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제1부 금강삼매경과 원효의 대승철학
1장. 금강삼매경론 서문과 텍스트의 교차적 읽기 2장. 이중부정과 이중긍정의 사유 3장. 차연과 우주의 로고스 4장. 심물합일의 상응론 5장. 예술-미학적 사유와 종교적 종용 제2부 대승기신론과 원효의 대승철학 1장. 대승의 본질과 그 이중구조 2장. 화쟁적 사유와 일심의 존재론 3장. 대승사상과 존재론적 혁명 4장. 사회적 마음으로서의 생멸문과 그 실존적 양상 5장. 각과 불각의 이중성 6장. 불각에서 각으로 가는 길 7장 마음의 자발적 장애를 벗은 마음의 자발적 기호 결론 : 대승사상과 신라 흥융기의 정신 찾아보기 |
KIM,HYONG-HYO,金炯孝
김형효의 다른 상품
|
저자와 편집자의 대담
머리말에서 공직생활(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책이 선생님의 철학적 여정에서 하나의 마침표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의 철학적 여정과 원효대사와는 어떤 연관이 있습니까?
“제가 철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열암 박종홍 선생님이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박종홍 선생님의 ??철학개설??을 읽게 된 것이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지원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철학과에 입학하여 가장 감명 깊게 들은 강의가 박종홍 선생님의 ‘한국사상사’였습니다. 두 가지 큰 감동과 열정을 느꼈습니다. 하나는 한국의 철학자는 한국의 철학을 정립하여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말씀이었고, 다른 하나는 원효에 대한 박종홍 선생님의 논리철학적 강의였습니다. 원효의 사상 세계가 참으로 넓고 무궁무진하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언젠가는 원효의 사상을 제 나름대로 구명해 보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또 하나의 인연은 불연 이기영선생님입니다. 이기영 선생님은 벨기에 루벵대학교의 선배가 되십니다. 이기영 선생님은 평생 동안 원효를 연구하셨고, 많은 저작을 내셨습니다. 이기영 선생님의 저작을 관심 있게 읽으면서 늘 원효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심을 늦출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서양 철학을 전공한 제가 원효의 세계로 돌아오기까지는 많은 철학적 방황이 있었습니다. 서양철학 전반에 대한 연구가 나를 구조주의로 이끌었고, 구조주의는 해체철학으로 이어졌습니다. 데리다의 해체철학 공부가 나를 하이데거로 안내했고, 노장사상과 불교를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철학을 순례하고 방황하다 보니, 원효를 쓸 무렵 정년을 맞게 된 것입니다. 또 한편으론 머리말에서도 썼듯이, 제게 연구의 장을 마련해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연구원의 명칭에 걸맞는 주제를 선택한 것이 ??원효의 대승철학??입니다.” ??원효의 대승철학??은 선생님의 학문적 이력에서 중요한 작품이고, 또 한국 철학의 세계화를 겨냥한 작품이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다음 질문을 하겠습니다. 선생님은 동서양의 모든 철학을 구성주의 철학과 해체주의 철학으로 나누시고, 원효의 대승철학을 해체주의 철학의 대표로 자리매김하셨습니다. 이러한 구분법은 아직 독자들에게 낯설 것 같습니다. 좀 쉽게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동서양과 고금의 철학 학설이 매우 다양해 보이지만, 그 뿌리를 들여다보면, 단 두 가지 사유구조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해체적 사유와 구성적 사유가 그것입니다. 구성적 사유는 진리와 존재가 내 마음 밖에 객관적으로 실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구성적 사유는 건설하고 쌓아가는 일을 중시합니다. 신전을 건설하고, 왕궁을 쌓고, 학교를 짓습니다. 지금까지 동서양의 주류 철학은 모두 구성적 사유를 해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 철학, 기독교 신학, 계몽주의 이후의 좌우를 막론한 근대 사상은 모두 구성적 사유의 산물입니다. 