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색채와 빛'의 화가 고흐의 그림을 찾아서
제1부 파리 ― 혼탁한 도시 속에서 제2부 아를 ― 온몸으로 색채와 빛을 받으며 제3부 생 레미 ― 벽 속에 갇힌 정신의 방황 제4부 오베르 ― 치유의 땅, 끝없는 슬픔 추천의 글 ― 고흐를 향한 사사키 부부의 열정 고흐의 그림 속 풍경 찾아가기 고흐 연보 인물 해설 찾아보기 |
|
--- 이상구 flypaper@yes24.com
풍경을 배경으로 인물 사진을 찍을 때 가장 안전한 방법은 그냥 흔한 그림엽서 중에서 맘에 드는 사진이 담긴 한 통을 고른 다음 택시 기사에게 여기로 가주세요, 해서 그 사진 속 풍경 앞에 자신의 모습을 앉히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 숱한 사진 작가가 검증한 장소인 만큼 이러구러 저러구러 하지 않아도 완벽한 구도와 배경을 보장 받는 셈이다.
`반 고흐와 함께 떠나는 프랑스 풍경기행'이라는 부제를 단 『그림 속 풍경이 이곳에 있네』는 고흐가 선택한 프랑스의 풍경을 사진과 맞춰 보며 자기 자신을 살포시 앉혀 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고흐가 남긴 작품과 편지를 단서로 그가 화폭에 담았던 실제 장소를 답사하며 거기에 깃들인 고흐의 사유와 갈등을 체험할 수 있는 풍경 기행기인 셈이다. 공동 저자인 사사키 부부가 애정과 열정을 품고 모듬한 고흐 관련 각종 자료를 토대로 하여, 되도록 구체적으로 그림 속 풍경과 맞춰 찍은 사진은 마치 과거 모노톤의 흑백 필름이 컬러로 오버랩되며 현재의 상황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영상에서 익숙해진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데, 익숙해진 포맷은 진부한 감상이 아니라 넉넉한 배려로 다가온다. 고흐가 캔버스를 놓고 그렸던 그림 속 풍경은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놀랄 만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도 있지만, 세월의 풍파와 시간의 심술에 차이고 깎여 그 색과 톤을 잃어버린 곳도 허다함이 확인된다. “고흐가 편지에 직접 쓴 `몽마주르'라는 지명에 대해서 납득이 되지 않았다. 고흐가 어학에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그의 편지에는 잘못된 부분이 자주 보인다. `그 때는 내가 딴 생각을 하고 있어서'라며 주소를 잘못 써서 편지가 반송된 것에 대해 변명하는 일도 자주 있는데, `몽마주르' 설에 대해서도 고흐의 착각이나 실수라고 한다면 납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정에서 나오는 매니아적인 집요함이겠지만, 열정에 넘치는 부부 저자는 마치 수천 피스 퍼즐을 꿰맞추듯, `고흐가 고갱의 영향으로 기억에 의존해서 그리는 시험'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고흐는 융통성이 없을 정도로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린다'는 확신으로 기어이 `그림 속의 그 장소'를 찾아내 자신 있게 보여 준다. 발견의 과정을 디테일하게 묘사한 이런 부분이 자칫 무미건조하게 식상한 배경으로 전락할 수 있는 고흐의 그림 속 풍경과 사진의 사이 좋은 배치의 존재 이유를 한층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게 묘사한 프랑스 풍경의 강렬함 속에서, 점묘화법 속에서 간과하기 쉬웠던 것, 고흐가 대상에 접근하던 방식의 사실성이 그저 놀라울 뿐임을 알게 된다. 고흐가 도달한 유황과도 같고 레몬과도 같은 노란색, 코발트 블루, 물처럼 투명하면서도 밝은 하늘색 모두 프로방스 지방에 독특한 것이었으며, 생명력의 원천인 초록색은 오베르의 것이었음을 증명하듯 보여 준다. “사전 지식을 지니고 무엇인가를 실증하기 위해 현장에 가보아도 불분명한 것은 여전히 불분명하고, 수수께끼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는다. 하지만 고흐가 살았던 땅에는 반드시 무엇인가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이 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는 체험이었다.” 사실을 확인함이 결과의 추이에 상관없이 종종 허망함을 안겨 주듯, 고흐가 캔버스를 놓았던 장소에서 섰을 때의 느낌이 환희로 돌아오지만은 않았음을 저자는 어렵게 실토한다. 하지만 고흐가 살았던 땅에는 반드시 무엇인가 절심함이 있었다는, 그것은 화집이나 자료로 공부하는 것과는 다른 고흐에게 접근하는 새로운 길이었음을 기쁘게 고백한다. |
|
고흐가 〈밤의 카페 테라스〉를 그린 것은 9월 8일쯤이었다. 그는 "밤의 광경이나 밤이 주는 느낌, 또는 밤 그 자체를 그리는 것이 난 무척 흥미롭다"고 말했다.
