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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8장 오·월의 쟁패
제9장 전국(戰國)의 쟁웅
제10장 대일통의 완성

저자 소개 3

司馬遷,자장(子長)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B.C.145~B.C.90 추정). 섬서성 용문(龍門) 출신으로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의 뒤를 이어 한 무제 때 태사령(太史令)을 지냈다. 그는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고자 국가의 장서가 있는 석실과 금궤에서 수많은 자료를 정리하고 수집하며 역사서 저술에 임한다. 그러나 기원전 99년 이릉(李陵)의 흉노 투항 사건이 일어나자 홀로 그를 변호하다가 무제의 노여움을 사 치욕적인 궁형에 처해진다. 사마천은 오직 『사기(史記)』를 완성시키겠다는 일념으로 그 치욕을 견디며 살아남았다. 마침내 아버지의 유지를 받든 지 약 20년 만에 중국 역사의 대작 『사기』가 완성되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B.C.145~B.C.90 추정). 섬서성 용문(龍門) 출신으로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의 뒤를 이어 한 무제 때 태사령(太史令)을 지냈다. 그는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고자 국가의 장서가 있는 석실과 금궤에서 수많은 자료를 정리하고 수집하며 역사서 저술에 임한다. 그러나 기원전 99년 이릉(李陵)의 흉노 투항 사건이 일어나자 홀로 그를 변호하다가 무제의 노여움을 사 치욕적인 궁형에 처해진다. 사마천은 오직 『사기(史記)』를 완성시키겠다는 일념으로 그 치욕을 견디며 살아남았다. 마침내 아버지의 유지를 받든 지 약 20년 만에 중국 역사의 대작 『사기』가 완성되었다. 이 책은 역사 서술의 새로운 전형인 기전체(紀傳體)를 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방대한 사료를 객관적으로 취사 선택하면서도 저자의 깊은 인간애와 통찰을 담아내어 인류 최고의 역사서 중 하나로 칭송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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司馬光 ,우부, 우수

중국 북송시대의 정치가이자 역사가인 사마광은 산서성 출신으로 속수선생(涑水先生)이라고도 하며, 죽은 뒤 온국공(溫國公)에 봉해졌으므로 사마온공(司馬溫公)이라고도 한다. 스무 살에 진사가 된 뒤 출세가도를 달렸으나 신종이 왕안석을 발탁하여 신법을 단행하자, 이에 반대하여 추밀부사 직을 사퇴하고 지방으로 나갔다. 특히 사마광은 유가에서 혁명적 이론을 포함하고 있는 맹자와 달리 맹자 이전의 공자로 돌아가 점진적 개혁을 주장한 인물로 유명하다. 당시 사마광은 편년체 역사서『자치통감(資治通鑑)』을 쓰고 있었는데, 신종은 이 책의 완성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084년 마침내
중국 북송시대의 정치가이자 역사가인 사마광은 산서성 출신으로 속수선생(涑水先生)이라고도 하며, 죽은 뒤 온국공(溫國公)에 봉해졌으므로 사마온공(司馬溫公)이라고도 한다.
스무 살에 진사가 된 뒤 출세가도를 달렸으나 신종이 왕안석을 발탁하여 신법을 단행하자, 이에 반대하여 추밀부사 직을 사퇴하고 지방으로 나갔다. 특히 사마광은 유가에서 혁명적 이론을 포함하고 있는 맹자와 달리 맹자 이전의 공자로 돌아가 점진적 개혁을 주장한 인물로 유명하다.
당시 사마광은 편년체 역사서『자치통감(資治通鑑)』을 쓰고 있었는데, 신종은 이 책의 완성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084년 마침내 『자치통감』을 완성하고 신종이 이어 등극한 철종 때 중앙에 복귀한다. 재상으로서 왕안석의 신법을 폐지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폈으나 몇 달 안 되어 죽었다.
저술로는 『자치통감』 외에 『속수기문(涑水紀聞)』, 『사마문정공집(司馬文正公集)』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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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역신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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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東埈

