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서설 - 세종과 새롭게 만나기 위해
태종이 본 세종 - 국왕의 조건, 그리고 세종의 정치 비전 황희가 본 세종 1. 대마도 정벌과 공세적 안보정책 2. 조선에 살고 싶다 - 세종시대의 집단귀화현상 허조가 본 세종 1.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보살핌의 정치 2. 세종정치의 아킬레스 건, 왕위계승문제정치 박연이 본 세종 - 조선의 황종음을 찾아라 정인지가 본 세종 - 학문 사대주의를 넘어서 수양대군이 본 세종 - 누구를 위한 국가인가 김종서가 본 세종 - 파저강 토벌을 위한 대토론 신숙주가 본 세종 - 싱크탱크 집현전 안의 두 가지 길 정조가 본 세종 - 맡기고, 예비하고, 기회를 활용하라 에필로그 |
박현모의 다른 상품
|
세종을 생생하게 중계방송하다
김철웅(syh28@yes24.com)
중국의 요.순.우 처럼 근심걱정없이 백성들이 격양가를 불렀음직한 조선 500년사에 태평성대를 이룬 세종에 대해서 이야기 할까 한다.
세종대왕이라는 호칭은 후세에서 불려졌지만 무엇이 조선 500년사에 태평성대를 이룬 대왕으로 불리게 된 것일까 바로 이 책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세종, 실록 밖으로 행차하다>라는 도서는 네 가지 방향으로 볼 수 있다. 첫째,정치인 세종이 탄생한 배경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이유) 둘째,정치인 세종이 언행에 대한 신하들의 이야기 (황희,허조,박연,정인지,김종서,신숙주편) 셋째,정치인 세종은 권력을 어떻게 넘겨줬을까 (세조편) 넷째,정치인 세종에 대한 후세 위정자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정조편) 이 책의 내용중 첫 내용만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세종이 정치적 인물로 등장하게 된 배경을 아버지(태종)의 시각에서 설명을 한다. 저자가 책의 서두에 태종이 세종에게 세자의 보위와 임금의 자리를 넘겨진 이유가 다름아닌 국가의 기틀을 이해한 세종으로 선택을 한것이다. 우리가 야사에서 익히 들었던 세종(충녕)에게 왕위가 넘겨진게 장자(양녕)가 능력이 안되어서 왕위를 물려주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가 사료를 통해서 앞선 왕위계승을 세종(충녕)에게 물려준 근거한 이유를 보자면 피비리낸 왕위 쟁탈을 통해 권력을 쥔 태종이 왕위를 물려줄 수 있는 아들중에 세종(태종)만이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는 위기능력을 보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정치인 세종에 대한 이야기의 서두가 정치인으로 첫 발을 내딛었지만 그 이후의 정치인 세종은 인재등용에 대해서 중요한 능력위주로 발탁을 한다는 것이다. 시대가 조금은 다르지만 조선후기 위정자로 한명인 허균은 인재등용에 대해서 유재론으로 통해 피력한 바 있다. 물론 세종도 인재 발굴함에 있어 허균이 처한 신하의 위치와 왕의 위치는 다를 수 있지만 근복적인 내용은 동일할 것이다. 허균의 유재론을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나라를 경영하는 자와 임금의 직무를 다스릴 자는 인재(人才)가 아니면 안 된다. 하늘이 인재를 내는 것은 원래 한 시대의 쓰임을 위한 것이다. 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 귀한 집 자식이라고 하여 재주를 넉넉하게 주고, 천한 집 자식이라고 해서 인색하게 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옛날의 어진 임금은 이런 것을 알고 인재를 더러 초야에서 구했으며, 낮은 병졸 가운데서도 뽑았다. 더러는 싸움에 패하여 항복해 온 적장 가운데서도 뽑았으며, 도둑 무리를 들어올리고, 혹은 창고지기를 등용하기도 하였다. 쓴 것이 다 알맞았고, 쓰임을 받은 자도 또한 자기의 재주를 각기 펼쳤다. 나라가 복을 받고 치적이 날로 융성케 된 것은 이러한 방법을 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국같이 큰 나라도 인재를 혹 빠뜨릴까 오히려 염려하였다. 근심되어 옆우로 앉아 생각하고, 밥 먹을 때에도 탄식하였다. 