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청년패스
마음의 철학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베스트
인문 top20 1주
가격
9,000
10 8,100
YES포인트?
45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저자 소개 2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관심작가 알림신청
 

Marcus Aurelius Antoninus

아우렐리우스는 121년 4월 26일 로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안니우스 베루스는 로마의 귀족이었으며 어머니 도미티아 루킬라는 집정관 카르비시우스 투루스의 딸로서 교양 있고 경건하고 자애로운 부인이었다. 베루스 집안은 원래 스페인에서 살았는데 마르쿠스가 태어나기 1백 년 전부터 로마로 이주하여 살기 시작했다. 그의 할아버지 안토니우스 베루스는 총독, 집정관, 원로원 등의 요직을 지냈다. 아우렐리우스는 여덟 살 때 아버지가 죽자,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다. 어머니도 그가 어릴 때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병약하여 학교에 다니지 않고 훌륭한 가정교사들로부터
아우렐리우스는 121년 4월 26일 로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안니우스 베루스는 로마의 귀족이었으며 어머니 도미티아 루킬라는 집정관 카르비시우스 투루스의 딸로서 교양 있고 경건하고 자애로운 부인이었다. 베루스 집안은 원래 스페인에서 살았는데 마르쿠스가 태어나기 1백 년 전부터 로마로 이주하여 살기 시작했다. 그의 할아버지 안토니우스 베루스는 총독, 집정관, 원로원 등의 요직을 지냈다. 아우렐리우스는 여덟 살 때 아버지가 죽자,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다. 어머니도 그가 어릴 때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병약하여 학교에 다니지 않고 훌륭한 가정교사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는 공부에 열중했으며 뛰어난 자질을 나타내어 당시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아우렐리우스를 사랑했으며 그를 ‘가장 진실한 자(Verissus)’로 부르기도 했다. 아우렐리우스의 숙모 파우스티나와 그녀의 남편 안토니누스 피우스에게는 아들이 없어 아우렐리우스를 양자로 맞아들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라고 이름 붙여 주고 그들의 후계자로 삼았다. 138년 아우렐리우스가 17세 때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죽자, 아우렐리우스의 양부(養父)인 안토니누스 피우스가 제위를 물려받았다. 이때부터 아우렐리우스는 미래의 황제로서 통치하는 법과 황제로서 해야 할 일들을 섹스투스, 루스티쿠스, 프론토 등에게 배운다. 139년 아우렐리우스는 피우스 황제의 후계자로 정해지고 황제의 딸 파우스티나와 약혼한다. 그 후 재무관과 집정관에 오르고 145년 24세 때 파우스티나와 결혼한다. 146년 장녀 안니아 카렐리아가 태어나고 이후 13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8명이 요절하고, 1남 4녀만이 남았다. 161년 40세 때 피우스 황제가 죽자 아우렐리우스가 뒤를 이어 즉위하고 의동생인 루키우스 베루스를 공동 황제로 삼았다. 이때부터 게르만족, 스키타이족 등 외적의 침략과 변방 야만족의 소란 등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페스트와 티베리스강의 범람으로 인한 기근 등으로 시련을 겪는다. 그러다 169년 공동 황제인 베루스가 죽고 게르마니아가 다시 공격해 오자 아우렐리우스는 다뉴브강에 진을 치고 그곳에서 생활하고 이때부터 이 책《명상록》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야만족과의 싸움과 카시우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원정을 떠나고 이 원정에서 아내 파우스티나를 잃는다. 그 후 북방의 전장에서 돌아오는 도중 페스트에 걸려 며칠 동안 앓다가 180년 3월 17일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다른 상품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광고회사 등에서 20년 가까이 홍보 일을 했다. 서른에 동갑내기 남편과 결혼하여 마흔이 되면 농부가 되겠다고 노래를 부르던 남편을 따라 마흔셋 되던 해 충북 충주시 앙성면 아랫밤골에 자리를 잡았다. 첫 두 해 농사는 죽을 쑤었다. 셋째 해부터 산골짜기 작은 다랑논과 과수원에서 농약 안 치고 벼와 복숭아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해 여름 인터넷 사이트 ‘앙성닷컴www.angsung.com’을 열었다. 2007년 11월, 경북 봉화 산골짜기로 옮겨 앉아 곡식 농사를 짓고 있다. 인근에 하나밖에 없다는 논을 만들고 앞밭에는 사과나무를 심었다. 20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광고회사 등에서 20년 가까이 홍보 일을 했다. 서른에 동갑내기 남편과 결혼하여 마흔이 되면 농부가 되겠다고 노래를 부르던 남편을 따라 마흔셋 되던 해 충북 충주시 앙성면 아랫밤골에 자리를 잡았다. 첫 두 해 농사는 죽을 쑤었다. 셋째 해부터 산골짜기 작은 다랑논과 과수원에서 농약 안 치고 벼와 복숭아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해 여름 인터넷 사이트 ‘앙성닷컴www.angsung.com’을 열었다. 2007년 11월, 경북 봉화 산골짜기로 옮겨 앉아 곡식 농사를 짓고 있다. 인근에 하나밖에 없다는 논을 만들고 앞밭에는 사과나무를 심었다.

