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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일간의 생존일지
페어차일드 기 탑승자 명단 프롤로그 1장 사고 이전 2장 모든 것이 소중하다 3장 서쪽에 칠레가 있다 4장 한번 더 심호흡을 해봐 5장 버림받다 6장 알루미늄 무덤 7장 동쪽으로 8장 죽음의 반대는 무엇인가 9장 저기 사람이 보이는데 10장 사고 이후 에필로그 감사의 말 - 난도 파라도 감사의 말 - 빈스 라우스 역자 후기 화보 지도(추락현장) 지도(최후의 서쪽 원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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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0월, 13일의 금요일이었다. 우루과이의 올드 크리스천스 럭비팀과 일행 45명은 친선 경기 차 칠레로 날아가던 중 안데스 산중에 추락했다. 추락 당시 난도의 어머니는 즉사했다. 중상을 당했던 여동생도 추락 8일째 되던 날 세상을 떠났다. 가장 친한 친구 귀도와 판치토도 죽었다. 난도는 머리가 깨져 3일 동안 의식 불명의 상태였다. 의식을 회복한 후 그에게 찾아온 것은 영하 40도에 가까운 살인적인 추위, 조금만 걸어도 숨이 막힐 정도의 희박한 공기, 타는 듯한 갈증 그리고 고개를 제쳐야만 볼 수 있는 눈 덮인 봉우리들.
무엇보다도 풀잎 하나 없는 겨울 산중에서 그들은 불가피하게 사망자의 인육을 먹어야 했다. 급기야 칠레 정부의 수색 활동은 중단되고 몇 차례에 걸친 자체 등반 시도마저 실패로 돌아갔다. 설상가상, 눈사태가 생존자들을 뒤덮어 버렸고 차가운 백색의 세계는 그렇게 생존에 관한 아무런 단서도 내놓지 않았다. 결국 45명의 탑승자 중 16명만이 삶을 허락받았고, 허락된 삶의 시간마저 그리 길지 않았다. 그 공포와 절망, 상실과 슬픔 속에서도 난도는 삶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저 산 너머엔 매일 밤 고통으로 지새울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이었다. 난도는 친구 로베르토와 해발 5천 미터의 겨울 안데스를 넘어 칠레까지 도보로 가는 대원정을 단행했다. 추락 현장에서 칠레 로스 마이테네스에 이르는 100킬로미터를 걸어와 구조 요청에 성공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위대한 인간 영혼의 힘은 16명의 생존자를 구해냈다. 참사가 벌어진 지 30년이 지난 지금, 난도는 이 책에서 아주 솔직하고 깊이 있게 자신의 스토리를 털어놓고 있다. 이 책은 생존 실화이지만 그 이상의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죽음을 마주한 사람이 느끼는 인생의 모습과 거의 무제한적인 사랑의 힘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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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도 파라도는 엄홍길 같은 전문산악인도 아니고 섀클턴처럼 위대한 영웅도 아니었다. 추락 사고 이전 난도는 부유한 집안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인생을 즐기던 스물두 살의 청년이었다. 너무나도 평범했던 청년이 너무나 크나큰 시련 앞에 보여주는 힘은 인간에 대한 깊은 경외심마저 갖게 한다.
저지대 국가 우루과이 출신의 난도는 제대로 된 산을 타본 적도 없었다. 60일이라는 긴 시간을 추위와 배고픔으로 탈진된 상태였다. 크램폰, 쇠 피톤, 얼음도끼 등 설산을 타기 위한 어떤 장비도 없이 몇 벌의 여름옷을 겹쳐 입고 럭비화를 신은 채 안데스를 넘어 칠레 로스 마이테네스까지 100킬로미터를 걸어 구조 요청에 성공했다. 2006년 2월 내셔널지오그래픽 지는 전문산악인들로 팀을 구성해 난도의 원정을 재현했는데 그들조차 이것은 기적이고 위대한 인간 의지의 승리라고 경이로워했다. 위대한 자연 그러나 그보다 더 위대한 인간의 영혼 안데스는 이미 인간이 지상을 걸어 다니기 수백만 년 전에 지각으로부터 불쑥 융기하여 존재하고 있었다. 거대한 산악의 압도적인 위용, 순백으로 빛나는 바람 부는 눈밭, 너무 청명해 깊이를 알 수 없는 안데스의 하늘. 안데스는 원초적인 자연 그대로였고 공포에 가까운 아름다움이었다. 그 곳에서 한 인간은 변태였고 자그마한 벌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뜨거운 영혼을 가진 ‘인간’이었다. 죽음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순간에도 부상자들을 먼저 배려했고, 그 삭막한 곳에서도 생일 파티를 여는 여유를 보였으며, 더 이상 먹을 식량이 없을 때에도 난도의 어머니와 여동생의 시체는 건드리지 않았다. 이 책은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 하지만 한편으론 또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느끼게 해 준다. 저마다의 안데스를 안고 사는 모든 이들을 위한 책 누구에게나 시련은 운명처럼 찾아온다. 난도에게도 그렇고 자기 아이를 치어 죽인 한 여성에게도 그랬다. 난도의 이야기가 상실과 고통에 빠진 사람들에게 깊은 유대감을 선사하는 것은 고통의 모양은 다르지만 심원한 곳에서 본질은 서로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녀도 난도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인생을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그녀는 안데스의 차가운 바람을 맞아본 적도 없었지만 ‘그의’ 이야기는 곧 ‘그녀의’ 이야기가 되었다(에필로그 中). 누구나 저마다의 안데스를 안고 살아가기에 수십 년 전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이야기가 시공간의 간격을 넘어 이토록 큰 감동을 준다. 1991년 이후 난도는 세계적인 인기 강연가로 활동중이다. 인육 먹기는 생존 위한 불가피한 선택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안데스 이야기를 인육을 먹으며 살아남은 엽기적인 사건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난도는 당시의 상황을 굶어 죽거나 인육을 먹거나 하는 양자택일의 순간이었다고 말한다. 인육을 거부하는 생존자들도 있었지만 그때 끝까지 먹지 않았더라면 절대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다. 1972년 12월 교황청은 “생존을 위해 인육(人肉)을 먹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가톨릭 관계자들은 인육 먹기를 거부하여 죽음을 택한 것이 오히려 죄를 구성한다고 해석했다. 죽은 사람들의 부모들도 그 행동을 불가피했던 것으로 이해해주었다. 난도는 카니발리즘(cannibalism; 동족을 먹음) 대신 네크로퍼지아(necrophagia; 죽은 시체를 먹는 것)라는 용어를 써 달라고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