세종에 대한 인재등용은 굳이 후세 허균의 유재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정치인 세종에게는 인재등용에 대한 기본 개념이 크게 다르지 않다라고 보여진다. 세종은 후세에 명재상이라 불린 황희의 경우 우리가 책에서 보아왔던 모습과는 달리 "간악한 소인"말을 들었지만 후에 세종대의 유능한 인사들을 등용하게 한 주춧돌 역할을 하면서 "성실하고 능력있는 참 재상"이라는 사람으로 평가되었다. 세종과 함께 시대를 이끌어간 많은 신하들이 앞서 황희처럼 허물이 있더라도 공적으로 허물을 덮게 하는 살림의 정치를 폄으로 그들의 능력이 사장되지 않게 한 것이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세종에 대한 이야기도 많지만 인간 세종에 대해서는 나오지는 않는다. 실록에 나와 있는 내용중 저자가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사료에 근거한 이야기로 전개하다보니 세종의 정치적 에피소드만을 뽑은 듯한 느낌이 많이든다. 물론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세종의 인간적인 면을 보기보다는 세종이 처한 정치적 현실속에 9인에 대한 정치적해석을 내용전반을 이루기때문이다. 아버지(태종)가 선택한 후세 정치인 (세종), 세종의 아들(세조)이 본 외교적 풍랑속에서 슬기롭게 대처하는 아버지(세종)의 선택 그리고 군신(황희,허조,박연,정인지,김종서,신숙주)들이 바라본 누구나 존경하는 위정자의 모습, 그리고 후세의 왕인 정조의 국가의 기틀을 세종에서 찾는 모습들은 너무 정치적해석만을 강조해서 아침신문의 정치 가십란에 등장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이렇듯 다양한 사료안에서 정치인 세종만의 모습을 끌어내다 보니 정치적인 행위나 언행으로 치부되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차후에 인물평전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주제를 담은 계속적으로 나와 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
|
조선의 정치가 9인이 본 세종의 다면적 모습
황희, 김종서, 정인지, 신숙주 등 쟁쟁한 조선의 정치가 9인이 각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정치가 세종의 모습을 그려낸 책이다. '위대한 성군', '뛰어난 리더십의 소유자' 등 그동안 세종이라는 이름에 덧붙여진 수식어를 배제하고 혼탁했던 조선의 창업기를 지나 수성의 시대를 이끌어야 했던 정치가 세종의 면모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고자 했다. 세종의 한 면만을 부각시키는 방법으로는 세종 정치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게 저자의 기본인식이다. 부조된 모습이 아니라 실록 밖으로 걸어나오듯 입체적으로 세종을 그려냈을 때만이 조선 초기의 시대상과 세종의 정치관을 꿰뚫어볼 수 있다는 의미다. 9인의 정치가를 화자로 등장시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누구에게 왕위를 물려줄 것인지 고민해야 했던 아버지 태종의 눈에 비친 세종은 공부에 편집증적으로 매달려 있지만 무武에는 무無지한 후보였다. 자신의 정치적 폭력과 국가의 의미를 이해한 유일한 후보이기도 했다. 누구에게 왕위가 돌아갈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던 아들 수양대군은 세종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재위 말년으로 갈수록 세종의 얼굴에서 보이는 고독과 집현전 학자들에게서 간간히 느끼는 분노를 읽어내는 이가 바로 수양대군이다. 세종의 오른팔이었던 정인지는 중국과 지식 경쟁을 벌이고자 했던 세종의 자존심을 '치열하게' 그려낸다. 단종을 폐위하고 세조의 편에 들면서 성삼문과 엇갈린 길을 가야 했던 신숙주는 세종이라는 '좋은 울타리'를 회상하면서도 정치의 냉혹함을 직시한다. 능력 있는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중용된 '인사과장' 황희가 본 세종의 인재관은 어떠했을까. 아무리 허물이 많아도 능력이 있으면 기용하라는 세종의 인간경영에 가장 큰 혜택을 본 건 '간악한 소인'에서 청백리로 거듭날 수 있었던 황희 자신이었다. 