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陶山書院(도산서원)
황헌만 사진
한길사 200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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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圖錄

도산서당(陶山書堂)
농운정사(?雲精舍)
역락서재(亦樂書齋)
하고직사(下庫直舍)
진도문(進道門)
전교당(典敎堂)
광명실(光明室)
장판각(藏版閣)
상덕사(尙德祠)
전사청(典祀廳)
상고직사(上庫直舍)
향례(享禮)
도산서원의 현판(陶山書院 懸板)
시사단(試士壇)
천연대(天淵臺)
석간대(石澗臺)
퇴계 선생 태실(胎室)
상계 종택(上溪宗宅)
퇴계 선생 묘소(墓所)
퇴계 선생 유묵(遺墨)
퇴계 선생 유물(遺物)
도산서원도(陶山書院圖)

論文選錄

이우성(李佑成) 퇴계 선생의 이상사회와 서원창설운동
윤사순(尹絲淳) 존재와 당위에 관한 퇴계의 일치시(一致視)
두 웨이밍(杜維明) 주자의 이(理)철학에 대한 퇴계의 독창적 해석
도모에다 류타로(友枝龍太郞) 퇴계의 물격설
장 리원(張立文) 퇴계 철학의 논리구조
금장태(琴章泰) 퇴계의 물아관(物我觀)과 생명 세계
정순우(丁淳祐) 퇴계 철학의 유물론적 해석에 대한 비판적 검토
이동환(李東歡) 퇴계의 시작(詩作) 개황과 그의 작품세계
송재소(宋載?) 퇴계의 은거와 "도산잡영"
임형택(林熒澤) 국문시의 전통과 "도산십이곡"
이상해(李相海) 퇴계의 서원 건축관과 도산서당 및 도산서원 건축에 반영된 조영사상

퇴계 선생 연보/도판 목록/ 찾아보기/ 집필자 소개

저자 소개 1

사진황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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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憲萬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소년잡지 ‘어깨동무’와 ‘소년중앙’에서 사진작가로 일했으며 현재 사진 작업실 ‘M2’를 운영하며, 사라져 가는 우리 것들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집으로 『장승』『초가』『조선땅 마을지킴이』『한국의 세시풍속』『도산서원』『퇴로리지』『옹기』『하회마을』『임진강』 등이 있고, 사진동화로 『민들레의 꿈』『민들레 일기』『내 이름은 민들레』『아주 작은 생명 이야기』『섬서구메뚜기의 모험』『날아라, 재두루미』,『강가에 사는 고라니』『독수리의 겨울나기』등이 있다.

황헌만의 다른 상품

편저 : 이우성
성균관대 교수 및 대동문화연구원장,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장을 지냈으며,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자 민족문화추진회 회장, 퇴계학연구원장 등으로 황동하고 있다. 저서와 편서로 『한국의 역사상』『한국중세사회연구』『실사학사산고』『신라사산비명교역』『서역외사 해외수일본총서』『한국고전의 발견』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10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49쪽 | 1556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35653485

책 속으로

당시 학교시설로서는 군현마다 향교(鄕校)가 있었고 중앙에 최고 국학(國學)인 성균과이 자리하고 있었다. 향교는 이때 이미 학교로서의 기능을 잃고 있었지만 성균관은 여전히 국학으로서의 면모와 권위를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당시 교육문제라고 하면 으레 향교와 국학의 재건과 강화를 주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퇴계는 향교와 국학에서는 참다운 공부가 불가능하며 오히려 유해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향교와 국학과는 직접 관계가 없는 서원이야말로 성리학의 온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퇴계는 일찍이 상사나 지우에게 보내는 많은 서한에서 그 이유를 설명하였는데 그것을 요약해보면 첫째, 향교와 국학은 지방도시나 서울 번화가에 위치하고 있어서 항상 분답(紛畓)한 반면 서원은 대체로 계산(溪山)이 청유한 곳에 자리잡고 있어서 조용하고 차분히 공부할 수 있고, 둘째, 향교와 국학은 나라의 제도와 규정에 얽매이고 과거로 인하여 옳은 학문에 침잠할 수 없는 반면, 서원에 서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출세주의, 공리주의를 떠나 순수한 학문연구에 몰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두번째 이유는 서원의 가치를 결정적인 것이 되게 하였다. 당시 향교와 국학이 과거와 관련하여 출세주의, 공리주의로 쏠린 것이 이미 체질화한 상황이었지만 서원은 일단 모든 세속적 관련에서 떠나 올바른 인재를 양성해냄으로써 지방에서 새로운 정치 에너지가 개발될 수 있었다.

