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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떤 애독서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밤낮 없이 나아가는 큰 배에 탄 어떤 사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사내는 언제부터인가 큰 배에 실려서 밤낮 없이 대양 위를 나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배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누구에게 물어도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사내는 점점 재미가 없어져 그만 내리기로 결심하고, 마침내 갑판을 떠나 바다로 뛰어듭니다. 배는 굉장히 높아서 몸이 쉽게 물에 닿지 않는데, 사내가 내려버린 배는 이미 저만치 나아가고 있고, 그 영원한 찰나에서야 사내는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배일망정 그냥 타고 있는 것이 더 좋았겠다고 깨닫습니다. 하지만 이제 더는 그 깨달음을 활용할 길이 없습니다. 거대한 후회와 공포를 가슴에 품고 어두운 바다를 향하여 영원히 떨어져 내리기만 할 뿐입니다. 불면의 밤에는 언제나 그 사내를 생각합니다. 어둠을 분할하는 초침 소리를 헤아리면서, 나도 또한 그와 함께 떨어져 내리면서, 영원히 떨어지고 있을 그 사람을 생각합니다. ---pp.78~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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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좀 조용히 해줘』에서 작가가 다루고 있는 20여 개의 테마들은 무릇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 내부와 외부에 공기처럼 살고 있는 것들이다. 작가가 이들 사소한 테제들에서 길어 올린 물음들은 자잘한 일상사에 대한 성찰과, 또는 형이상학적인 사유의 영역들이며, 그것들은 바로 일상의 이면에 도사린 모순을 비유하거나, 때론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에 가 닿는 것들에 다름 아니다.
이를테면 작가는, 사랑이 증오가 되어버리는 마음의 메커니즘에 대해서, 도덕적 반성이 오히려 무색해질 정도로 횡행하는 작금의 표절 행태에 대해서, 대를 이어 반복되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 대하여, 또 거짓말, 패거리주의, 기억과 망각, 소유 등등에 대해 얘기하는 한편, 아무리 하나가 되려고 해도 결코 합체될 수 없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동일한 표현이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언어에 대해서, 삶과 함께 동행하는 죽음에 대해서, 또 인연, 시간, 꿈, 마음 등등, 일상의 구경거리처럼 읽히는 삽화 속에 이들 테마들이 환기하는 진지한 물음들을 풀어놓고 있다. 『제발 좀 조용히 해줘』의 삽화들은 대부분 픽션, 즉 작가가 꾸며낸 가공의 것들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 책을 소설과 에세이와 산문시 등이 각자의 장르적 경계를 허물고 자유스럽게 어울려 노는 열린 형식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에 실린 20여 단편의 이야기들은 때로는 짧은 소설처럼, 때로는 한 토막의 옛 이야기처럼, 때로는 일기나 여행기인 듯한 에세이처럼, 또 때로는 짧은 산문시처럼 읽히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허구와 사실의 경계를 형식적으로 지워버리려고 하는 작가의 의도에 의하여, 이 책의 모든 글들은 자전적인 논픽션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출간한 『픽션클럽』 『탱고』 『달마의 앞치마』 등에서 지속적으로 변주되며 시도되었던 것처럼, 전적으로 작가의 전략의 결과물인 셈이다. 작가는 결미에서 스스로 이 책의 '장르 해체적인' 면모를 얘기하는 중에 독자들이 크로체의 다음 말을 음미해보길 권하고 있다. "어떤 책을 소설, 알레고리, 미학논문 따위로 단정하는 것은, 그 책의 표지가 노랗다거나 그 책이 왼쪽에서 세 번째 선반에 있다고 말하는 것과 별로 다를 게 없다." 작가에 의하면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모든 존재는 시간 속의 존재"이며, "시간 속의 존재는 단 한 번의 과정이란 점에서 저마다 유니크한 절대"인 바, 끊임없이 나고 죽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책들이 다 그렇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작가의 사유와 풍자와 비판 정신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 대한 조용한 반성과 더불어 자기 속으로의 성찰을 안내해 줄 크고 작은 공안들을 얻을 수 있다. 그 존재론적 물음들은 유별난 방식으로가 아니라 누구나 찾기 쉬운 방식으로 이 책의 도처에 놓여져 있다. 그러니까 그 물음들은 우리들의 진짜 일상에서와 마찬가지로, 그것을 읽어낼 마음이 있으면 누구나 만나게 될 그런 것들이다. 작가는 자신의 이 쉬운 이야기들에서 바로 그처럼 언제나 우리들 마음에 걸려 있는 화두 같은 것을 찾아내 즐겨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