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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무 말이 없었다 007
빈틈 037 천연기념물 067 바람에 나부끼는 097 너희들의 세상 125 어떤 예술가 155 휘파람 지나간 자리 183 꿀알바 209 숨 좀 쉬자 219 해설 처해-있음이 담아내는 삶의 진실들_송기섭 229 작가의 말 249 추천의 말 2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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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는 차마 말이 입 밖에 나오지 않았다. 보형이라면 아파트에서 바로 마주하고 사는 친구의 이름이 아니던가. 그런데 장례를 치른 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검찰 공무원으로 친구들 사이에서 제법 힘 있는 친구로 회자되던 인물이었다. 결혼도 제법 일찍 해서 벌써 아이들이 대학에 다니고 있었고, 시내에 작은 상가도 소유하고 있는 건실한 친구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수기와 보형은 참 이상한 관계였다. 수기가 706호, 보형이가 705호로 아파트 현관문을 마주하고 살아온 지 오래되었지만 서로 아무런 교류가 없었다. 수기는 인규 아내에게 보형이네 바로 앞집이 자기 집이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뭔가 그다음 설명할 말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무 말이 없었다」중에서 고향에 내려온 진짜 이유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도 알 턱이 없었다. 또 이유를 말한다 해도 대근이 서울에서 보낸 세월을 그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동양 사상이 어쩌고 들먹인다면 동네의 어느 누가 알아듣겠는가. 대근이 씩 웃기만 하자, 상진은 아예 대근을 무시하며 따지고 들었다. “너는 왜 그렇게 꽉 막혔냐? 그러니까 이 나이 먹도록 결혼도 못하고 사는 거 아녀? 사람이 좀 다른 사람들과 섞이기도 하면서 살어야 허는 법이여!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했던 똑똑한 너 같은 사람이 참여허먼 얼마나 도움이 많이 되겄냐?” ---「천연기념물」중에서 “다 섞여서 사는 거예요. 우리 지역 사람끼리 도우며 살아요.” 택시는 작은 읍내를 금방 벗어나더니 산을 넘어 중산리에 들어섰다. 신 이장을 집 근처에서 내려주고 상산리로 향했다. 김 교수는 새로 포장한 마을 길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하차해 천천히 걸었다. 가을이 시작되려는지 풀벌레 소리가 한여름과 사뭇 달랐다. 아직 가로등도 없었지만 참 안전하고 편안한 길이었다. 사실 생활 속으로 들어가면 진보가 어디 있고 보수가 또 어디 있겠는가. 자신의 재산을 지키고 불려 나가며 먹고사는 데에 도움이 된다면 그게 최고 아니겠는가. ---「바람에 나부끼는」중에서 “아 예. 마을 카페 공사하는 데에 들러서 상인회장님께 음료수 전해드리고 왔어요.” “뭐라고! 거기는 뭐 하러 음료수를 갖다주고 그려?” “날 더운데 바쁜 시간 쪼개서 공사 감독하시는 상인회장님 생각나서요. 도와드리지도 못하고 미안하잖아요?” “아이, 이 사람아! 다 자기 일하는 거야! 얘기 못 들었구만. 그것 다 중앙지물포에서 하는 공사야. 박봉각 상인회장이 중앙지물포 하잖아!” 인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너희들의 세상」중에서 - 야, 너는 예술가들을 믿니? 그들은 뭐 우리와 다를 것 같아?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생활인일 뿐이야. 옛말에 목구멍 이 포도청이라는 말도 있잖아. 다 먹고살려고 발버둥치는 거야. 내가 입술을 삐죽이 내놓고 턱 밑까지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장갑으로 훔쳐내는데 삐그덕 소리가 나면서 대문이 열렸다. 정옥금 어르신이 살포시 수박이 올려진 쟁반을 들고나왔다. 반달 모양으로 잘라낸 빨간 수박 끝에서 영롱한 입자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빛나고 있었다. ---「어떤 예술가」중에서 그런데 사람은 좀 다른 것 같다. 투입과 산출이 비교적 명확한 식물의 세계와 분명히 다른 것이 인간의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마음을 내 뜻대로 어찌한다는 것이, 타인에게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것이 너무나 어려워 보였다. 내가 가만히 있는다 해도 나를 둘러싼 세상이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그런데도 자꾸만 홀로 기대하고 고고한 척하려는 것이 인간의 아둔한 습성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진우는 머리가 좀 복잡해졌다. ---「휘파람 지나간 자리」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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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하든 젊은 사람이 낫지 않겠어요?”
