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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만 해도 그렇다. 노점상이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노래가 들리더니, 이제는 마이클 잭슨이 '블러드'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나는 이 노래를 빈에서도 들었고, 뮌헨에서도 들었고, 런던에서도 들었다. 그리고 물론 떠나오기 전 서울에서도 들었다. 지구상 어디서나 이구동성으로 울러펴지는 저 음악. 아, 세상은 그렇게 모두 함께 피의 세례를 받고 있구나.
--- p.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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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차오르고 있다. 어둠속에
간지르며 찰랑이는 물결이, 그렇게 따스한 이불처럼 이 도시를 덮어온다. 태양을 향해 솟아오르던 비둘기들 피곤한 미소를 날리던 사람들 모두 어디론가 사라지고, 저기 저 창백한 허공을 가르며 깃발이 나부낀다. 아하! 태초의 신화가 깨어나고 있구나. 컴컴한 목젖이 가만히 떨린다. 누군가 노래하리. 파도 같은 슬픈 흔적 밤마다 사라지는 도시의 전설처럼 우리의 삶도 스러진다. 그렇게 물 속으로 --- p.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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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정치가가 이처럼 많은 인파를 한 도시에 불러모으고, 일요일 아침부터 그토록 먼길을 걸어가게 할 수 있겠는가. 그건 하나님 예수님 부처님 알라신, 그리고 피카소 같은 불멸의 예술가들에게만 부여된 권능인 것이다. 파리에 있는 피카소 미술관은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미술관 중에서 가장 유쾌한 장소일 것이다. 그의 유아적인 상상력과 치기 어린 장난, 고도로 농축된 예술가적 기질을 엿볼 수 있다.
피카소는 스페인 태생이고 거기서 청소년까지 보냈지만, 결국 피카소를 키워내고 불멸의 빛으로 타오르게 한 곳은 파리다. 파리의 하늘에는 수많은 '예술가의 별'이 떠 있다. 파리는 바로 이 별들의 자존심인 것이다. 그 이름만으로도 감미롭게 빛나는 파리. 그 이미지를 좇아 사람들은 매년 파리행 티켓을 끊는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왜 피카소 같은 예술가가 없는 것일까. 왜 서울은 끔찍한 대도시로서의 이미지만 키워가고 있는 것일까. --- p.166-1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