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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천황은 백제 무왕의 자손
미륵사 금판의 증언 양장
이동식
국학자료원 2015.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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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1장 두 개의 사건
2장 팔각 천황릉의 수수께끼
3장 팔각의 원류
4장 역사 속에 숨은 주인공
5장 과연 누가 왜 만들었나?
6장 미륵사와 팔각
7장 천황가와 등원가
8장 살아있는 역사
머리말

1장 두 개의 사건
2장 팔각 천황릉의 수수께끼
3장 팔각의 원류
4장 역사 속에 숨은 주인공
5장 과연 누가 왜 만들었나?
6장 미륵사와 팔각
7장 천황가와 등원가
8장 살아있는 역사

저자 소개 1

1953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서울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77년부터 2013년까지 36년간 KBS에 재직하면서 문화전문기자로 이름을 날렸으며, 사회부 기자, 문화부 차장, 북경특파원, 런던지국장을 거쳐 보도제작국장, 해설위원실장, 정책기획본부장을 역임했다. 1984년 [굿모닝 Mr. 오웰]을 통해 백남준을 우리나라에 소개했고 이우환, 이응로, 윤이상 등 세계적인 문화예술인들을 다큐멘터리로 소개했으며, 중국 실크로드를 처음으로 취재해 방송하기도 했다. 2017년 9월 대한민국 방송 90주년 기념식에서 방송문화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저서로는 『천
1953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서울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77년부터 2013년까지 36년간 KBS에 재직하면서 문화전문기자로 이름을 날렸으며, 사회부 기자, 문화부 차장, 북경특파원, 런던지국장을 거쳐 보도제작국장, 해설위원실장, 정책기획본부장을 역임했다. 1984년 [굿모닝 Mr. 오웰]을 통해 백남준을 우리나라에 소개했고 이우환, 이응로, 윤이상 등 세계적인 문화예술인들을 다큐멘터리로 소개했으며, 중국 실크로드를 처음으로 취재해 방송하기도 했다. 2017년 9월 대한민국 방송 90주년 기념식에서 방송문화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저서로는 『천안문을 열고 보니』,『찔레꽃과 된장』,『우리 음악 어디 있나』,『거문고-시공을 넘어 영원을 얻다』,『친구가 된 일본인들』,『시간의 마음을 묻다』등 20여 권이 있다. 『책바다 무작정 헤엄치기』는 그의 오랜 경륜이 드러나는 독서 편력기로, 책과 독서와 서점과 도서관 그리고 유, 무명의 저자와 작품에 이르기까지 독자적인 체험과 견해는 물론 ‘읽기’를 통해 획득한 인간과 문화와 역사 전반에 관한 깊은 사유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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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0월 19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325쪽 | 608g | 160*230*20mm
ISBN13
9791186478554

출판사 리뷰

서기 660년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의해 수도 부여가 함락되자 당시 일본의 여왕이던 제명천황은 서둘러 백제부흥군을 편성하고 이를 지휘하기 위해 서쪽 끝인 후쿠오카까지 달려오다가 길에서 숨진다. 그 아들인 중대형황자는 어머니의 장례도 치르지 않고 일본 함대를 백제로 보냈으나 수 백 척의 함대는 백강 입구에서 궤멸된다. 백강전투에서 부흥군을 모두 잃은 일본은 한반도로 향한 모든 문을 닫아걸고 왕의 호칭도 천황으로 바꾸고 자신들의 역사도 새롭게 편찬하면서 독자생존을 강행한다.

한국과 일본 고대사의 최대의 수수께끼라 할 이 백제부흥군의 파견과 궤멸,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일본의 태도....일본 여왕은 왜 그랬을까? 왜 나라를 건 모험을 감행했을까? 일본인들도 궁금해한다.

한 전직 언론인이 이 문제에 집요하게 파고들어 마침내 그 비밀을 밝혀냈다. 그 비밀이 드러난 계기는 묘하게도 2009년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서탑 지하에서 발견된 한 장의 금판.

미륵사의 서탑에 사리를 봉안한 사연을 적은 이 금판에서 우리가 전혀 몰랐던 백제 무왕의 왕후인 사택왕후가 등장하고 이 탑이 639년에 세워졌다는 절대연대가 나온다. 그런데 이 무렵 일본에서도 왕(서명천황)이 백제천 옆에 궁궐을 세우고 절을 만들고 탑을 세운 것으로 나오는데, 그 때가 익산의 미륵사 서탑을 세운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리고 백제에서는 대란이 일어나 왕의 어머니와 왕자, 공주들이 추방된다. 이 후 일본에서 천황부터 증손자에 이르는 천황들의 무덤이 팔각이라는 장식을 두른, 전혀 다른 무덤이 조성된다.