당시 편지에서 "우리가 자주 다니던 포럼 광장의 카페 정경을 밤중에 그리고 있다"고 벨기에로 돌아간 보흐에게 쓰고 있다. 고흐는 아를의 성벽 안에서 생활한 것에 대해서는 편지에 거의 남기지 않았지만, 이 짧은 글을 통해 고흐도 친구들과 한잔하기 위해 번화가를 자주 찾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 매우 흥미롭다. 여기서 '포럼'이란 고대 로마시대의 '공공 광장'을 의미하며, 당시엔 훨씬 넓은 장소였을 것이다. 고흐가 살던 시대나 지금이나 이 광장은 아를에서 가장 번화가임에는 변함이 없으며, 카페에 모여드는 사람들로 언제나 늦은 시간까지 떠들썩하다. 고흐가 그렸다는 그 가게는 "카페 반 고흐"라고 노란 벽에 가득 찰 정도로 크게 써놓았다. 고흐는 초여름의 〈보리밭〉 연작에서부터 노란색의 강렬함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는 커피와 알코올로 자신을 자극하며 어떻게 하면 노란색에 도달할 수 있을까를 깊이 연구했다. 〈밤의 카페 테라스〉는 노란색 톤으로 표현한 고흐의 대표작이다. 카페 벽에 드리워진 차양을 레몬색으로 섬세하게 그렸고, 테라스를 황금색으로 표현했다. 또한 깔려 있는 돌은 황금색에 반사된 듯 보라, 노랑, 하얀색을 띠어, 화면의 5분의 3을 노란색 계열로 장식했다. 거기에 코발트블루로, 거리 안쪽으로 이어지는 집들을 검은색으로 표현함으로써 명확한 대비를 이루도록 했다. 해가 지고 거리에 불이 켜지면, 밤의 장막에 완전히 싸이기 직전의 아를의 하늘은 코발트블루가 된다. 파란색에도 단계가 있다. 아주 파란색을 띠는 순간을 포착해서 촬영하고 나니 하늘이 하늘이 금세 검은 천막처럼 변하고 만다. 시계를 보니 10시를 지나고 있었다. 고흐가 말한 "밤 광경과 그 느낌을 그 자리에서 그린다는 것"을 촬영을 통해 체험한 기분이 들었다. |
|
〈별이 빛나는 밤〉에 나타난, 마치 자연과 인간의 접점으로 승화된 듯한 세계가 지금도 아를 땅에 남아 있다.
