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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들어가면서 1. 내가 살기로 한 곳 앙성과의 첫 만남 느티나무를 찬탄함 우리는 정말 사랑했을까 품을 ‘팔다’ 느는 게 의료기구 시골의 구경거리 인터넷과 함께 새벽을 연다 귀농, 무조건 아름다울까? 술상 앞에서 떠오르는 얼굴 그리운 어머니께-고비마다 당신을 떠올립니다 2. 농부들은 얼마나 더 착하게 살아야 할까 “술 안 먹곤 못혀!” 세월 따라 변해가는 새참 풍습 농사꾼 망치는 사람 어머니의 재봉틀 애달픈 복숭아 이야기 술 마실 핑계가 어디 한둘인가 농군은 영원한 현역 쓸쓸한 직업 지도 ‘그래, 내가 맞자’ 파란만장한 우리집 난방 역사 막내 오라버니께-잊을 수 없는 옛일이 있습니다 3. 자연으로, 내 마음을 들여다보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도리깨질은 아무나 하나” 만주 할머니의 뜰 프로 농군과 초보 농군 아픔 없이는 어떤 변화도 없어라 속 썩이던 까치, 새집을 짓다 겨울철 시골 사는 재미 소에게서 배운다 생각 깊은 살구나무 보고픈 친구 진영에게-친구로 지낸 세월아, 고맙다 4.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다 어버이는 흙에 묻혀서도 자식을 살게 하는구나 늙은 호박의 가르침 한 달 생활비와 맞먹는 새 등산장비 가난해도 좋은 시간 덩따궁 덩덩, 풍물에 빠졌다 무당벌레와 더불어 살기 아아, 진순 사연도 많은 우리집 고구마 산에서 맺은 인연 어떤 그리움-히말라야 1 모두 다 사랑하리-히말라야 2 나마스떼-히말라야 3 소통기 단당 도시 아이들의 시골 체험 파란 눈의 일꾼들 홍콩 언니께-어릴 적 밥맛이 그립습니다 5. 진정, 농부로 산다는 것은 죽으려야 죽을 틈이 없다 자립의 꿈은 아득하기만 하고 나는 왜 무농약 농사를 지으려고 하는가 나는 아직도 이방인 영원하고 완벽한 이상 귀농 10계명 치킨 런 “삶은 가시 박힌 손톱의 아픔” 함께 견디기 나의 귀농을 되돌아보며 “농부 못해먹겠다?” 근세 씨에게-우리 앞에 길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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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에 1년 반 동안 연재한 ‘앙성댁의 시골일기’라는 칼럼 덕분에 ‘앙성댁’이라는 택호로 더 유명한 강분석도 처음엔 농사는 남편이 짓고, 그녀는 그 옆에서 읽고 싶은 책이나 읽으며 한가로이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서울에서 태어나 40 평생을 서울에서만 생활한 ‘잘 나가는’ 도시근로자였던 그녀가 아무런 고민도 준비도 없이 서울을 떠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런 보랏빛 꿈 때문이었다. 귀농 1년도 되지 않아 그녀는 깨달았다. 농사 지어 먹고 사는 일도 만만치 않거니와 농사일보 다도 더 힘든 게 이웃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오래고 단단한 문화적인 벽이라는 사실을.
혹자는 귀농이 한물 간 트렌드가 아니냐고 묻지만, 앙성댁은 귀농은 트렌드가 아니고 갈급한 도시 사람들이 막연하게 꿈꾸는 최고의 구원처이자 이상향이라고 말한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허황되고 실패할 위험이 큰 것이 바로 귀농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그녀가 운영하는 홈페이지 ‘앙성닷컴’(angsung.com)을 두드린 숱한 질문과 상담을 보며 자신의 준비 없었던 지난날을 들려주기로 결심했다. 산문집 <씨앗은 힘이 세다>(도서출판 푸르메 출간)가 바로 그런 결심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마음의 끌림에 우선했을 뿐, 턱없이 준비가 부족했던 자신의 귀농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들려줌으로써 아직도 꿈꾸듯 귀농의 길을 찾는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희망했다. 그는 말한다. 도시 사람들에게 단지 푸르름과 생명의 기억만을 줄 뿐이라고 해도 농촌은 반드시 살아나야 한다고. 앙성댁 강분석은 한동안 CBS 라디오의 <유영재의 가요 속으로>라는 프로에서도 매주 화요일이면 <앙성댁의 시골일기>라는 코너를 가질 정도로 고정팬이 많다. 정갈하게 잘 차린 한식 밥상처럼 군더더기 없는 문체로, 농사로부터 배운 삶의 고난과 희망 그리고 대자연의 법칙에 대한 순응의 교훈을 과장도 축소도 없이 소개하는 자성(自省)의 글은 그 어떤 유명 문인의 글보다도 더 가슴에 사무친다는 평이다. 