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9
1 17 2 61 3 75 4 87 5 97 6 133 7 167 8 177 9 183 10 189 발문 193 추천의 글 ─ 선우은실(문학평론가) 200 추천의 글 ─ 함윤이(소설가) 202 |
崔栽源
최재원의 다른 상품
|
피곤한 목소리로 곽 형사가 들려준 사건의 개요는 이랬다. 02시 44분에 신고를 받고 당직이던 자신과 조 형사가 출동, 119에도 협조 요청을 했다. 현장에 도착하니 한 사람이 대자로 쓰러져 있고 칼을 든 용의자가 그 옆에 서 있었다. 쓰러진 사람을 보자마자 마이클 잭슨이라는 걸 바로 알아봤다. 자기가 용의자에게 총을 겨눈 사이 조 형사와 구급대원이 마이클 잭슨에게 접근했는데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고 했다. 용의자는 저항의 기미가 전혀 없이 피범벅이 된 왼쪽 가슴을 부여잡고 차렷 자세로 서 있었다.
--- p.14~15 눈을 뜨고 있었는가 하면 꿈속을 헤매고, 잠이 들었는가 하면 언제부터인지 이미 눈을 뜨고 있는 선잠. 그조차도 전날보다 줄었다. 그렇지만 어딘가 모르게 산뜻했다. 소풍날 새벽처럼 잠을 설쳤어도 피곤하지 않았다. 깊은 피로를 보따리째 싸서 내일로, 아니 영원히 치워 버린 듯이 상쾌했다. 이런 아침이 얼마 만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 p.20 쥐 죽은 듯 조용한 시간이 얼마나 간절할까, 그런데 ‘쥐 죽은 듯’이란 표현도 옛말이다, 쥐가 죽어야 말이지, 지금은 쥐 하나가 죽으면 쥐 둘이 솟아나니 쥐 죽은 듯 조용한 건 이제 말이 안 되지, 강남대로가 티끌 없는 하늘을 보기는 불가능해, 희망이 없겠군, 저 작은 새끼 쥐들은 어떻게 저렇게 겁이 없을까, 밟혀 죽기 십상이다, 뒷걸음질로도 밟을 수 있을 것 같다, 종의 폭발이란 하나가 죽을 때 둘이 탄생해야 가능한 것, 멍청한 개체가 죽는 속도보다 번식하는 속도가 빠른 건 굉장히 신비한 일이다, 이런 생각들이 세포 찌꺼기처럼 머릿속에 떠도는 것을 어렴풋하게 느끼며 강철은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다. --- p.84 강철이 보기에 새벽에 산책을 하며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두 벌거벗고 있었다. 아직 사회적 옷을 입지 않은, 그런 태도를 갖추지 않아도 되는 시간. 어둠을 빌려 알몸 위로 자기 자신을 대강 휘감은 사람들을 볼 수 있기에 강철이 이 시간의 산책을 즐기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망부석 같은 사람은 강철의 시선을 튕겨 내기라도 하려는 듯 검은 섬유로 온몸을 싸매고 있었다. 길고 숱이 많은 머리카락을 양쪽으로 늘어뜨려 얼굴도 잘 보이지 않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더웠다. 겨드랑이부터 젖기 시작해 가슴과 등이 모두 축축해진 민소매 티셔츠가 살에 달라붙는 감촉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강철은 열대야에 걸맞지 않은 그의 옷차림에 감탄과 신음을 동시에 내뱉었다. --- p.52~53 그는 오늘도, 어제도, 엊그제도, 바닥에 꽂힌 듯 수직으로 서 있었다. 몸에 자기라도 지닌 것처럼 지구의 축과 일치한다. 시선은 땅과 완전한 평행으로, 그의 위아래를 관통하는 선과 그의 시선은 십자가처럼 정확한 직각을 이룬다. (……) 그뿐만이 아니다. 그 사람은 인간이 고안해 낸 직각의 세계, 방위와 정사각형의 규격에 최대한 가깝도록 구획한 대로에서도 정확히 북쪽을 향해 서 있다. (……) 직각은 결코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구체적인 목표를 지닌 힘과 결단의 결과다. 최대의 효율을 발휘할 최소한의 구조다. 그의 목적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직각의 격자들로 이루어진 강남의 대로. 그는 격자의 한 점에 홀로, 늘, 서 있다. 딱 그만큼의 땅을 점령한 깃발처럼. 그는 무엇을 원하는가? --- p.130~131 솔직히 말하면 화가 난다. 