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베스트셀러 청년패스
발해, 문명의 빛을 찾아서
강인욱의 유라시아 빅히스토리
강인욱 저
흐름출판 2026.10.30.
가격
25,000원
10 22,500
YES포인트?
1,25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상품의 태그

상세 이미지

책소개

목차

프롤로그 토기 한 조각에서 시작된 여정

제1부 동서(東西)의 가교
: 실크로드의 바람, 초원을 넘어 발해로 불어오다

1. 연해주 숲속에 세워진 위구르인의 무역 센터
2. 발해 궁궐의 흑인상: 실크로드의 끝에서 만난 이방인
3. 초원의 소리, 발해로 오다: 유라시아 악기 ‘구금 ’
4. 발해인의 보드게임: 초원과 한반도를 잇는 놀이판
5. 노학자의 마지막 꿈, ‘담비의 길’을 찾아서
6. 발해의 인삼, 세계로 나아가다
7. 당나라 황제도 탐낸 동해의 맛
8. 발해 성터에서 발견된 십자가

제2부 동해에서 북극까지
: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은 발해의 숨겨진 저력을 찾아서

1. 발해의 영토는 어디까지일까?
2. 사할린 앞바다의 절터와 발해의 북방 루트
3. 발해, 환태평양 교역의 중심에 서다
4. 연해주에서 발견된 신라의 보검
5. 두만강의 잃어버린 섬, 녹둔도를 찾아서
6. 한국과 중국의 동상이몽, 장백산 문화론의 실체
7. 발해는 정말 화산 폭발로 멸망했을까?

제3부·우리 역사 속의 타자(他者), 말갈과 여진 그리고 거란

1. 동아시아 최대 미스터리, 발해 문자를 찾아서
2. 고구려는 왜 연해주로 진출했을까?
3. 말갈의 역사를 한국사의 일부로 봐야 하는 이유
4. 강원도 놀이동산에서 발견된 고구려와 말갈의 공존 흔적
5. 발해의 문화를 받아들인 거란, 오랑캐의 누명을 쓰다
6. 발해도 만리장성을 쌓았을까?
7. 문학과 영화가 소환한 여진의 후예들

제4부·격동의 현대사, 다시 깨어난 북방의 유산

1. 비추린, 문헉 속에서 발해를 발견하다
2. 카파로프, 연해주에서 발해의 흔적을 찾아내다
3. 아르세니예프, 발해의 땅과 사람을 기록하다
4. 포노소프, 발해를 고고학으로 되살리다
5. 다시 연해주로, 발해 연구의 길을 이으며

에필로그 변해가는 중국의 발해 공정
마치며 끝나지 않은 발해의 이야기

저자 소개 1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졸업하고 러시아과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꿈꾸던 고고학을 평생의 업으로 살고 있으며, 현재 경희대학교 사학과 교수 및 한국 고대사 · 고고학연구소 소장이다. 유라시아와 고조선의 고고학을 주로 연구하며 우리의 과거를 좁은 한반도의 틀을 벗어나서 넓게 보고자 한다. 지은 책으로는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 『황금, 불멸의 아름다움』 『세상 모든 것의 기원』 『우리의 기원, 단일하든 다채롭든』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테라 인코그니타』 『유라시아 역사 기행』 등 다수가 있다. JTBC ‘차이나는 클라스’, EBS ‘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졸업하고 러시아과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꿈꾸던 고고학을 평생의 업으로 살고 있으며, 현재 경희대학교 사학과 교수 및 한국 고대사 · 고고학연구소 소장이다. 유라시아와 고조선의 고고학을 주로 연구하며 우리의 과거를 좁은 한반도의 틀을 벗어나서 넓게 보고자 한다. 지은 책으로는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 『황금, 불멸의 아름다움』 『세상 모든 것의 기원』 『우리의 기원, 단일하든 다채롭든』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테라 인코그니타』 『유라시아 역사 기행』 등 다수가 있다. JTBC ‘차이나는 클라스’, EBS ‘클래스ⓔ’에 출연했고 [한겨레]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에 칼럼을 연재하며 고고학의 진정한 매력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힘쓰고 있다.

