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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ssandro Barr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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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에르베 종쿠르. 아버지의 뜻에 따라 직업군인이 될 생각이었으나 발다비우라는 기이한 남자와의 우연한 만남으로 비단의 원료가 될 누에알을 구해다 파는, 생각지도 못했던 직업의 길로 들어선다. 그에게는 아내가 있다. 아내의 이름은 엘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여자다. 두 사람에게는 아이가 없다.
유럽 전역에 누에알을 망치는 잠균병이 퍼지면서 누에알을 구하기 위한 에르베 종쿠르의 여행길은 멀리 일본에까지 미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하라 케이라는 남자를 만난다. 지방의 세도가이자 그가 구해 돌아가야 하는 누에알의 주인. 그리고 그의 곁에는 묘령의 어린 소녀 같은 여인이 있다. 그녀의 눈은 여느 동양인처럼 가늘게 찢어진 눈이 아니다. 이 세 사람의 첫 만남에서 에르베 종쿠르와 이름 모를 ‘그 여인’ 사이에 미묘한 분위기가 흐른다. 뭐라 이름 할 수 없는 모호하고도 강렬한 분위기가. 그리고 그것은 일본으로의 여행이 거듭되면서 더욱 강력한 힘으로 에르베 종쿠르를 사로잡는다. 그런 그의 곁에는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는 아내 엘렌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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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은 <레드 바이올린>의 감독 프랑수아 지라르가 감독하고 <오만과 편견>, <캐리비안의 해적>의 여주인공 키이라 나이틀리가 엘렌 역을, 마이클 피트가 에르베 종쿠르 역을 맡아 현재 영화 제작 중이다. 2007년에는 이 아름다운 소설을 영상으로도 만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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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사랑에 대한 시적 우화
고요한 수면 밑에서 휘몰아치는 삶과 사랑 그리고 욕망 "이 책에는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욕망과 고통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할지." ― 알레산드로 바리코 이 소설은 사랑과 인생에 관해 전혀 새로운 독법을 선보인다. 무엇보다 먼저 여기서 사랑은 인간의 언어와 논리로는 파악할 수 없는 '말할 수 없는 것', '침묵'의 영역에 속해 있다. 그러한 사랑이 외형적으로는 일본이라는 미지의 영역, 익숙한 것과는 거리가 먼 낯선 세계, 소설 속 표현대로라면 '세상의 끝'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여러 모로 상징적이다. 하지만 이처럼 낯선 미지의 세계 속에서 벌어지는 사랑은 '언어의 한계'로 인해 여전히 침묵의 세계 속에 있고, 마치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이기도 하다. '그 여자'의 본심은 알 길이 없고, 사랑의 밀어나 사랑의 대화는 전혀 불가능하다. 다만 언뜻 스쳐 지나가는 눈빛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짧은 연서(戀書)가 전부일 뿐. 이처럼 '첫눈에 스쳐가는 불과 같은 사랑이 펼쳐지는' 일본이라는 '세상의 끝'은 에르베 종쿠르의 고향 마을 라빌디외(Lavilledieu), 프랑스어로 '신의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장소와 대척점에 놓여 있다. 이 마을에는 단조롭고 반복적인 음악처럼 들리는 문투가 잘 보여주듯이 새로운 것은 전혀 없고, 아무것도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하며 계속 반복될 뿐이다. 들뢰즈식 용어를 빌리자면, 일본이 매번 반복 없는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그의 고향은 이와 반대로 모든 것이 매번 아무런 차이도 만들어내지 않고 반복되는 것만 같다. 그리고 주인공을 둘러싼 두 여인 또한 이와 마찬가지처럼 보인다. 즉 일본의 미지의 '그 여인'이 매번 차이를 만들어내면서 반복적인 그의 여행을 강력하게 추동하는 세이렌이라면 고향 마을의 아내는 아름다운 목소리만 있지 아무런 소리도, 움직임도 없이 조용히 베틀만 짜는 정숙한 페넬로페처럼 보인다. 요컨대 주인공 에르베 종쿠르는 신의 품안에 있는 평온한 고향 마을/아내 엘렌과 미지의 세계 일본/'그 여인'을 오가는 사이에 자신 속의 낯선 부분, 즉 자신도 깨닫지 못했던 욕망과 대면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적극적으로 삶에 뛰어들려는 어떠한 야망도 없는", "비 오는 날 창밖을 내다보는 것처럼 자기 운명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사람이던 에르베 종쿠르는 전혀 예기치 못했던 변화를 겪으며 평소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행동을 감행하고 만다. 하지만 막상 독자들이 작품의 말미에서 목격하게 되는 것은 무섭도록 끓어오르는 또 하나의 욕망인데……. 소설 『비단』은 삶이 그러하듯 사랑과 욕망은 아름답고도 강렬하지만 모호하며 잡을 수 없는 것임을 보여준다. 여기서 너무나 섬세해 손에 쥐어도 아무것도 없는 듯한 느낌을 주는 '비단'은 삶과 사랑/욕망의 불가해성을 상징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는 소설에서 자주 언급되는 바람, 호수 위의 잔물결 등으로 중첩되고 강화된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라기보다는 삶과 사랑, 그리고 욕망의 본질을 아름다우면서도 깊이 있게 그려낸 '시적 우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