고전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과 사람의 길을 찾는 고전 연구가이자 평론가다.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안목에 열정이 더해져 고전을 현대화하는 새롭고 의미 있는 작업을 계속 진행하고 있으며, 이러한 작업의 일부를 정리해 책으로 펴내고 있다. 100여 권에 달하는 그의 책은 출간 때마다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많은 독자에게 고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2019년 4월 25일 64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저서 및 역서로는 『삼국지 통치학』, 『조엽의 오월춘추』, 『전국책』, 『조조통치론』, 『중국 문명의 기원』, 『공자의 군자학』, 『맹자론』, 『순자론』, 『노자
고전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과 사람의 길을 찾는 고전 연구가이자 평론가다.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안목에 열정이 더해져 고전을 현대화하는 새롭고 의미 있는 작업을 계속 진행하고 있으며, 이러한 작업의 일부를 정리해 책으로 펴내고 있다. 100여 권에 달하는 그의 책은 출간 때마다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많은 독자에게 고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2019년 4월 25일 64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저서 및 역서로는 『삼국지 통치학』, 『조엽의 오월춘추』, 『전국책』, 『조조통치론』, 『중국 문명의 기원』, 『공자의 군자학』, 『맹자론』, 『순자론』, 『노자론』, 『주역론』, 『대학.중용론』, 『인식과 재인식을 넘어서』, 『열자론』, 『후흑학』, 『인물로 읽는 중국 현대사』, 『장자』, 『한비자』, 『조조의 병법경영』, 『귀곡자』, 『상군서』, 『채근담』, 『명심보감』, 『G2시대 리더십으로 본 조선왕 성적표』, 『욱리자』, 『왜 지금 한비자인가』, 『묵자』, 『고전으로 분석한 춘추전국의 제자백가』, 『마키아벨리 군주론』, 『관자』, 『유몽영』, 『동양고전 잠언 500선』, 『관자 경제학』, 『동서 인문학의 뿌리를 찾아서』, 『시경』, 『서경』, 『당시삼백수』, 『제갈량 문집』, 『국어』, 『춘추좌전』, 『인물로 읽는 중국 근대사』, 『풍몽룡의 동주열국지』, 『십팔사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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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6년 10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522쪽 | 740g | 153*224*35mm
ISBN13
9788952205667

출판사 리뷰

통치학의 교과서 ―『춘추좌전(春秋左傳)』 『자치통감(資治通鑑)』 『사기(史記)』
난세를 모르면 제대로 된 정사를 펼 수 없다. 인간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역사상 가장 극심했던 난세를 꼽으라면 단연 춘추전국시대를 들 수 있다. 예로부터 ?춘추좌전? ?자치통감? ?사기?는 춘추전국시대에 관한 3대 정사(正史)로 손꼽혀 왔다.
?사기?는 사마천이 근 10년간에 걸쳐 완성한 기전체(紀傳體) 사서로 간결하면서도 미려한 문체로 춘추전국시대의 인물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놓았다. ?사기?는 통상 ?춘추좌전?과 ?자치통감?의 전 단계로 간주된 까닭에 오래전부터 사대부들의 필독 교양서로 널리 읽혀 왔다. 일찍이 세종은 이같이 말한 바 있다.

“내가 경연 자리에서 ?사기?와 ?춘추좌전? 등에 나오는 옛 일을 물었으나 모두 모른다고 했다. 지금의 선비들은 비록 사서삼경을 공부한다고는 하나 그 이치를 터득했다는 얘기를 나는 아직 듣지 못했다.”

