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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힌 자작나무 숲
달콤한 러시아의 첫날밤 블라디보스토그 시베리아 횡단 열차 하바로프스크 끝모를 타이가를 지나 울란우데 아시아의 중심 속으로 바이칼 호수를 따라 이스쿠츠크 크라스노야르스크 아바칸 키질 노보시비르스크 예카테린부르크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도스토예프스키와 맥도날드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익숙한 곳으로의 낯선 귀환 |
이지상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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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들어가니 하얀 가운을 입은 여자가 나왔다.
"바냐(목욕)?" "니예트, 사우나." 바냐건 사우나건 들어가려는데 여자가 앞을 가로 막았다. 뭐라 그러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나의 수첩에 '22:00~'라고 적었다. 시계를 보니 7시. 그러면 밤 10시부터 한다는 얘기인가. 안은 분명 불이 환하게 밝혀 있고 물 쏟아지는 소리도 들리는데. 우두커니 서 있는데 탈의실 쪽으로 금발의 러시아 여인이 벌거벗은 몸을 큰 타월로 두른 채 걸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제서야 나는 사태 파악을 했다. 옛날 터키의 동부 지역을 여행할 때 '하맘(터키의 목욕탕 이름)'에서는 남탕, 여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정해 여자, 남자가 교대로 하고 있었다. 황급히 그곳을 뛰쳐 나오는 나를 보고 여인들은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일단 목욕탕에 들어가보니 탕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긴 나무 의자들이 죽 있고 그 위에 나뭇가지들이 쌓여 있었다. 자작나무 가지들일 것이다. 듣던 대로 웬 사내가 자작나무 가지로 자기 몸을 찰싹찰싹 때리고 있었다. 러시아 사람들은 목욕할 때 혈액순환을 위해 자신의 몸을 자작나무 가지로 두들긴다는 소릴 들은 적이 있었다. --- pp 156~1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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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과 러시아 정교회를 구경하는 동안, 하늘에서는 세상을 다 뒤덮어버릴 듯한 눈이 펑펑 쏟아져내렸다. 나는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통나무로 만든 멋진 목조 가옥이 보였다. 올루스(oolose) 라고 불리는 이 가옥은 근세 부랴트족의 전통 가옥이라고 했다. 까마득히 하늘로 치솟은 침엽수림들을 빠져나오니 구교도(old believers)들이 살던 가옥들이 나왔다.
구교도들은 러시아 정교회의 개혁이 일어나자 그것을 거부하고 옛것을 지키고자 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차르와 대주교에게 탄압받자 중앙아시아나 시베리아로 숨어 세상과 담을 쌓고 지냈는데 1980년대에 세상에 발견된 어떤 공동체느 전기도 모르고, 레닌이나 공산주의 혁명에 관해서도 전혀 몰랐다고 한다. 약 350년간을 세상 모르고 살아온 것이다. 그런데 내가 가장 관심있었던 솟대가 있다는 샤먼의 집은 보이지 않았다. 마침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러시아 노파가 있었다. "그제 샤먼, 토템(무당, 토템 어디)?" 나의 서툰 러시아어를 알아들은 할머니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으로 가니 길 옆에 영어로 씌여진 팻말이 붙어 있었다. 에벤크족(초기 퉁구스족)은 북쪽의 툰드라와 타이가 지역을 개척한 종족이다. 지금 그들은 크라스노야르스크, 치타, 하바로프스크, 야쿠티야와 부랴트 공화국 등에 살고 있다. 러시아에 모두 25,000명이 살고 있는데 그 중의 1,700여 명이 이곳 부랴트 공화국에 살고 있다. 부랴트족과 에벤크족은 순록을 키우고 낚시를 했으며 고라니(노루의 일종), 곰, 늑대, 여우를 사냥했다. 이들은 순록 썰매나 스키를 타고 이동했다. 이벤크족에게 우주는 세 개의 정신세계로 형성되어 있다. 다르페(darpe)는 하늘의 세계를 의미하며 샤먼은 이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이 하늘의 세계는 곰, 물고기로 형상화된다. 반면 오난(onan)은 악과 죽음의 세계이며 땅의 세게다. 이것은 늑대와 여우로 표현된다. 이 두 세계 사이에 중간 세계를 나타내는 정신은 무그데네(mugdene)라 하며 이것은 새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텐트로 만들어진 샤먼의 집도 이 중간 세계에 있다. --- pp 95~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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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아시아의 카스피 해나 아프리카의 팅가니카 호수는 죽어가고 있지만 바이칼 호수는 여전히 살아 있어요. 깊이는 1,637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인데, 물이 하도 투명해서 40미터 깊이까지 육안으로 보여요... 336개의 강이 흘러드는데 물이 빠져나가는 강은 앙가라 강 하나뿐이죠. 그리고 바이칼 호수 밑에서는 샘물이 솟고 있어요.
