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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오래된 질문들과 풋내기 과학
오래된 질문들 베이비 0.0 소크라테스의 참신한 실험 지식의 대사슬 피아제와 비고츠키 아기를 보는 새로운 관점: 아기에게도 속셈이 있다 2장. 사람을 배우다 갓 태어난 아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 영원한 삼각관계 평화와 갈등의 탐색전 입장 바꿔 바라보기 언어의 다락방 ‘관하여’에 관한 학습 세 살배기가 연기하는 사랑과 기만의 연속극 몰랐다는 것을 아는 것: 교육과 기억 어떻게 그토록 짧은 시간에 그토록 많은 것을 배울까? 3장. 사물을 배우다 갓 태어난 아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 보자기 밑에 숨긴 열쇠 무엇 때문에 이 일이 일어났는가? 종류별로 나누기 어떻게 배우는 걸까? 4장. 말을 배우다 소리 부호 의미 만들기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문법 갓난아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 옹알이의 바벨탑 초기 단어들 단어에서 문장으로 어떻게 배우는 걸까? 5장. 과학자들이 아동의 마음에 대해 알아낸 것들 진화의 프로그램들 《스타 트렉》의 고고학자들 선천적 토대 학습 타인들 6장. 과학자들이 아동의 뇌에서 알아낸 것들 어른 뇌 뇌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뇌 배선하기: 나한테 말을 걸어 봐 시냅스의 가지치기: 버림으로써 얻는 방법 ‘결정적 시기’란 있을까? 사교하는 뇌 항해하는 뇌 7장. 영광 뒤의 구름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 구름들 |
Alison Gopn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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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는 어떻게 불완전한 감각을 이용해 그토록 많은 사실을 알아내는가?
철학의 한 분과인 인식론은 지식의 문제, 즉 인간의 앎에 대해 질문한다. 이 질문은 세 형태로 나타나는데, 타인의 마음 문제?외부세계 문제?언어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타인의 마음 문제는 한 명의 인간을 나와 비슷한 욕망과 마음을 지닌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과 관련되며, 외부세계 문제는 인간과 다른 특성의 사물들을 이해하는 것으로 끊임없이 변하는 감각정보로부터 사물을 인식하는 것과 관련된다. 마지막으로 언어문제는 빠르고 정교한 소리들로부터 음소, 단어, 문장을 이해하는 것과 관련된다. 그렇다면 아기들은 이 지식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최신의 대답은 아기를 일종의 특별한 컴퓨터로 간주한다. 아기는 실리콘칩 대신 신경세포로 만들어진 컴퓨터이며, 진화에 의해 프로그램된다. 아기는 외부 세계에서 입력되는 정보, 즉 명멸하는 혼란스러운 감각들을 포착해 모종의 방법으로 그것들을 사과, 탁자, 숟가락으로 번역한다. 아기는 세상에 대한 상당한 양의 지식을 최초의 프로그램 안에 내장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아기들 역시 사람과 사물과 언어에 대해 많은 것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지식을 바로바로 고치고 다시 쌓고, 다시 짜는 데 필요한 강력한 학습 메커니즘이 아기와 아동에게 있다는 것이다. 반면, 컴퓨터는 이 부분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패턴화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매우 뛰어나지만, 학습에는 영 신통치 못하다. 학습 방법을 자발적으로 바꾸지도 못한다. 또 한 가지로, 아기들은 우주에서 가장 훌륭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바로 엄마다. 어른들의 도움은 아기가 쉽게 학습할 수 있도록 행동하게끔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지원은 아기의 발달 과정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사실상 그 자체를 시스템의 일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인간 아기의 연산 시스템은 시신경이 아니라 언어와 사랑에 의해 유지되는 하나의 네트워크다. (본문 28~29쪽) 갓 태어난 아기가 정말로 무언가 알고 있을까? 17세기의 철학자 존 로크는 갓 태어난 아기는 ‘빈 서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즉, 그는 신생아들이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빈 서판’ 논쟁은 최근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스티븐 핑커에 의해 비판받았다. 