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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21세기 민족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민족 현대 인류의 탄생 / 씨족?종족에서 초민족적 제국으로 근대 국민국가의 바탕, 민족과 민족주의 / 지금 그리고 미래의 민족 이데올로기의 탄생 자유주의, 그들만을 위한 자유 / 제국주의의 발목을 잡은 사회주의 변신하는 자유주의 / 신자유주의와 그에 대한 대항 다시 보는 ‘민족’ 기존 민족 이론 비판 / 유럽, 탈근대적 전망의 선두주자 민족주의를 무기로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비서구 세계 / 한국 사회의 돌파구가 되어 줄 ‘민족’ 탈냉전 시대의 민족주의 탈냉전 이전시대 / 1990년대 재편된 세계 질서 부시 행정부의 출범과 다극화 추세 / 격변을 예고하는 2006~2010년 근현대사 속의 민족주의 19세기 말의 민족주의 / 일제시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민족주의 1970년대의 민족주의 / ‘87년 체제’와 그 해체 과정 2부 민족을 둘러싼 다양한 담론들 몇 가지 탈민족적 주장에 대한 비판 박노자, ‘반란적 주변’ / 박노자, ‘나를 배반한 역사’ / 하인스 워드와 ‘순혈주의, 단일민족’ 권혁범, 인권의 무국적성 / ‘보편적 가치’란 무엇인가? / 임지현, ‘이념이 아니라 삶이다’ / 김동춘, ‘초민족주의’ 민족과 관련된 다양한 관점들 민족과 민족주의를 폐기할 수 있는가? / 김영명, ‘한국 민족주의의 한계’ /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김동춘, ‘민족주의의 생명력’ / 김동춘, ‘때늦은 민족주의’ / 장하준, 경제에 대한 ‘역사적 접근법’ 송두율, 자주성과 현대성 통일과 민족 도진순, 원 코리아 투 코리아 / 이종석, 자유주의적 통일관 / 류근일, ‘태극기냐 한반도기냐’ 진보적 대안과 민족 문제 김동춘, 세계화와 민족주의 / 장하준, ‘날카로운 진단, 보수적 대안’ 사민주의, 가상하지만 잘못된 문제 설정 / 백낙청과 서동만, ‘분단 현실 망각한 양극화 해소 논의는 공허’ 김명철과 한호석, 2003년 북미대결론 / 새로운 사회를 위한 연구원, 국민직접정치 보수적 대안과 민족 문제 박세일, 자유주의와 자유민주주의 /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친일반민족 행위에 대한 노골적인 옹호 삼성경제연구소, 서비스 산업 육성론 / 한미 FTA, 절대적 친미의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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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을 조금 섞는다면, 요즘에는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해 비판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 돼버린다. 시민적 민족주의는 선善이고 지향해야 할 것이며 종족적 민족주의는 악惡이고 하루빨리 버려야 할 것, 국가나 집단은 위험한 것이고 개인과 개인의 자율성에 기반을 둔 집단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 이렇게 주장해야 좀더 진보적인 양 평가받는다. 저자는 과연 민족과 (종족적) 민족주의가 이렇게 단순하게 부정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민족이란 말이 생겨나기 전에 이미 민족은 존재했고 민족주의란 말이 생겨나기 이전에 ‘민족주의’란 단어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사회역사적 구성 집단의 동질감, 친밀감은 존재했다. 그것도 매우 다른 사회?역사?지리적 배경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말이다. 그에 따라 종교로 묶여 버릇하여 민족 개념이 매우 약한 중세 유럽 같은 곳도 있고 오래 전부터 중앙집권체제가 발달하여 민족 개념이 강한 우리나라 같은 곳도 있다. 그리고 이 사이에, 또 주위에 정말 다양한 스펙트럼의 민족과 민족주의가 존재한다. ‘진보=탈민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항상 서구의 이론을 들이댄다. 마치 서구의 사상과 역사가 인류 모두가 지켜야 할 보편인 양 말이다. 이런 서구 중심주의적 사대주의를 비판하는 식자들 중에도 ‘민족’에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유럽의 민족주의는 전 세계에 끔찍한 피바람을 몰고 왔다. 유럽에서의 ‘탈민족’은 이 엄청난 폭력에 대한 반성의 의미도 크다. 이것이 유럽 ‘탈민족’의 역사적 맥락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다르다. 반성할 것이 없어서(없다고도 생각하지 않지만) 탈민족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게 아니다. 그야말로 ‘다르다’는 거다. 정말 다른 이유 중에서 저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강조하는 부분이 바로 통일이다. 통일은 우리가 분단됐기 때문에 해야 하는 거다. 우리는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민족 구성원들의 합의를 거쳐서 분단된 것이 아니라 강대국들의 이익 때문에 강제로 분단 당했다. 분단은 우리에게 동족상잔의 비극, 폭력 정권, 기형적인 민족적대의식과 반공사상, 미국의 정치?경제?군사적 예속 등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상처를 아직까지도 지속시키고 있다. 분단 체제는 언제 끝날지 기약할 수도 없이 지금도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는 아주 선명하게 이러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위험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이런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 중에서 통일만큼 위력적인 것은 없다. 역으로 말하면 이러한 위협이 해소되고 분단 체제의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하면 저절로 “통일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통일을 둘러싼 문제들은 친미-반미, 보수-진보 대립의 중심이 되고 있으며, 바로 이곳에 우리의 ‘민족’과 ‘민족주의’가 있다. 그런데 우리의 ‘탈민족’은 어떠한가? ‘민족’과 집단의 폭력성, 편협성을 비판하며 지난 역사를 반성 하자는 차원의 탈민족이 아니라 ‘탈민족-반통일-친미’와 ‘민족-통일-반미’의 대립각 속에 위치한, 수구보수 세력들의 기득권 지키기와 민중들의 투쟁 사이에 위치한 탈민족이 돼버렸다. 이런 상황은 현실에서도 교묘하게 드러나는데 수구세력이 기득권 유지를 위해 퍼뜨리는 주장들이 서구 영향을 듬뿍 받은 진보학자들의 의견과 흡사해 보이기도 한다. 한마디로 뉴라이트도 ‘탈민족’을 부르짖고 박노자 씨도 ‘탈민족’을 부르짖는다. 이들이 ‘탈민족’을 외치는 이유는 정반대인데 같은 주장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다. 우리에게 민족주의는 빨리 없애버려야 할 나쁜 것이 아니다. 물론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흔히 근거로 대는 집단의 폭력성, 권력 기구의 폭력성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한 인종차별적 성향까지 반드시 고치고 없애야 할 것도 있다. 그렇지만 정말, 과연, 이런 나쁜 점들이 모두 민족과 민족주의 때문일까? 저자는 1부에서 민족과 민족주의를 둘러싼 사회역사적 맥락을 짚어보고 그 다양성을 언급하고 있다. 2부에서는 한국 사회에서의 민족과 민족주의를 둘러싼 담론들과 그 배경을 살펴보고 있다. 특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통일’의 관점에서 민족과 민족주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이 부분이 저자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