청년들이 돌아왔다. 한적한 지방 소도시로. 요즘 5도 2촌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많다. 5일은 도시에서, 2일은 한적한 변두리에서, 현실을 놓지 않으면서도 낭만을 즐기려는 것이다. 시골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붐비지 않는 소도시에서 제2의 인생을 꿈꾸는 사람들도 많다. 조금 더 여유 있는 삶, 돈과 시간에 쪼들리지 않는 삶은 현대인이라면 한 번쯤 품어봄 직한 로망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낭만은 현실과 어떻게 만날까? 현실과 낭만이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소설집 『어쩌면 사소한 진실』에는 새로운 삶을 찾아 지방 소도시로 내려온 젊은이들의 일상이 단편 소설의 형태로 담겨 있다. 나이도 다르고 상황도, 내려온 이유도 제각각 다르지만 이 소설 속 인물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시골의 넉넉한 인심과 고즈넉함에 기대를 품고 있다는 것. 지난한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인생을 그려본다는 것. 그러나 사실 이들은 달리 피할 곳 없는 막다른 공간에 떠밀려온 인물들이다. 그리고 이 공간을 오래 떠나있었거나 새롭게 찾아온 이방인을 맞이하는 것은 마냥 따뜻한 정겨움이 아닌, 아주 사소하지만 변하지 않는 어떤 사실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너절한 현실 앞에서 멍청하게 당하거나, 조용히 경악하거나, 교묘하게 이 상황을 이용한다. 누구의 행동이 가장 인간적인지 우리는 판단할 수 없다. 다만 그것이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얼굴의 다름 아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뿐이다. 진실은 아무리 사소해도 진실, 가당찮은 현실 속 우리를 비추는 소설이라는 거울 황선만의 소설들은 관습적이면서도 친숙한 세상을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송기섭 평론가는 “소도시에서 벌어지는 하찮은 사건에서 생생한 현실성을 찾아내는 데 황선만은 특유의 관찰 능력을 발휘한다.”고 말한다. 속스러움을 실감나게 묘사하여 소도시의 현실을 가차없이 터트린다는 것이다. 「빈틈」의 동수는 고령 인구 비율이 높은 고향 동네에서 자본주의적으로 기생할 틈새를 찾고, 「바람에 나부끼는」의 김 교수의 정치적 신념 또한 소소한 이익에 휘청이며 한데 얽혀 살고자 한다.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명분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내세워 상호 부조하고 연결되며 협잡하는 모습은 「너희들의 세상」의 시골 장터 속 장사꾼들에게도, 「어떤 예술가」의 예술가들에게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이와 반대로 「천연기념물」의 대근처럼 도시와 별반 다를 것 없이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인간군상의 행태에 조용히 경악하는, 그리하여 그 자체로 인간다움을 실현하려는 인물도 나온다. 황선만은 이처럼 특유의 관찰력으로 우리의 초상을 전형화한 인간 형상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여기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우리 자신의 모습에 다름 아니며, 이들 이야기 속에는 삶에 가장 가까운 진실들이 담겨 있다. 가장 사소하지만 날카롭고, 작지만 잘 변하지 않는 인간 본성 속 진실들이. 손홍규 소설가는 “진실은 아무리 사소해도 진실이기에 존재를 뒤흔들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로 바꾸어 놓는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이 소설을 읽기 전으로 우리는 돌아갈 수 없다”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인간다움을 실현하며 살아야하는 것일까? 가당찮은 현실 속에서 우리를 비추는 소설이라는 거울 속으로 들어가보자. 지방 소도시라는 장소가 주는 사유의 힘 헛헛하고 민망스러운 인간 존재의 페이소스 황선만 작가는 충청남도 보령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내다가 열일곱 살에 홀로 상경하여 서울에서 이십 대를 보냈다. 부천과 구로 일대에서 기름밥을 먹으며 소년공으로 살던 그는 세상을 탐구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고 서른 무렵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작가의 말을 통해 “정치, 경제, 문화 등 거의 모든 영역이 서울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 사회는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밝혔다. 