논문으로는 Undercurrents of Go’joseon Research Reflected in the Diaries: With a Focus on Gu Jiegang’s Diary (顧?剛日記) and An Zhimin’s Diary (安志敏日記), The Journal of Northeast Asian History, Volume 18 Number 2 (Summer2022). , 「만발발자 유적으로 본 후기 고조선의 교역 네트워크와 고구려의 발흥」(『동북아역사논총』 71, 2021), 「초기 고조선 네트워크의 형성과 비파형동검문화 -기술, 무기, 제사를 중심으로」(『한국고고학보』 106, 2018), 「북한 고조선 연구의 기원과 성립: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와 조중고고발굴대」(『선사와 고대』 45, 2015) 등이 있다.

강인욱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0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412쪽 | 640g | 140*210*30mm
ISBN13
9788965968726

책 속으로

콕샤로프카 유적은 지금까지 발굴된 발해 성터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다. 지금도 접근하기 힘든 험준한 시호테알린산맥의 서쪽 기슭이다. 발해 사람들은 왜 이 척박한 산골짜기에 거대한 성을 쌓았을까? 그리고 위구르인들은 왜 이곳까지 찾아와 자신들만의 방식대로 돌을 쌓고 제사를 지냈을까? 그 비밀은 바로 이 숲속에서 나는 ‘특산품’들에 있었다. (…) 러시아의 원로 고고학자 샤프쿠노프 박사는 일찍이 ‘담비의 길’이라는 개념을 주창했다. 비단길(실크로드)이 건조한 사막을 가로질러 비단을 날랐다면, 그보다 북쪽에 위치한 초원과 삼림 지대에는 모피를 나르던 길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 ‘담비의 길’은 문헌 속에만 존재하는 가설에 불과했다. 하지만 콕샤로프카에서 위구르 제국의 제단과 토기가 발견됨으로써, 이 가설은 역사적 사실로 입증됐다.
---「연해주 숲속에 세워진 위구르인의 무역 센터」중에서

발해의 흑인상은 그저 호기심 어린 눈으로만 쳐다볼 유물이 아니다. 이는 발해인들이 실크로드와 닿아 있었다는 증거다. 또한 발해가 ‘우리 민족만의 역사’라는 좁은 틀을 넘어, 다양한 문명을 편견 없이 받아들인 유라시아 제국이었음을 증명한다. 만주 벌판 한복판에서 발견된 작은 흑인상은 오늘날 우리에게 묻는다. 과연 우리는 1,200년 전 발해인들보다 더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냐고. 우리가 발해 문명으로부터 물려받아야 할 진정한 유산은 광활한 영토가 아니라, 낯선 이를 친구로 기꺼이 받아들였던 ‘경계 없는 마음’일 것이다.
---「발해 궁궐의 흑인상: 실크로드의 끝에서 만난 이방인」중에서

우리는 종종 거창한 문헌 기록이나 거대한 성벽에서만 역사적 증거를 찾으려 한다. 하지만 발해 성터의 담벼락 밑에서 발견된, 엄지손가락만 한 닳고 닳은 흙덩어리 하나에도 역사는 살아 숨 쉰다. 이 작은 유물 하나가, 발해와 우리가 같은 정서와 문화를 공유하는 나라였음을 증명해주는 가장 확실한 도구일지도 모른다. 1,200년 전의 발해인이 손에 쥐었던 그 작은 고누알에는 지금의 우리로까지 이어지는 끈끈한 ‘문화적 지문’이 선명하게 찍혀 있기 때문이다.
---「발해인의 보드게임: 초원과 한반도를 잇는 놀이판」중에서