6진 개척과 같은 난제의 '해결사' 김종서가 지켜본 세종은 여진족 토벌을 위해 3차에 걸쳐 대토론을 벌이는 세심한 전략가였다. "선조가 지켜온 땅은 비록 척지촌토라도 버릴 수 없다"는(223p) 비장한 심정으로 백두산을 우리 영토로 만들기 위해 전력하다가도 느닷없이 온천행을 떠나는 의아한 행동도 김종서의 눈으로 분석한다. 유감동 사건과 같은 성 스캔들이나 세자빈의 동성애 사건을 난감한 표정으로 대하는 세종의 모습은 허조가 생생하게 묘사해준다. 더 파헤쳐봤자 득보다는 실이 많으므로 사건을 덮어두라는 세종의 정치적 판단의 기준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재위 15년 되던 해 설날 아침에 근정전에서 울린 회례 음악. 이를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듣고 있는 세종의 표정을 박연이 조심스레 전하고 있지만 정작 그는 세종이 중국의 음악을 배척하려는 정책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는 회고를 들려준다. 이 책은 이처럼 다양한 시각에서 그려낸 세종의 모습을 종합해 세종 정치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했다. 각자의 시선을 따라가는 사이 세종 시대의 다양한 인물들과 흥미로운 사건들과도 마주치게 될 것이다. 세종실록을 생생하게 중계방송하다 저자의 목소리 대신 9인의 조선 정치가의 증언을 담다 보니 혹 작가의 상상으로만 채워진 책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은 철저히 사료 중심적이다. 태조실록, 태종실록, 세종실록에서부터 세조실록, 정조실록에 이르기까지 조선왕조실록은 물론이고 이이의 「율곡전서」, 이긍익의 「연려실기술」, 「악학궤범」, 신숙주의 「보한재집」 등 다양한 사료를 폭넓게 인용하고 그 출처를 해당 문장에 빠짐없이 표기했다. 저자의 말처럼 가위와 풀을 가지고 사료를 재구성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9p) 그러면서도 이 책은 사료를 읽는 듯한 텁텁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화자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마치 실록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중계방송이라도 하듯 인물의 표정과 사건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해낸다. 실록을 수차례 통독하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할 수 있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세종이 태평 시대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힘 저자에 따르면, 첫째는 탁월한 인재등용이다. 세종은 “인재가 길에 버려져 있는 것은 나라 다스리는 사람의 수치”라고 생각하여 능력 있는 자라면 신분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등용했다. 그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장점과 함께 단점이 있는데, 중요한 것은 공적에 의해서 그의 허물을 덮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86p) 그것은 군주의 시대적 사명이자 정치의 고유한 영역이다. 따라서 “그 사람이 어질다면, 비록 사립문과 개구멍에 사는 천인賤人이라도 공경公卿이 될 수 있으며” “뇌물죄나 횡령죄를 범한 관리의 자손일지라도 진실로 현능賢能하다면 등용”해야 한다는 게 세종의 생각이었다. 실제로 그는 “탐오貪汚한 죄”로 탄핵을 받은 조말생을 중용하여 북쪽 변방을 방어하게 했다. 또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편수 책임을 맡았던 설순의 경우 “사람됨이 거칠어 사리를 잘 분별하지” 못한다는 평을 받고 있었음에도 “서사書史의 기송記誦에 능했던 고로 발탁해 집현전의 일을” 맡게 했다. 이외에도 부산 동래현 소속의 관노 장영실을 호군護軍 관직에까지 임명한 것은 유명한 일이다. 