한순간이지만, 코발트블루의 하늘에 별이 빛나고 하늘을 비추고 있는 푸른 강물 위엔 거리의 등불이 흔들리고 있었다. 우리는 슬픔과 눈부심이 한데 어우러진, 꿈속 같은 경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하늘이 쪽빛으로 변하더니 어둠은 어느새 모든 것을 삼켜버려 주위엔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론 강에 펼쳐진 색채의 향연을 지켜보며 고흐가 만들어낸 속깊은 블루의 원천에 우리는 큰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도 그 밤의 광경을 회상할 때마다 아를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힐 정도이다. 론 강은 아를 북부에서 둘로 나뉘면서 큰 론 강은 S자형으로 구불구불하게 도시 서쪽을 따라 유유히 흐르고 있으며, 고흐가 살던 '노란집'과 단골 레스토랑이 있던 라마르틴 광장도 그 강을 따라 서 있다. 고흐도 저녁 식사 후에는 이 강가를 따라 산책했을 것이다. '밤'을 무대로 한 명작을 집중적으로 그린 9월, 당시 고흐의 심경을 여동생 빌헤미엔에게 보낸 편지에서 엿볼 수 있다. "요즘, 나는 자연의 풍요롭고 멋진 모습만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명료함과 행복, 희망과 사랑이 필요하다. 내가 추하고 나이가 들고 심술쟁이가 되고 병들고 가난해질수록, 반듯하고 반짝반짝 광택이 나는 색채를 만들어 나 자신에게 저항하고 싶구나."이 작품들은 광장에서 가까운 강가에서 강의 굴곡을 따라 늘어서 있는 아를의 구시가를 바라보며 그린 것이다. |
|
"생트 마리로 소풍을 갈 생각이다. ……드디어 지중해가 보인다."차가운 북해의 폐쇄된 해안만 그렸던 고흐에게 지중해는 그야말로 동경의 바다였다. 아를에서 가장 가까운 지중해 해안은 생트 마리 드 라 메르. 고흐는 5월 30일 아침 7시, 합승마차를 타고 출발했다. 큰 론 강과 작은 론 강 사이에 낀 삼각주 카마르그 초원을 빠져나가면 지중해가 나오는데, 거리로 보면 4킬로미터 정도로 5시간쯤 걸리는 마차여행이었다. (……)
"드디어 마주하게 된 지중해는 고등어 같은 색을 띠고 있다. 초록색, 보라색, 그런가 하면 언제 파랗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빛의 반사 정도에 따라 그 다음엔 분홍색, 그리고 회색으로 변하곤 했다." 이것이 고흐가 본 지중해의 첫인상이다. 그리고 물결에 작은 배가 흔들리는 바다 풍경의 유화도 편지에서 말한 대로 "빛의 반사에 따라 고등어처럼 변하는 색채"로 그려져 있다. 생트 마리 드 라 메르의 바다는 모래사장이 많으며, 지중해라고는 하지만 코트다쥐르(푸른 해안)의 이미지와는 달랐다. 그러므로 고흐가 감동한 '지중해'라는 것도 그가 북유럽 사람이었기에 느낀 감동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왜냐하면 고흐가 왔던 5월 말은 남프랑스일지라도 아직 본격적인 여름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몇 번인가 좋은 계절에 와보았지만 언제나 바다는 잔잔하고 색깔도 선명하지 않았다. 이번 취재는 7월 초순. 우연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지만 우리가 모래사장에 섰을 때 바다는 커다란 물마루를 만들고 있었다. 빛깔도 코발트블루와 울트라마린이 적절히 되풀이되어 마치 고흐의 작품을 보는 것 같은 경치였다. |
|
〈별이 빛나는 밤〉에 나타난, 마치 자연과 인간의 접점으로 승화된 듯한 세계가 지금도 아를 땅에 남아 있다.
