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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2. 이렇게 정원 딸린 저택 3. 이 친구를 보라 4. 구름들의 정류장 5. 진창 늪의 극장 6. 인형의 조건 7. 아주 작은 한 구멍 8. 검은 초원의 한켠 9. 해설 | '살아 있는 과거', 다시 시작되는 유령 이야기 - 최성실(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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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감시받는 처지란 어떤 것일까. 이런 게 아닐까. 심부름꾼 아이가 날 『파브르곤충기』에 나오는 실험용 메뚜기처럼 매일 매 시간 관찰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이 사실을 그 아이도 알고 있을까. 친동생처럼 따르고 날 좋아해 주는 것은 괜찮지만 날 책처럼 읽는 것은 기분이 나쁘다. 그 아이는 우리 할머니가 매일 그러듯이, 거대한 돋보기를 쓰고 손가락으로 꼼꼼히 짚어가며, 날 읽곤 한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심부름꾼 아이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어설프게 날 흉내내서 무얼 하겠다는 걸까. 아무리 어설프더라도, 이따금 무의식중에 그 아이가 날 흉내내는 것을 보면 섬찟한 생각이 든다.
가르쳐주고 싶다. 심부름꾼 아이 너에게는 나만한 영혼이 없다는 것을, 아무리 읽어도 나와 똑같은 언어를 구사할 순 없다는 것을. 너는 영혼이 텅 빈 아이라는 것을. --- pp. 47~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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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하나가 동네로 굴러들어왔다. 꼭지가 휑하니 뜯긴 비닐제 초립을 쓰고, 짓이겨진 장미 꽃잎 빛깔의 셔츠와 흙탕물에 담갔다 꺼낸 듯한 쥐색 양복바지를 입고. 어깨엔 좌우 귀퉁이가 닳아떨어진 잿빛 천가방이 매달려 있었고 시체는 그게 밥주머니라도 되는 양 시커먼 손을 연신 집어넣어 과자 부스러기를 꺼내 먹었다.
우리는 놀라거나 무서워하거나 하지 않았고, 신기해하지도 않았다. 시체란 우리에겐 수시로 굴러들어오는 것쯤이었다. 수시로 굴러들어와 수시로 굴러나가는 것. 동네 시멘트 담벼락에 조그맣게 져 있는 오줌 얼룩이나 똥자국 뭐 이쯤이었다. 비 한번 오면 그런 얼룩은 금세 씻겨나간다. 개중 하나가 동네 어귀 유료주차장에서 청산가리를 주워 마시고 아주 누워버리더라도 아, 어젯저녁에 그런 일이 있었어 하고 조동아리만 좀 삐죽일 뿐이다. 우리는 가끔 시체와 놀기도 하였다. 어른들은 봐도 말리지 않았다. 손가락이 다 달렸나 눈썹은 온전한가 그런 것만 살피곤 우리와 무엇을 하든 내버려두었다. 내가 갓 십대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시체 하나가 동네로 굴러 들어왔다. --- pp.153 ~1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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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폐기물을 뒤적이는 백치의 상상력, 느릿느릿 압도해오는 검은 연민
이른바 1970년대 산(産) 신세대 작가군 중에서도 가장 전위적인 소설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백민석의 두번째 소설집. 위선으로 가득 찬 폭력적 세계의 현실을 뒤집고 비트는 그의 상상력은 재현의 언어를 조롱하며 반(反)문학적인 언어로 세계의 부정성을 낯설게 폭로해왔다. 그의 작업은 우리 의식의 폐기물들을 전혀 낯선 맥락 속에서 조명하게 만들었고 경험 현실의 이면을 그로테스크하게 건져올려 부유하는 검은 유령들로 우리의 도시를 뒤덮어버리곤 했다. 다분히 의도적인 백치의 시선과 언뜻언뜻 그 뿌리를 드러내는 자기 연민의 시적 아우라가 여기에 겹쳐지면서 백민석의 '장원'은 이제 어엿한 한국소설의 영토로 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이다. 이번 소설집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은 그 뚜렷한 증거다.
작품 해설을 맡은 최성실씨에 따르면 이번 소설집의 키워드는 '유령'이다. 유령이란 망각하고자 하는, 폐기처분하고자 하는 기억들의 다른 이름이다. 그것은 또한 외면하고 싶은 공포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에는 시종일관 유령이 출현하고 있다. 그런데 그 유령은 동화적이거나 환상적인 귀신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그 자체다. 여기에 백민석이 말하는 공포가 있다. 그가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은 그 공포로부터의 탈주이며 그 공포의 탈신비화 작업이다. 당연히 그 유령들은 시간의 더께를 덮어쓰고 초라하게 앉아 있으며 서서히 부패하고 있다. 그 유령들은 aw, wt, ru 등 기호로 지칭될 뿐 이름이 없다.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오물통 속으로 던져버린 의식의 폐기물들이기 때문이다. 문명과 도덕의 이름으로 배제하고 팽개쳐버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