고조선-고구려-발해로 이어지는 만주와 한반도 이북에 있었던 우리의 나라들은 험난한 산악 지대라는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다양한 특산물을 통해 국가를 발전시켰다. 이와 더불어 한반도라는 좁은 지정학적 위치를 중앙아시아 초원 지역과 이어지는 유라시아 루트를 개척함으로써 극복해냈다. 발해가 ‘담비의 길’을 통해 유라시아와 이어졌던 모습은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세계로 뻗어 나아가고자 바라며 그리는 희망의 자화상이 아닐까?
---「노학자의 마지막 꿈, ‘담비의 길’을 찾아서」중에서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역사와 관련한 선정적인 헤드라인에 무감해졌다. 이를테면 언론에서는 우리가 과거에 얼마나 광활한 영토를 가졌는지에 초점을 맞춘 기사가 종종 보도된다. 이처럼 ‘최고, 최대, 최초’에 집착하는 현상을 두고 고고학계에서는 속칭 ‘3최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히 발해사 같은 고대사의 경우에 더욱 그러하다. 가령 발해의 최대 국경이 발견됐다는 식의 기사가 나오지만, 정작 고고학 자료에 근거했을 때 발해의 국경에 대한 통일된 견해가 나올 상황은 전혀 아니다. (…) 우리는 흔히 거대한 영토를 가진 국가가 거대하고 강한 국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 경계가 불분명한 북방의 산악 지대에 무리하게 국경선을 긋다 보면 이 지역에 위치했던 발해와 고구려는 물론이고 우리의 역사상마저 왜곡하기 마련이다.
---「발해의 영토는 어디까지일까?」중에서

발해에서 사할린을 거쳐 알래스카까지 이어지는 교류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계속 됐다. 아이누인들은 카누를 타고 캄차카반도, 베링해를 쉽게 건너가서 교역했다. 베링해를 사이에 둔 아시아와 아메리카 대륙 사이의 교류가 이미 1만 6,000년 전에 시작됐으니, 오늘날 아메리카 원주민의 기원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들 간의 교류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며, 그 세력의 확산과 문화적 파급력은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발해의 후예들이 북극권에 가까운 지역으로까지 그 영향력을 펼쳤음은 여러 증거들을 통해 짐작 가능하다. 가령, 사할린과 캄차카반도로 발해식 토기가 퍼진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고대 문명 간의 유사성과 주민들의 교류 사실을 가지고 곧장 발해 또는 한국인이 이 지역으로 진출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고고학 유물의 의미를 해석할 때 늘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발해, 환태평양 교역의 중심에 서다」중에서

고대의 국경은 오늘날처럼 선이 아니라 면으로 이해해야 한다. 오늘날의 감각으로 과거를 보면, 연해주(러시아)·함경도(북한)·강원도(한국)는 서로 다른 나라의 영토로 깨끗이 나뉘어 보인다. 그러나 자레치노예에서 발굴된 신라의 칼과 강원도 춘천 중도에서 발견된 말갈인의 무덤은, 이 공간들이 서로 뒤얽힌 보이지 않는 접전의 장이었음을 웅변한다. 그리고 고구려의 그림자, 발해의 서민으로만 그려졌던 말갈은 실제로는 동북아 전쟁사의 최전선에서 활약한 주체였다. 그들의 흔적이 연해주에서 강원도 내륙 깊숙한 곳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익숙한 지금까지의 역사 지도에 새로운 색을 덧입힌다.
---「연해주에서 발견된 신라의 보검」중에서

중국의 장백산 문화론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논거는 사실 우리 안에 있다. 백두산 일대에서 제대로 된 나라를 세우고 경영한 것은 발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점에서 발해의 위상은 더욱 각별하다. 요나라를 세운 거란이나 금나라와 청나라를 세운 여진은 국가의 기틀을 잡자마자 극동을 떠나 중원으로 향했다. 중국이 장백산의 역사적 주인으로 내세우는 금나라조차 그 발흥의 토대는 상당수 이 지역에서 흥하고 망한 발해가 닦아놓은 성터와 제도였다. 문제는 우리가 그 논거를 스스로 좁히고 있다는 데 있다. 말갈과 여진을 ‘오랑캐’로 타자화하고 순수 한민족의 역사만을 고집하는 사이, 중국은 그 빈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한국과 중국의 동상이몽, 장백산 문화론의 실체」중에서

