그러나 사람의 품성, 성향, 정서, 스타일을 알아갈수록 그가 어떤 집에 살고 있을 지, 또는 어떤 집에 사는 것이 좋을 지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집은 곧 사람이다. 우리 사는 집이 곧 우리 자신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우리 사는 집 모습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될 수도 있으리라. 집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이 책의 바탕이다. ‘이 집은 누구인가’에 대해 나름의 이미지를 떠올려본다. 집을 통해 우리를 본다. 집을 통해 나를 찾아본다. 집에서 사람 사는 뜻을 헤아려본다. 집에 나라는 사람을 담아본다. 이 책에 대한 저자로서 나의 생각이다. 책을 쓰게 된 동기 이 책은 꽤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오던 책이다. 집에 대해서 무엇인가 쓰리라 하는 생각은 건축에 입문한 뒤로 끊임없이 생각해왔다. 아름다운 집, 집의 역사, 집의 정치사회학, 집의 경제학, 집의 문화학, 집의 건축학, 집과 도시와의 관계, 집 만드는 기술, 집에 얽힌 부동산 이야기, 집과 남녀관계의 역학 등, 집에 대해서 만들 수 있는 책은 끝없이 많다. 그만큼 집은 사람 생활의 면면에 두루 걸쳐있다. 나는 특히 ‘집의 감성’에 대한 책을 원해 왔다. 삶이 묻어 있는 집의 면면, 속속에 녹아 있는 감성을 읊어내는 책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러 사람들에게 그런 책을 써 볼 것을 권하기도 하였다. 내가 써 볼 엄두는 진작 내질 못하였다. 건축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집의 감성에 대해서 글을 쓰기란 그리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이었다. 또 한편 나의 감성이 과연 그렇게 풍부할까하는 의문도 갖고 있었다. 나 자신은 전문성이 강조된 책을 만드는데 힘 써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나에게 집의 감성에 대한 글을 쓰도록 한 번 나서볼 용기를 준 계기가 드디어 찾아왔다. 1995년 초, 나름의 성격이 빼어난 문화지「샘이 깊은 물」에서 집에 대한 글을 써 달라는 원고청탁이 들어왔었다. 이 잡지가 지향하는 문화적 성격과 그를 지키려는 고집스런 까다로움을 잘 아는지라, 나는 비록 그리 긴 글은 아니었지만, 50여 매의 글을 꽤 힘을 들여 써내었다. “사는 사람 있는 집”이라는 글이었다. 글을 쓰고 보니 내 눈에도 괜찮게 보였다. 나는 평소 글 쓸 때 의식적으로 논리적으로 쓰려는 성향이 있는데 그 성향을 의도적으로 깨 보려고 노력했었고 나름대로 그 감성적 성과가 읽혀졌기 때문이다. 여간해서 내가 쓴 글을 잘 안 보는 남편이 어쩌다 이 글을 읽어보더니 하는 말, “꽤 쉽게 쓰네……. 잘 읽히는데? 괜찮다.” 하는 것이었다. 큰딸이 하는 말, “엄마 다른 글과 좀 다르네…….”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평에 꽤 고무가 되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나의 감성의 너비와 깊이가 어디까지인지 한 번 시험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집에 대한 또 다른 글을 한 번 써보리라고 용기를 낸 것이다. 집에 대한 생각이 새삼 필요한 시간 이 책을 꼭 써내야겠다고 나는 여러 이유를 들어서 나 자신을 설득을 하곤 했다. 그 첫째, 집이야말로 그 어떠한 건축물보다도 또한 사람이 만드는 그 어떠한 물리적인 실체보다도, 일상생활에서 사람의 감성이 담겨지고 감성이 표현되고, 감성에 어필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사람의 무한하고 오묘한 감성을 계발하고 승화시키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만들어진 집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실체로 표현되지만, 집은 기본적으로 ‘사람’과 ‘삶’의 눈에 안 보이는 면면의 표현이다. 둘째 이유, 집의 감성적인 면에 대해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다. 또는 그리 관심도 없다. 