한순간이지만, 코발트블루의 하늘에 별이 빛나고 하늘을 비추고 있는 푸른 강물 위엔 거리의 등불이 흔들리고 있었다. 우리는 슬픔과 눈부심이 한데 어우러진, 꿈속 같은 경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하늘이 쪽빛으로 변하더니 어둠은 어느새 모든 것을 삼켜버려 주위엔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론 강에 펼쳐진 색채의 향연을 지켜보며 고흐가 만들어낸 속깊은 블루의 원천에 우리는 큰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도 그 밤의 광경을 회상할 때마다 아를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힐 정도이다. 론 강은 아를 북부에서 둘로 나뉘면서 큰 론 강은 S자형으로 구불구불하게 도시 서쪽을 따라 유유히 흐르고 있으며, 고흐가 살던 '노란집'과 단골 레스토랑이 있던 라마르틴 광장도 그 강을 따라 서 있다. 고흐도 저녁 식사 후에는 이 강가를 따라 산책했을 것이다. '밤'을 무대로 한 명작을 집중적으로 그린 9월, 당시 고흐의 심경을 여동생 빌헤미엔에게 보낸 편지에서 엿볼 수 있다. "요즘, 나는 자연의 풍요롭고 멋진 모습만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명료함과 행복, 희망과 사랑이 필요하다. 내가 추하고 나이가 들고 심술쟁이가 되고 병들고 가난해질수록, 반듯하고 반짝반짝 광택이 나는 색채를 만들어 나 자신에게 저항하고 싶구나."이 작품들은 광장에서 가까운 강가에서 강의 굴곡을 따라 늘어서 있는 아를의 구시가를 바라보며 그린 것이다. |
|
"생트 마리로 소풍을 갈 생각이다. ……드디어 지중해가 보인다."차가운 북해의 폐쇄된 해안만 그렸던 고흐에게 지중해는 그야말로 동경의 바다였다. 아를에서 가장 가까운 지중해 해안은 생트 마리 드 라 메르. 고흐는 5월 30일 아침 7시, 합승마차를 타고 출발했다. 큰 론 강과 작은 론 강 사이에 낀 삼각주 카마르그 초원을 빠져나가면 지중해가 나오는데, 거리로 보면 4킬로미터 정도로 5시간쯤 걸리는 마차여행이었다. (……)
"드디어 마주하게 된 지중해는 고등어 같은 색을 띠고 있다. 초록색, 보라색, 그런가 하면 언제 파랗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빛의 반사 정도에 따라 그 다음엔 분홍색, 그리고 회색으로 변하곤 했다." 이것이 고흐가 본 지중해의 첫인상이다. 그리고 물결에 작은 배가 흔들리는 바다 풍경의 유화도 편지에서 말한 대로 "빛의 반사에 따라 고등어처럼 변하는 색채"로 그려져 있다. 생트 마리 드 라 메르의 바다는 모래사장이 많으며, 지중해라고는 하지만 코트다쥐르(푸른 해안)의 이미지와는 달랐다. 그러므로 고흐가 감동한 '지중해'라는 것도 그가 북유럽 사람이었기에 느낀 감동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왜냐하면 고흐가 왔던 5월 말은 남프랑스일지라도 아직 본격적인 여름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몇 번인가 좋은 계절에 와보았지만 언제나 바다는 잔잔하고 색깔도 선명하지 않았다. 이번 취재는 7월 초순. 우연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지만 우리가 모래사장에 섰을 때 바다는 커다란 물마루를 만들고 있었다. 빛깔도 코발트블루와 울트라마린이 적절히 되풀이되어 마치 고흐의 작품을 보는 것 같은 경치였다. |
|
'색채와 빛'의 화가 반 고흐와 함께 떠나는 그림 속 프랑스 풍경 기행
강렬한 색채로 독창적인 화풍을 개척한 후기 인상파의 대표적 화가 고흐, 그가 화폭에 담은 장소를 답사한 미술 기행서 『그림 속 풍경이 이곳에 있네』(부제 : 반 고흐와 함께 떠나는 프랑스 풍경 기행)가 출간되었다.