이리하여 퇴계는 풍기 군수 시절 백운동서원의 확충을 위시해서 서원창설운동에 적극성을 띠었고 서원을 통한 성리학의 토착화에 큰 기대를 걸었다. 퇴계 생존시에 이미 적지 않은 서원이 설립되었고 그 중 대부분은 퇴계에 의해 명명되거나 기문이 붙은 것들이다. 퇴계의 <서원십영시>에 의하면 전국 9개 서원 가운데 해주와 강릉 두 곳을 제하고는 모두 영남지방의 서원들이다. 우리 나라 서우너 초창기에 퇴계가 끼친 영향력을 짐작하고도 남을 만하다.

『조선철학사』에 대한 선행연구에서 이미 지적된 바와 같이, 북한의 철학연구가 안고 있는 일반적인 문제점은 사실 기술에서의 진실성의 문제, 한국 철학사를 오직 관념론과 유물론의 투쟁과정으로 파악하는 지나친 단순화와 철학의 내재적 구조나 논리적 정합성을 찾으려는 노력보다는 외재적인 요인에 의해 과거의 철학을 규정하는 방식 등이 지적될 수 있고, 퇴계에 대한 연구도 예외는 아니다.

북한의 이러한 경직된 연구경향은 중국의 철학사 기술과의 상호 비교를 통해서 명백히 드러난다. 냉전체제하의 중국학계에서도 반관념적, 반형이상학적 철학이 금세기를 휩쓸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문화에 대한 해석에서는 그들 고유의 격의(格義)정신이 드러난다. 전술한 바와 같이, 그들도 철학사를 연구함에 있어 반드시 계급분석 방법을 정확히 적용할 것을 강조하고 중국의 고대철학의 발전과정을 유뮬주의 대 유심주의 투쟁과정으로 이해하는 기본적인 도식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학계의 상대적 유연성은 다음과 같은 발언으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유물주의는 진보적 계급과 계층을 대표하며 유심주의는 보수적 게급과 계층을 대표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일련의 특수상황을 아주 배제하지는 않는다. 역사 사실은 일정한 조건 아래 상반되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어떤 진보적 사상가는 유심주의를 주장한다. 특별히 새로운 생산관계의 맹아가 출현할 때 새로운 계급 혹은 계층이 초기에는 유약한 것이며 역량이 없다. 새로운 계급 혹은 계층을 대표하는 새로운 생산관계 맹아의 사상가들이 자주 유심주의를 채택하낟. 예를 들어 며대 후기의 이지나 명청 시대의 당겨은 당시 시민계급의 요구를 반영하였으나, 철학상에서는 기본적으로 유심주의였다. 어떤 시기에는 유물주의 사상을 갖춘 사람이 오히려 반동적이었다... 유심주의 철학은 기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완전히 엉터리는 아니다. 유심주의는 인간의 주관적 능동성을 강조한 점에서는 정확한 것이며 또한 역사적 진보적 작용을 하였다. 이 문제는 비교적 복잡한 것으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다.

중국학계의 이러한 개방된 의식은 "철학사에서 유심주의는 주관적인 능동성을 강조하며, 유물주의자들의 부족한 점을 보충하고, 유심주의는 많은 유물주의자가 소홀히 다룬 문제를 연구함으로써 유물주의자가 이러한 문제를 깊이 다루게끔 촉진시켰다"는 인식에서 비록된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 설때, 주기론자는 모두 기층민중의 이익을 대변하는 진보적 사상가로 자리매김하고 주리론자는 모두 지배계층의 이익을 적극 변호하는 반동적 사상가로 매도하는 북한의 철학연구는 오히려 지극히 관념적인 것이다. 조선조 문화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주리, 주기의 나눔은 계급적 의식의 차이에 의한 것이 아니다. 대부분 사승관계(師承關係, 혼척관계(婚戚關係), 지역적 연고 등 비경제적 요인이 일차적인 규정 요소로 작용한 것이 명백하다.

따라서 주기론은 선한 유물론이며 주리론은 악한 관념론이라는 북한의 형식논리는 재고되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조선철학사>의 서술체계는 전적으로 오류이며, 전면적으로 파기되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태도는 퇴계철학의 참다운 발전을 위해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이다. 20세기 철학을 반플라톤주의로 요약하 수 있을만큼 철학사에서 플라톤의 위치는 확고한 것이다. 이에 우리가 지금 진지하게 검증해 보아야 할 것은 유물론적 이해태도를 일방적으로 죄악시할 것이 아니라 관념론과 진정한 의미에서의 유물론적 이해태도, 이 양자의 관계를 어떻게 조화롭게 통합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 pp 185~186

『조선철학사』에 대한 선행연구에서 이미 지적된 바와 같이, 북한의 철학연구가 안고 있는 일반적인 문제점은 사실 기술에서의 진실성의 문제, 한국 철학사를 오직 관념론과 유물론의 투쟁과정으로 파악하는 지나친 단순화와 철학의 내재적 구조나 논리적 정합성을 찾으려는 노력보다는 외재적인 요인에 의해 과거의 철학을 규정하는 방식 등이 지적될 수 있고, 퇴계에 대한 연구도 예외는 아니다.

