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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느헤미야·에스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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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럭크만의 주석서

책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 5

에스라

서 문 / 17

에스라 1장 / 22
에스라 2장 / 45
에스라 3장 / 59
에스라 4장 / 66
에스라 5장 / 85
에스라 6장 / 97
에스라 7장 / 122
에스라 8장 / 133
에스라 9장 / 147
에스라 10장 / 157

느헤미야

서 문 / 171

느헤미야 1장 / 174
느헤미야 2장 / 189
느헤미야 3장 / 201
느헤미야 4장 / 209
느헤미야 5장 / 223
느헤미야 6장 / 231
느헤미야 7장 / 244
느헤미야 8장 / 254
느헤미야 9장 / 265
느헤미야 10장 / 284
느헤미야 11장 / 298
느헤미야 12장 / 305
느헤미야 13장 / 315

에스더

서 문 / 328

에스더 1장 / 332
에스더 2장 / 356
에스더 3장 / 371
에스더 4장 / 395
에스더 5장 / 407
에스더 6장 / 425
에스더 7장 / 437
에스더 8장 / 446
에스더 9장 / 461
에스더 10장 / 478

저자 소개 2

피터 S. 럭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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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 S. Ruckman

피터 럭크만 박사(1921-2016)는 미국 플로리다 주 펜사콜라에 있는 성경침례교회(Bible Baptist Church)의 목사였으며, 펜사콜라 성경 신학원(Pensacola Bible Institute)의 설립자이자 원장으로서 50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럭크만 박사는 밥 존스 대학교(Bob Jones University)에서 Ph.D.를 받았지만, 그 학교의 신학 노선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저자는 존 칼빈 이래로 500여 명 이상의 유명하다는 성경 주석가들이 주석서에 범해 놓은 주요 오류들을 일일이 지적하여 바로잡았으며, 창세기, 출애굽기, 욥기, 시편, 잠언, 소선
피터 럭크만 박사(1921-2016)는 미국 플로리다 주 펜사콜라에 있는 성경침례교회(Bible Baptist Church)의 목사였으며, 펜사콜라 성경 신학원(Pensacola Bible Institute)의 설립자이자 원장으로서 50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럭크만 박사는 밥 존스 대학교(Bob Jones University)에서 Ph.D.를 받았지만, 그 학교의 신학 노선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저자는 존 칼빈 이래로 500여 명 이상의 유명하다는 성경 주석가들이 주석서에 범해 놓은 주요 오류들을 일일이 지적하여 바로잡았으며, 창세기, 출애굽기, 욥기, 시편, 잠언, 소선지서, 마태복음, 사도행전, 히브리서, 요한계시록 등의 주석서를 저술함으로써 올바른 성경 진리를 밝히고 있다.

또한 럭크만 박사는 『킹제임스성경』이 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권위 있게 설명하고 증명할 수 있는 독보적인 학자로 일했다. 특히 그의 저서 『필사본 증거』, 『알렉산드리아의 이단들』, 『신약 교회사』,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 등에서 그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 주고 있다. 그는 주석서와 성경 교리에 관한 160여 권이 넘는 책의 저자이며, 세계 전역에 있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존경받는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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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0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492쪽 | 660g | 153*223*30mm
ISBN13
9788992164054

책 속으로

에스라 3장

3:1 일곱째 달이 되었을 때 이스라엘 자손이 성읍들에 있었는데, 백성이 한 사람같이 예루살
렘에 함께 모이더라.
2 그때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스알티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그의 형
제들이 일어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제단을 세워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그 위에 번제를 드리려고
3 그들이 그의 기초들 위에 제단을 세웠으니 이는 그 나라들의 백성으로 인하여 두려움이
그들 위에 있었음이라. 그들이 그 위에 번제를 주께 드렸으니 아침과 저녁 번제를 드리더
라.
4 그들이 기록된 대로 장막절도 지키고 매일 드리는 번제를 수대로 드리되 관례에 따라 요
구되는 매일의 직무로서 행하더라.
5 그후에 계속해서 드리는 번제를 드렸으니 새 달들과 성별된 주의 모든 정해진 명절의 번
제요, 주께 자원하는 제물을 기꺼이 드리는 모든 사람의 번제더라.
6 일곱째 달의 첫째 날부터 그들이 주께 번제를 드리기 시작하니라. 그러나 주의 성전의 기
초는 아직 놓이지 아니하였더라.
7 그들이 석공들과 목수들에게도 돈을 주고 시돈 사람들과 투로 사람들에게도 음식과 마실
것과 기름을 주어 그들이 페르시아의 코레스왕에게서 받은 허가대로 백향목을 레바논으로
부터 욥파 해변까지 운반하게 하였더라.

