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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 1권
기이 제1 2. 제 2권 기이 제2 3. 제 3권 홍법 탑상 4. 제 4권 의해 5. 제 5권 신주 감통 피은 효선 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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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진흥왕 대청 3년 기사에 양나라의 사신 심호가 사리 몇 개를 가지고 왔고, 선덕왕 대인 정관 17년 계묘에 자장법사가 부처의 두골과 부처의 어금니, 부처의 사리 100개, 부처가 입던 붉은 비단에 금색 점이 있는 가사 한 벌을 가지고 왔다. 그 사리는 셋으로 나누어서 하나는 황룡탑에 두고, 하나는 태화탑에 두고, 하나는 가사와 함께 통도사 계단 에 두었으나 그 나머지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단에는 2급이 있는데, 상급 가운데는 마치 솥을 엎어놓은 것 같은 돌뚜껑을 두었다고 한다.
세속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옛날 고려 때 전후의 두 안렴사가 있어 단에 예를 올리면서 돌솥을 열어 경배하였는데, 앞 사람은 구렁이가 석함 속에 있는 것을 보았고, 뒷사람은 큰 두꺼비가 그 석함 속에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보아 이때부터 감히 두껑을 열지 못하였다고 한다. 근래에 상장군 김이생 공과 시랑 유석이 고종의 명을 받고 강동을 지휘할 때 의절을 갖추어 절에 이르러서 돌을 들어내고 예를 올리고자 하였다. --- pp.262-26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