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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싱의 숨 쉬는 돌_양진채
달의 무덤_이경희 성벽 앞에서-어느 소설가 G의 하루_정태언 선택_조 현 대사 증후군_허 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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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2008년을 건너왔다. 그것도 힘차게.
우리는 2008년을 건너왔다. 그것도 힘차게. 2008년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고, 숭례문이 불탔고, 광화문 촛불집회가 있었고, 바다 한가운데서 기름이 유출되는 사고가 있었다. 먹거리 공포, 세계 금융위기도 있었다. 그런 일은 익숙했다. 우리는 어떤 일이 벌어질 때마다 기시감에 시달렸다. 그 가운데 우리의 2008년이 있었다. 우리는 모두 2008년에 등단했다. 수많은 기시감 속에서, 우리의 등단은 낯설었다. 우리는 젊지 않은 몸으로 ‘신인’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신인’과 우리가 잘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쨌든 공식적으로 신인이었다. 우리는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느라 안간힘을 썼다. 아등바등 썼다. 기를 쓰고 썼다. 박카스를 마시며 썼고, 줄기차게 커피를 홀짝이며 썼고, 술에 취해서도 썼고, 꿈에서도 자판을 두들겼다. 문학을 최전방에 내세웠다. 그러나 우리의 이름을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누가 알아달라고 소설을 쓰나, 스스로 달랬지만 무언가 슬슬 엄습해왔다. 알아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소설을 읽고도 아무도 그 작품을 기억하지 못할까봐. 우리는 아직도 강을 힘차게 건너고 있는가. 자신이 없었다. 원래 도도한 족속은 홀로 독야청청이다. ‘신인’ 때부터 이미 지쳐 있었던 우리는 서로 모여 암중모색을 했다. ‘암중’이긴 했는데 ‘모색’은 어려웠다. 우리는 공동의 주제를 가지고 소설을, 그것도 중편소설을 쓰자고 의견을 모았다. 신인답지 않은 우리와 중편은 그 무게가 닮은 듯했다. 다섯 명이니 중편을 써야 책 한 권 분량이 될 터였다. 우리는 우리를 신인이게 했던 ‘2008년’을 배경으로 해서 소설을 써보자고, 자못 호기롭게 결의했다. 그 결의로 출판문화진흥원의 우수출판콘텐츠제작 지원금을 받았다.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2008년이 다른 어느 해와 다르지 않았고, 앞으로 올 많은 날과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 ‘다르지 않은’ 날들을 ‘다르게’ 써야 했다. 그러니까, 미세한 결을 포착해야 했다. 우리는 2008년에 일어난 많은 사건 중 한 가지를 택해 소설을 썼다. 진지하게 썼다. 동료에게 누가 되지 않으려 노력했고, 더 나은 작품을 쓰려고 다짐했다. 서로를 독려했고, 작품에 대해 칼을 날렸다. 앙상한 몰골로 진군의 나팔을 불었고, 멈추지 않고 걸었다. 이제 우리에게 2008년은 오직 ‘2008년’으로 오롯이 남았다. 중편 모음집을 내며 내 글쓰기가 조금 달라졌다고 느꼈다. 거기에는 ‘성숙’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을 듯도 싶다. 다른 이들에게는 묻지 않았지만 나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오롯’의 느낌을 독자들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여러 잡일을 맡았다. 그 덕분에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첫 문장을 써놓고 많이 망설였다는 것만은 알아주기를 바란다. 아직 서로의 어깨 위로 둘렀던 팔을 풀지 않았다. 앞으로도 풀지 않은 채, 우리는 또 많은 날을 함께 걸어갈 것이다. -양진채, ‘책머리에’ 광우병 파동, 태안반도 기름 유출 사건, 숭례문 화재 사건, 한반도 대운하, 세계 금융위기… 2008년 가장 뜨거웠던 사건들 양진채 [플러싱의 숨 쉬는 돌] 우리는 모두 어딘가를 건너왔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때로 어떤 일들은 그 길에서 시간이 멈춘 채 밀폐된 기억의 저장고에 밀봉되어 있다가, 저장고에서 그 일을 꺼냈을 때는 넣었던 그대로 부패하지도 않은 채 녹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내게는 하루에 두 번, 바다의 썰물과 밀물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돌이 그랬다. 이제는 그 돌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도 같다. 이경희 [달의 무덤] 태안에 가면 드르니항이라는 어항이 있다. 작은 어촌 마을과 어울리지 않게. 무슨 불어인가 했는데, ‘드르니’ 는 우리말로 ‘들르다’ 라는 뜻이었다. 드르니항의 명물 꽃게다리에서 감상하는 서해의 낙조는 차진 개펄이 뿜어내는 열기로 숨막히게 경이롭다. 바다는 섬을 품고 개펄은 바다를 품는다. 그리고 우리는 바다와 섬과 개펄의 경이로움을 안고 살아간다. 꽃게와 달이 춤추는 그곳, 서해에 가고 싶다. 정태언 [성벽 앞에서―어느 소설가 G의 하루] 글쓰기가 두려워진 어느 날 아침, 소설가 G는 숭례문으로 달려간다. 2008년 불길을 활활 내뿜으며 사투를 벌이던 두꺼비를 보았던 곳. 이제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새로 쌓아올린 성벽을 올려다보니 G는 더욱 막막해진다. 촘촘히 틀어박힌 돌들. 그 자리를 뒤바꿔 다시 쌓고 싶다는 충동이 일지만 G에게는 그럴 힘이 없다. 오래전에 읽었던 작품 속의 역사(力士)라면, 아니 그와 같은 힘을 지닌다면 몰라도. G는 그 역사를 찾아 동대문을 휘돈다. 하루가 온통 저물고 도로 숭례문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앞에 펼쳐진 광경. G는 그것을 꽉 거머쥔 채 뒤돌아선다. 이제 다시금 자리에 앉을 시간이다. 조현 [선택] 지극히 익숙한 것을 자르면 가끔 낯선 단면이 발견된다. 삶이 낯설어지는 순간이다. 그런 예리한 단면은 매우 큰 통증을 수반하지만 그때야 점은 선분으로, 선분은 면으로, 그리고 면은 입체로 확장된다. 허택 [대사 증후군] 전후 세대인 나는 한국 근대사의 세파를 겪으며 격동의 60여 년을 살아왔다. 동족상잔의 비극적 빈민국에서 선진국으로의 초고속 진입으로 한국은 세계가 경이롭게 여길 만큼 경제성장을 했지만 한국의 현대사는 당뇨병 환자 같은 증상을 겪고 있다. 전후 세대, 베이비부머 세대는 한국 현대사와 운명을 함께한 대사 증후군 세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