고흐가 유명한 만큼 그에 관한 책은 수없이 많다. 그리고 그에 관해 알려질 만한 것은 모두 알려졌다. 그러나 고흐가 캔버스를 놓았던 장소에 서서 그의 삶과 예술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가 남긴 편지나 화집 등의 자료를 토대로 고흐의 격정적인 삶을 이야기하는 것과는 또다른 방법으로 고흐에게 다가가는 길이다. 이 책은, 그의 작품과 진실이 담긴 '편지'를 단서로 그가 화폭에 담은 '장소'를 찾아다니며 거기에 깃들인 그의 정신을 함께 체험하는 미술 기행서이다. 공동 저자인 사사키 부부가 고흐와 프랑스 인상파 화가에 대한 애정과 열정으로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하여 그 '장소'들을 직접 답사한 만큼 자세하고 정확한 정보를 지니고 있다. 또 작품 속 풍경뿐만 아니라 그가 생활한 흔적까지 차례로 찾아다니며 그의 삶의 참모습을 간결하고 섬세한 문체로 좇고 있다. 1853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빈센트 반 고흐가 37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화가로 활동한 것은 10년도 채 되지 않는다. 그는 화가로서의 삶 가운데 절반은 네덜란드에서 <감자 먹는 사람들>로 대표되는, 어두운 색채에 박력이 넘치는 그림을 그렸고, 나머지 절반은 프랑스에서 화려한 색채에 격정적인 붓터치의 그림을 그렸다. 이 책은 고흐에게 '색채와 빛'의 눈을 뜨게 해준 프랑스의 네 도시, 파리, 아를, 생 레미, 오베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파리에서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를 만나면서 '빛'을 그리기 시작한 그는 아를에서 작렬하는 태양 아래 색채와 빛을 마주하며 자신의 예술을 개화시킨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대가라도 치르듯 정신적인 위기에 빠졌으며, 자신의 귀를 자르면서 정신병원에 감금된다. 그곳이 생 레미이다. 정신병원에서 나온 고흐는 오베르로 간다. 그곳의 아름다운 시골 풍경은 상심한 고흐를 따뜻하게 감싸주지만 이미 삶의 한계에 직면해 있던 그는 결국 권총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죽기 직전에 그린 그림까지도 냉철한 화가로서의 의식을 잘 보여준 영혼의 화가 고흐. 그가 남긴 작품은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묘사되어 있지만 내뿜는 힘은 너무도 강렬하다. 고흐가 캔버스를 놓고 그렸던 그림 속 그곳, 파리의 아파트, 아를 성벽 안의 골목길, 생 레미 병원의 울타리 안 그리고 오베르의 언덕……. 그림 속 풍경은 예전 모습 그대로인 곳도 있지만 변한 곳도 많아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듯 고흐의 그림과 그가 캔버스를 세워둔 장소를 찾아가는 일은 더욱 흥미진진하다. 파리의 르픽 거리에 그가 살던 아파트가 남아 있고 몽마르트르는 아직도 고흐 시대의 내음을 풍기고 있다. 작품으로도 유명한 아를의 '노란집'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폭파되었다가 1989년 개장되어 문화센터와 도서관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고흐가 잠깐 들른 지중해안 생트 마리 드 라 메르에는 옛 모습이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생 레미 병원은 옛날 그대로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오베르는, 파리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곳으로 라부 여관, 시청, 가셰 박사의 집, 교회, 넓은 밀밭으로 통하는 좁은 길 등 예전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대로 만날 수 있다. '색채와 빛'의 화가답게 고흐의 색채에 대한 묘사는 너무도 세밀하고 아름다우며 자신이 생활한 토지의 풍토를 그대로 그림에 반영했다. 유황과도 같고 레몬과도 같은 노란색, 코발트블루 그리고 물처럼 투명하면서도 밝은 프로방스 지방의 독특한 하늘색, 그리고 생명력의 원천인 오베르의 초록색 등 그의 색채 표현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아름다운 대자연의 모습을 담은 강렬하고 화려한 고흐의 그림이, 실제 풍경을 담은 생생한 컬러 사진과 함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신화 속의 인물도, 비극의 주인공도 아닌, 광기에 시달린 적은 있지만 광인은 아니었던 위대한 화가, 그리고 불우했지만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다 간 너무도 인간적인 고흐의 백여 년 전 모습이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