개념적으로든 사실적으로든 진리를 객관적으로 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진리를 내가 소유한다고 믿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진리란 무엇입니까? 참이었던 것이 거짓이 되고, 있던 것이 없어지고, 믿었던 것이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이 진리 아닙니까? 이것이 해체적 사유입니다. 해체적 사유는 절대적인 것을 부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쌓았던 것을 하나씩 비워갑니다. 모든 것은 관계성 속에서 성립하고 소멸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무無와 공空이 중요합니다. 삶이 소중한 것은 죽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가르칩니다. 또 죽음이 있기에 또 다른 삶이 일어난다는 것을 깨우쳐줍니다. 불교와 노장이 그렇고 유학의 양명학이 그렇습니다. 저는 인류가 2천년 동안 구성적 사유를 중심으로 사고해왔지만, 이제 사유의 혁명을 일으킬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21세기는 해체적 사유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원효의 대승철학은 해체적 사유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21세기 마음의 혁명에서 중요한 철학적 테마가 될 것입니다.” 구성주의 철학의 폐해를 곳곳에서 강조하셨는데, 이러한 구성주의 철학이 인류 문명의 발전의 원동력이었다는 반론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견해는 어떠신가요? “구성주의 철학은 경제기술적으로 세상을 지배하고자 합니다. 또 사회도덕적 명분론으로 세상을 구원하고자 합니다. 구성주의적 세계관이 과학과 같은 이성의 진보를 일으키고, 민주주의와 같은 사회의 진보를 일으킨다고 믿는 것이 구성주의 철학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진보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르는 것이 필연입니다.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원자의 세계를 발견한 것은 과학 이성의 큰 진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원자의 세계를 이용하려는 욕심은 핵폭탄이라는 괴물을 필연적으로 낳고 말았습니다. 또 세상을 이용가능한 자원으로 대하는 산업주의는 갖가지 환경문제를 일으켜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나의 진리에 반대하는 것은 거짓과 악이 되어 소멸시켜야 할 적이 되고 맙니다. 실용적 기능을 잃어버린 늙고 약한 것들은 가치 없는 존재가 되고 맙니다. 이러한 세계관에서 죽음은 가능한 피해야 할 무가치이거나, 부정되어야 할 몰가치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러한 소유론적 세상보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원효 철학의 핵심입니다. 세상을 소유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고 누릴 수 있을 때, 진정한 행복의 길이 열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원효의 대승철학은 이런 점에서 놀라운 혜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해체 철학에 이르게 된 선생님의 철학적 여정을 간단히 설명해주시면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제 철학적 여정은 늘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하나는 철학을 통해 나를 구원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우리나라가 문화적으로 발전하는 데 철학자로서 기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데는 박종홍 선생님의 영향이 컸습니다. 서울대학을 졸업하고 벨지움 루벵대학에 유학 갔습니다. 가톨릭대학이었는데, 거기서 프랑스 철학을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가브리엘 마르셀과 메를로-뽕띠의 실존주의와 현상학에 매료되었습니다. 