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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요리 앞에서는 사랑이 절로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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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앙트레
2. 공개 잔치
3. 한 어린이가 부엌에 들어서다
4. 현명한 어머니의 복숭아
5. 할아버지 댁에서 보낸 즐거운 설날
6. 라이프치히의 모든 것
7. 강의보다 더 즐거운 감자 튀김 요리 먹기
8. 세상은 한 접시의 정어리 샐러드
9. 케트헨 집에서의 하숙 시절
10. 즐거운 식사 시간
11. 제젠하임의 프레데리케 집에서 열린 목사 댁 파티
12. 나는 유쾌한 장소에서 식사하기를 좋아한다
13. 콩을 까고 차를 마실 때 느끼는 베르테르의 기쁨
14. 꿀로도 곰은 잡히지 않는다
15. 바이마르에서 얻은 상처와 새로운 사랑
16. 대공과 함께 한 토끼 사냥
17. 가족의 부엌살림
18. 아스파라거스와 함께 하는 아침
19. 북에서 온 도망자
20. 로마의 향락
21. 나폴리 관광하며 음식 즐기기
22. 대공녀와 성직자들과 함께 나눈 사순절 음식
23. 시칠리아는 모든 곳으로 가는 열쇠
24. 전통 파스타 맛보기
25. 크리스티아네에게 선물한 유자
26. 주부를 위한 사탕과 술
27. 상파뉴에서의 프랑스식 검소한 생활
28. 괴테가 결코 맛보지 못한 음식
29. 불쾌한 손님
30. 두 가지 음식
31. 예나에 초대받다
32. 실러의 집에서 대접받은 스테이크
33. 먹자 파티
34. 캐비아 대 샴페인
35. 임시 홀아비의 가사보고
36. 뵈르츠부르그 포도주 주문
37. 권주가
38. 칼스바트에서 보내는 소 혀와 약속
39. 질비에를 위한 정신적인 사랑의 선물
40. 꼬마 친구를 위한 달콤한 웃음
41. 민헨 히르츨립에게 보내는 소네트
42. 노련한 미식가의 충고
43. 휴양객을 위한 요리
44. 포도주 순례
45. 성 로쿠스 축제에서 얻은 요리 비결
46. 마리안네와 함께 하는 동서양의 취한 사랑
47. 며느리를 위해 프라이팬에서 갓 구워낸 시
48. 오틸리에에게
49. 생일 잔치에 취하다
50. 괴테의 집과 이웃한 호텔
51. 손자를 유혹하는 할아버지
52. 맺음말
53. 요한 볼프강 괴테의 일생과 작품 세계(1749-1832)
54. 편집, 요아힘 슐츠
55. 요리, 마르첼로 파브리
56. 재료소개
57. 재료 구입처

저자 소개 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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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ann Wolfgang von Goethe

고전파의 대표자이자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독일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1749년 8월 28일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법학을 공부한 황실 고문관이었던 아버지 요한 카스파르 괴테와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이었던 어머니 카타리나 엘리자베트 사이에서 부족할 것 없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라틴어 등 어학에 뛰어났으며 독서량도 많았다. 어렸을 때 라틴어와 그리스어, 불어와 이탈리아어 그리고 영어와 히브리어를 배웠고, 미술과 종교 수업뿐만 아니라 피아노와 첼로 그리고 승마와 사교춤도 배웠다. 괴테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2000권에 달하는 법률 서적
고전파의 대표자이자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독일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1749년 8월 28일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법학을 공부한 황실 고문관이었던 아버지 요한 카스파르 괴테와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이었던 어머니 카타리나 엘리자베트 사이에서 부족할 것 없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라틴어 등 어학에 뛰어났으며 독서량도 많았다. 어렸을 때 라틴어와 그리스어, 불어와 이탈리아어 그리고 영어와 히브리어를 배웠고, 미술과 종교 수업뿐만 아니라 피아노와 첼로 그리고 승마와 사교춤도 배웠다. 괴테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2000권에 달하는 법률 서적을 비롯한 각종 문학 서적을 거의 다 읽었다고 한다.