앙성댁 강분석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한 후 한때 고등학교에서 독일어를 가르치다, 광고회사와 외국 기업에서 잡지 편집과 홍보 업무를 맡아 10년 넘게 일했다. 대기업에 다니다가 등산장비점을 운영하던 남편은 마흔이 되면 시골에 내려가 농사를 짓겠노라고 노래를 불렀다. 1997년 봄, 별다른 갈등도, 준비도 없이 시골 행을 결정했고, 그해 가을, 아무런 연고 없는 충북 충주시 앙성면 아랫밤골의 아름드리 느티나무 옆에 덜컥 새집을 지어 내려갔다. 이듬해 봄, 4백 평 밭에 들깨와 두릅을 심는 것으로 시골생활을 시작했다. 첫해 농사로 손에 쥔 것은 들기름 몇 병, 둘째 해로 이어진 고추, 두릅, 호박, 고구마 농사에서도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듭했다. 셋째 해, 집에서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다랑이 논 다섯 마지기와 작은 복숭아 과수원을 마련하여 농약과 화학비료 없이 벼와 복숭아 농사를 짓기 시작해 현재까지 귀농 9년차 농사꾼인 이 부부의 한 해 수입은 얼마나 될까? 이 부부가 도시에서 직장생활하던 당시 두 사람의 한 달 수입을 합친 것과 일년 내내 농사 지어 얻은 수입이 엇비슷하다. 그나마 앙성댁은 밤에 번역일도 하고, 아직은 다른 농부보다 젊은(?) 50대 초반의 남편은 품을 파는 부업을 할 수나 있지만 다른 농부들은 더욱 답답한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귀농을 꿈꾸거나 귀농을 작정하고 시골행을 감수하는 사람의 인구는 늘고 있다는 통계이다. 앙성댁은 이 책을 통해 바로 그 돈으로도 얻을 수 없는 흙 속에서 일군 또다른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생전 처음 내 손으로 심은 콩알이 제 몸무게의 몇 백 배나 되는 흙을 뚫고 초록색 새싹으로 올라오는 걸 바라보며 ‘내가 농사를 짓는 게 아니라 그저 조금 도와주는 것일뿐’인 씨앗의 놀라운 생명력, 일주일이 넘도록 끝없이 피사리를 해가며 키운 벼를 베던 날 나도 모르게 아이구 내 새끼! 하며 벼를 가슴에 부둥켜안았던 벅찬 감동들, 아침부터 밤까지 활처럼 굽은 등을 펴지도 못한 채 일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농부들께 감히 여쭙고 싶은 ‘땅’의 의미, 농약을 치지 않아 새까맣게 진드기가 달라붙은 복숭아 나무들에게 “나무야, 제발 쓰러지지만 말아다오. 네가 키운 자생력으로 우리 조금만 더 견뎌보자” 하며 기도를 드릴 뿐이던 무기력한 순간들, 귀농해서 앙성에 산 지 10년이 다 되어가건만 여전히 동네사람들로부터는 이방인 취급을 당하는 높다란 벽, 귀농학교에서 만난 동네분께 빌린 땅에 지은 애호박과 고구마를 다 키워놓고도 경운기길을 내주지 않아 거두지 못한 채 버려야 했을 때의 피눈물 나는 경험, 갓난애기 머리통만큼이나 잘 익은 복숭아들이 하루아침에 멧돼지 밥이 되었거나 폭우에 낙과가 되었을 때의 애통함 등……. 이렇듯 준비되지 않은 귀농은 참으로 위험했고, 가장 중요한 땅을 사고 집을 짓는 일에서부터 시행착오가 있었다. 농토를 마련하고 작물을 선택하고 농사를 지으니 더 큰 어려움은 계속되었고, 작물을 키우는 것도 어렵지만 귀하게 키운 작물을 소비자에게 알리고 노력한 만큼 제값을 받고 파는 것 또한 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확실한 것은 귀농 또한 하나의 삶의 형태이며 다른 삶과 마찬가지로 양면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인정하기까지만 해도 긴 시간과 많은 수업료가 필요했던 것이다. 귀농 9년차. 아직 농사로 자립도 밥벌이도 안 되고 농사와 사람의 일로 어려움도 있지만, 그래도 앙성댁은 농사 짓고 사는 것에 후회가 없다. 평생을 뼈 빠지게 일하고 죽은 후에도 버릴 것 하나 없이 제 몸을 내어주는 소를 보면서, 또 나락은 사람들의 먹을거리가 되고 짚은 지붕도 되고 거름도 되고 그러다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벼를 바라보면서 대자연에는 사람보다 나은 것들이 참으로 많음을 발견하고 절로 깨닫게 되는 것들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농사로 자립하면서 지금껏 가꿔온 이 땅에서 언제까지나 농부로 살 수 있기를 희망하는 앙성댁은, 흙을 만지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농사와 땅에 대한 작은 원칙들을 지키면서 언젠가는 괜찮은 농부가 되기를 소망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