이는 베르크손(베르그송)의 생철학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철학을 통해 의식 중심으로 사고하는 서양 전통 철학의 흐름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의식의 철학에 대한 회의는 자연히 나를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로 인도했는데, 루벵대학은 레비-스트로스를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독학으로 구조주의를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소쉬르, 라깡, 푸꼬로 이어지는 구조주의적 탐색은 나의 철학적 여정에서 큰 전화점이 되었습니다. 특히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사유는 나의 철학적 사유의 길에서 결정적인 전환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그것은 그동안 내가 친숙하게 익혀왔던 모든 종류의 의식 철학과 인간 중심적인 휴머니즘적 사유를 멀리하는 계기를 일깨워 주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탈구조주의 흔히 해체주의라고 불리우는 데리다와 바따이유의 철학으로 나아갔습니다. 나는 데리다의 해체 철학에 다다른 다음에야, 동양 사상을 새롭게 읽을 수 있는 눈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데리다 해체 철학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하이데거의 철학을 천착함으로써, 기존의 철학을 뒤엎는 마음의 철학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나는 동양 사상의 섭렵에 매진했습니다. 전통 유학을 거쳐 주자학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 여러 해가 걸렸고 한국 유학을 공부하는 일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주자학에서 양명학으로 나아가고, 드디어 노장사상의 해체적 의미를 탐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노자 ??도덕경??을 해체 철학의 열쇠로 맞추어보니 놀랍도록 잘 들어맞았습니다. 한밤중에 공부하던 나는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동양적 해체주의 길을 다시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에는 불교적 세계관에 빠지게 되었고, 오늘 원효의 대승철학에 관한 책을 내게 된 것입니다.” 원효의 사유가 마음의 혁명, 즉 존재론적 혁명의 길을 닦는 것으로 읽고자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의 혁명? 존재론적 혁명? 과연 어떤 것인지 알듯 모를 듯합니다. “한마디로 마음을 바꾸자는 것입니다. 기존의 구성주의 철학은 편리와 정의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각각 망가뜨렸습니다. 유위론적 현실주의 사상은 편리함을 진리로 생각케 하여, 세상을 편리의 소유라는 아집으로 보게 했습니다. 또 당위론적 이상주의 사상은 정의로움을 진리로 생각게 하여, 비정의를 박멸의 대상으로 삼는 홀로코스트를 정당화시켰습니다. 세상을 바꾸고 인간을 고쳐 낙원으로 가자는 철학입니다. 그러나 선과 악은 함께 갑니다. 구악을 무너뜨리면, 신악이 반드시 나타납니다. 끝없는 악순환이 되풀이 될 뿐입니다. 원효의 대승철학은 마음을 닦자고 합니다. 있는 그대로 세상이 보여지도록 마음을 닦기만 하면 됩니다. 마음을 닦다보면, 내가 사라집니다. 내 마음은 우주의 마음이 됩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의지도 흐려져 없어집니다. 존재론적 혁명은 무아無我와 무위無爲의 철학입니다. 너와 내가 하나가 되고, 우주와 하나가 되는 일여一如의 철학입니다. 지금 시대가 원효가 말하는 해체적 무無의 사상을 닮으려는 시절 인연이 도래하고 있습니다. 원효의 철학은 미래 세상의 혁명을 이끄는 존재론적 사유의 상징이 될 것입니다.” 