세종의 인재 쓰기의 요체는 정승의 선발과 운용에 있었는데, 최윤덕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219p) 인재 선발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되 일단 발탁한 다음엔 의심하지 않고 맡겼다[疑之勿任 任之勿疑]. 특히 세종은 여러 재상들의 서로 다른 개성과 종교적 신념을 존중했다. 예컨대 허조는 원칙을 강조한 ‘법가적法家的’ 인물이었고, 황희는 중용을 실천한 ‘유가적儒家的’ 인물이었으며, 소를 타고 다니며 피리를 불었다는 맹사성은 기필期必하지 않은 ‘도가적道家的’ 인물이었다. 그리고 변계량은 문장과 예법에 밝은 ‘불가적佛家的’ 인물이었다. 세종은 그들의 다른 점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한편 그들의 이질적인 아이디어를 ‘합금’하는 데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어전회의는 각자의 특장이 발휘되어 좋은 국가정책을 만들어내는 용광로였다. 둘째, 청정聽政의 정치다. 세종은 비록 국왕이면서도 발언을 최소화함으로써 신하들의 의견을 최대한 많이 들었다. 세종의 자기 통제력은 즉위 직후 발생한 ‘강상인 옥사 사건’에서도 잘 나타난다.(44p) 그는 좀처럼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부왕 태종에 의해 자신의 처가가 풍비박산되고 자칫 왕비까지 쫓겨날 지경이었는데도 시종 침묵을 지켰다. 윤음綸音, 즉 “왕의 말이 처음 나올 때는 실[絲]과 같으나 그 말이 외부에 나가면 거문고 줄[綸]과 같아서 끊을 수도 돌이킬 수도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예민한 상황에서 자신의 의견을 꼭 전달해야 할 경우 세종은 고전의 사례를 언급하는 식으로 표현하곤 했다. 예를 들면, 경연을 시작한 지 두 달째인 즉위년 11월 29일에 세종은 『대학연의』의 내용 중 “당나라의 대장군 우문사급이 당태종에게 궁중의 수목이 아름답다며 탄복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 “예로부터 간사하고 아첨하는 신하가 임금에게 아양으로 기쁘게 하는 모양이 이와 같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그러나 그 끝을 잘 보전하는 자가 없었다”며, 주위의 아부꾼들을 경계하고 있다. 그 시기는 좌의정 박은 등이 태종에게 잘 보이려고 세종의 장인인 심온의 처단을 요구하는 등 충성 경쟁을 하던 때였다. 그러자 세종은 그 다음해 1월 9일의 경연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들짐승이 아무리 빠져 달아나도, 사냥꾼은 반드시 잡고 만다. 그 짐승이 험한 곳으로만 내달리며, 넘어져 죽게 될 것은 생각지 않으니, 지극히 어리석다 이를 수밖에 없다.” 물론 특정인을 지목하지 않았지만,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 말이 박은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세종의 언중유골言中有骨식 의사표현 덕분인지, 태종은 왕비를 내쫓지 않고, 심온만을 처형하는 수준에서 사태를 마무리 지었다. 좋은 정치의 한국적 모형을 찾아서 물론 세종의 '다른 얼굴'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효과적이지 못했던 왕위 계승 문제나, 조선왕조 앞 시대의 어진御眞을 불태우고 땅에 묻게 하는 등 고려왕조에 대한 과도한 부정 의식, 그리고 말년의 척불논쟁(186p)으로 인한 시간과 체력 소모 등이 그것이다. 특히 왕위 계승 문제를 확실하게 매듭짓지 못해 문종 사후의 정치적 혼란은 물론이고, 단종의 비극이 조선 정치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막지 않았다는 비판으로부터 세종은 자유로울 수 없다. 결론적으로 말해 저자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모범적인 군주' 내지 '동방의 성주'와 같이 역사 속에서 덧칠해진 세종이 아닌 맨얼굴의 세종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25p) 그 과정에서 '좋은 정치의 한국적 모형'과 잘한 정치와 잘못한 정치를 구분해볼 수 있는 '정치적 판단의 기준'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