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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_ 이정준
Ⅰ부 이미 시작된 미래 1. 트랜스휴머니즘과 인간: 융합이 아니라 융화?_ 이종관 2. 나노테크놀로지의 자연모방과 그 딜레마_ 김연순 3. 첨단과학기술의 시각장치와 새로운 마술_ 김화자 4. 닫힌 영토화 운동 안의 얼굴, 그 위험한 모험_ 김진택 Ⅱ부 깊어지는 시선 5. SF와 근대 과학(자)신화의 전복_ 안상원 6. 야만세계와 문명세계: 과학기술과 인간 변형_ 김응준 7. 개인으로서의 삶의 가능성_ 김종규 8. 인간 자연성에 대한 기술공학적 개입과 윤리적 논쟁의 의미_ 김종엽 Ⅲ부 새로운 형식들 9. 춤추는 포스트 신체(post-body)_ 김주희 10. 디지털 시대와 변화하는 음악문화_ 양인정 11. 뇌과학의 관점에서 본 브레히트와 플라이써의 서사성_ 이정준 12. 스마트한 서비스 세상과 문제해결형 융합 연구_ 김인숙 주 집필진 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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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문학자들은 과학과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대해 반성적 사유를 꾸준히 지속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는 우리 사회와 학계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때로는 과학 발전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일방적 공격이라고 외면당하기도 했습니다. […] 자연현상에 대한 의심과 의문에서 자연과학이 발전했고, 인문학 역시 인간 존재에 대해 의심을 품은 곳에서 태동하였습니다. 자연과학에서나 인문학에서나 학자들은 의심의 자유를 만끽해 왔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것은 용기 있는 자들에게 보장된 권리입니다.
이 책은 인간을 의심하는 데 익숙한 인문학자들이 그 인간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자연과학에 대해 의심을 품고 사유를 하는 장이 될 것입니다. 의심의 자유는 양자 간 갈등과 반목을 발생시킬 수 있지만, 이 갈등과 반목은 투쟁이 아니라 상호소통의 한 방편으로 필히 거쳐야 할 과정입니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의심스러운 부분에 대해 자유롭게 물을 때, 소통의 장이 열리고 그로 인해 미래를 위한 더 나은 답이 마련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머리말」중에서 나노테크놀로지에 꿈을 심은 커즈와일이나 드렉슬러 같은 학자들의 말대로라면, 분자조립기계는 만능이어서 ‘우리의 세계를 다시 만들 수도 파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엄청난 결과를 두고 볼 때, 그 분자조립기계는 보다 높은 단계의 행동을 창조해 내겠지만, 그 행위가 만능이어서 결과가 무한히 열려 있다면 ‘고차원의 복잡계’로 나가는 것이라 해서 창발을 선호해야 할 이유는 없다. 창발이 이전의 것과 비교해서 새롭고 차원 높다는 것과, 인간에게 새롭고 차원 높은 것의 실질적인 의미는 별개이기 때문이다. 자연적으로 만능인 인공의 나노기계를 지향하는 나노테크놀로지의 숨은 딜레마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역설도 열려 있는 것이며 그만큼 위험도도 높은 것이다. ---「나노테크놀로지의 자연모방과 그 딜레마」중에서 과학만능주의의 신화가 작성되던 근대에 출현한 SF는 과학이 대두되는 당시 현실에 대한 문학의 대답이었다. SF는 추락하는 과학의 서사를 제기함으로써 근대 과학신화의 변증법을 완성시켰다. 과학의 일방적 지배에 제동을 가하여, 도구적 합리성에 매몰되고 수단과 목적이 전도되는 근대의 발전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이러한 신화 전략에는 근대의 휴머니즘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인간의 무한 진보에 대한 믿음과 동시에 그 진보가 인간의 차원에서 머물러야 한다는 당위성이다. […] 그러나 [리미트리스]가 제기한 것처럼, 곧 다가올 미래에는 과학신화의 변증법이 퇴색하고 상승하는 과학의 서사만 남겨지는 것도 상상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신화의 변형이 아니라 근대 과학신화 전체를 뒤집는 새로운 신화가 된다. […] 과학의 상승신화만 남은 포스트휴머니즘에서 휴머니티의 인문적 저항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과연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 ---「SF와 근대 과학(자)신화의 전복」중에서 삶과 죽음의 여정이 곧 인간의 공동체적 삶이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 정의처럼, 인간의 삶은 그 탄생에서부터 또 다른 삶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가는 공동체적 삶을 영위하며, 이러한 공동체적 관계 맺음은 죽음을 통해 종결된다. 이와 유사한 삶의 형식은 디지털 환경 내에서도 발견되는데, 이 환경 내에서 인간의 삶은 관계망(network) 내에서 펼쳐지며, 이러한 관계망의 종결을 우리는 ‘디지털 죽음(digital death)’이라 부른다. 이 두 죽음은 어떻게 다른가? ‘디지털 죽음’이 물리적 사건이 아니라는 점에서 본다면 두 죽음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그 외에 두 죽음을 달리 볼 문화적·사회적 의미의 차이는 발견되지 않는다. 죽음과 창의성의 문화적 연관성에서 볼 때, 두 죽음의 유사성은 우리가 디지털 환경에서도 창의적일 수 있음을, 즉 우리가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활동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개인으로서의 삶의 가능성」중에서 빠르고 간편하면서도 방대하며 기능적인 이 디지털화된 음악적 환경이 과연 진보인가? 우리는 이 질문의 대답을 “인간의 삶에 음악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통해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예술은 본래 인간이 삶을 비추어 경험하고, 감정을 느끼고,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즉 우리가 누구인가를 자신에게 지각하게 해주는 중요한 표현방식인 것이다. […]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에 위축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손수 참여하여 적극적으로 부르고 연주하면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삶의 일부로 즐길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음악을 행하는 것의 본원적인 의미이다. ---「디지털 시대와 변화하는 음악」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