문학에 대한, 인간에 대한,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그의 염오는 전염성이 있다. 그의 죽음이 그의 문학의 시장 가치를 더 높이리라는 생각이 내게 들었다고 여기서 고백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럽고도 뻔해서 고백 축에도 끼지 못한다. 오히려 이런 고백조차 당신에게 일종의 문학적 만족감을 줄지도 모른다. (……) 이런 모든 말들이 결국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진실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안타깝게도,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다만, 이제 그런 것이 나에게 더는 중요하지 않을 뿐이다. 보이는가. 그가 남기고 간 염오의 전염성이. 감염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질서의 돌연한 전도가. --- p.199 |
|
■ 하나의 소설, 세 편의 이야기, 두 개의 틈
『강남 스토리』는 하나의 이야기를 두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가 앞뒤로 감싼 듯한 독특한 구성의 소설이다. 소설을 여는 ‘서’는 한 형사의 시점으로 어느 새벽 강남대로 한복판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 사건을 빠른 호흡으로 추적한다. 사건의 특징을 빠르고 간결하게 파악하고 그려 내는 형사의 매서운 눈길을 따라 크로키처럼 펼쳐졌던 소설은 마지막 ‘발문’에서 한 작가의 유고집을 엮어 펴내는 편집자의 목소리로 닫힌다. “혹자는 그를 비웃고 혹자는 그를 가엾이 여길 것이다.”라는 첫 문장처럼 ‘발문’은 사회적 논란이 된 한 작가의 죽음을 대중에게 이해시키고자 쓴 변명 같기도, 그 스스로 작가의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자 애쓴 솔직한 추도문 같기도 하다. 사건 현장과 추도문 사이, 그 중심에 ‘한강철’이 있다. 형사 일인칭 시점으로 그리는 ‘용의자’, 삼인칭으로 서술한 ‘한강철’, 편집자가 묘사하는 ‘작가’는 하나의 상으로 겹칠 듯하다가도 금세 각자의 이야기가 끌어당기는 중력을 따라 어긋난다. 그 어긋남 속에서 소설의 ‘사건’과 ‘인물’은 모두 거대한 틈처럼 남겨지고, 우리는 그 틈 주위에서 한참을 맴돌게 된다. 마치 그 틈 사이에서 이 모든 어긋남을 종합할 단 하나의 ‘본질’이 금방 툭 튀어나오기라도 할 것처럼. ■ 산책(을 배반)하는 소설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부터 한국 소설가 박태원과 이상에 이르기까지 ‘산책’은 근대문학의 태동을 연 주요 모티브다. 근대 도시 속에 선 미약한 인간 개인의 존재론적 위치, 그와 동시에 그 내면에서 끊임없이 역동하는 자유롭고 지적인 예술적 사유를 그리는 주요 테마였던 ‘산책’이 『강남 스토리』에서는 미치광이 나르시시스트의 끊임없는 분열적 독백으로 패러디된다. 이 소설 속 산책은 한국 사유재산의 상징 ‘강남’에서 펼쳐진다. 강남 도심 속 거미줄처럼 가느다랗게 연결된 공공장소인 ‘보도’를 따라 이루어지는 한강철의 산책에서 빠지지 않는 코스는 바로 양재역 사거리다. 그 코너를 반환점 삼아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 속력으로 달리는 것이 이 산책의 하이라이트다. 그 순간 그에게는 두 가지 힘이 동시에 작용한다. 원 중앙으로 몸이 당겨지는 ‘구심력’과 바깥으로 튕겨져 나가는 ‘원심력’. 한강철은 제 몸 안에서부터 느껴지는 양극단의 힘을 만끽하며 전능감을 누린다. 이 힘처럼 한강철의 내면은 모순되는 욕망으로 들끓는다. 온 세계를 자기의식 아래 두길 원하면서도 무의식의 자유를 간절히 원하고, 완벽한 질서와 동시에 해방을 갈구한다. 신과 같은 절대적 권능을 향한 욕망이다. ■ 통제광 나르시시스트 ‘한강철’ 한강철에게 가장 중요한 건 ‘시간’과 ‘산책’이다. 매일 눈뜨자마자 시간을 확인하고 산책을 나선다. 처음 새벽 4시 10분에 시작되었던 한강철의 산책은 잠이 줄면서 2시 47분, 2시 19분으로 나날이 당겨져 어느새 ‘오늘 새벽보다는 전날 밤’이라고 부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간에 눈을 뜬다. 