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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
제1장 ·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 제2장 · 포스트휴머니즘의 계보학 제3장 · 포스트휴먼과 다양한 양상 제4장 · 과학소설 - 문화비판과 기술철학 사이에서 제5장 · ‘포스트휴먼 과학’의 새로운 간학문성 제6장 · 정보사회의 사이버컬처, 디지털, 비주얼 현실 그리고 뉴미디어 제7장 · 포스트휴머니즘의 특성 - 주체와 체계 사이에서 참고문헌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옮긴이의 글 찾아보기 저자 이력 옮긴이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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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가치를 포스트휴먼적으로 가치전환 하는 순간 발생하는 방향성 상실은 인류학적인 질문, 그러니까 휴머니즘의 혼란이라는 위험 앞에서 ‘인간 이후’를 규정하는 것을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만든다. 니체가 ‘모든 가치의 전복’이라고 말한 것은 가치의 절하나 파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인간의 발견을 의미한 것이다. 따라서 도전이라는 것은 한편으로는 ‘너무나 인간적인 것’의 기술적 연속선상에서 니체의 비판을 계속 강화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 ‘그 자체’를 완전히 새롭게, 즉 탈인간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따라서 인간 존재는 아직 도달되지 못한 것이며 기술적 증명이라는 환상 때문에 오히려 더 불투명해져 버린 특이한 것이다. 결국 니체는 어쩔 수 없이 포스트휴머니즘과 동행하면서 안내한다. 왜냐하면 그 무엇인가를 규정해야 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요구함과 동시에 단절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 무엇인가 다가오는 종말을 설명하고 가속화하며 선취하고 새롭게 해석하거나 또는 아예 외면해 버리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러므로 포스트휴머니즘의 ‘계보학’은 무엇보다 이러한 욕망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pp.53-54 중에서
그러므로 ‘포스트’라는 접두어는 휴머니즘과 극단적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리오타르가 ‘포스트모던’에서 주장했던 바로 그 ‘포스트’의 지속적인 해체-심리분석적인 ‘재처리’를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포스트휴머니즘과 기술문화 사이에 아주 밀접한 동일화가 발생하는 것이다. 휴머니즘은 항상 포스트휴머니즘과 함께했으며, 적어도 포스트휴먼의 영혼이자 동시에 휴머니즘을 새롭게 하는 결과를 불러오는 인간의 종말과 함께했다. 포스트휴머니즘은 항상 ‘기괴한’ 방법으로 숨겨놓으려 했던 휴머니즘 전통에 부분적으로 억눌려 있던 것이다(Chambers, 2001 참조). 따라서 분명히 피할 수 없는 기술적 종말론과 인간 종의 기술 진화적 해체는 휴머니즘 내에서 그리고 휴머니즘을 통해서 포스트휴머니즘을 억압하는 순간일 수 있다. 비휴먼적인 것에 매료되는 것과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항상 휴머니즘의 한 부분이었으며 휴머니즘의 규범적 레퍼토리에 속한다. 결국 휴머니즘의 밑바탕에는 인간적인 것과 인간적이지 않은 것의 ‘이중대립’이 놓여 있다. 그러므로 포스트휴먼 이념에 맞서는 논의는 적절하지 않으며, “항상 휴머니즘 내부에서 행해지는 인간적인 것과 인간적이지 않은 것 사이의 이중적인 대립의 해체”(Badmington, 2001: 16)에 귀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인간중심주의는 항상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Badmington, 2003: 19) ---pp.74-75 중에서 그리스-로마 고전시기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신플라톤주의적이며 기독교적인 초기 유럽화 단계를 거쳐 르네상스 인간중심주의와 계몽주의에 이르는 단계, 근대의 산업화 과정에서 19세기와 20세기의 반휴머니즘으로 이어지는 단계, 그리고 현재의 포스트휴먼 단계와 몇몇 유토피아주의자들이 대변하는 트랜스휴먼 단계에 이르기까지 휴머니즘은 각 시대마다 괄목할 만한 적응력을 보여주었다. 근대의 시작과 도전에 직면하여 (학문, 진화론, 심리분석, 마르크스주의, 존재론, 글로벌화, 기술화) 휴머니즘은 신학적·종교적 기원을 세속화하고(프랑스 혁명) 정치화하였으며(자유주의) 경제화하였다(자본주의). 이 과정은 비교적 성공적이었으며 ‘건강한 인간이성’은 국제적이며 글로벌한 차원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휴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치렀을 뿐 아니라 가난한 자들에 대한 원조도 이루어졌다. 휴머니즘 교육이념은 근대 대학이념의 토대를 이루었고 휴머니즘 미학은 글로벌한 서구문화의 토대를 이루었다. 휴머니즘의 도덕 가치는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프로메테우스적인 역사에 영감을 불어넣어주었으며, 인간의 고통과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선택과 결정 능력을 마련해 주었다. 이렇게 의미심장한 역사에 찬사의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바로 이것이 휴머니즘의 자기기만이다. 인류의 미래와 인간의 자연적·문화적 환경에 대한 근심 때문에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스트들을 ‘잘못된 인종’으로 만들어버린다. “잘못된 인종을 추가하는 것이 사회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인식을 그 누가 숨길 수 있을까?”(Cottom, 2006: 150) ---p.104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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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이후에는 무엇이 찾아올까?’
