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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세자타
야간 생활자 최현우 시인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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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프롤로그 (그 밤을 기억한다) - 9

1장
앓듯이 적기 - 16
가을의 일 - 19
그럼에도 느낄 수 있다면 - 23
기록을 두드리는 악기 - 29
나도 당신과 연대할 수 있나요 - 34
우리는 좌초되지 않는다 - 41
소년이여, 신화가 되었는가 - 49
우리의 매직 캐슬 - 58

2장
떠나기로 했다 - 72
로마의 길 - 74
조용히 하시오 - 79
사랑하는 요새, 아시시 - 89
파세자타 - 97
돌아오기, 돌아서 오기 - 103

3장
시간이라는 동전을 튕기는 자는 누굴까 - 112
같은 세상에서 다른 시간을 산다는 것 - 120
목소리로 남는 거라면 - 128
자격지심 - 136
사랑하면 기록하게 되니까요 - 140
시는 무탈과 무참으로 빚어지는지 - 150

에필로그(내려놓기) - 160

저자 소개 1

1989년 겨울에 태어났다.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1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으로 당선하며 등단했다. 시집 『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나요』, 산문집 『나의 아름다움과 너의 아름다움이 다를지언정』 등을 지었다. 시를 쓰는 밤, 기지개를 켤 때면 냉큼 달려와 무릎으로 뛰어오르는 코코와 함께 살았다. 여전히 한밤중에 글을 쓰고 아침에 잠드는 야간생활자이며, 무언가 생각할 때 입술을 뜯는 버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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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0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164쪽 | 118*202*20mm
ISBN13
9791190533874

책 속으로

밤이 오겠지만, 해가 뜰 거라고. 당신이 잠든 사이에 내가 그것을 자주 봤다고. 그러니 잠든 이여, 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의 악몽도 대신 꾸며 살고 싶다. 새벽을 견디는 건 내가 유일하게 잘하는 일이므로. ---p.18

나는 지금 그 자리에 없고 이 자리에 있다. 고통과 슬픔을 추적하다가 추종자가 되어버리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아마도 미지근해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가을의 일처럼 말이다. 조용하게 서 있다 보면, 낙엽이 가라앉는 소리가 들린다. 빗자루를 고쳐 쥔다. ---p.22

연주는 낡아도 음악은 늙지 않는다. 나는 건반 위를 떨면서 구르는 그의 왼손과 오른손을 보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몰랐다. 사연은 모르지만 마음을 알게 되는 일도 있으니까. 어떤 시간을 그렇게 오래 두드려 세월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면, 우리도 음악이 될 수 있을까, 생각했다. ---p.33

한 번도 마음을 감춰보지 않고서 어른이 된 사람은 없다. 이것이 연인이 서로에게 아이처럼 구는 이유이겠다. 사랑은 서로에게 아이가 되는 역행을 허락한다. 넘치고 넘어져도 무릎이 깨지지 않는다. ---p.58

우리는 자라기도 전에 쓰러지기도 하지만, 쓰러져서도 자라고는 하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다고 여기며 살다가는 결국 나도 언젠가 너의 눈에서 영영 사라진 채로 살게 될 테니까. ---p.66

미사를 마치고 좁은 골목들을 돌아다녔다. 집과 집 사이에 놓인 돌계단에 앉으면 멀리 올리브 밭의 푸름과 하늘의 푸름이 경계 없이 뒤섞였다. 거기서 오래 함께 앉아 음악을 나눠 들었다. 어떤 여행은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는 일이 아니라, 그곳을 내 안으로 데려오는 일이 되기도 한다는 걸 알았다.---p.94

여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그것이 찬란한 계절이었음을 깨닫고는 한다. 그럼에도 걸음을 멈추고 옆과 밑을 살피려고 노력해 보는 것이다. 지금 내 곁의 들꽃과 목덜미를 스치는 햇볕과 잠든 이의 다정한 숨소리 같은 것들. 영원까지는 아니겠지만 아직은 내일이 있으므로. 오늘 못다 한 슬픔은 포기하지 않고 내일 조금 더 안아보기로. ---p.117

사랑은 때로 내가 용서할 수 없는 나를 대신 용서해 주기도 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해도, 그의 용서로 간신히 나를 용서하는 일. ---p.143

시는 어쩌면 때리고 할퀴는 자리가 아닌, 가만히 어깨를 빌려주어야 할 곳에 있을지도 모르기에. 어쩌면 그곳에만 있을지도 모르기에. ---p.157

꽃은 꽃잎을 말아 조용히 내려놓을 뿐, 내놓는 게 아니라고. 그러므로 꽃길은 꽃이 꽃을 내려놓기로 한 길이라고. 다만, 기쁘게 따라 걸어왔다. 조금 더 걸어본다. ---p.161

