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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엮으며
인생은 모이고 흩어짐이 무상하기에 오늘은 모였지만 내일은 또한 각각 어디로 가게 될지 모릅니다 이규보가 전탄부에게 보낸 우정의 간찰 일 만나 불평스런 이 마음을 누가 알겠소 시 읊을수록 머리칼만 부스스하다오 이제현이 원나라 문인 조맹부에게 시로 보낸 간찰 남쪽을 바라보면서 나도 모르게 서글퍼집니다 정몽주가 이집에게 부친 간찰 저는 외곬이라서 아무리 궁해도 구걸을 못합니다 김시습이 양양 부사 유자한에게 벼슬살이의 권유를 거절한 간찰 천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으로 서로 사귀는 일은 옛사람도 숭상한 바입니다 이황이 조식에게 부친 간찰 억만 백성이 물 새는 배에 타고 있으므로 그것을 구할 책임이 실로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이이가 송익필에게 현실참여의 의지를 밝힌 간찰 봄 늦은 산중에서 멋진 흥취가 절로 곱절이리라고 생각됩니다 장현광이 권극립에게 보낸 간찰 바람 잘 드는 마루를 벌써 쓸어놓고 기다리오 허균이 권필에게 내방을 권한 간찰 우리는 이 조선의 신하입니다 최명길이 장유에게 국사를 함께 논하자고 권한 간찰 나라 위한 근심이 사사로운 정보다 심하구려 송준길이 사돈들에게 시국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 간찰 우리 백성들을 흐르는 강물에다 몰아넣으려고 하는 자가 있다고 하니, 도대체 무슨 마음이란 말인가 윤휴가 이동규에게 시국을 우려하는 마음을 토로한 간찰 산과 바다의 기이한 경관을 크게 얻어 흉금 사이에 거두고 쌓는 바가 응당 풍부하리라 박세당이 귀근 가는 제자 이정신을 축수하는 간찰 저의 마음으로는 우리의 공부가 장차 어떠하여야 할까 걱정할 따름입니다 정제두가 민이승에게 준 간찰 사람은 갔지만 편지를 받으니 이별의 마음이 조금 위로가 됩니다 이익이 홍중인에게 회포를 토로한 간찰 손님들이 방에 가득하였지만 재주를 시험할 수 없었다니 한탄스럽다 이광사가 지인이자 종형제에게 보낸 간찰 금년 봄에는 흉작의 봄 기근과 전염병으로 백성들이 죽어서 서로 베고 넘어져 있는 형편입니다 채제공이 이천 부사로 나가서 중앙의 고관에게 부친 간찰 마음을 기울이어 교분을 맺어 책선하여 주고 보인하여 주실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홍대용이 청나라 학자 육비에게 준 간찰 배꽃에 흐르는 비를 맞으며 그림자하고 즐긴다오 이덕무가 백동수에게 안분지족의 뜻을 전한 간찰 그의 마음은 개자만 한데 먹물을 잘 먹으며, 토끼를 보면 그 털을 핥고 언제나 자신이 자기 이름을 부른다 박지원이 이덕무에게 준 희작의 간찰 우리들은 의견이 왕왕 거의 같아서, 비록 천리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한두 가지라도 가만히 부합하는 것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홍양호가 신경준에게 자문을 구한 간찰 흉년에 백성들이 근심하여 소란을 일으킨다는 소식은 아주 알리고 싶지도 않을 정도입니다 신대우가 공주 판관에게 부친 세밑의 안부 간찰 오늘은 시를 지어 진택의 영혼에 제사지내고 싶습니다 정약용이 윤지범에게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는 뜻을 토로한 간찰 오랫동안 길 잃고 헤매는 사람의 처지를 서글퍼한다오 이옥이 최구서에게 불우한 처지를 한탄하며 변려체로 쓴 간찰 나는 오직 이 밤에 편히 잠들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학규가 어느 지인에게 유배지에서의 고통을 밝힌 간찰 그대가 서신을 보내는 것도 마음이요 내가 답장을 하지 않는 것도 역시 마음이니 마음에 어찌 둘이 있겠습니까 김정희가 초의 선사에게 근황을 알린 간찰 희디흰 자는 더럽히고 높디높은 자는 이지러뜨리는 것이 말세 풍속의 험난함이니, 또한 이것이 일반적인 사물의 이치입니다 이건창이 영흥 부사 이남규에게 보낸 간찰 세계가 날로 아지랑이 속에 빠진 듯 혼미해가니, 때때로 아주 잠들어버려 잠꼬대조차 하지 않았으면 할 때가 있습니다 황현이 이건방에게 민족의 위기를 우려하여 보낸 간찰 덧붙이는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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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찰, 영혼과 영혼이 관계를 맺는 교제의 미학
