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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저자 서문 프롤로그(2003) 서론: 짐 존스·인민사원·존스타운 제1장 사건에 대한 시각 1.1 포함과 배제의 죽음 의례 | 1.2 인지적 거리 두기 | 1.3 종교사적 해석 제2장 사람 분류법 2.1 초인간 | 2.2 하위인간 | 2.3 인간 제3장 공간적 방향설정 3.1 우주 공간 | 3.2 지리학적 공간 | 3.3 몸의 공간 제4장 시간적 방향설정 4.1 우주적 시간 | 4.2 역사적 시간 | 4.3 몸의 시간 제5장 구원과 자살 5.1 종교적인 자살 | 5.2 백야 | 5.3 끝 에필로그 옮긴이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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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들을 집단자살에 이르게 하였나....
이 책은 1978년 11월 18일에 자멸했던 교회, 운동, 유토피아적 공동체에 생명을 불어넣었던 세계관을 재구성함으로써 짐 존스 ? 인민사원 ? 존스타운에 대한 기원을 복원하고자 하는 역사적 상상력의 훈련이다. 그러나 미국사에서 미국 국회의원의 최초 암살, 900명이 넘는 인민사원 구성원들의 전례 없는 집단 자살, 가이아나에서 미국으로 존스타운 사자(死者) 시신의 사후 이송에 대한 소식이 길거리를 엄습했던 순간에도, 존스타운 사건이 주는 거리감은 존재했다. 존스타운 사건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세뇌, 강압, 구타, 성적 학대, 공포, 폭력에 대한 설명을 발생시키면서 수개월 동안 뉴스 매체와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존스타운 사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매혹과 혐오의 흥미로운 혼합을 드러냈다. 존스타운의 포르노그래피에 매혹과 혐오를 느끼면서, 미국인들은 미국에서 심리학적 ? 정치적 ? 종교적 관심의 규범적인 경계선을 강화하는 효과를 내며 존스타운 사건에 대한 정보를 통제했던 전략적인 설명을 통해서만 짐 존스 ? 인민사원 ? 존스타운에 대한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존스타운 사건의 역사적 재구성은 당연히 그 사건이 수용된 방식을 포함해야 한다. 배제의 의례, 인지적인 거리 두기, 그 사건에 대한 전략적인 설명은 미국인들이 존스타운 사건에 의해 잠재적으로 붕괴된 정상적인 것의 경계선을 강화했던 방식이었다. 짐 존스 ? 인민사원 ? 존스타운에 대한 거의 모든 설명은 그 종교적인 성격을 간과한다. 인민사원은 특수한 종교적 세계관에 의해 움직인 종교적인 운동이었고, 종교사의 더 큰 맥락에서 해설될 수 있다. 종교사의 비교문화적, 비교연구적, 학제적 범주들은 인민사원에 대한 이해가 출현하여 형태를 띠고 자랄 수 있는 해석의 틀을 제공한다. 나는 짐 존스나 인민사원이나 존스타운 사건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인민사원의 세계관에서 작동했던 분류법과 방향설정의 상징체계를 재구성하려면, 어떤 설명을 제공하려면, 종교사적 묘사 ? 해석 ? 분석의 세부 작업이 필요하다. 그 세계관에 대한 종교사적 해석은 종교사의 맥락에서 짐 존스 ? 인민사원 ? 존스타운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확립한다. - 저자 서문 중에서- 1978년 11월 18일에 미국의 미디어와 대중적 상상력에서 ‘존스타운 사건’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은 갑작스러운 폭력의 분출이 가이아나에서 발생했다. 리오 라이언 의원을 포함한 국회 대표단이 포트 카이투마(Port Kaituma)의 간이 활주로에서 매복 공격을 받아 5명이 죽고 9명이 부상을 입었다. 인민사원의 라마하 가든스(Lamaha Gardens) 아파트 본부에서 한 어머니와 세 아이가 목이 잘린 채 죽었다. 가이아나의 존스타운에 있는 인민사원 농업 프로젝트(Peoples Temple Agricultural Project)의 주민 914명이 집단 살인과 자살로 죽었다. ‘존스타운 사건’은 공포와 비극의 상징, 광기와 기만이 한데 섞인 이미지, 상상할 수도 없는 종교·정치·폭력의 기이한 혼합물이 되었다. 1988년에 발행된 이 책의 초판은 존스타운이라는 특수한 사례뿐만 아니라 종교·폭력·미국에 관한 전반적인 문제를 이해하고자 한 시도였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존스타운의 죽음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집단적인 살인과 자살은 분명히 미국 주류 문화생활의 외부에 위치한 어떤 것으로 인식되었고, 따라서 미국의 중심 가치를 규정할 수 있는 경계선의 역할을 했다. 존스타운 사건에 대한 반응은 존스타운의 인민(人民)을 전략적인 부정의 피막으로 뒤덮었다. 대중매체에서는 그들을 미국적이지 않고, 종교적이지 않고, 제정신이 아니고, 결국 인간적이지 않다고 묘사했다. 이 모든 부정, 거리 두기, 악마화의 맥락에서, 나는 존스타운에서 죽은 인민의 인간성에 대한 감각을 회복시키려고 했다. (…) 존스타운의 자살, 또는 “혁명적인 자살”은 자진해서 그것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서 구원이 더 이상 절충될 수 없는 것처럼 보였을 때, 자살은 마지막 구원 전략이었다. 자살 결정은 필연적인 것도 아니었고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인간적으로 존재하기 위한 조건을 설정했던 인민사원 세계관의 관점에서는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존스타운 사람들은 인간이었다. 존스타운 사자는 인간적인 사자였다.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