이는 사대부들의 역사에 관한 얕은 지혜를 질타한 것이다. 세종이 역사를 얼마나 중시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세종이 ?자치통감?의 완질(完帙)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다가 무위로 끝나자 특별히 명나라 황제에게 사신을 보내 이를 부탁한 사실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세종이 가장 보고자 했던 사서는 북송대의 사마광이 편찬한 ?자치통감?이었다. ?자치통감?은 사마광이 군왕의 통치에 도움을 주기 위해 나이 48세 때 시작해 죽기 직전인 나이 66세에 이르기까지 무려 19년간에 걸쳐 완성한 편년체(編年體) 사서이다. ?자치통감?은 그 양이 매우 방대해 역대 군왕 중 이를 독파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이 주희가 축약해 놓은 ?통감강목?만을 읽었을 뿐이다. 그러나 ?통감강목?은 ?자치통감?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것으로 역사를 보는 시각 자체도 편협해 ?자치통감?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세종은 역대 군왕 중 ?자치통감? 전질을 가장 열심히 읽은 사람에 속한다. 원래 ?자치통감?은 ?춘추좌전?에 감명을 받은 사마광이 ?춘추좌전?이 끝나는 춘추시대에 뒤이어 전국시대부터 기술한 사서이다. 사마광이 ?춘추좌전?의 체제를 그대로 본받아 ?자치통감?을 편년체로 저술한 것은 성어를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방대한 역사적 사실을 종합적으로 서술코자 한 데 있었다.
이로 인해 예로부터 ?춘추좌전?은 위정자의 필독서로 간주되어 왔다. 소위 ‘좌전벽(左傳癖)’이라는 성어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근대에 들어와 가장 유명한 ‘좌전벽’의 주인공으로는 일본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한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를 들 수 있다. 그는 평생에 걸쳐 ?춘추좌전?을 모두 17번 독파했다고 한다. 그가 일본의 근대화를 강력히 주장하며 부국강병을 추구한 것도 바로 그의 이런 ‘좌전벽’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세종과 후쿠자와의 예를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과거에는 이들 3대 사서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으면 경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정사 또한 제대로 펼 수 없다는 게 하나의 상식으로 통했다. 동양의 역대 위정자들이 춘추전국시대를 다룬 이들 3대 사서를 숙독해 인간과 국가공동체를 바라보는 안목을 크게 키운 뒤 정사에 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사실 이는 현재에도 그대로 통용되는 진리이다. 그러나 현대의 위정자 중 ?춘추좌전? ?자치통감? ?사기?를 제대로 읽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여기에는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나 우선 그 양이 방대할 뿐만 아니라 그 내용 또한 접근이 쉽게 않은 점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3대 사서를 바탕으로 춘추전국시대의 역사를 보다 알기 쉽게 체계적으로 편제한 이 책이 나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춘추전국시대 112년간의 공백을 재구성
한국인들에게 중국 역사 하면 기전체 사서인 ?사기?가 떠오를 정도로, ?사기?는 중국 역사를 대표하는 뛰어난 저작이다. 하지만 사마천은 ?사기?를 저술할 때 소위 ‘정통관(正統觀)’의 관점을 채택했다. 정통관에 입각해 시대를 분석할 때는 부득이 특정 국가를 선택해 정통성을 부여할 수밖에 없다. ?사기?와 ?삼국지?가 각각 진(秦)과 조위(曹魏)를 정통으로 선택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따라서 기전체 사서는 승자를 역사의 주인공으로 삼고 나머지 패자는 모두 역사의 조연으로 간주하는 특징이 있다. 실제로 ?사기?에서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인물일지라도 주인공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을 때 세가나 열전으로 밀려나 있다.
이에 비해 ?춘추좌전?과 ?자치통감?은 천하가 분열되어 있는 난세를 서술하면서 기전체가 전제로 삼고 있는 소위 정통관의 관점을 채택하지 않았다. 천하가 분열되어 있는 난세에는 열국을 공히 같은 위치에 놓고 다루는 소위 ‘무통관(無統觀)’에 입각해 기술해야 한다는 것이 두 사서의 기본 입장이다. 이 점이 바로 편년체 사서가 기전체 사서를 넘어서는 지점이다. 기전체 사서는 앞선 왕조를 폄하고 분열시대를 일과성 혼란기로 기술해 놓아 역사적 실체를 찾아내는 데 적잖은 한계를 노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한계는 정사(正史)로 남아 있는 대부분의 기록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은 ?춘추좌전?과 ?자치통감?권1-권7을 완역한 위에 ?춘추좌전?과 ?자치통감?이 전혀 다루지 않은 112년간의 공백 기간을 ?사기?를 토대로 편년체로 재구성해 놓은 것이다. 또한 역사적 사실을 더욱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춘추좌전?과 ?자치통감?이 다루고 있는 시기에 대해서도 해당 내용을 보완할 수 있는 내용을 ?사기?와 각종 기록에서 추출해 부기(附記)해 놓았다. 난세의 인물 군상이 모두 살아 움직이고 있으며 어느 한 왕조를 두둔하지 않는다는 점, 춘추전국시대의 전 역사를 아우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춘추전국시대의 역사적 사실을 총망라해 놓은 또 하나의 고전에 해당하는 셈이다.
난세를 헤쳐 나가는 법
① 외교는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전국시대의 패권은 ‘전국7웅’, 즉 제(齊), 초(楚), 진(秦), 연(燕), 위(魏), 한(韓), 조(趙) 이렇게 일곱 나라가 다투었다. 이중 진나라가 다른 세력보다 강성했기 때문에 다른 여섯 나라는 모두 진나라를 특히 경계했다. 낙양 출신 소진(蘇秦)은 진나라의 왕(진혜문왕)을 만나 진나라가 천하를 쥘 수 있는 방법을 유세했으나 진혜문왕(秦惠文王)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소진은 연나라로 가서 연문공(燕文公)에게 동쪽의 여섯 나라가 종으로 연합해 서쪽의 진나라에 대항해야 함(합종책)을 역설했다. 연문공은 이를 받아들였고, 소진은 나머지 다섯 나라를 돌며 합종책을 유세했다. 그는 여섯 나라의 연합이 가져올 이득을 각자의 입장에 서서 설득력 있게 제시했고, 결국 여섯 나라를 하나로 묶는 데 성공한다. 그 공으로 소진은 동시에 여섯 나라의 재상이 되어 뛰어난 임기응변과 지기로 이 연합을 이끌어 나가 진나라의 침략을 막았다.
그러는 동안 소진은 여섯 나라의 다른 세력들의 계속된 견제를 받다가, 끝내는 연나라에서 버림을 받았고 결국 제나라에서 죽임을 당한다. 소진의 죽음 이후, 그와 동문수학했던 장의가 진나라를 맹주로 섬기면서 여섯 나라가 종으로 관계를 맺는 종횡설을 유세한다. 장의는 상대의 불안감을 감지하고 합종의 허약함을 일깨우는 데 주력한다.