백두산 화산 폭발설은 발해라는 거대 제국이 지녔던 내부의 모순과 거란과의 치열했던 20년 전쟁의 과정을 가려버리는 부작용을 낳았다. 발해의 멸망은 갑작스러운 천재지변의 결과가 아니었다. 그것은 거란의 치밀한 포위 전략과 요동 차단 그리고 발해 지배층의 분열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오히려 946년에 일어난 백두산 화산 대폭발은 발해 멸망 후 그 땅을 차지하려던 거란(요나라)에게 큰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발해 유민들이 세운 정안국이 혼란을 틈타 성장한 이유나, 거란이 발해의 옛 수도인 상경용천부를 급히 버리고 동경요양부로 거점을 옮긴 배경에는 백두산 화산 폭발이 야기한 생태계 파괴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즉, 백두산 폭발은 발해가 ‘멸망한 원인’이 아니라, 발해 멸망 이후 만주 지역의 정세 변화와 유민들의 이동을 가속화한 ‘사후적 변수’로 이해해야 한다.
---「발해는 정말 화산 폭발로 멸망했을까?」중에서

발해 문자는 1960년대 소련의 SF 소설에도 중요한 소재로 등장했다. 당시 극동 지역까지 진출한 소련 사람들에게 연해주의 끝없는 타이가(북반구 냉대 기후 지역에 나타나는 침엽수립) 숲은 미지의 우주만큼이나 신비로운 공간이었다. 그 세상의 끝에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 발해는 단순한 역사 속 국가가 아니었다. 러시아인들에게 발해는 J. R. R.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과 《호빗》의 배경이 되는 ‘중간계’나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사라진 섬 ‘아틀란티스’처럼 이 세상 끝에 존재하는, 고대의 마법과 기술이 잠든 판타지의 세계였다.
---「동아시아 최대 미스터리, 발해 문자를 찾아서」중에서

실제로 말갈이나 여진 등의 북방사는 한국사도 중국사도 아닌 회색 지대에 놓이면서 국내에 제대로 된 전공자도 없는 실정이다. 그 사이 중국이 말갈과 여진의 역사를 일방적으로 자기들 역사로 편입한 상황이다. 한국과 중국 역사학계가 정치적 입장에 따라 역사를 해석함으로써 우리 역사의 일부였던 말갈은 한국사의 이방인으로 전락했다. 그렇지만 고고학 자료들이 전하는 말갈의 실체는 이와 다르다. 최근 러시아와 연변 일대에서 발굴된 고고학 유물들은 말갈이 백두대간을 따라 연해주와 강원도 일대에서 살던 우리 역사 일부였음을 밝혀주고 있다. 말갈인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던 두만강 유역은 한국과 북방사를 이어주는 역동적인 역사의 현장이었다.
---「말갈의 역사를 한국사의 일부로 봐야 하는 이유」중에서

춘천 중도 유적의 발굴 성과는 학계에 보고되자마자 ‘보존’과 ‘개발’이라는 해묵은 논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결과는 참담했다. 우리는 그 찬란한 고대 도시를 보존하고 기억하는 대신, 그 위에 흙을 덮고 콘크리트를 붓는 길을 택했다. 이유는 단 하나, 세계적인 테마파크인 레고랜드를 짓기 위해서였다. 개발 논리에 밀려 이곳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의 가장 거대한 마을 흔적 그리고 1,500년 전 고구려인과 말갈인이 함께 살았던 흔적들이 영원히 매몰됐다. (…) 이것은 단순한 문화재 파괴로만 볼 일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역사의 허리를 끊어버린 ‘역사적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와 발해 그리고 말갈의 역사까지 자신들의 것이라 우기는 중이다. 말갈인들이 고구려의 일부로서 삼국 시대 사람들과 함께 활동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한반도 땅에서 나왔지만, 우리는 그 증거를 우리 손으로 없애버렸다.
---「강원도 놀이동산에서 발견된 고구려와 말갈의 공존 흔적」중에서