괴테는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1765년부터 1768년까지 당시 “작은 파리”라고 부르던 유행의 도시 라이프치히에서 법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전공인 법학 강의보다 문학 강의를 더 열심히 들었다. 1770년 독일 질풍노도 운동의 실질적 선도자인 고트프리트 헤르더를 만나 독일 민속과 정신에 대한 깨우침을 얻었다. 슈트라스부르크에서 법학 공부를 마친 후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프랑크푸르트에서 작은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에 더 사로잡혀 있었다.

이때 쓴 작품은 ‘질풍노도’ 시대를 여는 작품으로 『괴츠 폰 베를리힝겐』과 『초고 파우스트』와 같은 드라마와, 문학의 전통적인 규범을 뛰어넘는 찬가들을 쓰게 된다. ‘질풍노도’ 시대를 여는 작품인 『괴츠 폰 베를리힝겐』이 1773년 발표되자 독일에서는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는데, 독일에서 드라마의 전통적인 규범으로 여기고 있던 프랑스 고전주의 극을 따르지 않고 최초로 영국의 셰익스피어 극을 모방했기 때문이었다. 프로이센의 왕까지 가세한 이 논쟁으로 인해 괴테는 독일에서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1768년 건강상의 이유로 요양 생활을 했는데, 그 무렵 신비주의와 중세의 연금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770년 스트라스부르에서 법학 공부를 위해 머물다가 헤르더를 알게 되면서 셰익스피어 문학에도 심취했다. 변호사가 된 그는 1772년 제국 고등법원의 실습생으로서 몇 달 동안 베츨러에 머물렀다. 이때 이미 약혼자가 있는 샤를로테 부프를 사랑하게 되는 아픔을 겪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44)을 써, 문단에 이름을 떨쳤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때의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주인공 베르테르의 옷차림이 유행하고 모방 자살까지 일어나는 등 유럽 전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774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발표되자 괴테는 일약 유럽에서 유명 작가가 되었다.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젊은 작가를 만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몰려들었다. '슈투름 운트 드랑'(질풍노도시대, 문예의 혁명 운동)의 대표작으로서 전 독일 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 알려졌다. 1775년 제2의 고향이 되는 바이마르로 가서 공작의 고문이 되고 1782년에는 귀족 반열에 들었다. 1786년의 이탈리아 여행은 괴테의 생애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는데, 이 여행을 통해 그는 고전주의를 지향하게 되었다. 1794년부터 실러가 기획한 잡지에 협력하여 우정을 맺은 괴테는 이후 실러의 격려와 이해에 용기를 얻어 많은 작품을 완성했다.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파우스트』에 다시 손을 댄 것도 이 시점이다.

자신의 장래에 대해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던 괴테를 18세에 불과했던 바이마르(Weimar)의 카를 아우구스트(Karl August, 1757∼1828) 공작이 초청했다. 처음에는 잠시 체류하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고 아버지의 권유대로 이탈리아로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었다. 그러나 괴테는 이미 유럽에 널리 알려진 유명 작가로 그곳에서 극진한 환대를 받았고, 빌란트(Wieland)를 비롯해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 있는 바이마르의 예술적 분위기와 첫눈에 반해 버린 슈타인 부인의 영향으로 그곳에 머무르게 된다. 괴테에 대한 공작의 신임은 두터웠고 공국의 많은 일들을 그에게 떠맡기게 되었다.

여러 해에 걸친 국정 수행으로 인한 피로와 중압감으로 심신이 지친 괴테는 작가로서의 침체기를 극복하기 위해 바이마르 궁정을 벗어나 이탈리아로 여행을 감행했다. 1년 9개월 동안 이탈리아에 체류하면서 괴테가 느꼈던 고대 예술에 대한 감동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얻게 된 고대 미술의 조화와 균형, 그리고 절도와 절제의 정신을 자기 문학을 조절하는 규범으로 삼아 자신의 고전주의(Klassik)를 열 수 있었던 것이다.