오늘날 모든 학문 영역에서 전통적인 인간상과 그 가능성에 대한 전격적인 변화의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바이오테크놀로지와 인공지능의 발전은 ‘포스트휴먼’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발전의 경향들을 심도 있게 살펴, 인류의 종말과 그에 대한 이론 및 실용적인 대처에 대해 흥미로운 질문과 해석을 내어 놓는다. 인간 이후의 인간, 포스트휴먼 담론의 시각에서 바라본 근대적 인간의 계보학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 오래된 질문은 ‘전통적인’ 휴머니즘을 심각하게 약화시키는 기술의 발전 때문에 곳곳에서 다시 제기되고 있다. 기술발전이 ‘인간본성’의 이념을 위협한다는 것은 이 과정이 휴머니즘적 인간상에 이미 존재해 온 위기를 보여준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이 비평적 입문서는 ‘인류의 종말’이라는 포스트휴먼 시나리오의 계보를 소개하며, 이를 근대적 사고의 이론적·철학적 맥락에서 논의해나간다. ‘포스트휴먼’ ‘포스트휴먼적’ 또는 ‘포스트휴머니즘’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기나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이론적·철학적 논쟁은 1990년대에 와서야 비로소 체계적으로 논의되었으며, 새로운 사고방식이나 이론적 경향으로 다루어져 왔다. 그리고 대략 10여 년 전에서야 포스트휴머니즘은 무엇보다 영미 지역에서 ‘이론적 휴머니티’ 또는 ‘디지털 휴머니티’라는 고유한 연구 영역이자 이론으로 정착되었다. 이러한 이론적 논의와 더불어 1999년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우리의 포스트휴먼 미래』를 통해 우생학의 귀환에 대한 생명공학의 역할이 무엇인가라는 철학적·정치적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그 이후 ‘포스트휴먼’이라는 이념과 비전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점차로 증가하였으며, 바이오기술·나노기술·신경인지과학과 정보기술에 대한 엄청난 두려움과 유토피아는 함께 뒤엉켜 버렸다. 이러한 모습은 전통적인 대중매체뿐만 아니라 소위 ‘뉴미디어’에서도 점증적으로 반복되면서 인류의 미래에 디스토피아의 그림자를 덧씌우기도 했다. 포스트휴머니즘, ‘기술발전’ 대 ‘인간본성’의 구도에서 새롭고 생산적인 인간 담론으로 진화하다 그러나 인류의 미래에 대한 후쿠야마의 주장이 기술발전과 인간본성 간의 대립이라는 보수적이며 도덕적인 측면에 기반을 둔 것과는 달리,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이 새로운 학술적 발전이 우리를 멀지 않은 미래에 환상적인 가능성을 지닌 새로운 디지털 종족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환호한다. 이 책은 이러한 두 가지 극단적인 입장을 중재하고자 한다. 또한 이 책에 소개되는 비평적 이해는 포스트휴머니즘이라는 현상의 새로움과 급진성을 상대화시키고자 한다. 현재의 연관성이 분명히 새롭고 독창적이지만, 포스트휴머니즘은 역사적으로 상이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질문과 문제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포스트휴머니즘의 긍정적 잠재성을 밝혀내는 것 역시 중요하다. 자연과학과 생명과학 그리고 정신과학과 사회과학의 간間학문적 협력의 다양한 가능성을 환영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이를 위해 중요한 사항은 인간과 기술,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류의(그리고 비인류의) 진화에 대한 기술의 역할이다. 현재의 발전과 그에 따른 포스트휴머니즘 논의가 물질적 토대의 급진적 변화를 배경으로 발생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변화에서 중요한 것은 글로벌한 후기자본주의의 급진적인 변혁 국면이다. 즉 휴머니즘과 문자나 책 그리고 텍스트에 기반을 두는 ‘아날로그’에서 포스트휴머니즘, 코드, 데이터, 정보에 기반을 두는 ‘디지털’화된 사회적·문화적·경제적 시스템으로의 변환이 중요하다. 이 책은 이러한 복잡한 변화의 연관성을 찾아보고자 하며, 포스트휴머니즘을 ‘담론’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즉 이 책은 포스트휴머니즘을 지식생산과 정보정치로 구성되고 보급되는 물질적·상징적 그리고 정치적 변화의 조합으로 보고자 한다. 따라서 이러한 모든 비판적 검토의 전면에서 제기되는 문제의식은 바로 다음과 같다. 이 담론은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가? 이 담론의 전제조건은 무엇인가? 이 담론이 배제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떠한 대안을 생각해 볼 수 있는가? 필자는 거시적이되 치밀한 자세를 잃지 않고 인간 문제의 본질에 접근해나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