거란이 거둔 거대한 성취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곳에서 발해라는 뿌리를 만나게 된다. 거란이 자랑했던 이중 지배 체제와 5경 제도 그리고 화려한 문물은 발해 유민들이 남긴 피와 땀 그리고 지혜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거란은 발해를 멸망시킨 정복자였으나, 동시에 발해의 문명을 유라시아 대륙 전체로 확산시킨 매개자였다. 요컨대 발해가 만주 땅에 심어놓은 제국의 씨앗은 거란을 통해 싹을 틔웠고, 칭기즈칸의 몽골제국에 이르러 거대한 숲을 이룬 셈이다.
---「오랑캐의 누명을 쓴 발해의 계승자, 거란」중에서

제국주의가 전 세계를 휩쓴 19세기, 러시아가 다른 서구 열강들과 달랐던 유일한 부분은 비추린과 같은 선구적인 동방학자의 연구가 있었다는 점이다. 다른 서구 열강들은 식민지의 자원을 수탈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면, 러시아의 탐험가들은 식민지로 삼고자 했던 지역의 역사와 지리적 상황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이는 결국 19세기 러시아가 유라시아의 패권을 차지하게 된 배경이다. (…) 그의 저작 덕분에 러시아에서 동방 지역은 환상 속 저 멀리 존재하는 땅이 아니라 시베리아를 사이에 두고 그들과 이웃한 곳으로 여겨지게 됐다. 그들과 나란히 존재하며 자신들만의 삶을 이어간 ‘동이족’의 역사가 중국과 다른 독립된 역사라는 비추린의 통찰력은 최근 중국의 팽창주의적 중화사관에 맞서는 우리에게 큰 힘이 되어준다.
---「한국의 고대사를 지켜낸 러시아 신부」중에서

많은 사람이 ‘시베리아’라고 하면 유형지나 추운 동토 지대를 쉽게 연상한다. 하지만 시베리아는 고대 유라시아 초원이 이어지는 지역이자 20세기 이후에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로 동서양을 잇는 교두보였다. 이러한 지정학적 조건 때문에 나를 비롯해 많은 고고학자가 1990년대부터 시베리아와 극동 지역의 고고학에 주목했다. 북방 유라시아와 한반도의 역사를 잇기 위해서는 시베리아와 극동의 고대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30여 년간 한국 고고학계는 시베리아, 몽골, 연해주 등에서 다양한 조사와 연구를 하면서 그 저변을 크게 확장시켰다.
---「한·러 관계 속에서 발해를 다시 생각하다」중에서

출판사 리뷰

“발해는 유라시아 문명의 잃어버린 고리이자 극동 문명의 빛이다.”
한국사의 프레임을 뛰어넘어 유라시아 역사의 중요한 축으로서
‘발해’의 힘과 의미를 재조명하다

오늘날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열강들은 북극해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극북 지역을 사람이 살 수 없는 불모지로 여겼던 기존 관점에서 벗어나 효율적인 해상 물류의 요충지이자 막대한 자원이 매장된 에너지 공급원으로서 새롭게 바라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고고학자의 눈으로 보면 이 새로운 항로는 사실 그리 새로운 길이 아니다. 전 세계를 비롯해 우리나라 역시 개척하고자 하는 그 길은 이미 1,200년 전 발해 사람들이 나아가고 밟았던 경로다.