에스라 3장은 폭발성이 강한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말씀으로 첫머리를 시작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출생의 날짜,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짜, 신약 구원에 관한 구약의 예표론, 태양계에서 차지하는 지구의 위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특히 지구의 위치는 태양이 첫째 날이 아니라 넷째 날(창 1:16,19)에 창조되었음을 설명해 준다. 때는 『장막절』(4절)이다.

알다시피 마치 “원심력”과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기라도 하듯 태양은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 이는 태양이 지구로부터 겨울에는 약 91,300,000마일, 여름에는 약 94,500,000마일 떨어져 위치하게 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이로 인해 4일 간의 불균형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는 9월 20일에서 23일에 해당한다.

성경은 창세기 1:2-4로부터 3일이 지나서야 비로소 태양이 주위를 비추기 시작했다고 말씀한다. 헨리 모리스(Henry Morris)의 “창조론연구소”(Creation Reseach) 소속의 모든 구원받은 학자들과 진화를 신봉하는 모든 구원받지 않은 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태양은 지구가 나타나기 전 주위 어딘가에 존재했어야 한다. 그러나 태양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신?구약 성경은 동시에 “두 번의 오심”(초림과 재림)의 날짜를 정해 주고, 재건된 성전을 그 “오심”과 연관지어준다. (사도행전 15:16, 스카랴 14장, 마태복음 17:1-4, 베드로후서 1:13, 출애굽기 25:9, 호세아 9:5, 시 19:4-6, 열왕기상 8:2, 에스라 3:4, 레위기 23:24,27,34,39, 호세아 12:9, 말라키 4:2, 사무엘하 7:6 등을 참조해 보라.)

그리스도께서는 『약 삼십 세』 그것도 40일이 지난 뒤에(눅 4장) 3년 반의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셨는데, 이 “약”이란 단어가 그리스도의 출생 일자를 알려 주고 있다. 그 날은 장막절로(요 1:14), 오늘날의 달력으로 말하면 9월 23일이다. 주님의 42개월간의 사역은 9월에서 시작하여 9월에 이르고 또 9월을 지나 마지막 9월에 이르게 되는데, 여기에서 6개월(반년)을 더 지나게 되면 유월절(봄)에 이르게 된다. 이 날짜들은 요한복음 2:13; 5:1; 6:4; 7:2; 11:55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절에서 『예수아』는 느부캇넷살이 죽였던(왕하 25:18-21) 『스라야』의 손자다. 그의 아버지 『요사닥』은 아마도 바빌론에서 죽었을 것이다. 스카랴 4:6-10에서도 등장하는 『스룹바벨』은 학개 1:1,12,14; 2:2,4,21,23에서도 언급된다. 그 이름은 “바빌론에서 내려온”(바빌론에서 온)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그는 『프다야』(대상 3:17-19)의 아들이었으나 『스알티엘』에 의해 길러졌다.

여기에서 성전이 완공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모두 우선 희생 제물에 관한 모세의 율법들(레위기)을 회복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제단을 다시 쌓고 기초들 위에 제단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이는 “특별 희생제물들”을 위한 제단일 뿐 아니라 “매일 드리는 희생제를 회복하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이에 대한 전례는 출애굽기 20:24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데, 이는 그 구절에서 성막, 제사장직분, 제사 혹은 희생제물들과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자세한 지침을 주시기 전에 『제단』에 관한 규례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놋제단이 묘사되는데(출 27장) 이는 성막 뜰 안에 있게 되고, 이와 더불어 7개의 다른 기구들, 곧 빵을 차려 놓은 상, 일곱 개의 가지 달린 촛대, (향로가 있는) 향단, 언약궤, 자비석, 그룹들을 위한 지침이 제시된다.