방금 엄마 몸에서 나와 병실에 누워 있는 아기들조차도 사람을 구별할 수 있고 사람 얼굴을 좋아한다는 점을 실험으로 이 책의 저자들은 확인했다. 또한 사물을 구별하고 분류하기 위해 신생아들은 사물의 경계들에 주목한다. 그렇다고 해서 아기들의 세계가 움직임이 없는 정적인 세계도 아니다. 공과 같은 움직이는 물체를 따라 시선을 움직이며, 이 물체의 움직임이 예상했던 경로를 벗어나면 그 물체의 예상 경로에 집중한다. 결국 갓 태어난 아기도 사람과 사물을 구별할 수 있다. 아기들은 사람의 목소리와 얼굴을 좋아하지만, 동시에 줄무늬와 모서리도 좋아한다. 생후 며칠밖에 안 된 아기들은 할머니가 사온 화사하면서도 부드러운 색상의 값비싼 장남감은 쳐다보지도 않고 천장 모서리나 줄무늬 쇼핑백에 강하게 집중한다. 왜 아기들은 줄무늬를 좋아할까? 그것은 두 표면의 밝기와 재질에서 뚜렷한 대조를 보이면서, 사물들이 시작되는 지점과 끝나는 지점을 확연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린 아기들에게 복잡한 그림을 보여 준 다음 그들의 눈동자의 움직임을 시선이 향하는 지점을 따라 기록해 보면, 아기들이 사물의 바깥쪽 경계에 주목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신생아들은 윌리엄 제임스가 “와글거리는 혼돈”이라고 부른 그들의 감각에 벌써 질서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이미 세계를 여러 개의 분리된 사물들로 조직하고 있는 것이다. 경계에 주목하는 것은 정적인 그림을 하나하나의 사물로 분리해 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기의 세계가 정적인 건 아니다. 병실에서도 사물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신생아들은 움직이는 사물을 눈으로 좇는다. 또한 아기들은 그 사물의 향후 움직임을 예측하는 것 같다. 아기에게 테이블 위를 구르는 공처럼 특정한 속도로 특정한 경로를 따라 움직이는 물체를 보여 준다고 하자. 이를테면 아기들이 보는 데서 굴린 공이 가리개 뒤로 사라졌다가 가리개 반대편에서 다시 나타나게 해보라. 아기들은 공이 같은 속도로 같은 경로를 따라 계속 구르면, 다시 나타나게 될 가리개 반대편을 쳐다볼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거기서 다시 공이 나타나면, 아기들은 별로 놀라지 않고 눈으로 계속 공을 좇는다. 그러나 거기서 공이 나타나지 않거나, 다른 지점에서 나타나거나, 너무 빨리 혹은 너무 늦게 나타나면 아기들은 가리개의 가장자리를 더 오랫동안 집중해서 바라본다. 실제로 아기들은 종종 가리개의 반대쪽 끝을 다시 보거나, 사물이 마땅히 거쳐 갔어야 할 경로를 쳐다본다. 이처럼 아기들은 사물이 어디에 있어야 하며, 언제 거기에 나타날지를 예측하는 것처럼 보인다. (본문 102~105쪽) 양육도 본성이다 아기들을 양육하는 데 있어 엄마의 역할이 지대하며, 아동 발달을 연구하는 분야도 주로 엄마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의하면 아기들은 엄마나 아빠뿐만 아니라 그 밖의 다른 사람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즉, 아기에게 말을 할 때는 누구나 모방게임을 하거나 모성어를 사용한다. 네 살짜리 꼬마도 어린 동생에게 말을 할 때 모성어를 사용하며, 손위 형제자매가 있는 경우에는 외동 아이보다 자신과 타인의 마음이 다르다는 사실을 더 빨리 깨닫는다. 여기서 아기들과 모방게임을 하거나 모성어를 사용하는 것이 거의 비의도적으로 행동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어른들이 아기를 대하는 본능적인 행동과 아동들이 어른을 대하는 본능적인 행동이 결합하여 아기들은 사람, 사물, 세상에 대해 학습한다. 최근의 발달 연구에 의하면, 아동과 어른의 상호 작용은 인간의 모든 것들이 다 그렇듯이 선천적이고 깊이 각인된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아기들은 너무나 귀엽다. 아기들의 귀여움은 깊이 각인된 생물학적 사실이다. 그것은 아기에 대해서나 어른에 대해서나 똑같이 적용되는 사실이다. 그 일부는 단순히 신체적인 것이다. 이마가 불룩 튀어나온 짱구머리, 큰 눈, 조그만 입과 턱의 아기 얼굴을 보면 어른들은 자신도 모르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또 아기들은 엄마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애정을 촉발시킨다. 그러나 귀여움의 효과가 전적으로 신체적인 것만은 아니다. 모방에 대해 생각해 보라. 영화 《ET》에서 주인공 엘리엇과 관객들은 ET의 귀여운 얼굴을 보자마자 이 외계인에게 빠져든다. 그러나 진정한 연결고리는 ET가 엘리엇의 행동을 따라 하는 바로 그 순간에 시작된다. 엘리엇과 관객들은 이러한 상호작용에서 ET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상당 부분 우리와 비슷한 생명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기들도 어른들만큼 따라 하기 게임을 좋아하는 듯하다. 아기만 어른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도 자기도 모르게 아기들을 따라 한다. 