무릇 제후들이 합종의 맹약을 맺으면서 원수(洹水)에서 맹세하기를, 형제처럼 결속하여 서로 도와주며 보위키로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란 친형제도 오히려 전재(錢財)를 놓고 서로 싸우며 서로 살상하고 있습니다. (중략) 대왕이 친나라를 섬기지 않으면 친나라가 군사를 내어 하외(河外: 황하 이남 지구)로 쳐들어와 권읍(卷邑: 하남성 원양현)과 연읍(衍邑: 하남성 정주시 북쪽), 산조(酸棗: 하남성 연진현 서남쪽)를 점령할 것입니다. 이어 그곳을 거점으로 위(衛)나라를 위협하여 양진(陽晉: 산동성 운성현)을 취하면 조나라는 남진해 돕지 않을 것이고, 그리되면 위나라도 북쪽으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위나라가 북쪽으로 가 조나라를 돕지 않으면 합종의 도리는 끊어질 것입니다. 그리되면 군주가 다스리는 위나라는 위험이 없기를 바라더라도 그리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3권 288쪽)

장의의 종횡설을 받아들인 여섯 나라는 당분간 자신들의 세력을 유지하는 데 성공하나, 종국에 이르러서는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것으로 역사가 마무리된다.

② 백성을 풍족하게 하고 대의를 받든다.
춘추전국시대를 제패했던 5명의 인물을 ‘춘추5패(春秋五覇)’라고 하는데, 그중 제일은 단연 제환공(齊桓公)이다. 그는 관중(管仲)이라는 뛰어난 인물을 등용했는데, 관중은 천자를 대신해 제후들을 호령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관중은 우선 강력한 중농(重農)정책을 실시해 국가재정을 확립하고 국민경제를 안정시켰다. 특히 균등한 분배와 감세 정책(소금과 철에만 세금을 매김)을 통해 인민이 편안한 마음으로 생산에 진력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창고 안이 충실해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족해야 영욕을 안다.”라는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관중은 입국(立國)의 요체는 ‘지례(知禮: 예의염치를 아는 것)’에 있고, 지례의 핵심은 ‘실창(實倉: 창고를 채우는 것)’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 현실정치가였다.
하지만 국가가 부강하다고 해서 패업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서 관중이 주시한 것은 주왕실을 보필하여 쇠락한 왕조를 부흥시킨다는 대의였다. 압도적인 힘을 지니고 있으되 천자를 극진히 보필하는 것, 즉 존왕양이(尊王攘夷: 왕실을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침)의 논리가 난세를 평정하는 데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다. 제환공은 관중의 정치학을 그대로 실천에 옮겨 결국 패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후 춘추전국시대를 평정한 패자들은 모두 관중의 정치철학을 모범으로 삼았다.