집의 물리적인 실체에 담겨있는, 그 실체가 시사하는 사람 사는 모습, 사람간의 관계, 사람의 감성에 대해서 거의 무지할 뿐 아니라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나 자신도 집에 대해 어떠한 감성을 갖고 있는지 어떠한 감성이 집에 담겨지기를 원하는지 그리 잘 알고 있지 않다. 나 역시 이 글을 씀으로써 도대체 집에 대한 나의 생각들이 어떠한 것인지 보다 낱낱이 알고 싶었다. 셋째 이유는 명확하다. 감성을 회복해야 우리의 집도 보다 집같이 되겠다 하는 이유이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점으로 제기하고 있듯이, 사실 우리에게 집은 지나치게 부동산으로서 또는 기능적인 공간으로서만 인식되고 있다. ‘집의 의미의 해체 또는 파괴’가 우려할 정도로 심해지고 있다. 여기에 최근 진행되는 사회구조의 변화와 더불어 ‘가족의 해체’ ‘세대 간 갈등’이 더해지고 있어 집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집의 파괴’ ‘가족의 해체’가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가? 과연 ‘집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에 대한 절실한 개념이 필요함은 물론, 과연 ‘가족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정의도 필요하다. 이러한 새로운 개념과 정의가 더욱 건강하게 만들어지고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려면 그 바탕에 집에 대한 감성이 면면하게 깔려있어야 할 것이다. ‘집의 감성 회복’은 새로운 단서를 주는 무궁무진한 보고(寶庫)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이유를 들자면, 집에 대한 기능적 접근을 더욱 견제하여야 할 만큼, 이즈음의 기술 발달은 인간적 터치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최근 가전제품, 정보통신기술들이 발달되면서 ‘첨단주택’에 대한 환상이 생기고 있는데, 마치 첨단기술이 들어오면 집에 대한 모든 문제들이 자동적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주는 현상이 그것이다. 참으로 위험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첨단기술을 택해서 쓰는 것조차 집에 대한 주체적 사고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감성 없는 기술’이란 인조인간을 위해서나 필요할까, 살아있는 사람을 위해서는 무의미하다. 기술이 더욱 발전될 이 21세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람의 감성에 대해 더욱 아끼고 믿고 즐길 수 있어야 우리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열두 가지 코드로 풀어낸, 우리가 살고 싶은 집이 행복해지는 이야기 책을 펴내며, 2006년 개정판 서문에서 이 책을 처음 쓸 때 5년이 걸렸고, 다시 다듬는 데 5년이 흘렀다. 글은 내가 쓰지만 독자들이 당신의 집을 그리기를 바라는 마음은 여전하다. “옛날에 살던 집을 찾아다녀봤어요.” “지금 사는 집이 새삼 다시 보여요.” “집에 뭔가 하나 바꿔 봤어요.” “어쩐지 행복하게 느껴져요.” 독자들이 해주시는 이런 말씀을 들으면 저자로서 행복하다. 살던 옛집을 찾아보며 추억을 더듬는 행위란 삶의 여유이자 뒤를 돌아보는 여유, 자신을 들여다보는 여유 아닌가. 집이란 추억을 만드는 곳이다. 집의 추억은 사람에게 살아 있다는 존재감과 뿌듯한 행복감을 안긴다. 자기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이 결코 초라하지만은 않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사는 집에 그렇게 많은 뜻이 담겨있음을 깨달으면 공연히 행복해진다. 값의 차이로 행복감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느끼는 뜻만큼 행복감이 커지는 것이다. …… ‘어쩐지 행복한 느낌’이란 참 정의하기 어렵다. 왜 우리는 어쩐지 행복하게 느낄까. 여러 이유가 작용하겠지만 무언가 산다는 의미와 살아 있다는 뜻을 느낄 때, 어딘지 정다운 느낌을 확인할 때, 뭔가 새롭게 할 수 있다는 기대가 부풀 때, 무언가 다른 내일에 대한 희망이 솟을 때 어쩐지 행복해지는 것 아닐까. 행복은 느낌이다. 우리는 느끼는 만큼 사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