결론에서 원효의 대승사상이 신라를 흥융시킨 시대 정신이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남북으로 나뉘어 핵폭탄을 볼모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는 한반도의 현실에 원효의 사상은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까? “한 나라가 망하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또 한 나라가 흥하는 것에도 분명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원효의 대승철학에서 무사지공無私至公의 정신을 보았고, 이 정신이 신라를 흥융시킨 힘이라고 믿습니다. 대승大乘이란 무엇입니까? 누구나 탈 수 있는 큰 수레 아닙니까? 그러나 아무리 큰 수레라도 짐이 잔뜩 실려 있다면 어떻게 사람들이 올라 타겠습니까? 신라는 작은 나라였지만 국민과 지도자가 한 마음이 되어, 자기보다 큰 나라인 백제, 고구려를 이겼고 결국 당시 세계 제국인 당나라까지 물리쳤습니다. 지금 남북의 지도자는 이것을 잘 새겨야 할 것입니다. 나라를 지키고 적을 막는 것은 원자탄도 아니고 미사일도 아닙니다. 누구나 탈 수 있게 지도자가 마음을 비울 때, 그 수레에 누구나 타고 싶은 것이며, 이것이 국가와 사회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원효의 대승철학이 전하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입니다.” |
|
1. ‘해체철학’의 열쇠로 원효 사상의 문을 열다
김형효교수는 원효의 ?금강삼매경론?과 ??대승기신론 소?별기??를 원효 텍스트의 두 중심축으로 삼아, 원효사상의 철학적 구조를 구명하고 있다. 김형효의 원효 해석이 지니는 독창성은 그의 해체철학적 관점에서 나온다. 해체철학이란 하이데거와 데리다에서 출발한 현대 서양철학의 한 조류이지만, 김형효는 그러한 관점을 자기 식으로 확대 심화시켜 이제 자신만의 독특한 해체주의를 형성하고 있다. 김형효의 해체주의로 원효 철학을 들여다 보면, 놀라운 사상의 신기원이 펼쳐진다. 저자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이 졸저는 … 노장사상 및 현대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해체주의deconstructionism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맺을 것이다. 따라서 서양철학의 하이데거와 데리다의 사상이 가끔 원용될 것이다. 그리고 14세기 독일의 마이스터 에카르트Meister Eckhart와 20세기 프랑스의 가브리엘 마르셀Gabriel Marcel과 메를로-뽕띠Merleau-Ponty의 사상도 더러 원용될 것이다. 그리고 노자老子사상이 상당히 긴밀하게 사랑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불교가 노장사상과 더불어 철학적으로 해체적 경향을 띠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동서고금의 철학을 비교하면서 공부를 했다. 그 결과 동서고금의 철학 학설이 다양하고 복잡해 보이지만, 근원에서 조명하면 매우 간이簡易한 사유구조를 보이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즉 동양의 불교와 노장사상과 유학의 양명학으로 대변되는 해체적 사유와, 서양의 휴머니즘과 신학사상 그리고 동양의 주자학적 유학사상이 뭉뚱그려 표현하는 구성적 사유의 두 가지 종류가 범주적으로 성립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서양이 최근에 와서 해체적 사유를 일으키고 있는데, 그것은 그동안 서양 지성사에서 이성적?신학적 사유에 밀려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 해체주의는 소유론의 형이상학을 넘어서 존재론의 사유를 전개하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그러므로 해체적 존재론은 일체의 모든 진리가 인간의 지능이나 의지로 구성되는 것을 멀리하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읽으려는 사실론을 함의하고 있다. 사실을 똑바로 읽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해체하고, 원초적인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보려는 그런 사상을 해체주의는 담고 있다. 해체론에서는 무無가 매우 중요하다. 구성론에서 무無는 부정되어야 할 소극적 개념이지만, 해체론에서 무無는 오히려 모든 존재자들이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터전과 같다. 