바이칼 호수에는 3,500종의 생물이 살고 있는데 그 중에서 84퍼센트는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고, 오직 이곳에서만 볼 수 있어요. 또 어떤 고기는 매우 투명해서 햇빛에 닿으면 그대로 녹아버려요... 재미있는 것은 아프리카의 팅가니카 호수를 엎어놓은 형상이 바로 바이칼 호수와 비슷하다는 것이지요." --- pp 122~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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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비는 얼마 정도 듭니까?"
"우리가 방 두개짜리 15평 정도 되는 아파트에 사는데 월세가 약 80달러 정도고, 전깃세와 수돗세 등 다 합해서 한국 돈으로 3,000원 정도 들어요." 러시아 사람들의 월급이 보통 100~200달러라는데, 한국 기준으로 보면 형편없는 금액이다. 그래서 얼핏 생각하면 러시아 사람들은 아주 가난하게 살고 있을 것 같지만 ㅡㄱ건 우리 기준으로 본 성급한 편견일 뿐이다.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어 월세를 안 내고, 교외에 다차(텃밭이라 할수 있는데, 전 국민의 약 77퍼센트가 가지고 있다고 한다)를 갖고 있어 직접 야채를 재배하고 가축을 기른다면 과연 러시아 사람들의 기본 생활비는 얼마나 들까? 후일 유학생 후배에게 들은 바로는 아주 긴 바톤 빵 하나에 약 400~500원으로 일주일을 먹을 수 있고, 게피르(요구르트의 일종)도 몇백원 정도면 실컷 먹을 수 있으며, 그외에 식로품 값도 매우 싸서 러시아 사람들처러 먹으면 별로 생활비가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모스크바 같은 곳에는 수백 개의 찌아트르(극장)가 있는데 할리우드 영화를 상영하는 시네마(영화관)는 매우 비싸지만, 찌아트르는 1000원 정도라서 늘 발레나 음악회를 보려는 러시아 사람들로 붐빈다고 했다. 즉 검소하게 입고, 다차에서 직접 재배하는 채소를 먹으며, 저렴하되 질 높은 문화와 오락을 즐기면서 사는 러시아 사람들의 생활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비참하지는 않다고 했다. --- pp 116~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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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아시아의 카스피 해나 아프리카의 팅가니카 호수는 죽어가고 있지만 바이칼 호수는 여전히 살아 있어요. 깊이는 1,637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인데, 물이 하도 투명해서 40미터 깊이까지 육안으로 보여요... 336개의 강이 흘러드는데 물이 빠져나가는 강은 앙가라 강 하나뿐이죠. 그리고 바이칼 호수 밑에서는 샘물이 솟고 있어요.
바이칼 호수에는 3,500종의 생물이 살고 있는데 그 중에서 84퍼센트는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고, 오직 이곳에서만 볼 수 있어요. 또 어떤 고기는 매우 투명해서 햇빛에 닿으면 그대로 녹아버려요... 재미있는 것은 아프리카의 팅가니카 호수를 엎어놓은 형상이 바로 바이칼 호수와 비슷하다는 것이지요." --- pp 122~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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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비는 얼마 정도 듭니까?"
"우리가 방 두개짜리 15평 정도 되는 아파트에 사는데 월세가 약 80달러 정도고, 전깃세와 수돗세 등 다 합해서 한국 돈으로 3,000원 정도 들어요." 러시아 사람들의 월급이 보통 100~200달러라는데, 한국 기준으로 보면 형편없는 금액이다. 그래서 얼핏 생각하면 러시아 사람들은 아주 가난하게 살고 있을 것 같지만 ㅡㄱ건 우리 기준으로 본 성급한 편견일 뿐이다.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어 월세를 안 내고, 교외에 다차(텃밭이라 할수 있는데, 전 국민의 약 77퍼센트가 가지고 있다고 한다)를 갖고 있어 직접 야채를 재배하고 가축을 기른다면 과연 러시아 사람들의 기본 생활비는 얼마나 들까? 후일 유학생 후배에게 들은 바로는 아주 긴 바톤 빵 하나에 약 400~500원으로 일주일을 먹을 수 있고, 게피르(요구르트의 일종)도 몇백원 정도면 실컷 먹을 수 있으며, 그외에 식로품 값도 매우 싸서 러시아 사람들처러 먹으면 별로 생활비가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모스크바 같은 곳에는 수백 개의 찌아트르(극장)가 있는데 할리우드 영화를 상영하는 시네마(영화관)는 매우 비싸지만, 찌아트르는 1000원 정도라서 늘 발레나 음악회를 보려는 러시아 사람들로 붐빈다고 했다. 