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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 영혼으로의 여행을 떠나다
2. 장자와 실천적인 삶 조롱인가, 찬사인가 모든 사람은 물체의 세계에 갇힌 죄수이다 그저 반응만 할 것인가, 실천할 것인가 바보들이 없다면 사업가들은 뭘 해야 하지? 절망은 기쁨을 찾기 위한 여정의 시작이다 3. 나무 조각가 참다운 실천의 모델 실천이란 무엇인가 잘 하고자 하는 마음이 오히려 일을 망친다 사람들은 왜 자신을 신비스럽게 보이고 싶어할까? 행위자와 대상의 진실한 만남 불가능이란, 해서는 안된다는 말과 동의어가 아니다 4. 천사 실천과 실패 그리고 고통 천사가 세계를 지배하다 실패가 가지고 있는 치유의 능력 뭐 이런 하나님이 다 있어? 하나님의 자리가 생각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5. 광야의 예수 행동할 것을 시험받다 소중한 것은 언제나 또 다른 극단을 동반한다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어리가 되게 하라 이 모든 권세를 너에게 주겠다 특별해지고 싶은 유혹 적절하게 행동할 것에 대한 유혹 6. 떡과 물고기 풍족함인가, 부족함인가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다 삶 자체로 풍요로운, 이미 우리에게 내려진 자원들 부족함이 풍요로움으로 대체되는 순간 협력할 때 얻어지는 풍요로움의 진실 7. 부활하라는 위협 죽으라는 것인가 살라는 것인가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무덤이라는 감옥 누가 우리를 부활하라고 위협하는가? 삶에서 죽음으로, 다시 죽음에서 삶으로 얼마나 멋진 일인가, 부활의 위협을 당하는 것이 8. 사색과 실천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느낌 아주 오래된 줄다리기 축복 혹은 저주로서의 실천적인 삶 사색과 실천, 그 줄다리기를 끝내자 가장 두려울 때는 자신을 자기 앞에 드러낼 때다 다른 사람에게 줄 가장 좋은 선물은 우리 자신이다 빠져 나올 수 없다면 차라리 안으로 들어가라 |
Parker J. Pa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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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정부가 사람들을 줄 세워 놓고 그들 중 몇몇에게는 한 트럭의 식량을 주고 나머지 대부분에게는 목숨을 부지할 만큼만 배급한다면, 그 불평등은 금세 눈에 띄어 분노한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 몇몇에게는 트럭 가득 돈을 주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동전 몇 푼을 쥐어 준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돈을 가지고 식량을 살 때 그 거래과정은 베일에 싸여 있어 오직 힘없고 굶주린 사람들만이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아차린다. 돈이라는 비인간적인 수단에 의해 우리는 정의로부터 너무나 멀리 벗어나게 되고, 결과적으로 변화를 외칠 기운마저 잃게 된다.
---p.1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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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에 대한 사회적 집착으로 인해 우리는 때때로 사소하고 평범한 목표를 위해 중요한 목표와 환경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효율성'이 우리 행동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인 이상, 우리는 오직 달성 가능한 목표만을 세워 놓고 행동하려 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깊이 있는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은 사회에서 '비효율적인' 사람으로 낙인 찍히기 쉽다. 우리 사회는 사람이 '실패'를 통해 사회에 엄청난 유산을 남긴다는 것을 계산하지 못한다. 그러나 좁은 시야를 가진 사람들은 사회로부터 효율적인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세운 목표는 시시하고 대수롭지 않은 것이어서 그들이 '성공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p.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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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로 실천적인 삶이란 무엇일까?
모든 것이 빨라지고 움직임만이 각광받는 이 세상에서 진실로 실천적인 삶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그 깨달음을 얻기 위해 우리가 귀기울여야 하는 영혼의 목소리는 어떤 것일까? 우리들의 삶에 주어진 모든 실현 가능한 것들 속으로 뛰어들어 이를 낱낱이 체험하고자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욕구일 것이다.
집에서나 직장, 그리고 보다 큰 공동체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파머의 따뜻하고 심오한 성찰이 녹아 있는 이 책은, 영적인 삶은 세상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천을 통해 세상에 더욱 깊이 참여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파머는 실천적인 삶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과 가능성을 모두 제시하고 이를 체화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과 세계,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실천은 종종 자만과 권력의 장으로, 사색은 빛과 자비로움의 영역으로 묘사되곤 한다. '참다운 자아'는 행동이 아닌 사색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글은 쉽게 만날 수 있지만, 실천하면서 참다운 나를 만나 보라고 권하는 글은 흔치 않다. 사람들은 밖으로 드러나는 행동보다 사색을, 소리내는 것보다 침묵을, 상호간의 교감보다 고독을, 참여하고 맞서 싸우기보다 조화를 이루는 것을 '영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실천적인 삶의 가치는 무시하고 사색의 가치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천에는 많은 위험 부담이 따른다. 실천을 그만두고자 하는 사람은 겸손해서가 아니라, 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만둔다. 실천할 때 따르는 위험 부담은 수없이 많다. 타락할 수 있고, 실패할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다. 스스로 무능하다고 느끼기도 하고, 비난을 사고, 경쟁하고, 저항을 받고, 노여움을 사거나 아니면 단순히 무시당할 수도 있다. 우리가 가장 크게 위험을 느낄 때는 자기 자신을 세상 앞에 또는 잔인하게도 자기 앞에 드러낼 때인 것이다. 그러나 파머는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보다 행복한 일은 없다"며 실천적인 삶의 이미지들을 우리 앞에 펼쳐 놓는다. 실패는 그로 인한 상처를 치유할 능력을 갖고 있고, 절망은 기쁨을 찾기 위한 여정의 시작일 뿐이고, 부활(죽음)의 위협을 당하는 것마저도 기쁜 일이라고 말하면서… 고대인들은 사색을 실천보다 더 가치 있는 미덕으로 여겼다. 오직 사색을 통해서만 우월해질 수 있었고, 이상(관념)이나 인간의 신적인 면을 통해 하나가 될 수 있었다. 플라톤이 제시한 '철인'이 다스리는 사회는 소수 엘리트를 부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이들 엘리트들이 하는 일이 바로 생각과 반성이었다. 그러나 계몽운동, 과학의 발전, 산업혁명,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상황은 역전되었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앉아서 생각만 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인류는 행동이라는 도구를 통해 세계를 바꿀 수도, 현실을 재구성할 수도, 역사에 흔적을 남길 수도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사색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선을 행하고 지위를 쌓았다. 심지어 실천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요즘,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이러한 경향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실천적 가치가 오랫동안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데 대한 반발인 셈이다. 이것이 바로 영적 르네상스 운동, 즉 실천이 판치는 세상에서 사색이 주는 가치를 재고해 보자는 운동이다. 이러한 반발이 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20세기를 지나오면서 실천이라는 가치는 통제불능의 상태에 빠져버린 것이다. 우리 사회는 실천의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보이는 것은 모두 정복하고 지배하려 했고, 그 결과 우리의 삶은 더욱 빈약해졌다. 따라서 이러한 병폐를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들은 사색으로의 복귀를 문제 해결의 유일한 방편으로 생각한 것이다. 사색과 실천은 결코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우리의 마음 속은 둘로 갈라져 내분이 일어날 것이다. 파머는 이 두 진영간의 적의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두 가지를 제시한다. 사색과 실천은 모순관계가 아니라 역설의 양극단이라는 것과 다른 사람은 나와 다른 소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우리는 사색과 실천 모두를 인정하며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상대에게 관대한 만큼 스스로에게 주어진 소명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자신의 정체성과 고결함, 존재가치를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