창조론과 제조론에서 무無는 부정되기 위해서 필요한 논리적 무의미에 해당하지만, 해체론에서 무無는 모든 존재자의 존재현상을 가능하게 해주는 근거로서 의미를 갖는다. 구성론의 무無는 무의미나 부정되어야 할 허무의 상징이지만, 해체론에서 무無는 끝없는 에너지의 보고와 같다.” 2. 21세기 인류의 철학적 전환을 준비한 ‘오래된 미래의 철학’ 김형효교수의 원효 해석에 따르면, 원효의 대승사상은 1400년 전에 있었던 낡은 철학이 아니다. 또 부처님의 가르침을 해설한 믿음의 설법에 그치는 것만도 아니다. 원효의 저작들은 인류의 본원적 고민과 질문에 대한 빼어난 철학적 성찰이다. 원효의 대승철학은 21세기에도 유효하다. 아니 오히려 21세기 인류의 갈구에 답한 ‘오래된 미래의 철학’인 것이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원효의 사상은 소유의 형이상학이 시도해 온 경제기술주의적 현실주의라는 유위론적 소유론과 사회도덕주의적 이상주의라는 당위론적 소유론을 모두 극복하는 것으로 해석될 것이다. 그리고 능위주의(유위적+당위적) 혁명이 지닌 세상 파괴의 망상을 넘어서, 무아無我와 무위無爲의 혁명을 부르는 사유의 신선한 대초원으로서 원효사상이 그려질 것이다. 그동안 유위론적 현실주의 사상은 편리함을 진리로 생각하게 하여, 세상을 편리의 소유라는 아집으로 보게 했다. 또한 당위론적 이상주의 사상은 정의로움을 진리로 생각하게 하여, 오직 추상적 정의의 개념 아래 구체적이고 다양한 삶의 재미가 시들어 버리는 결과를 야기하는 법집을 강화시켰다. 이렇게 유위와 당위를 합친 능위론 철학은 세상을 편리와 정의라는 이름으로 각기 망가뜨려 놓았다. 경제적 진리가 파괴되어도 세상은 살기 힘들어지고, 도덕적 진리가 망가져도 세상은 아비규환이 된다. 무無를 닮는 혁명은 경제도 살리고 도덕도 살리는 그런 존재론의 길이어야 한다. 인간은 물질적 경제와 정신적 도덕을 모두 갖추어야 생활할 수 있는 사실적 존재이므로, 어느 하나가 부실하면 행복할 수 없다. 우리는 원효사상에서 미래를 여는 존재론적 사유와 사실주의적 세상보기를 만날 것이다. 이것이 원효를 대승사상에서 해석하는 의미다.” 3. 김형효교수가 자신의 학문적 인생을 걸고 쓴 작품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뻐꾹새는 그리 울었나 보다.” 어찌 보면, 이 책을 쓰기 위해 김형효교수는 그리도 먼 철학의 길을 돌아서 왔나 보다. 서양철학에서 출발해 실존주의, 현상학, 생의 철학, 구조주의, 해체주의를 섭렵했다. 동양철학에 들어서서는 원시유학, 한국 유학, 주자학, 양명학, 불학을 거쳐 이제 원효라는 큰 바다에 이르렀다. 그는 가장 열심히 공부하는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술도 못 마시고, 골프도 모르고, 교제도 서투르다. 그는 연구실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공부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 순간 그는 부처의 마음이 되는 것이다. 4. 세계 철학에 도전하는 한국 철학의 자존심 그동안 한국철학은 수세적이고 수입적인 입장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김형효교수의 ??원효의 대승철학??은 한국철학에 중요한 전환점을 가져올 것이다. 세계 학계에 떳떳이, 아니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작품이 드디어 탄생한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그것은 철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원효의 대승사상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묻고 고민하는 보편적인 문제를 다룬다. 또 원효는 가장 신라적인 사상가다. 당나라 유학을 포기한 유명한 일화가 이를 입증한다. 그럼에도 당시의 모든 불교 이론을 통섭한 화쟁 사상을 안출했다. 김형효교수에 의해 새롭게 해석된 원효의 진면목이 알려지면, 세계 철학계는 놀라운 충격에 휩싸일 것이다. “원효가 신라 사회에 보여주려고 한 사고방식은 형식적 교조주의에 얽매인 사고방식의 파괴에 있다. 불교는 인간의 마음이 무애한 자유의 경지에 이르면서 세상사를 원융하게 바라보게 하여 중생이 세상사에 흑백으로 고착되는 응어리를 풀어주는 종교이자 철학이다. 그러므로 세상사를 어떤 가치의 집착으로 얽매이게 하는 것은 곧 무애원융無碍圓融한 사고방식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것이므로 원효는 신라 지도층에게 일체의 사심私心을 갖지 말고 공공公共한 마음으로 세상을 공평무사하게 대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원효가 대승사상을 강조한 것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불교의 대승사상은 어떤 종류라도 원리주의fundamentalism를 멀리한다. 