오늘날 우리들은 편리한 이메일을 쓴다. 그보다 더 빠른 메신저와 문자메시지도 있다. 물론 그 나름의 고유한 맛이 있겠지만, 우리 선조들이 교류의 방식으로 택한 간찰과는 사뭇 격이 다르다. 가족과 친우들 간에 주고받던 편지, 즉 간찰이 주는 그윽한 멋과 맛을 요즘 세상에서 찾아보기란 힘들며, 그 사람 고유의 필적과 정성을 헤아릴 길이 없다. 전통시대의 편지를 간찰이라 하였는데, 간찰(簡札)은 본래 죽간과 목찰에 작성한 글이란 뜻이다. 통틀어 종이에 적거나 비단에 적은 편지를 모두 가리킨다. 중국 송나라의 철학자 정호(程顥)는 “서찰은 선비의 일에 가장 가깝다”(至於書札, 於儒者事, 最近)는 말을 하였다. 조선조 선비들이 완물상지(玩物喪志)라 하여 서예나 그림 등에 빠지는 것을 기피하면서도 간찰만은 예외로 두었던 이유는, 자신의 글씨와 문장력을 펼칠 수 있는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일기와 함께 간찰은 가장 사적인 영역이면서 그만큼 다채로운 내용을 담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상이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일기와는 다르다. 따라서 간찰은 교제의 미학을 담고 있다. 한 영혼이 다른 영혼과 관계를 맺기 위하여 모색하는 긴장이 느껴진다. 간찰, 벗에게 보내는 선비의 우정 이 책에서는 다양한 내용의 간찰 가운데 친우에게 부친 간찰만을 골랐다. 친우라지만 같은 동년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망년우(忘年友)라 하여 나이와 사상의 차이를 떠나 교류했던 선비들, 곧 고려시대의 이규보·이제현·정몽주 등 3명과 조선시대의 김시습·이황·이이·장현광·허균·최명길·송준길·윤휴·박세당·정제두·이익·이광사·채제공·홍대용·이덕무·박지원·홍양호·신대우·정약용·이옥·이학규·김정희·이건창·황현 등 24명의 간찰을 대상으로 삼았다. 그들은 모두 우리 지성사에서 학문?정치?문학?예술 등의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이다. (최명길이 장유에게 보낸 간찰은 이 책에서 새로 발굴하여 소개한 것이다.) 이 간찰들의 공통점은 순수한 우정을 담아내었다는 점이다. 작성자들은 정치적 불안, 국난의 위기의식, 학문적 고독의 감정을 치유하기 위해 친구의 도움이나 이해를 청하기도 하였고, 정책의 입안과 구국의지의 실현을 위해 친구의 조언을 기대하기도 하였다. 또한 예술적 취향, 구도에 대한 열정, 소외의 현실과 관련하여 소회를 털어놓은 예도 있다. 이 간찰들에 눈을 주고 그 내용을 읽다보면, 교제의 예술로서 간찰이 지닌 매력을 느낄 수가 있고, 선인들이 교우를 통해 스스로의 인격과 책무의식, 학문과 예술을 향상시켜 나간 궤적을 살필 수가 있다. 간찰은 교제의 예술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에, 상대에 대한 배려가 중요하다. 문자와 형식에 따라 표정과 태도를 나타낸다. 예(禮)를 중시한 사회답게 간찰에는 예의가 잘 갖춰져 있다. 상대를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모습은 어느 간찰이든지 하나같다. 날씨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 편지를 주고받는 대상에 따라 지켜야 할 예절이 정해져 있을 정도이다. 간찰을 전달하는 사람을 통해서 부채, 종이, 옷 등을 보낸다는 추신은 눈길을 끈다. 빈손으로만 전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간찰에 담긴 일상의 여유와 향기로운 서정, 선비들의 정신세계 “요사이 집에서 술을 빚었는데, 아주 향기롭고 텁텁하여 마실 만합니다. 그대들과 마시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지금 살구꽃이 반쯤 피었고 봄기운이 확 풀려 사람들을 도취시키고 다감하게 만듭니다. 