숙면은 인간에게 허락된 무의식의 시간, 즉 자아의 범주를 벗어나 무의식에 스스로를 의탁하는 신비로운 시간이다. 한강철은 이 무의식의 시간을 원치 않는다. 무의식의 시간을 의식으로 틈입하고 침입해, 결국 자아의 힘으로 통제 가능한 ‘의식’으로 ‘사유화’하길 원한다. 이는 한강철이 산책하며 마주치는 타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무차별적으로 침범해 대상화하며 자기가 구축한 세계의 재료로 삼는다. 그 의식의 칼날은 필연적으로 한강철 자기 자신에게로 향한다. 타인을 대상화하는 방식으로 자기 자신마저 대상화하고, 세상 모든 것을 혐오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혐오한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신격화하는 동시에 가장 큰 오락거리로 삼는 사람. 그렇게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 문제적 인물 ‘한강철’의 초상이다. ■ ‘그’의 완벽한 차렷 자세 ‘그’는 한강철이 결코 대상화하지 못한 단 하나의 인물이다. 어떤 시간에 산책을 나서도 늘 같은 장소에서 마주친 ‘그’에게 한강철은 강한 호기심을 품는다. 처음 ‘로커’로 착각했던 그의 외모를 자세히 관찰해 보니 ‘부랑자’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자신의 오류를 깨달은 순간 충격과 놀라움, 호기심과 기쁨을 느낀 한강철은 그의 표면 너머 본질적인 특성을 파악하고자 주의를 기울인다. 그러나 관찰하면 관찰할수록 ‘그’를 설명할 말을 찾을 수 없다. 성별도, 직업도, 심지어 손에 든 물건의 출처조차 파악하거나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만 분명해질 뿐이다. 그런 그를 설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특징은 오직 ‘완벽한 직립’. 몸이 기울어져도 흐트러지지 않고 꼿꼿이 유지하는 ‘차렷 자세’뿐이다. 한강철은 그에게 완전히 압도된다. 그의 ‘완벽한 직립’은 무의식의 경지에 도달한 완벽한 의식적 자세이자 어떤 과장도 없이 인간의 위대함을 수행하는 무의식적 자세, 즉 한강철의 이상향이다. 그렇게 한강철은 그를 따라 무의식의 저편으로 과감히 나아간다. |
|
‘구경꾼 문학’이란 게 있다면, 그 이름 곁에 이 소설을 세워 두고 싶다. (……) 이 소설은 강남의 존재와 비존재 또 문자와 이미지 사이를 배회하는 한 구경꾼을 다시금 집요하게 구경한다. 쫓고 쫓기는 시선의 흐름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사태를 완전히 방관한 관찰이란 없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구경꾼의 진정한 운명은 자신이 바라보는 그 대상의 일부가 되어 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강남 스토리』는 바로 그 운명을 드문 치밀함으로, 지옥 구경에 나선 순례자처럼 골몰한 얼굴을 한 채 응시하고 뒤쫓는다. - 함윤이 (소설가)
|
|
언제나 ‘왜’를 물어 온 한강철에게 그 질문의 형식을 뒤바꾸게 하는 이질적인 존재가 나타난다. 그를 본 순간부터 한강철의 ‘왜’의 세계에 균열이 발생한다. 그는 이제 ‘왜’가 아니라 ‘무엇을’과 ‘어떻게’라는 질문을 던진다. 질문은 자기 세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규칙이다. 규칙이 바뀌면 세계는 붕괴되기 시작한다. 노숙인과 한강철의 죽음이 이 소설의 유일한 사건임에도 그 경위에 대해 별다른 설명 없이도 여전히 중요한 까닭이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어떤 것을 물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이 어떻게 바뀌었는가? 그것이 우리의 삶을 조금씩 무너뜨리기 시작할 것이다. -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