발해가 자리를 잡았던 오늘날의 쑹화강(송화강) 유역과 연해주 일대는 발해가 성립되기 이전까지는 제대로 된 정주 국가가 들어선 적이 한 번도 없는 매우 춥고 황량한 지역이었다. 발해는 이와 같은 지리적 핸디캡을 북극권과의 적극적인 교류와 유라시아 초원과의 교역을 통해 탁월하게 극복해냈다. 담비 모피, 인삼, 다시마와 같은 발해의 특산물들은 당대에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고, 이를 통해 발해는 주변 국가들과 교역망을 형성하며 나라의 경제적 기틀을 다질 수 있었다.

발해인들이 구축했던 교역로는 중국과 일본 등 온대 지역을 넘어서 중앙아시아의 초원 지대를 따라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으로 이어졌다. 발해 이전의 국가들인 읍루나 말갈이 있던 시기에는 이와 같은 거대한 교역 네트워크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발해가 ‘극동 문명의 빛’이자 ‘유라시아 네트워크의 허브’라는 말은 결코 지나친 수식이 아니다. 실제로 발해는 당대에 극동 지역에서 광대한 영역을 지배했던 제국이었다. 따라서 발해를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 정도로만 여기면 독자적인 운영 체제와 문화를 완비했던 자주 국가로서 발해의 진면목을 볼 수 없다. 발해는 백두대간으로 이어진 연해주, 아무르강(흑룡강)으로 연결되는 러시아와 중국의 국경 지대에 이르기까지 동북아시아의 드넓은 땅에 새로운 문명국가를 건설하고 주변국들과 활발히 교역하면서 자신들의 문화를 전달했던 매우 역동적인 나라였다.

이 책에서 강인욱 교수는 고고학 유물 발굴과 이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통해 우리가 지금껏 오해하거나 무관심했던 발해와 북방의 역사를 제대로 들여다본다. 극동의 변방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냈던 발해의 진정한 의미를 유라시아 역사라는 문명사의 맥락에서 짚어가며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새로 쓰는 것이야말로 발해를 오늘날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길이다. 이와 같은 태도와 시선으로 ‘발해 다시 보기’를 할 때라야 비로소 중국의 역사공정에 맞서는 객관적이고 강력한 무기를 갖출 수 있다고 강인욱 교수는 역설한다.

“한 조각의 토기와 녹슨 검,
고요한 무덤과 성터에 깃든 진짜 발해의 역사를 만나다.”
말없는 유물들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떠난 장대한 여정,
‘고고학은 어떻게 역사의 빈 페이지를 채우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성실한 기록

고고학의 커다란 매력 중 하나는 내일 무엇이 나올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어느 날 발굴된 한 조각의 유물은 기존의 문헌 기록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옛사람들의 생활상과 교류의 양상을 밝혀내는 강력한 실마리로 작용하곤 한다. 이 책은 고고학이라는 학문이 역사의 빈 공간을 어떻게 채우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2014년 러시아 연해주의 깊은 산중에 위치한 대표적인 발해 유적인 콕샤로프카 성터에서 위구르 제국 계통의 토기가 발굴되었다. 한반도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몽골 초원 제국의 토기가 연해주 산속 발해 성터의 제단에서 발견됐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심지어 콕샤로프카 유적은 지금까지 발굴된 발해의 성터 중 최북단에 위치한 시호테알린산맥 기슭에 자리했다. 즉 이곳에서 발굴된 위구르 계통의 토기는 발해인들이 험준한 산맥을 넘어 유라시아 대륙의 북방 초원 민족들과 교류했음을 증명하는 유물이다. 위구르인(더욱 정확하게는 위구르 제국의 경제와 무역을 담당하던 소그드인)들은 발해의 특산품인 담비 모피와 인삼 등을 얻기 위해 발해에 거주하며 무역 거점을 운영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러시아의 원로 고고학자 샤프쿠노프 박사는 일찍이 ‘담비의 길’이라는 개념을 주장한 바 있다. 실크로드가 사막을 가로질러 비단이 오고간 교역로였다면, ‘담비의 길’은 실크로드보다 더 북쪽에 위치한 초원과 삼림 지역의 모피를 나르던 길이다. 그동안 이 교역로는 가설에 불과했는데 콕샤로프카에서 위구르 제국의 토기가 발굴됨에 따라 가설이 역사적 사실로 입증된 것이다. 이 길을 따라 발해의 명품은 몽골 초원을 넘어 중앙아시아, 더 멀게는 페르시아까지 전해졌으며 역으로 서역의 문화는 발해로 유입됐다.

