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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책머리에 학이學而 제1(1-16) 위정爲政 제2(17-40) 팔일八佾 제3(41-66) 이인里仁 제4(67-92) 공야장公冶長 제5(93-119) 옹야雍也 제6(120-147) 술이述而 제7(148-184) 태백泰伯 제8(185-205) 자한子罕 제9(206-235) 향당鄕黨 제10(236-253) 선진先進 제11(254-278) 안연顔淵 제12(279-302) 자로子路 제13(303-332) 헌문憲問 제14(333-379) 위령공衛靈公 제15(380-420) 계씨季氏 제16(421-434) 양화陽貨 제17(435-460) 미자微子 제18(461-471) 자장子張 제19(472-496) 요왈堯曰 제20(497-499) 후기 공자 연보 논어』 관련 지도(춘추시대)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인명 서명 어구(원문) 어구(번역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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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공이 여쭈었다. 가난하다고 해서 부자에게 아첨하지 않고 부자가 되었다고 해서 가난한 사람에게 교만하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그것도 좋겠지만 가난한 사람은 가난을 의식하지 않고 인간적인 삶의 길을 찾아 만족하고, 부자는 돈을 의식하지 않고 겸손한 삶에 마음 쓴다면 더욱 좋겠지. 다시 자공이 여쭈었다. 시경에 (인생공부는) 옥이나 상아를 자른 다음 금강석으로 갈듯이, 조각한 다음 숫돌로 갈듯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방금 말씀으로 시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사(賜)야, 너는 이제 시경을 공부해도 되겠다. 하나를 가르쳐 주니 열을 아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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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이치사다는 왜 논어를 번역했는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읽힌 책 두 가지를 꼽으라면 당연히 논어와 성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성서가 서구 사회에 미친 영향을 가늠할 수 없듯이 논어가 동아시아 사회에 미친 영향 또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다. 따라서 지난 2,500년 동안 논어에는 수많은 학자나 사상가들의 주석과 해석이 첨가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논어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서 장구한 세월 동안 읽혔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쉽게 읽을 수 없는 책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더구나 미야자키의 지적에 따르면, 지금까지의 논어 해석은 예외없이 경학(經學)적인 해석이었기 때문에 논어 본래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을 뿐더러 현대인들이 논어를 난해한 책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논어가 2,500년 전의 언어이므로 논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후대의 주석에 얽매이지 말고 공자 당시의 언어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늘날 논어를 원문으로 읽기란 쉬운 일이 아니며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노력을 기울일 만한 시간도 없고 꼭 그럴 필요도 없다. 성서를 반드시 히브리어나 희랍어로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듯이. 그래서 그의 논어를 연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주석을 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논어 전문(全文)을 번역하는 데 있다고 단언한다. 역사학자에 의한 새로운 해석 미야자키 이치사다는 오랜 세월에 거쳐 켜켜이 쌓인 주석에서 벗어나 공자가 실제로 말하고자 했던 의미를 원문에 충실한 직역만 가지고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원문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그 번역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직역체의 번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대한 또 다른 설명이 필요하게 되는데, 이래서는 진정한 번역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생각이다. 바로 여기서 의역의 필요성이 생겨난다. 미야자키는 단순히 의미를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의(大意)를 전달하기 위해 원문과 다소 차이가 날 수도 있다는 각오 아래 과감히 의역을 택했다. 그리고 철저하게 역사적 관점에서 해석함으로써 지금까지의 그 어떤 『논어』 번역과도 다른 새로운 논어 번역을 완성했다.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새로운 해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를 하나 들어보자. 너무나도 유명한 논어의 첫 문장 “學而時習之不亦說乎”는 일반적으로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로 해석한다. 그러나 미야자키 이치사다는 여기에 의문을 제기한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이 말을 했을 때는 그냥 막연히 “배우고 때로 익힌다”고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그 단서를 사마천의 『사기』 「공자세가」에서 찾는다. 사마천이 「공자세가」 말미에 “문하생들은 때로써 예를 그 집에서 익힌다”(諸生以時習禮其家)라고 한 것을 근거로 “學而時習之”의 之(이것)를 ‘예’(禮)로 보고, 이 구절을 “(예를) 배우고 때를 정하여 (제자들이 함께 모여) 실습을 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다”고 번역한다. 그 밖의 특징 미야자키는 『논어』 전 20편을 주자(朱子)의 『논어집주』(論語集註)의 장(章) 구분에 의거하여 전체를 통괄하는 일련번호를 붙임으로써 독자가 통괄번호를 알면 그것이 몇 편 몇 장에 해당하는지 쉽게 계산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그리고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탁월한 해석 못지않게 번역자 박영철 교수의 노력이 돋보인다. 우선 미야자키 이치사다가 직역체에 익숙한 사람들을 위해 제시한 일본의 전통적인 훈독을 그대로 번역하지 않고, 조선 선조(宣祖) 때인 1612년에 편찬된 우리나라 최초의 논어 번역서 『논어언해』(論語諺解)를 바탕으로 그 유장한 고어투 글맛을 살린 직역체로 대체하는 쉽지 않은 작업을 해주었다. 또한 원서에는 없는 상세한 공자연보를 만들어 공자의 일생과 논어의 상관관계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인명뿐만 아니라 논어의 각 구절을 원문과 번역문으로 나누어 찾고자 하는 문장을 최대한 편리하게 찾을 수 있도록 찾아보기를 꾸몄다. 머리말 인류역사상 이제까지 가장 널리 읽힌 책이라고 하면 두말할 나위 없이 서양에서는 바이블을, 동양에서는 논어를 꼽을 것이다. 그러나 바이블이 진정으로 대중을 위한 성서가 되어 보급된 것은 근대에 와서 바이블이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후의 일이다. 이와는 달리 논어는 오늘날에 이르도록 거의 원초(原初)의 형태 그대로 읽히고 있는데, 이것은 생각해 보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물론 논어의 분량은 성서에 비하면 훨씬 적다. 판본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자수로는 대체로 1만 6천 자 정도이다. 따라서 교과서나 부교재 또는 수양서로서도 적당한 분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책이 특별히 강요한 것도 아닌데 방방곡곡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은 그 내용에 무언가 대단한 매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토 진사이(伊藤仁齋, 1627∼1705)는 논어를 ‘우주 제일의 책’이라고 단정했다. 진사이는 봉건시대의 유자(儒者)이기는 하지만 중앙과 지방의 어느 정권에도 속하지 않았던 시정의 자유로운 학자였다. 논어는 비교적 이해하기 쉽고 읽기 쉬운 책이다. 그러나 동시에 논어는 읽으면 읽을수록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다. 우선 원문으로 읽어보고 대개 이런 뜻일 것이라고 생각한 다음 해석을 읽어보면 전혀 다르게 설명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처음에는 이것이 내 자신의 공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반성했는데 점점 의문이 생겼고, 그런 의문은 더욱 깊어만 갔다. 도대체 기존의 논어 해석은 언제 누가 했던 것일까? 그리고 그 해석은 과연 논어가 말하려고 하는 본래의 의미를 올바로 전달한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