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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오늘은 어제가 미리 하는 사랑
보통_권영상 | 출가_강기원 | 칸타만토 시장_경종호 | 북경루가 문을 닫았다_윤제림 | 쓰지 않은 약_우미옥 | 반가운 누가_장철문 | 봄비가_유강희 | 어떤 기린 그림_안진영 | 꽃의 수리비_송찬호 | 우리 집 슈퍼 푸드_함기석 | 가위질 운전_김준현 | 산딸기 지도_현택훈 | 예약_송선미 2부 뽕나무가 자란다 뽕나무가 자란다_안도현 | 슬픔에 이름 붙이기_김륭 | 느닷없이_이정록 | 첫눈 오는 날_문현식 | 엄마가 아닌 아주머니의 답장_임복순 | 하필_임미성 | 짜장면과 달_문신 | 천국에 오신 할머니_곽해룡 | 내가 만화를 그리는 이유_김개미 | 볼록 거울_성명진 | 달리고, 달려서_장동이 | 어린이가 기준이다_조영수 3부 이야기 모닥불 눈사람의 특기_문성해 | 어리둥절_김미혜 | 이야기 모닥불_임수현 | 더 더 더_이장근 | 바위의 사랑_이안 | 의자에 앉아 보고 싶은 노란 의자_김현서 | 발톱 장갑_권기덕 | 수수미꾸리_송진권 | 염소 똥_김성민 | 장미와 소년_정유경 | 밤송이_한상순 | 배롱나무사슴_주미경 4부 오늘도 할 일 오래오래_방주현 | 차가운 손을 잡을 땐_김물 | 바닷물이 소금이 되려면_김철순 | 작은 집 지붕이 들썩들썩_이화주 | 돼지들의 나라_송현섭 | 곱은달남길_김희정 | 너를 웃게 하려고_김경진 | 온실치즈가스 레시피_신민규 | 숟가락 자물쇠_박소이 | 귀가 있었다_박덕희 | 고로쇠 복습_최휘 | 오늘도 할 일_남호섭 해설 가장 작고 약한 이를 기준으로_이안 시인 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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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가 선 자리에서 서로 이어진 세상을 보여 주다
표제작 조영수의 「어린이가 기준이다」에서 홍도의 민박집 아저씨는 섬에서 길을 찾으려면 초등학교를 기억하라고 한다. 둘레길도, 깃대봉도, 몽돌해수욕장도 모두 “초등학교에서 길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화자는 이 말을 “전교생 세 명의 어린이가/ 홍도의 기준이라는 말로” 듣는다. 작고 약한 존재를 한 세계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시인은 이렇게 답한다. “기준만 잘 기억하면 길 잃을 일이 없다”. 경종호의 「칸타만토 시장」은 선진국이 버린 헌 옷이 산더미처럼 쌓이는 가나의 시장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김미혜의 「어리둥절」에서는 도살장으로 가던 트럭에서 쏟아진 돼지들이 처음으로 햇살을 밟는다. 박덕희의 「귀가 있었다」 속 할머니는 다리를 저는 반려견이 “일 년 못 채우고 죽겠다는 말”을 듣지 못하도록 얼른 귀를 막아 준다. 어른의 세계에서는 나의 일과 남의 일을 나누고,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 여기고, 크고 중요한 것과 작고 사소한 것을 평가하기 일쑤다. 하지만 어린이가 기준인 세계에서는 온 지구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도, 먹히는 존재로 길러지는 생명의 소중함도, 작은 강아지가 받을 마음의 상처까지 무엇 하나 허투루 여기지 않는다. 더욱이 어린이가 하는 말과 행동임에랴! 김준현의 「가위질 운전」은 종이 오리기를 하는 화자의 입을 통해, 선을 따라 신중히 가위질을 하는 어린 손이 되어 보도록 한다. 색다르거나 거창한 말로 표현할 수 없어도, 가위질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한 사람을 온전하게 완성하는 게 제일 힘든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말을 따라가면 뜻밖의 곳에 닿는다 이 기린 그림은 웬 기린 그림? 웬 기린 그림이긴 내가 그린 기린 그림 저 기린 그림은 무슨 기린 그림? 무슨 기린 그림이긴 내가 그린 기린 그림 두 기린 그림 모두 내가 그린 기린 그림 벽에 붙어 있는 저 모든 기린 그림들도 한 올 한 올 모두 다 내가 그린 기린 그림 - 안진영, 「어떤 기린 그림-발음 연습」 부분 안진영의 「어떤 기린 그림」은 친숙한 잰말놀이를 활용해 소리 내어 읽어 보고 싶어지는 작품이다. 그 말놀이를 따라하다 보면 그림을 그리는 아이가 “내 고향 아프리카”를 “기리”고(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어린이 독자와 시적 화자인 이주 배경 어린이가 함께 놀다 서로의 마음까지 읽게 되는 동시다. 동시 세계에서 말과 글자는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며, 독자를 뜻밖의 곳으로 데려가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함기석의 「우리 집 슈퍼 푸드」에서는 “엄마는 김(Kim)”, “아빠는 햄(Ham)”이 되어 버린다. 신민규의 「온실치즈가스 레시피」에서는 “이산화탄소(CO₂)를 분해해서/ 소(COw)”가 나온다. 김철순의 「바닷물이 소금이 되려면」에서 “소금 한 자루는/ 조금 한 자루”가 된다. 