원리주의는 곧 철학적 교조주의dogmatism를 자기편으로 이끈다. 원효의 사상은 이런 철학적 교조주의를 파괴하는 데 있다. 교조주의는 어떤 교조의 가치가 객관적으로 마음의 바깥에 놓여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를 우상 숭배하듯이 외곬으로 소유하려고 하는 마음의 경직된 태도를 말한다. 그런 교조주의는 사고방식의 병을 말하지, 교조라는 대상이 별도로 설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교조주의를 거부한다는 명분을 가진 교조주의도 존재할 수 있다. 원리주의와 교조주의는 이웃사촌이다. 그런 교조주의는 현실 역사에서 늘 순수주의라는 도덕적 명분으로 현실의 벽을 쌓는다. 그래서 현실을 연기법적으로 보지 않고 늘 나와 남을 이분법적으로 갈라놓아 변증법적 투쟁을 강화시키는 이데올로기의 방편으로 남을 굳힌다. 현실을 두루두루 안고 포괄하려는 입장보다 오히려 현실을 적과 동지로 나누어 투쟁하는 사고방식에 마음이 오염되어 있다. 이것을 원효가 거부한 것이다.…… 원효대사가 대승사상을 정리하면서 대승사상이 무사無私와 지공至公의 두 축으로 짜깁기를 시행하는 것과 같다고 언명한 것은, 동시에 신라 지도층에 대하여 무사無私와 지공至公의 마음으로 정치에 임할 것을 말한 대목으로 여겨진다. 사회 지도층이 속물이 되어서 오직 자기의 안일과 일신의 영광만을 생각하는 경우, 일반 백성들은 무엇 때문에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려 하겠는가? 왕을 위시한 사회 지도층이 소유 의식으로 정치를 하면, 결국 일반 백성들은 그 소유 의식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대승사상은 일반 백성들을 대승의 차원으로 통합하기 위하여 지도층이 먼저 솔선수범하여 무사無私하고 지공至公한 마음가짐과 사고방식으로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겨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무사無私는 심리적 마음가짐이고, 지공至公은 사회적 마음가짐이겠다. 무사와 지공은 대승의 사고방식이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 같다. …… 이런 대승 정신이 신라 흥융기의 정신으로 일관해 있다는 증거로 우리는 석굴암과 대왕바위가 일직선상에 놓여 있고, 그 직선이 또한 동짓날 아침의 일출과 교우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동짓날은 옛날에는 새해의 첫날과 같았다. 그런 점에서 석굴암의 종교적 성스러움과 대왕바위의 세속의 정치적 상징이 하나로 일관되었다는 것은 흥융기 신라의 시대정신이 성속일여聖俗一如로 규정되어 있다는 것을 대변한다고 봐도 좋으리라. 불교적 성聖의 진리와 세속의 정치가 서로 일관된 의미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에서 원효대사가 늘 말한 진여문眞如門의 성聖과 생멸문生滅門의 속俗이 불일이불이不一而不二의 로고스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연상시킨다. 성속일여聖俗一如는 곧 성스러운 진리와 세속의 생멸적 진리가 스바스티카svastika적인 만卍 자의 정신이나 차연差延의 새끼꼬기 정신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역사가 흥융할 때는 반드시 그 까닭이 있고, 망할 때도 반드시 그 까닭이 있다고 믿는다. 나는 그것을 신라 흥융기에 대승정신을 생활화한 신라 지도층의 무사지공無私至公한 정신에서 본다.” 5. 전국민이 읽을 수 있도록 가능한 쉽게 집필 철학은 어렵다. 특히 자기화가 덜 되었을 때는 어렵게 쓸 수밖에 없다. 덜 삭힌 술이 떫을 수밖에 없는 것과 마치가지 이치다. ??원효의 대승철학??은 김형효교수의 책 가운데 가장 잘 읽힌다. 저자 본인도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가능한 쉽게 집필하려 노력했다고 밝힌다. 물론 기본적인 개념이나 용어를 이해하는 데는 집중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찬찬히 읽으면, 이해 못할 구절은 없을 것이다. 숨을 고르게 하고 천천히 읽다 보면, 어느새 사유의 대초원을 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