아마도 그가 지방 소도시라는 장소를 한정하여 여러 인간 군상들을 그려내는 이유가 여기 있을 것이다. 사람은 도시에서만 살지 않는다. 우리나라만 해도 서울보다 서울 변두리에 더 많은 사람이, 서울 변두리보다 지방에 더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 이 소설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지방 소도시라는 장소가 사유의 힘을 갖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송기섭 평론가는 작품 해설을 통해 이 장소성을 누차 강조하며 “이 소설들이 처해-있음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진실이 여기서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지방 소도시라는 장소의 특수성은 그 지위를 역이용해 우리의 기대와 편견을 보란 듯이 비웃는다. 여기서 우리는 “좀 헛헛하고 민망스런 인간 존재의 페이소스를 진하게 느껴야 한다.” 여기 던져진 작중인물들이 “모두 우리들이 한 번쯤은 처해보았던 우리 자신의 상황이고 진실”이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빈번히 목격되는 못난 인간 본성에 눈을 흘긴 바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소설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맛깔나고 정겹게 녹아있는 충청도 사투리는 덤이다. 그 덤 덕분에 이야기는 술술 속도감 있게 읽힌다. 솔직하고도 발랄한, 의뭉스러우면서도 속이 훤히 보이는 황선만의 이야기 속으로 즐겁게 빨려들어가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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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실린 담백하고 순정하기 그지없는 아홉 편의 이야기에는 진실을 목격하지만 증언하지 않는 서글픈 사람들이 있다. 황선만의 소설이 품은 진경의 세계는 이토록 고요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진실이 얼마나 충격적이냐가 아니다. 진실은 아무리 사소해도 진실이기에 존재를 뒤흔들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로 바꾸어 놓는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어 보이는데 그들의 내면에서는 너무 많은 게 변했다. 진실을 목격하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그들은 진실 앞에서 조용히 경악함으로써 왜 진실이 중대한지를 누구보다 간절하게 증언한다. 요컨대 증언하지 않고 증언하여 인간다움을 실현하기. 그리하여 황선만의 소설을 읽기 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이 세계를 이전의 방식으로 볼 수 없게 되었으니 차분히 감탄하며 새로운 세계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수밖에. -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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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구로 기원하여 보령은 마치 한국 문학의 특구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안학수, 서순희, 김종광, 박경희와 같은 후예들이 그 문학 특구의 시민이었는데 황선만 소설가가 합류했다. 황선만은 원도심 보령의 현재 시간에 뛰어들어 자본과 개발 논리에 휩쓸린 ‘지방성’과 현대인의 고립을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이 특출하고 개별적인 산문정신이야말로 이문구의 유산일 것이다. - 전성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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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팽히 맞선다. 한쪽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탯줄 묻은 곳이자 삶의 터전인 곳을 다시 세워보려는 단심을 드러낸다. 그러나 다른 한쪽은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냐며 돈과 권력을 향한 무한 의지를 숨기지 않는다. 더 놀라운 일은, 그 맞섬이 끝내 와해되고 만수산 드렁칡 얽혀진 듯 서로 얽혀 자신들의 욕망을 백 년까지 누릴 듯 한통속이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렇게 소멸해 가고 있다. - 이권우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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