웃으며 따라 읽었을 뿐인데, 어느새 처음 보는 풍경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 참여한 동시인들은 지금의 한국 동시단을 든든히 지키고 있는 중견 시인들이자, 한국 동시가 오늘처럼 풍성하고 다채로운 토양을 만드는 데에 이바지한 이들이기도 하다. 부드러운 시어에 깊은 통찰이, 재치 있는 시어 안에 날카로운 시선이 담겨 책장을 넘기며 거듭 읽어 내리게 된다. 여기에 2026 대한민국 그림책상 신인상을 받은 여서윤 화가의 삽화는 독자가 그 세계로 자연스레 빠져들게 하는 다정한 안내자 역할을 한다. 연필로 그린 강아지 한 마리를 따라가 보면 서로 다른 시 세계에서 어린이를 비롯한 온갖 생명들을 다 만나고 올 수 있다. 동시인 100인의 첫 마음자리, 권태응의 목소리를 이어받아 더 작고 낮은 존재들을 재조명하는 전국동시인대회 기념 동시집 어린이라서 미처 말로 표현하지 못한 마음이나 깨달음을 고이 받아서 세계 앞에 내놓는 일은 동시를 쓰는 우리 모두가 언제까지나 변치 않고 해 나갈 일이다. (…) 계속되는 변화 속에서도 동시를 쓰는 우리가 어린이 앞에서 언제나/어디서나 키 작은 땅감나무여야 한다는 기쁨 가득한 환대의 정신과 태도를 잃지 않기를. 어쩌면 우리를 멀리까지 잡아 두며 안심하게 하고 계속 써 나갈 수 있게 하는 말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이런 이야기 속에 들어 있는지 모른다. _이안(시인, 『동시마중』 편집위원) 시인 권태응, 신경림, 함민복 등의 고장이자 격월간 동시 전문지 『동시마중』이 발행되는 도시인 충북 충주시에서 올 11월 제3회 전국동시인대회가 열린다. 지난 2015년과 2018년 이후 8년 만에 전국동시인대회 기념 동시집도 출간된다. 매회 100여 명이 넘게 참가하는 전국동시인대회는 동시인들의 가장 귀한 잔치다. 이들에게 시가 아닌 동童-시를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작품해설에서 이안 시인은 “동시를 쓰는 시인들이 멀리까지 자기만의 시 세계를 밀고 나갔다가도 언제나/언제라도 돌아와 가다듬으며 읽을 첫 자리의 마음가짐”으로 권태응(1918~1951)의 「땅감나무」를 소개한다. 키가 너무 높으면, 까마귀 떼 날아와 따 먹을까 봐, 키 작은 땅감나무 되었답니다. 키가 너무 높으면, 아기들 올라가다 떨어질까 봐, 키 작은 땅감나무 되었답니다. - 권태응, 「땅감나무」 전문 (『감자꽃』 글벗집 1948) 권태응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34세에 요절한 시인으로, 생전 단 한 권의 시집 『감자꽃』(1948)을 발표하며 해방기 어린이의 삶을 담아내는 소중한 자료를 남긴다. 건강 악화로 세상을 떠나기 전, 6년 동안 그는 모든 힘을 다해 2,000여 편의 동요와 동시를 쓴다. 그렇게 권태응은 “동시-거인”으로 남아 이후 동시인들이 언제든 돌이켜볼 수 있는 동시의 첫 마음자리가 된다. 그의 작품뿐만 아니라 동시에는 언제나 어린이를 살피는 시선이 있다. 어린이의 자리에 눈길을 둔다는 것은 “세상 가장 작고 약한 이들”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의미이고, 나아가 동시를 쓴다는 것은 분명 있지만 잘 드러나지 않은 존재들에 대한 재조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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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전국동시인대회의 슬로건은 “동시 100가(家)를 노래하자”이다. 옛날 춘추 전국 시대의 제자백가, 그 백가(百家)의 쟁명(爭鳴)과 협력을 우리 동시가 실현해 내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 도착하지 못한다 해도 가까이 갈 수는 있겠기에. 2018년 제2회 대회 이후 8년 만에 치르는 이번 대회를 기점으로 전국동시인대회는 앞으로 3년마다 열리게 된다. 제4회 대회가 열리는 2029년, 이 책에 수록된 시인들이 우리 동시의 든든한 중추로 성장해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동시―이야기의 마당을 펼쳐 보이길 기대하고 응원한다.
세계와 인생의 환란 속에서도 우리를 마주하고 살아가게 하는 소식과 바람과 매직이 있어서, 그러함에도 우리에게는 언제나/어디서나 뿌리와 하늘과 너머가 있어서, 쌓이고 뭉치고 우뚝 섰다가 자기를 허물어뜨리고 마는 비밀이 있어서, 얼마든지 갖고 놀 말의 장난감이 있어서, 까르륵 깔깔대는 웃음이 있어서, 어디 한번 해보자는 거야! 기죽지 않는 배짱이 있어서, 명랑이 있어서, 힘센 환상이 있어서, 공감과 환대와 연대의 자매애가 있어서, 하나씩 지우고 새로 만드는 우리들만의 말의 목록이 있어서, 계단마다 머리 숙인 우리들의 빛나는 비애가 있어서,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깊은 슬픔이 있어서, 그리하여 폐허 속에서도 희망의 노래를 부를 줄 아는 동시가 있어서, 동시를 쓰며 살아가는 시인들이 있어서, 여기 모인 우리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이들의 노래가 우리 앞에 더 새롭고 깊고 높은 목소리로 멀리까지 계속 도착하기를. - 이안 (시인, 『동시마중』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