③ 덕(德)을 숭상하되 때를 가린다.
덕은 패업의 필수조건이다. 초나라가 채나라를 치러 갔을 때, 진나라 집정대부 한기가 숙향에게 과연 초나라가 채나라를 이기겠느냐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숙향은 기울어가는 채나라를 초나라가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답하면서, 동시에 초나라도 오랫동안 흥성하지는 못할 것이라 말했다. 초나라의 왕이 신의(信義)가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제가 듣건대 ‘신의 없이 얻은 요행은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중략) 하늘이 불선(不善)한 자를 한때 돕는 것은 그에게 복을 주는 것이 아니고 그의 흉악(凶惡)을 더하게 한 뒤 벌을 내리려는 것입니다. 이를 하늘의 운행에 비유하면 하늘에는 5재(五材: 5행)가 있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이를 교대로 사용케 하다가 효용이 떨어지면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로써 초나라는 구제받지 못하니 최종적으로 흥성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입니다.”(2권 297쪽)

하지만 덕을 갖췄다고 해서 패업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후대의 성리학자들이 춘추5패에 넣기도 하는 송양공(宋襄公)은, 비록 덕을 갖추었지만 패업을 이룰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초나라와의 결전에서 유리한 형세를 점했음에도 상대가 아직 진영을 갖추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격을 늦추었다가 패배를 자초한 일화가 그 사실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잘못조차 깨닫지 못했다.

“군자는 부상당한 적을 살상하지 않고 이모(二毛: 斑白이 된 늙은 적)는 포획하지 않는 법이다. 용병의 도리는 적이 불리한 처지에 처한 것으로써 승리를 도모하지 않는 것이다. 과인은 비록 망국의 후손이기는 하나 대열을 다 이루지 못한 적을 향해 진격을 명할 수는 없다.”(1권 231쪽)

덕은 사람을 이끈다. 덕을 베푸는 사람에게 충직한 인재가 모여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모여든 인재들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재원들이지만, 덕에 감화하여 발현된 자신들의 충직함 때문에 오히려 자신들이 위태로운 처지에 놓일 공산이 크다. 비록 욕심은 많았을지라도 뛰어난 책략을 발휘하고 군사들을 사랑하여 초나라를 강성한 제후국으로 만든 오기(吳起)와 관련한 다음 일화는 바로 이런 경우를 보여준다.

한번은 한 병사가 종기로 고생을 하자 오기가 직접 입으로 그 종기를 빨아 치료했다. 병사의 모친이 이 이야기를 듣고 통곡했다. 이에 어떤 사람이 의아해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대의 아들은 병사에 불과한데도 장군이 직접 그대 아들의 종기를 입으로 빨아 치료해 주었는데 어찌하여 운단 말이오.”
병사의 모친이 대답했다.
“그렇지 않소. 옛날 오공이 내 남편의 종기를 빨아 준 적이 있었소. 이에 내 남편은 오공에게 감복한 나머지 후퇴할 줄도 모르고 분전하다가 마침내 적에게 죽고 말았소. 그런데 오공이 이제 또다시 내 아들의 종기를 빨아 주었으니 나는 내 아들이 어느 곳에서 죽을지 모르게 되었소. 그래서 통곡하는 것이오.”(3권 218쪽)
통치의 질서가 무너진 시대를 위하여
역사 공부는 개인의 삶뿐 아니라 공적 영역의 정치를 바라보는 안목까지 키워준다. 정치 이론을 공부하거나 현상에 대한 갑론을박에 뛰어들기 전에 역사 자체를 깊이 이해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일반인에게도 장려되는 덕목이지만, 통치자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항목이다.
중국 역사의 고전을 뼈대로 춘추전국시대를 되살린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지금처럼 급격한 변동과 과도기적 혼란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때에 이 책이 출간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독자들은 이 책 속에서 난세의 인물들의 행적을 따라가며 삶의 지침과 정치를 바라보는 안목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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