출판사 리뷰

“그 밤들이 내게는 파세자타였다.”
─ 야간 생활자 최현우의 일상과 여행, 현실과 몽환 사이에서 건져 올린 산책록

‘파세자타(Passeggiata)’는 이탈리아어로 ‘저녁에 하는 산책’을 뜻한다. 시인은 보들레르의 ‘플라뇌르’보다 더 느슨한 이 말을 어떤 태도나 정체성으로 받아들인다. 그의 산책은 길 위에만 있지 않다.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돌아다닌 시간도, 방 안에서 무언가를 보고 듣고 읽은 시간도, 영화와 음악과 게임으로 도망친 시간도 모두 파세자타였다. 시인은 “목표도 성취도 없이 수다를 떨며 어슬렁거릴 때만 가능한 마음”으로 배회하다 뜻밖에 마주하게 된 것들, “대부분 금세 부스러져 형체를 잃고 사라졌지만, 간혹 맑은 알갱이가 남아 달빛 속에서 반짝거리”던 것들을 조심스레 글로 옮겨두었다. 최대한 문학을 우회하려 했다는 시인의 고백에도 불구하고, 안과 곁과 밖을, 삶의 어둠 내린 곳을 목적 없이 어슬렁거렸던 시인의 산책은 결국 문학에 이르는 아름다운 지도를 그려낸다.

-“우리는 자라기도 전에 쓰러지기도 하지만, 쓰러져서도 자라고는 하니까.”

1장 [안]은 깊은 안쪽의 이야기다. 울면서 깨어난 새벽에도 슬픔은 들키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시인은, “사금을 캐는 사람처럼” 시가 될 말들을 허우적거리며 건져 올린다. 그는 자신을 혼자로 만든 것이 무수한 타인이었음을, 타인과 훌륭하게 공존하고 싶던 마음이 오히려 자신을 어두운 혼자로 만들었음을 깨닫는다. 상흔으로 이루어진 이미지가 세상의 진면목이라고 믿던 때를 지나, 어느 날 평안을 가져도 되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시인은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들에 작품을 포개어 조심스레 전한다. 〈에반게리온〉으로는 “인간이라는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하는 자신을 드러내고,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아이들을 통해서는 "망가진 것들을 그러모아 망가지지 않는 마음"을 만들며 살아가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가 세상의 그을린 부분을 끝까지 바라보는 이들을 깊이 존경하는 것은, 쓰러져서도 자라는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게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의 앞이었고 서로의 뒤였다. 무엇보다, 서로의 옆이었다.”

2장 [곁]에는 아내와 한 달 동안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여행한 이야기를 담았다. 인파에 질려 콜로세움을 포기하고 한산한 골목을 다니던 날들, 시스티나 성당에서 "조용히 하시오"라는 말을 들으며 인간의 목소리가 무엇을 훼손하는지 묻던 장면이 이어진다. 소매치기를 경계하며 오른 기차에서, 승객들이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모습에 시인은 "아무도 도둑이 아니었다"고 적는다. 그렇게 도착한 요새 도시 아시시에서는 하늘과 올리브 밭의 푸름이 뒤섞인 풍경을 만난다. 시인은 죽기 전에 꼭 다시 가고 싶은 곳으로 아시시를 꼽으며, 그곳에서라면 끝내 놓지 못한 미련과 후회를 천천히 흘려버릴 수 있겠다고 말한다. 파리에서는 모네의 빛 앞에서 조금 울고 만다. 서로에게 간신히 가장 친밀한 이방인이 될 수 있을 뿐이라면, 가장 조용한 방문객이고 싶다던 시인은 긴 여행에서 '침묵'과 '동행'을 배운다.

-“무탈한 사람이 시를 쓰려면 무참해지는 수밖에는 없다.”

3장 [밖]에는 시간과 사랑과 시에 관한 이야기들이 묶여 있다. 시인에게 시간은 "생명이 개간할 수 없는 신의 영토"여서, 아무리 쪼개 쓰고 애써도 “인간의 나라”가 되지 못한다. 되돌릴 수 없는 그 땅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후회하는 것, 그리고 그 후회가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도록 마음을 돌보는 것이다. 시인은 오늘 못다 한 슬픔을 내일 조금 더 안아보겠다고 다짐한다. 이러한 시간의 유한성은 사랑과 시라는 마음의 문제로 연결된다. 시인은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해도, 그의 용서로 간신히 나를 용서하는 일”이 사랑이었음을 고백한다. 또 작품 속 여러 사랑의 모습들을 통해 ‘사랑’과 ‘기록’의 연관성을 건져 올린다. 시인에게 기록이란 시이거나 시의 조각일 것이다. 그렇기에 시를 쓰려면 “무참해지는 수밖에는 없다”는 그의 문장은 끝까지 사랑하겠다는 의지로도 읽힌다.

『파세자타』에 등장하는 작품들과 여행지의 골목 등은 모두 그가 만든 우회로다. 시인은 이 책을 “삼십 대를 대충 걸어 다니며 아무렇게나 기록한 산책 일지”라고 소개하지만, 읽고 나면 그가 만든 수많은 우회로가 결국 다정하고 사려 깊은 이정표였음을 알게 된다. 또한 이는 다양한 감각으로 세계와 접촉하려는 시인의 태도를 보여준다. 그는 거창한 결론으로 독자를 이끌지 않는다. “내가 당신을 어렵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함께 밤을 걷는 사람처럼, 천천히 한 걸음씩 나아간다. 현실과 몽환, 낯선 도시의 골목, 영화 속 대사와 장면 등이 시인을 통과해 우리의 저녁으로 이어진다. 그가 만든 우회로를 따라 걷다 보면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우리를 더 오래, 더 기쁘게 걷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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