2002년부터 2년 가까이 「한겨레신문」에 ‘앙성댁의 귀농일기’를 매주 연재했다. 2007년 여름부터는 「한국농어민신문」에 ‘앙성댁의 건강밥상’을 격주로 연재하고 있다. 펴낸 책으로는 산문집 『씨앗은 힘이 세다』가 있고,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마음의 철학』과 『에픽테토스와의 대화』를 비롯한 몇 권의 번역서를 냈다.

강분석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04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361g | 133*195*20mm
ISBN13
9788981170585

책 속으로

진리는 안개에 가려져 있어 훌륭한 철학자들도 이를 완전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물며 인간의 생각은 번번이 오류를 범한다. 오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물질적인 것들로 생각을 돌려보자. 그것들은 또 얼마나 덧없고 하찮은가? 방탕한 자, 매춘부, 도둑들도 물질을 소유할 수 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가장 유쾌하다고 하는 사람조차 참고 어울리기 힘들 떄가 있지 않은가? 이러한 어두움과 추함, 존재와 시간의 무한한 흐름, 그리고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는 찬사를 받을 만한 것도, 진지하게 추구할 만한 것도 없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자연으로 돌아가게 될 죽음을 조용히 기다리되 그 시간이 지체됨에 초조해하지 않는 것이다. 우주의 질서에 어긋나는 일은 절대로 내게 일어나지 않거니와, 또 내게는 신과 내 안의 이성에 어긋나는 일을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므로 나는 언제나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으리라.

--- pp. 98-99

출판사 리뷰

황제로 살다 간 한 자연인의 삶에 관한 명상
아카데미를 휩쓴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보면 자신의 아들을 제쳐두고 총사령관을 후계자로 지명하는 늙었으나 지혜롭고 통찰력 있는 황제가 나온다. 늦은 밤 황제는 전쟁터의 막사에서 가운을 걸치고 사색하며 글을 쓰는 모습도 보이는데 그가 바로 철인 황제로 일컬어지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이다. 그리고 이 때의 나날의 기록이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해져오는 『아우렐리우스 명상록』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빌 클린턴에게 성경을 제외한 책들 중에서 그에게 가장 중요한 책 한권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클린턴은 『아우렐리우스 명상록』이라고 답했다. 그는 2-3년에 한 번씩 이 책을 다시 읽는다고 한다. 그만큼 시간이 흘러도 그 빛을 바래지 않는 서양의 고전인 것이다. 『명상록』에는 거대한 로마 제국을 통치해야 했던 리더의 고뇌와 자기 수양의 흔적, 그리고 언제나 자연과 이성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자연인의 삶에 대한 통찰이 녹아있다.

추천평

스토아 철학은 소크라테스가 몸소 보여 주었던 철인의 삶에 크게 감동을 받은 제논(기원전 336~264)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재판 때의 당당한 태도, 죽음을 눈앞에 두고 보여주었던 태연함과 침착성, 불의를 행한 자는 불의를 당하는 자보다 더 많은 피해를 입게 되어 있다는 믿음, 검소함, 외적인 것에 대한 무관심 등이 스토아 철학이 추구하는 것과 일치한다. 제논은 인생의 목적은 행복에 있고 행복은 자연에 따라 생활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자연은 계획적으로 세계를 창조하고 지배하는 이성적 실재로, 인간 또한 우주의 이성을 나누어 가진 존재이므로 이성에 따른다는 것은 자연의 의지와 이성에 따르는 것이 된다. 결국 스토아 철학의 핵심은 '자연에 따르는 사람' 또는 '도덕적인 삶'이라 하겠다. 『마음의 철학』,『신의 친구 에픽테토스와의 대화』도 자연이 부여한 나의 역할을 알고 그 운명에 순종하며 사는 삶을 강조한다. 스토아 철학의 특이한 점은 죽음도 태어남과 마찬가지로 아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라고 하는 부분이다. 죽음을 두렵게 생각하는 그 생각 때문에 죽음이 두려운 것이지 죽음 자체가 두려운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만물은 변하고 죽음 또한 변화의 한 과정으로 생각하면 이것 역시 두려워하거나 슬퍼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리뷰/한줄평5

리뷰

7.6 리뷰 총점

한줄평

8.0 한줄평 총점

클린봇이 부적절한 글을 감지 중입니다.

설정
8,100
1 8,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