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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시작, 나무꾼과 선녀
저대, 저대로 울던 날 나는 내 동지 아주 멀리 있는 별과 별 끼리 방아쇠가 당겨진 뒤 뱀이 뱀을 물고 봉래산에 쓴 낙서 에덴동산을 떠나며 1 미친 돌개바람 에덴동산을 떠나며 2 난핑촌 그 겨울 두만강 이쪽과 저쪽 우리가 손을 들어 북쪽 녀자 열쇠와 자물쇠 사이 누군가, 울면서 가던 아이 생감자를 먹을 때 잊히지 않는 일, 하나 둘 셋 별을 보고 눕다 검은 은하수 저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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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핑촌은 강변 마을이었다. 눈을 들어 바라보면 두만강 건너 북한 무산읍 칠성리 마을이 손에 잡힐 듯했다. 난핑촌의 개가 짖으면 칠성리의 개들도 따라서 짖었고, 칠성리에서 사람들의 갑작스런 웃음소리가 들려오면 난핑촌 노인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강 너머를 건너다보곤 했다. --- p.136
탈북자들은 이삼 일에 한 번 꼴로 강을 건너 난핑촌으로 넘어왔다. 때로는 여자 혼자 건너오기도 했고 일가친척이 한꺼번에 넘어오기도 했다. 마을을 그냥 스쳐 지나간 탈북자들은 어쩔 수 없었지만 나는 그해 겨울과 봄 사이에 난핑촌으로 숨어들어왔던 거의 모든 사람들을 만났다. --- p.137 브로커에게서는 더 이상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두만강에도 여름이 무르익고 녹음이 울창하던 8월 11일, 나는 더 이상 난핑촌에 그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8월 11일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숨이 컥컥 막혔던 것이다. 림채하와 헤어지던 날, 그 뒤로 벌써 세 번째 맞이하는 날이기도 했다. 나는 그날, 쑥대처럼 우북하던 머리를 잘랐다. 그러고는 류 씨 아저씨에게도 비밀로 한 채, 홀로 두만강을 건넜다. --- p.1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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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있다.
2008년, 스물아홉의 끝자락에서 그녀를 만났다. 림채하 동무를! 그날 이후 7년, 무려 2천5백여 날 중 내 머리 꼭대기에서 항상 빛나던 그 별을 올려다보지 않은 밤은 거의 없다. 이건 내가 내 이름 백산서의 주인인 것만큼이나 확실하다. 하늘에 해와 달이 각기 하나씩 존재하는 사실만큼이나......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얘기가 바로 그것, 북쪽 직녀별을 바라봐야만 했던 날들의 기록이다. (본문 19쪽) 소설 『북쪽 녀자』는 2008년 7월, 남쪽의 남자 백산서가 북쪽의 여자 림채하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당시 활발하게 추진되던 금강산 관광사업의 안내자였던 두 사람은 금강산의 구룡연코스를 안내하며 서로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후 몇 번의 관광일정이 이어지는 동안 젊은 남녀는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마침내 서로 마음과 몸을 나누게 된다. 길지 않은 40일 동안 금강산 구룡폭포의 ‘선녀와 나무꾼’이 된 듯, 천상의 ‘견우와 직녀’가 된 듯 시간을 보내던 어느 새벽, 갑작스런 총격사건으로 관광객 한 명이 죽는 일이 발생하고, 금강산 관광사업은 갑작스레 중단되고 만다. 그로 인해 두 사람은 작별인사도 없이 다시 남과 북으로 돌아가 기약 없는 이별을 하게 된다. 그해 8월 이후 삼 년 동안, 나는 미친놈이 되어 살았다. 미치지 않고는 단 하루도 버틸 재간이 없었다. 우리가 금강산에서 철수하던 그해 11월에는 개성관광도 중단되고 말았다.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기는커녕 하나 남은 개성 관광길마저 막힌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본문 110쪽) 저는 그해 2011년 8월 12일 저녁에 홀로 두만강을 건넜어요. 오라바이하고 헤어진 지 천 날이 지나고도 다시 96일째, 그러니까 만 삼 년하고도 하루가 되는 날이었어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고, 단 하루도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었어요. (본문 149쪽) 서로 소식도 듣지 못하고, 만나지도 못하는 고통 속에서 보내던 두 사람은 2011년 8월, 마침내 그리움을 견디지 못하고 두만강을 건너고야 만다. 백산서는 림채하를 찾기 위해 북으로, 림채하는 백산서를 만나기 위해 남으로 목숨을 건 긴 여정을 시작한다. 하지만 남한의 정권이 바뀌고 급속도로 얼어붙어가는 남북관계와 정치계의 검은 음모에 휘말려 둘의 사랑과 운명은 점점 위험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점점 빠르게 바뀌어가는 사랑의 세태 속에서 백산서와 림채하의 이 지극한 사랑은 자칫 현실 속 이야기가 아닌 듯 보이기도 한다. 서로를 향한 사랑과 그리움 외에는 어떠한 위험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마치 전설 속 견우와 직녀처럼 자신의 처지도, 주변상황도 아랑곳없이 상대를 향해서만 달려가는 두 사람. 백산서와 림채하의 이 위험한 사랑은 이 시대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이념과 국경으로 인해 훼손될 수밖에 없는 사랑의 비극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모든 것이 소통 가능한 이 21세기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분단의 벽. 그 견고한 벽은 단순히 정치와 권력만의 문제가 아닌 남자와 여자, 우리 인간의 삶과 사랑에 연결되어 있는 것임을 작가 이병천은 백산서와 림채하의 비극적인 사랑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오로지 분단된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40일을 사랑하고 7년을 서로 그리워만 하며 살아야 했던 두 남녀의 지극하고 서러운 사랑은 2016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잊어서는 안 될 묵직한 과제 하나를 던져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