제1부에서는 실크로드와 초원의 길을 통한 발해의 동서 교류에 주목한다. 발해 유적에서 발견되는 흑인 형상의 청동상, 유라시아 초원의 악기(바르간), 인삼 채취 도구, 낯선 종교적 상징(네스토리우스교의 십자가) 등과 같은 유물들은 발해가 유라시아 교역 네트워크의 중요한 축이었음을 드러낸다. 제2부에서는 시선을 대륙에서 바다로 옮겨 육로를 통한 교류뿐만 아니라 발해가 동해와 환태평양 북쪽 지역에서 이루었던 해상 교역의 가능성을 추적한다.

우리는 흔히 발해와 같은 고대사를 이해할 때, 선조들이 과거에 얼마나 광활한 땅을 가졌는지에 초점을 맞추곤 한다. 하지만 현대인의 관점에서 그어진 국가 간의 경계로 고대 국가를 이해하려다 보면 실제의 역사상을 왜곡할 우려가 크다. 이 지점에서 눈여겨볼 이 책의 커다란 미덕 중 하나는 유물 몇 개를 근거로 해당 유물이 발굴된 지역을 발해의 영토로 보는 식의 해석을 엄중히 경계하고, 영토와 영향권, 교역권과 문화권을 세심하게 구분하면서 발해가 어떻게 당대의 외부 세계와 맞닿아 있었는지 살피는 시선이다. 즉, 한반도와 유라시아를 잇는 문명의 결절점으로서 발해가 어떠한 방식으로 독자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했는지, 발해가 남긴 물질적·정신적 유산들이 발해 멸망 이후 거란이나 여진 등 만주에서 발흥한 신흥 세력을 통해 어떻게 중원까지 나아가 동아시아 질서를 재편하는 동력으로 기능했는지를 밝혀내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발해는 1,200년 전 사라진 나라가 아니라
그 기상이 여전히 살아 숨 쉬는 현재진행형의 이야기다.”
‘장백산 문화론’, ‘만리장성 공정’ 등 중국의 역사공정에 대응하기 위한
더 넓은 역사 인식의 방법, ‘발해 다시 읽기’

