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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맘씨 좋게 생긴 할아버지가 나타났어.
"누, 누구세요?" 아이가 물어도 빙그레 웃기만 할 뿐 대답이 없어. "저는 엄마를 찾으러 가는 길이에요. 그런데 할아버진 누구시죠?" "내 집이 죽어 가고 있구나. 내 집을 살려 주렴. 그럼 네 엄마도 만나게 될 거다." 그런 말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지. "내가 꿈을 꾸었나?" 일어나 집을 둘러보니, 어찌나 낡았는지 금방이라고 쓰러질 것 같아. 그래, 거미줄도 뜯어 내고 곰팡이도 쓸어 내고 구석구석 깨끗이 닦아 냈겠다. 그래도 어딘가 허전해 보이는 거라. 아이는 이 외로운 집에 그림을 그려 주기로 했어. 소나무 한 그루를 정성껏 그리고는 쓰러지듯 잠이 들어 버렸지. --- pp.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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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손을 잡고 고궁이나 절집에 갔을 때, 또는 가까운 동네 향교나 사당에 갔을 때 우리는 그 건축물의 처마 밑과 기둥, 천장 따위를 아름다이 장식하고 있는 '단청'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열에 여덟 아홉은 그 아름다움을 느끼거나 즐기지 못한 채, 또는 의식하지 못한 채 지나치기 십상입니다.누군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거니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일 터이며, 또 누군가는 '아는 것은 좋아하느니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느니만 못하다' 하여 문화 예술의 수용 방식에 서열을 매겼거니와, 알아야 좋아하고 좋아해야 알게 되는 과정이 없이는 즐길 수도 없으니, '알고 좋아할' 계기를 갖지 못한 탓일 터입니다.
'우리 문화 그림책' 시리즈 2권 "그림 옷을 입은 집"은 우리 겨레의 색채 미학이 담긴 전통 목조 건축물의 장식 예술 단청에 대하여, 작으나마 어린이들이 '알고 좋아할' 계기를 만들어 주기 위해 기획된 창작 그림책입니다. 빨강, 파랑, 노랑, 하양, 검정의 다섯 방향색과 그 중간색들, 여러 가지 상서로운 자연물과 갖가지 기하학적 형태를 응용한 다채로운 무늬로 이루어지는 '단청'은, 신비감을 자아내는 조형미뿐만 아니라 비바람과 벌레들로부터 건축물을 보호하는 기능성까지 갖춘 매우 슬기롭고 아름다운 단장 양식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다섯 방향의 힘이 서로 잘 어우러져 좋은 기운을 자아내고, 신비롭고 아름다운 기운이 끊이지 않으며, 잡스러운 귀신이나 나쁜 기운이 침범하지 못하여 그 집이 아름답고 좋은 집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림 옷을 입은 집"은 단청에 담긴 이러한 마음과 기능을 잔잔하면서도 신비로운 이야기와 소박한 민화풍의 그림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 책은 어린이들에게 단청의 아름다움과 기능을 정보의 형태로 던져 주어 어린이들이 그것을 이해하거나 파악할 것을 의도하지 않습니다.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와 이미지로 기억하여 훗날 아이들이 단청을 만났을 때 호감을 갖고, 알고 즐기는 실마리로 삼을 것을 기대하는 것이지요. 산업의 시대를 넘어 디자인의 시대로 가는 오늘날, 색채와 문양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우리 전통 '디자인' 단청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미술 전공자가 아닌 화가가 꼬박 2년 동안 열성껏 그린, 정성이 밴 민화풍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도 이 그림책을 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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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출판사의 '우리 문화 그림책' 시리즈는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와 자부심, 그리고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마음을 심어주기 위해 기획된 그림책 시리즈입니다. 어린이들이 우리 문화를 이해하는 일은 자기 존재의 정체성과 가치를 확인하는 일일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토대를 갖추는 일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 문화'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흔히 "예전에는 이러이러했는데 참 좋았지" 식의 회고나 "요즘 사람들은 도통 우리 걸 몰라" 식의 개탄, "우리 것은 (무조건)소중한 것이니 되살려내야 해." 식의 구호를 앞세우곤 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 문화를 다루는 어린이책에도 반영되어 책 자체의 재미와 완성도, 예술성과는 관계없이 '우리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힘주어 말하는 정보로 가득한 책'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그래가지고는 어린이들에게 우리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게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 문화를 생기 없는 박제나 고리타분한 학습 대상으로 여기게 할 우려가 큽니다. 우리문화그림책 시리즈는 이러한 문제 의식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 문화를 이야기하기 때문에 읽을 것을 강요하는 책이 아니라, 그림책 자체로서 즐겁고 매력이 있기 때문에 읽히는 책, 잊혀져 가는 것에 대한 찬사나 우리 것이니 마땅히 알아야 하는 정보가 담긴 책이 아니라, 우리 문화와 우리네 삶과의 맥락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담긴 책, 우리 문화의 원리와 내력, 그리고 그 의미에 대한 객관적 정보를 제시하여 아이들 스스로 이해의 실마리를 풀어갈 수 있게 하는 책, 바로 그러한 책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우리문화그림책' 시리즈는, 과거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단절된 것이든 계승된 것이든, 오늘날 우리네 삶과 생각에 대하여 유의미한 모든 문화적 소재들을 다룰 것입니다. 또한 오늘날 삶의 맥락에서 의미 있는, 즐기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 서술 방식이라면 어떤 형식이든(창작 이야기, 시, 희곡, 다큐멘터리, 옛이야기....) 취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한 권 한 권마다 새롭고 독자성 있는 책으로 이 시리즈를 채워 나가고자 합니다. 부디 애정과 관심으로 지켜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