북한의 이러한 경직된 연구경향은 중국의 철학사 기술과의 상호 비교를 통해서 명백히 드러난다. 냉전체제하의 중국학계에서도 반관념적, 반형이상학적 철학이 금세기를 휩쓸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문화에 대한 해석에서는 그들 고유의 격의(格義)정신이 드러난다. 전술한 바와 같이, 그들도 철학사를 연구함에 있어 반드시 계급분석 방법을 정확히 적용할 것을 강조하고 중국의 고대철학의 발전과정을 유뮬주의 대 유심주의 투쟁과정으로 이해하는 기본적인 도식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학계의 상대적 유연성은 다음과 같은 발언으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유물주의는 진보적 계급과 계층을 대표하며 유심주의는 보수적 게급과 계층을 대표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일련의 특수상황을 아주 배제하지는 않는다. 역사 사실은 일정한 조건 아래 상반되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어떤 진보적 사상가는 유심주의를 주장한다. 특별히 새로운 생산관계의 맹아가 출현할 때 새로운 계급 혹은 계층이 초기에는 유약한 것이며 역량이 없다. 새로운 계급 혹은 계층을 대표하는 새로운 생산관계 맹아의 사상가들이 자주 유심주의를 채택하낟. 예를 들어 며대 후기의 이지나 명청 시대의 당겨은 당시 시민계급의 요구를 반영하였으나, 철학상에서는 기본적으로 유심주의였다. 어떤 시기에는 유물주의 사상을 갖춘 사람이 오히려 반동적이었다... 유심주의 철학은 기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완전히 엉터리는 아니다. 유심주의는 인간의 주관적 능동성을 강조한 점에서는 정확한 것이며 또한 역사적 진보적 작용을 하였다. 이 문제는 비교적 복잡한 것으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다.

중국학계의 이러한 개방된 의식은 "철학사에서 유심주의는 주관적인 능동성을 강조하며, 유물주의자들의 부족한 점을 보충하고, 유심주의는 많은 유물주의자가 소홀히 다룬 문제를 연구함으로써 유물주의자가 이러한 문제를 깊이 다루게끔 촉진시켰다"는 인식에서 비록된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 설때, 주기론자는 모두 기층민중의 이익을 대변하는 진보적 사상가로 자리매김하고 주리론자는 모두 지배계층의 이익을 적극 변호하는 반동적 사상가로 매도하는 북한의 철학연구는 오히려 지극히 관념적인 것이다. 조선조 문화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주리, 주기의 나눔은 계급적 의식의 차이에 의한 것이 아니다. 대부분 사승관계(師承關係, 혼척관계(婚戚關係), 지역적 연고 등 비경제적 요인이 일차적인 규정 요소로 작용한 것이 명백하다.

따라서 주기론은 선한 유물론이며 주리론은 악한 관념론이라는 북한의 형식논리는 재고되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조선철학사>의 서술체계는 전적으로 오류이며, 전면적으로 파기되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태도는 퇴계철학의 참다운 발전을 위해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이다. 20세기 철학을 반플라톤주의로 요약하 수 있을만큼 철학사에서 플라톤의 위치는 확고한 것이다. 이에 우리가 지금 진지하게 검증해 보아야 할 것은 유물론적 이해태도를 일방적으로 죄악시할 것이 아니라 관념론과 진정한 의미에서의 유물론적 이해태도, 이 양자의 관계를 어떻게 조화롭게 통합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 pp 185~186

출판사 리뷰

퇴계 이황 선생 탄신 500주년을 맞아 선생의 삶과 사상에 대한 이해의 저변을 넓히고자 기획된 도서이다. 퇴계 만년 삶의 숨결이 깃들인 도산서당과 그의 제자들이 뜻을 받들어 창설한 도산서원의 사계, 퇴계의 유묵과 유물, 안동 일대에 남아 있는 그의 유적, 조선 후기 여러 화가들이 남긴 도산서원도 등의 풍부한 도판자료와 아울러 퇴계학 연구논문들 가운데 수작 11편을 뽑아 실었으며, 도판에 대한 영문 해설도 곁들였다.

퇴계의 삶의 흔적을 보여주는 사진과 함께, 그의 사상과 문학 건축관을 조망하는 정밀한 글을 따라 눈을 옮기다보면 어느새 도산서당 뜰 앞에서 풀 한포기를 바라보며 우주를 사색하는 대사상가의 온화한 미소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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