독일 문학사에서는 괴테가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1788년부터 실러가 죽은 1805년까지를 독일 문학의 최고 전성기인 “고전주의”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 괴테와 실러는 바이마르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고전주의 이상을 실현하는 활동을 했는데,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유형(類型)”을 통해 “유형적인 개성”으로 고양(高揚)되는 과정을 추구했던 것이다. 괴테와 실러의 상이한 창작 방식은 상대의 부족한 면을 보충해 주어 결과적으로 위대한 성과를 올릴 수 있게 해 주었다. 실러의 격려와 자극으로 괴테는 소설『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를 1796년에 완성하고, 프랑스 혁명을 피해 떠나온 피난민들을 소재로 한『헤르만과 도로테아』를 1797년에 발표해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미완성 상태의 『파우스트』작업도 계속 진행해 1808년에 드디어 1부를 완성하게 된다.

실러는 지나친 의욕과 격무로 인해 1805년 5월 46세의 나이로 쓰러지는데, 실러의 죽음은 괴테에게도 커다란 충격이었다. 1815년 나폴레옹이 권좌에서 물러나자 바이마르 공국은 영토가 크게 확장되어 대공국이 되었다. 괴테는 수상의 자리에 앉게 되지만 여전히 문화와 예술 분야만을 관장했다. 1823년『마리엔바트의 비가』를 쓴 이후로 괴테는 대외 활동을 자제하고 저술과 자연연구에 몰두해 대작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1829)와『파우스트 2부』(1831)를 집필하게 된다. 서사시와 서정시, 산문과 시극, 비평과 수기, 4편의 소설과 1만여 통의 편지를 남긴 괴테는 독일민족이라는 정체성의 태동기에 독일문화와 독일어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1832년 3월 22일 낮 1시 반, 괴테는 심장 발작으로 사망한다. 그는 죽을 때 “더 많은 빛을(Mehr Licht)” 하고 말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3월 26일 바이마르의 카를 아우구스트 공작이 누워 있는 왕릉에 나란히 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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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서 학사 · 석사 ·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 대학을 비롯해 여러 대학에서 독일문학을 강의하고,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다수의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엘리아스 카네티의 ≪현혹≫, 클라우스 만의 ≪메피스토≫를 비롯하여 수십 권 의 작품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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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05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50쪽 | 541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2733178

책 속으로

이 곳에는 호텔이 없다. 그래서 한 친절한 가족이 우리가 머물 곳을 마련해 주었는데, 크나큰 방에는 알코브(붙박이 침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우리와 이 집 식구들 사이에는 녹색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이들은 커다란 방에서 파스타를, 세상에서 가장 가늘고 가장 하얗고 가장 작은 종류의 파스타를 만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처음에는 손가락만한 못 모양으로 만들어졌다가 비쩍 마른 소녀의 손가락으로, 다시 한번 돌려 뱀 모양이 된 파스타가 가장 비싸게 팔렸다.

우리는 귀여운 아이들과 함께 앉아, 최상급 밀가루인 그라노 포르테로 파스타를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기계나 거푸집에 대한 것보다는 손으로 하는 작업에 대한 이야기가 훨씬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에게 최고의 파스타 요리를 대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르겐티 즉 그들의 집이 아니고는 만들어낼 수 없는 특상품 파스타로 만든 음식을 대접할 수 없는 점을 매우 유감스러워했다. 색과 그 부드러움에 있어서 이 집 파스타를 능가할 수 있는 것은 없을 듯하다.

『이탈리아 기행』
지르겐티, 1787년 4월 24일 화요일

---p.66

아스파라거스와 함께 하는 아침

사랑하는 이여!
처음으로 아스파라거스를 수확했습니다.
이 아스파라거스는 다른 것과 함께 섞지말고,
혼자만 드십시오.
그래야 아스파라거스에 대한
행복한 추억을 간직하게 될 테니까요
제가 당신과 함께 이걸 먹는다면
최고로 맛이 있을텐데
이곳은 여전히 조용합니다.
당신과 헤어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아듀

-샤를로테 폰 슈타인 부인에게. 1776년 5월 19일.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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