이런 좋은 계절에 술 마시지 않고 어쩌겠습니까? 바라건대 이군이나 박환고(朴還古)와 함께 오시어 마시세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 집 술이 며칠 되지 않아 바닥 날 것이니, 늦게 오시면 물만 마시는 곤욕을 보게 될 것입니다.” - 이규보가 전탄부에게 보낸 우정의 간찰 중에서 “저는 외곬이라서 아무리 궁해도 구걸을 못합니다. 남이 주는 것도 받지 않고, 받더라도 어깨를 움츠리고 무릎으로 설설 기지를 않습니다. 사례하더라도 감격해서 달려가는 법이 없고, 빙씨(氷氏, 순결한 마음)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제 자신 이것이 나쁜 습관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습관이 본성으로 굳어져서 바꿀 수가 없습니다. 다만 제 마음을 알아주는 이를 만나, 한 번 머리를 끄덕이고 한 번 말을 주고받은 뒤로 한 번 적은 돈이라도 주시면, 많은 선물을 받는 것보다 더 기뻐합니다. - 김시습이 양양 부사 유자한에게 벼슬살이의 권유를 거절한 간찰 중에서 “지금은 억만 백성이 물 새는 배에 타고 있으므로 그것을 구할 책임이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차마 벼슬을 버리고 떠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말씀하신 일은 만약 풍천(豊川)을 만나시거든 마땅히 곡진하게 부탁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 이이가 송익필에게 현실참여의 의지를 밝힌 간찰 중에서 “요컨대 고요하고 그윽한 가운데서 이치를 터득하고, 자신의 몸가짐을 바르게 지니고 가정에 올바로 거처하여 역시 나름대로 적절한 규모와 일정한 정도로 수립하는 바가 있다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사업입니다. 언젠가 이 못한 늙은이가 나아가서 몸을 의탁한다면, 자양을 받고 가르침을 입게 될지 어찌 이루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 장현광이 권극립에게 보낸 간찰 중에서 “다만 우리는 이 조선의 신하이므로, 나의 군부(君父)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중국 조정만 위하는 것은 월진(越津, 정도를 지나침)의 혐의가 없지 아니합니다. 명나라 황제가 재조(再造, 중흥)시켜 준 은덕은 우리나라 군신 가운데 어느 누가 감격하여 추대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우리나라가 생사의 위기를 당해서 어찌 옛날에 중흥시켜 준 것만 생각하고 스스로 망하는 길로 나가야 합니까?” - 최명길이 장유에게 국사를 함께 논하자고 권한 간찰 중에서 “더러는 잠시 한가한 시간을 내어 대숲에서 나는 바람 소리를 듣고 배꽃에 흐르는 비를 맞으며 그림자하고 즐긴다오. 그 누가 이런 흥을 알겠습니까!” - 이덕무가 백동수에게 안분지족의 뜻을 전한 간찰 중에서 “근래에 편지를 보내주셨는데도 답장을 보내지 않은 것은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그대가 서신을 보내는 것도 마음이요, 내가 답장을 하지 않은 것도 역시 마음이니, 마음에 어찌 둘이 있겠습니까. 진공(眞空)과 묘유(妙有)의 뜻이 이에서 환히 드러날 것입니다.” - 김정희가 초의 선사에게 근황을 알린 간찰 중에서 “세계가 날로 아지랑이 속에 빠진 듯 혼미해가니, 때때로 아주 잠들어버려 잠꼬대조차 하지 않았으면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병을 앓든 병을 안 앓든, 누가 알겠습니까? 전하는 말에, 북방이 크게 소란하고 또 청성(淸城)의 변고가 있다고 하는데, 신문은 검열로 얽어매어져 그 사실들을 게재하지 못한다고 합디다. 온 세상이 귀먹고 눈멀어서 마치 혼돈의 개벽 상태에 있는 듯합니다. 가슴을 치고 미친 듯 울부짖을 따름입니다.” - 황현이 이건방에게 민족의 위기를 우려하여 보낸 간찰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