즉 검소하게 입고, 다차에서 직접 재배하는 채소를 먹으며, 저렴하되 질 높은 문화와 오락을 즐기면서 사는 러시아 사람들의 생활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비참하지는 않다고 했다. --- pp 116~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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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겨울 시베리아 횡단길 - 정신에 낀 기름기를 걷어내는 시간 여행인 이지상은 2000년 10월 25일부터 32일간, 시베리아 횡단열차(TSR)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달려냈다. 짧은 여정이었다. 러시아는 가난하지만 값싼 여행지가 아니어서 장기여행하기에는 부담이 되었다. 그가 떠날 무렵 한국은 가을이었지만 시베리아는 영하 20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가까우면서도 멀게만 느껴지는 땅 시베리아를 바람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다는 단순한 바람으로 시작한 여행이었지만, 여행을 하며 그는 겨울 시베리아 여행이 그 자신에게만 부여한 또 다른 의미를 찾아내게 된다. 그것은 느슨해진 정신의 조임, 무뎌진 마음 속 칼날의 벼림이었다. 여행 도중 마주친 소위 '여행가'들은 첫여행의 설레임을 잊어버린 채 풀어진 눈빛으로 여행을 일상으로 그저 흘려보내고 있었다. 이지상은 깨닫는다 - 게으름, 빈둥거림, 적당한 쾌락. 현실을 바쁘게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달콤한 휴식이며 재충전을 위한 소중한 행위였을 순간들이 오래된 여행자들에게는 타락을 위한 전주곡이라는 것을. 익숙함에 탐닉하는 순간 나태의 구렁텅이로 굴러 떨어져 구역질 나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다는 것을. 그리하여 여행중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몸은 점점 더 가벼워졌다. 아무도 없는 눈 덮인 길을 바람을 맞으며 걸을 때면 그동안 무디어진 정신이 숫돌에 쓱쓱 갈아지는 기분이었고, 뱃살에 낀 기름이 찬바람에 날아가는 것만 같았다. 2. 끝없는 눈밭과 유럽을 닮은 도시들 속을 방랑하다 이지상이 만난 러시아 사람들은 셔벗맛이었다. 차가우면서도 달콤한 얼음과자 셔벗처럼 러시아 사람들은 한없이 쌀쌀맞았으며 또한 한없이 정겨웠다. 이방인을 거부하는 호텔들 앞에서 여러 번 문전박대를 당했고 영어 메뉴판을 찾아 몇 시간이고 거리를 헤맨 적도 많았다. 그러나 아무런 이유없이 포장지로 싼 담배를 선물하고 보드카 세례를 퍼부으며 열렬히 맞아준 것도 그들이었다. 시베리아의 중심에서 그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형태의 솟대와 장승 등을 발견하고는 신기함을 느꼈다. 그 어디쯤에서 우리는 만난 적이 있었던가. 그만큼 부랴트족은 우리의 모습을 쏙 빼닮아 있었다. 울란우데에서 만난 한 남자 대학생은 십 년 전 그의 동창의 얼굴과 너무 똑같아 그는 알 수 없는 시간의 미로 속을 헤매는 듯한 착각에 잠시 빠지기도 했다. 시베리아를 벗어나 도시로 들어서니 유럽과 다를 바 없는 풍경들이 펼쳐졌다. 호텔 TV에서는 포르노가 돌아가고, 거리의 모퉁이마다 마주치게 되는 미국식 패스트푸드점들 ... 사람들도 발걸음이 바뻐 보였다. 도스토예프스키와 레닌의 나라. 차이코프스키와 '우울한 미소'의 나라. 이곳에선 모든 것이 진행형이었다. 사람들의 꿈과 욕망도 서구식 자본주의에 맞게 재단되어 조금은 어설픈 모양새로 키워지고 있는 땅, 그곳이 러시아였다. 그렇지만 "쓸데없는 상념들, 한줌의 지식과 경험으로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 나는 여행하는 사람일 뿐, 앞으로 가는 발길만큼 상념은 뒤로 흘러가게 하라." 3.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다시 오고 싶은 땅, 시베리아 32일간의 숨가빴던 여정을 마치고 다시 귀환길에 올랐다. 정신의 기름기를 뺀 탓일까. 그동안 익숙하게 여기고 지나쳤던 우리나라의 구석구석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렇기에 이지상은 여행가의 삶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리라. "우리의 삶처럼 여행길에는 온갖 희로애락이 다 있었다. 여행은 압축된 삶이었다. 한 번의 여행은 한 번의 삶이었다." 12월 4일 러시아에서 열린 '한-러 교통위원회' 회의는 한반도 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연결 사업을 논의하는 데 합의했다. 그보다 앞선 11월20일, 러시아 철도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북한의 동해안 철도를 앞으로 2-3년 안에 연결한다는 계획을 갖고 심의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러시아 소리방송은 전했다. 이지상은 꿈꾼다. 우리의 끊어진 국토가 다시 이어지는 그날, 세계로 가는 기차를 타고 평양을, 원산을 지나 시베리아 벌판을 가로질러 모스크바로, 베를린으로, 파리로 뻗어 나갈 수 있기를. 대륙의 찬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그곳을 다시 한번 종횡무진하게 될 그날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