저자는 각각 별개로 생각되던 이런 일련의 사건 속에서 의자왕의 집권, 왕의 어머니의 추방, 팔각릉의 조성 등이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되어, 익산 미륵사 서탑에 사리를 봉안한 사택왕후와 그 아들, 공주 등이 의자왕에게 밀려 일본으로 망명했으며 이들이 일본에 가서 당시 일본을 지배하던 호족 소아(蘇我 소가)가 씨를 대신해서 일본의 왕권을 차지한 이후에 그들이 자신들의 출신을 장엄화하기 위해 팔각릉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무덤을 쓴 것으로 결론지었다. 이것은 곧 현 일본의 천황가가 바로 백제 무왕의 후손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당시 백제와 일본의 역사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어서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 줄거리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처음으로 팔각릉을 쓴 일본의 서명천황은 백제 무왕이 죽은 거의 같은 해에 죽는다. 한일 양 쪽에 지도자가 같은 해 죽을 수 없다. 같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즉 백제 무왕의 역사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역사에 실린 것이다.
2. 백재 무왕의 왕후인 사택 씨의 출현으로 일본서기에 많이 등장하는 사택 씨가 백제에서 큰 세력을 가진 집안이었음이 드러나며, 그들이 일본에서 활동한 기록들이 연결된다.
3. 서명천황 이후 갑자기 등장한 팔각릉은 그들이 외부에서 들어온 왕권임을 증언한다. 실제로 서명천황은 갑자기 지명되는 것으로 나오고, 그 이후 그 아들이 쿠데타로 소가 씨를 죽이고 정식으로 왕권을 차지하게 된다.
4. 이 때 등장한 팔각이란 양식은 일본에 전혀 없던 것으로서, 고구려의 환도산성에서 시작돼 고구려와 신라, 백제를 거쳐 발전해 온 한반도의 양식이며, 백제의 우물, 익산의 미륵사의 팔각 석등 등 백제 말기에 유행하던 양식이었다. 특히 최근에도 용인 할미산성에서 팔각 제단이 나오는 등 백제 지역 산성에서 팔각제단이 많이 나옴으로서 이들이 일본의 팔각양식과 연결되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5. 최근 익산 왕궁리의 옛 건축물의 조성 방법이 650년대에 일본 오사카에 세워진 나니와궁의 건축 수법과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났고, 각종 공예품의 장식도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고 익산의 세력이 일본에서 활동한 흔적이 고고학적으로도 점점 확인되고 있다.
6. 이런 관련사항들을 종합하면 백제 의자왕은 쿠데타를 일으켜 무왕이 총애하던 사택왕후와 그 일족을 쫓아내고 백제를 차지하며, 사택왕후는 왕자, 공주들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해서 자신의 집안 등과 협력해서 일본의 왕권을 차지하는데, 그것이 곧 645년 일본의 대화개신(大和改新)이며 이 때 자신들이 하늘로부터 점지되어 내려온 신성한 왕권임을 알리기 위해 대대적인 개혁과 팔각을 살린 궁궐수축 등을 실시하게 된다. 그러다가 백제가 망하게 되자 자신의 남편이 다스리던 나라의 재건을 위해 만사를 제쳐놓고 부흥군을 보내는 것이다. 여왕이 죽은 후 그 아들은 천지천황으로 즉위해 일본에 정식으로 천황의 나라를 열었는데 그것을 기리기 위해 그의 아버지로부터 어머니,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천황들의 무덤이 하늘을 상징하는 팔각의 제단이나 호석을 두르도록 한다.
7. 그 뒤 천황의 후계가 여성으로 이어지면서 팔각릉은 자취를 감추고 대신 천황가를 떠받치는 집안인 등원(藤原 후지와라)계가 팔각탑이나 팔각전을 만들어 조상을 기리고 있다.

저자는 한일 역사학 양쪽에 나눠져 의미를 알 수 없었던 많은 사건들이, 백제 무왕가의 일본 왕권접수라는 꼬챙이로 걸어보니 다 의미가 살아나면서 역사의 수수께끼가 확연히 풀리고 있음을 밝혀냈다. 이로써 왜 일본인들이 아직도 백제에 대해 그렇게 애착을 갖고 있는지, 또 백제부흥운동이 완전히 실패했을 때에 “이제 조상의 묘소를 어찌 찾아갈 수 있으랴”라고 한탄한 기록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밝히고 있다.
이같은 연구결과를 발표한 저자 이동식은 KBS에서 문화와 역사방면 전문기자로서 활약한 언론인으로서 1990년대 우리나라에서 활발하게 이뤄진 김해 대성동, 양동의 발굴, 미사리와 하남 위례성 관련 발굴 등 주요 역사현장을 취재 보도했으며 일본의 임나일본부 주장의 허구성을 밝힌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와 우리나라 방송사상 최초로 중국 실크로드를 답사해 제작한 『서역기행 5천 킬로』 등 역사 다큐멘터리의 제작과 방영을 담당한 역사 전문기자였다. 2009년 미륵사 서탑 사리봉안기의 발굴기사, 그리고 그 뒤에 2010년부터 일본에서 쏟아진 팔각 천황릉의 확정 등의 움직임을 집요하게 추적해 마침내 7세기에서 8세기 한일 두 나라의 역사가 이렇게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음을 처음으로 밝혀낸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미륵사 서탑에서 나온 금판 한 장이 이렇게 한일고대사의 비밀을 푸는 열쇠였다. 그동안 우리 학계에서는 백제에서의 팔각문화를 인정하지 않았기에 일본의 팔각릉이 백제와 이렇게 연결된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제 백제의 역사가 올바르게 복원되면 일본의 역사도 제대로 살릴 수 있고 그 속에서 우리의 고대역사도 되찾을 수 있다고.

그런 면에서 이번 저서는 어둠에 휩싸인 한일 고대사, 한일 관계사에 새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더 많은 관련연구를 불러일으키기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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