출애굽기 20:24의 『제단』이 언급되기 훨씬 오래전에, 노아가 제단을 쌓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창 8:20). 이를 통해 노아가 홍수에서 살아남기 훨씬 전에 카인과 아벨이 그들의 “제물들”(창 4:3,4)을 제단들 위에 바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고대의 제단들과 연관되어, “널판들,” “받침들,” “휘장들,” “막들,” “기둥들” 또는 그 밖의 어떤 기구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베냐민을 대적하여 싸우러 나갔던 열한 지파(판 20:11-18)가 하나님께 조언을 구하며 그들에게 승리를 주실 것을 믿었을 때(판 20:13,18),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살펴보라. 그들은 제단에 나와 『번제와 화목제』를 드릴 때까지는(판 20:26) 어떤 승리도 거두지 못했던 것이다.

『시돈』(7절) 출신의 사람들이 여기에 등장하며, 이후에 이들로 인해 유대인들은 다소 곤경에 빠지게 된다(느 13:16). 이 사람들은 투로 출신이지만, 투로와 시돈은 9마일도 채 안 떨어져 있으며 두 지역 모두 페니키아의 일부다. 이들은 솔로몬이 첫 번째 성전을 세울 때에도 나타난다. 성경에서 『투로와 시돈』이 다음 구절에서 한 쌍으로 발견되는 것을 주목하라. 마태복음 11:21; 15:21, 누가복음 6:17, 예레미야 47:4, 사도행전 12:20. 의심의 여지없이, 그 돌아온 남은 자들은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서 페니키아인들과 『백향목』을 거래했다.

8절의 『예수아』는 스카랴 3장의 대제사장은 아니지만 정식 레위인이다(스 2:40). (pp.59-62)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서문

에스라 서문

에스라서는 전체 10장, 280절, 7,441단어로 되어 있다(영어 「킹제임스성경」, 1611). 이 책은 약 B.C. 450-444년경에 기록되었으며, 유다의 70년 바빌론 포로기간 중에서 약 52년이 지난 시점의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다(스 1:1). 페르시아가 바빌론 제국을 대신하게 되었으므로, 당시의 페르시아 왕(코레스)은 “바빌론의 왕”(스 5:13)으로 불린다.

에스라서는 바빌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해 예레미야 30:10, 신명기 30:1-5, 열왕기상 8:47-49에서 언급하고 있는 약속들이 어떻게 “부분적으로” 성취되고 있는지를 다루고 있다. 물론 그런 관점은 모든 카톨릭 신학자들, 이슬람교도들, 후천년주의 개신교도들의 입지를 잃게 만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구절들이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면 앞으로 “온전히” 성취될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사야 11:11 말씀으로 미래에 분명히 성취될텐데, 이는 이스라엘을 영원히 제거하고(렘 33:20-26) 그 자리를 로마카톨릭 교권 제도나 이슬람교 세력이나 세계 교회 협의회(WCC)로 대체시키려는 자들의 노력 앞에 분명히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러한 우스꽝스런 헛된 노력들은 로크만 재단의 「확대 신약 역본」 데살로니가전서 2:16의 내용을 근거로 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이스라엘은 사로잡힘에서 결코 돌아오지 못할 것이고, 아예 회복되지 못하거나 그들의 메시아께로 회심하지 못할 것이라고 되어 있다.

에스라서의 저자는 에스라다. 하지만 그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새 성경 주석, The New Bible Commentary」(Eerdmans Publishing Co., 1970, p.397)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사실 기록자는 에스라와 가까운 시대에 살았던 인물이었음을 암시하는 증거가 있다...”

지금 한번 “신화적인 70인역”(pp.18-27)의 사본 한 부를 구입해서 이 케케묵은 진부한 이야기가 어떻게 처음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살펴보라. 배교한 알렉산드리아 이단(1800-2000)의 90%는 “추측”을 가지고 사실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증거를 제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신원불명의 “Mr. X”가 “에스라의 저자”였다는 “증거”는 다음과 같다.

“특별히 어려운 점들이 있다면... 이 특별한 암시는 거부되어야 한다... 오늘날의 경향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사실들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는데... 한 세대를 25년으로 감안한다면... 암시될 만한 증거가 있다... 어떤 이들의 믿음에 따르면... 엘리아십의 증손자로 추측해 볼 수 있는데... 아마도 그는 자신의 대제사장직을 시작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빈약하긴 해도... 그것은 몇몇 증거들을 제공해 준다...”

내가 지금까지(1950-2004) 읽어 본 바에 따르면, 이런 수법은 모든 로마카톨릭 변증자들이 사용했던 방식과 동일하다. 그들은 이런 수법을 사용하여 반성경적인 카톨릭 “전통들”을 성경만큼이나 권위 있는 것으로 입증하려고 그 전통들을 정당화시키려 했던 것이다.