아기의 입에 먹을 것을 떠넣어 줄 때 엄마도 입을 벌린다. 신체적 귀여움과 마찬가지로, 어른들과 아기들은 서로 따라 하기에 몰두하도록 생물학적으로 설계되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 두 가지 현상에는 흥미로운 차이점이 있다. 아기 얼굴에 대한 생물학적 선호는 자연에 의해 주입된 것 같다. 그것은 일종의 본능이며, 아기의 얼굴 자체도 두말할 필요 없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모방은 실제로 아기가 유전적으로 결정되지 않은 새로운 방식으로 행동하게끔, 주변 어른들과 유사한 방식으로 행동하게끔 유도한다. 모방은 문화의 엔진이다. 어린 아동들은 주변 어른들을 모방하면서 가족, 공동체, 문화권 등 자신이 속한 특정한 사회집단 안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배운다. 이를 통해서 활을 그리기도 하고, 인형에 옷을 입히기도 하며, 심지어 이빨이 촘촘한 플라스틱 조각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내리거나, 밤마다 뻣뻣한 솔로 이빨을 문지르는 기괴한 의례 행동을 배운다. (본문 226~230쪽) 학습에 ‘결정적 시기’란 있을까? 어린 나이에 외국어를 배우는 게 어른이 되어서 배우는 것보다 훨씬 쉽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나라에 조기 유학 붐이 일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성인이 되어서 아무리 학원에 전전하더라도 어렸을 때 외국어를 배운 사람에 비해 그 활용 능력이 뒤떨어진다. 왜 그럴까? 여기에 발달심리학자들의 답변이 있다. 즉, 학습과 경험에 ‘결정적 시기’라는 기간이 있어서, 이 기간의 학습과 경험이 그 이후를 결정한다는 주장이다. 노랑턱멧새의 경우 울음소리를 결정적 시기에 학습하지 못하면, 그 이후에는 우는 법을 학습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결정적 시기가 모든 경험을 ‘결정’하는 걸까?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결정적 시기라고 할 만한 폭발적인 시냅스 연결시기가 분명히 존재하긴 하지만, 그 이후 경험에 의해서도 시냅스 연결방식이 바뀔 수 있다고 한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인간의 능력을 고려해보면, 결정적 시기 이후에도 학습은 가능하다. 일부 발달심리학 연구자들은 아기의 뇌가 특정한 종류의 경험들에만 문을 열어 주며, 기회가 주어지는 기간도 짧다고 주장한다. 마치 뇌에 문이 달려 있어서 그 문이 열려 있는 어떤 결정적 기간 동안 경험이 쏟아져 들어오다가 갑자기 문이 쾅 닫혀 버린다는 식이다. 과연 그럴까? 뇌발달과 경험의 타이밍에 관한 이러한 의문들은 신경과학자들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취학 전에 적절한 언어를 듣지 못한 아동들이 정상적으로 말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애정이 결핍된 고아원에서 자란 아기들은 평생 정서적 상처로부터 벗어나지 못할까? 초기 발달 단계에 진행되는 신경계의 흔적이 대단히 독특하며 이후의 발달 단계들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데는 모두 동의한다. 문제는 경험의 유효기간을 결정하는 특수한 ‘시계’의 존재 여부다. 학습 기회에는 얼마나 엄격한 시간제한이 있는가? 한 가지 실험을 예로 들어 보자. 실험자들은 태어난 시기가 다른 새들에게 녹음된 새 울음소리를 들려주었다. 노랑턱멧새의 경우 울음소리 학습의 문은 30일 동안만 열려 있었다(생후 20일에서 50일 사이). 이 기간에 적절한 새 울음소리를 듣지 못한 수컷 새는 정상적으로 우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따라서 짝을 유혹하지도 새끼를 낳지도 못한다. (우는 법 배우기는 수컷 새에게 대단히 중요하다. 한 번의 짹짹거리는 소리 안에 생김새와 부와 힘이 다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뒤늦게 울음소리를 들려줘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결국, ‘결정적 시기’가 지나면 생물학적 알람시계가 울리면서 문이 꽝 닫혀버리고 경험이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렸을 때보다 커서는 외국어를 배우기가 훨씬 더 어렵다. 이민자들이 새로 정착한 나라의 언어를 배우려고 아무리 기를 써도 자식들한데 뒤처지기 마련이다. 얼마 동안 외국에 머물라치면 우리는 단어장에 코를 박고 낑낑거리는데 아이들은 벌써 놀이터에서 그곳 아이들과 즐겁게 수다를 떨고 있다. 결정적 시기에 관한 이러한 사례들은 생물학적 시계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경험이 시계에 완전히 지배되지 않는다는 것이 새로운 견해다. 성숙이 유연한 학습 시기의 문을 완전히 닫아버린다고 보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본문 256~261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