발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개를 더 멀리 들어 말갈, 여진, 거란 등 북방의 사람들과 그들의 역사도 더불어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제3부에서는 오랫동안 ‘오랑캐’라는 이름으로 타자화되고 우리 역사의 주변부로 밀려났던 존재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들은 한반도와 만주, 연해주라는 역사적 공간 속에서 함께 호흡했던 이웃이자, 경쟁자이기도 했으며, 계승자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던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존재들이다. 가령, 거란은 발해를 멸망시킨 정복자였던 동시에 발해가 남긴 제도와 문물을 가장 충실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해 유라시아 대륙 전체로 확산시킨 매개자였다. 5경 체제, 상경성의 도시 구획, 철 생산 기술 등 거란이 유라시아 대륙을 아우르며 요나라를 건설할 수 있었던 밑천의 상당 부분은 발해가 남긴 유산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제4부에서는 근대 이후에 발해가 일군의 학자들에 의해 어떻게 다시 발견되고 기억되었는지를 다룬다. 이 챕터의 주인공은 발해 그 자체가 아니라 발해의 땅과 그 땅에 남은 발해의 자취를 찾아내어 기록하고 지키려 했던 사람들이다. 발해가 자리했던 연해주와 만주 지역은 20세기 초 격변하는 동북아시아의 정세 속에서 러시아, 일본, 중국이 각축을 벌였던 지역이다. 특히 이 책에서 주목하는 사람들은 황량한 북방의 벌판에 버려져 있던 우리의 역사 유적을 조사하고 발굴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한 러시아인들이다. 발해를 ‘만주의 폼페이’라고 칭하며 가장 처음으로 발해 상경성 유적을 조사했던 포노소프, 대표적인 발해 유적 중 하나인 크라스키노 성터를 발견해낸 카파로프 신부, 동방학의 대가이자 2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러시아의 발해 연구 계보를 열어젖힌 니키타 얀키프 비추린 등이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오늘날에도 러시아는 북방 유라시아와 한반도의 역사를 잇기 위한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학문적 파트너다. 극동 지역, 즉 한반도 북쪽의 러시아 지역은 고대 이래로 한국사의 배경이었다. 현대 주권적 개념으로는 러시아의 영토이지만 지금과 같은 국경이 없던 고대에는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이 두만강 바로 건너편 땅으로도 자유로이 건너가 살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0년 이후로 한국 고고학계는 시베리아, 몽골, 연해주 등지에서 러시아와 공동 작업을 통해 읍루와 옥저에서 시작해 발해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적과 유물들이 다수 발굴됐다. 이처럼 북방의 한국사를 찾아가는 과정은 연해주 일대의 우리 역사를 복원한다는 의미를 넘어 중국의 역사공정에 맞서는 강력한 힘으로도 기능해왔다. 중국의 바람과 달리 러시아는 일관되게 한국과 만주의 독자적인 역사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지난 30여 년간 이루어진 한국과 러시아의 공동 연구가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러시아의 패권주의적 행보로 그 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이다. 사료로 전해지는 내용이 워낙 소략하기에 북방의 역사와 한국사 사이의 연결 고리를 잇기 위해서는 그 지역의 땅을 직접 파헤쳐 유적과 유물을 발굴하는 고고학적 연구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수많은 제재가 가해지며 학술적·문화적 교류도 경색된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 이후 우리는 발해의 역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중국은 동북공정의 뒤를 이어 ‘만리장성 공정’, ‘장백산 문화론’을 내세우며 역사공정의 그릇된 행각을 멈추지 않는 중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중국이 만주와 연해주 일대의 역사를 자국의 지방사로 편입하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여기에 대해 그저 ‘발해는 우리 역사다’라고 주장하는 것에 머문다면, 중국의 치밀하고 계획적인 역사공정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그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작업은 발해가 만든 세계가 어떠했는지를 이해하는 일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발해는 한국사 안에서 기억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한국사 안에만 가두기에는 너무나 넓은 세계를 만든 국가다. 이 책은 1,2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그러한 발해를 ‘지금, 여기’로 다시 불러내고자 하는 시도다. 사라진 역사를 되짚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역사, 그 현장으로 우리의 시선을 돌리게 하는 책이다.

30여 년간 만주와 연해주 일대를 오가며 발해의 땅이었던 곳에서 고대의 흔적을 찾아온 저자는 말없는 유물들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성실하고 신중하게 발걸음을 내딛으며 우리 고대사의 빈 퍼즐 조각을 맞춰왔다. 이 책은 그 우직한 학문적 여정이 집대성된 노작(勞作)이다.

또한, 발해와 그 주변국들에 대한 입체적이고 심도 있는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문명사 책임은 물론이고, 고고학자로서 저자가 현장에서 겪은 발견의 기쁨과 안타까움에 공명하면서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교양서이기도 하다. 내용의 수월한 이해를 돕기 위해 현장감이 생생한 유물과 유적 이미지들도 다수 실어 눈으로 보는 즐거움도 놓치지 않았다.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사락 별점0

혜택 및 유의사항

첫번째 별점을 남겨주세요.

첫번째 밑줄을 남겨주세요.

22,500원
총 1개 22,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