에스라가 에스라서를 기록했다고 확신해도 좋다. 어떤 유식한 바보가 에스라가 기록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 있을 때까지, 곧 “유죄가 입증될 때”까지는 에스라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신명기 34장을 모세의 “율법” 속에 삽입할 수 있었던 것과 똑같이 느헤미야도 에스라 7:1-10을 삽입할 수 있었다.

신화적인 70인역은 “에스드라”라고 불리는 위조 문서를 구약 정경에다 첨가해 놓았다. 이 가짜 “에스라”는 히브리어가 아닌, 곧 배교한 그리스 학자들이 “우아한 헬라어”라고 부르는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 “우아한” 헬라어는 한 대학, 곧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겐의 대학에서 비롯되었음이 분명하다. 로마카톨릭 라틴 벌게이트에는 “에스드라 1,2서”가 영감받은 구약 정경의 일부분으로 포함되어 있다.

에스드라 1서 3:1-5:6의 내용은 구약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순전히 시시한 작품에 지나지 않는다. 에스드라 1서의 나머지 부분은 느헤미야 7,8장과 역대기하 35:1-36:21 일부와 에스라서를 담고 있다. 그리고 에스드라 2서는 “우리엘” 천사(마호메트의 600개의 날개를 가진 “가브리엘” 천사처럼 우화 속에나 나오는 천사)가 해석한 환상들로 가득 찬 우화 같은 “묵시록”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 카톨릭의 부패한 위조문서들은 둘 다 저자들이 알려져 있지 않다. 에스드라 1서는 성령께서 히브리어 구약 정경의 기록을 말라키에서 종결하신 지 2세기가 지나서야 비로소 기록되었고, 에스드라 2서 역시 오리겐(A.D. 220)이 “헥사플라”를 인쇄했을 때까지도 기록되지 않았다.

전형적인 라오디케아 시대 성경 비평가인 런던성경대학(London Bible College)의 A.E. 컨덜(Cundall)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난 문제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뜨겁게 일고 있다. 이는 틀림없이 두 책에서 가장 풀기 힘든 난제일 것이다... 이 논쟁에 관한 한 여전히 결론이 나지 않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말 그럴까? 정말 풀기 어려운 문제일까?

에스라는 “서기관”이었다. 서기관은 성경을 베끼고 보관하는 일을 했다(스 7:6,10,11). 그리고 서기관은 레위인이어야 했다(말 2:6,7, 신 17:8-12, 대하 19:5-11, 렘 36:26).

사실이 이러할진대 유대인들이 포로에서 돌아오는 이 역사적인 사건을, 에스라가 어떤 “신원불명의 연대기 작가”보다 훨씬 더 잘 기록할 수 없었다고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 심각한 “논쟁”에 연루된 어떤 학자도 에스라나 느헤미야 안에 들어 있는 어떤 예언적인 요소도 다루지 못한다. 심지어 어떤 영적인 교훈도 다루지 못한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성경의 진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그들이 진짜 문제를 다루는 방법들은 다음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1)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무시하거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시치미를 떼버렸다. (2) 본문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도록 영적으로 해석해 버렸다. (3) 자신의 무지를 무마시킬 목적으로 본문의 표현을 바꾸기 위해 “헬라어”나 “히브리어”로 달려갔다. (4) 그 구절을 설명해 줄 성경의 참조 구절들을 파괴해 버렸다.

본 주석서는 이상 네 가지 불경건한 “속임수” 가운데 단 한 가지도 따르지 않을 것이다. 만일 어떤 “문제”에 대한 적합한 설명이나 성경의 전체 구조(“올바로 나누어,” 딤후 2:15)와 일치하는 “해석”을 찾지 못할 경우에는 그저 “모르겠다”라고만 말해 줄 것이다. 결코 우리의 무지에 대한 책임을 성경 전체 66권의 저자이신 분께 돌리지 않을 것이다. 또 우리가 잘 깨닫지 못한 것을 가지고 「킹제임스성경」 번역자들의 무지나 오류 때문이라고 단 한 번이라도 그 책임을 전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날 라오디케아 시대의 근본주의자들(1901-2004)과는 달리 우리는 “사나이답게 행동하고”(삼상 4:9) 하나님께서 주시는 명철로 선한 싸움을 싸워 나갈 것이다(딤후 4:7). (이하 「느헤미야」, 「에스더」 서문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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