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조금은 무겁게 느껴지는 역사적 사실과 만화와의 만남, 여기에 가볍지 않은 백성민의 그림이 더해진 작품 『상자하자』는 태조 이성계 집권 이후, 왕권을 둘러싼 조선 개국 초기 혼미했던 권력의 격변을 묘사한 작품이다. 이방원의 왕위 찬탈 사건을 시작으로 세종의 등극과 태종의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담고 있는 이 책은 199년 시작한 작품 『삐리』이후 처음 선보이는 백성민의 최신작이기도 하다.
『상자하자』는 역사 만화가 백성민이 조선 시대 역사의 한 토막을 가장 자기다운 그림으로 자유롭고 역동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지금까지 주로 민중들의 삶의 애환을 그려냈던 만화가 백성민의 기존 작품과는 달리 민중의 삶을 움직였던 권력자들의 모습을 다룬 '만화가 백성민이 그린 최초의 왕조사'라는 점 또한 이 책이 가지는 독특함이다. 『상자하자』는 비교적 명쾌하고 눈에 보이는 갈등 구조를 가지고 있다. 태조 이성계와 이방원, 태종 방원과 그의 아내 민씨와 세 아들. 이렇게 확연하게 드러나는 갈등 구도는 각각의 캐릭터를 부각시키고 굵직한 사건들을 촉발시키며 작품 전체 흐름에 속도감을 부여한다. 『상자하자』를 이끄는 가장 핵심적인 코드는 권력이다. 동시에 그 코드를 정확하게 독자에게 전해주고 있는 건 그림이다. 방원은 절대적 권력을 위해 형을 죽였고, 그 권력의 영속을 위해 처가와 외가를 처치했으며 그 끈질긴 권력욕은 자신의 아들, 세종에게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이 만화는 단순히 권력을 향한 조선 개국 초기 권력자들의 과도한 권력에의 집착만을 서술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조선 개국 초기 왕권 찬탈에 얽힌 왕조사라는 역사적 사실을 넘어, 시대를 막론하고 존재하는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힘의 논리 뒤에 숨겨진 희생의 무게가 어떤 것인가를 간과하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백성민은 역사만화가다. 역사 만화는 그림과 스토리 이외에 역사 만화를 완성시키는 자료의 정확성을 필요로 한다. 이는 역사 만화가 자신의 작가 의식과도 연결되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요소로도 작용한다. 『상자하자』는 이러한 역사 만화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작품의 배경이 된 조선 초기의 의상, 성곽 형태, 말투 등, 그 당시 모습을 재현해내기 위해 필요한 자료들을 충분히 숙지한 작가의 노력을 작품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태조 이성계, 태종 이방원, 세종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전개는 조선 개국 초기의 인물, 사건들이 객관성 있는 역사적 사실에 비교적 충실했음을 보여준다. 한 권의 책으로 조선 초기 왕조사를 밀도 있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 그것은 역사 만화가 지닌 힘이자, 역사 만화가 백성민의 그림이 지닌 힘이기도 하다. 흐트러짐 없는 붓과 펜의 절묘한 조화, 유연하면서 강렬한 붓의 선, 과감한 연출, 정적인 컷에서조차 느껴지는 울림. 이 모든 것들은 백성민 만화가 가지는 힘의 원천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