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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여자는 위험하다
몸짓 하나로 세상을 미혹한 여자들의 명작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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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일반/예술사 top20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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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프롤로그

1. 광기의 서곡, 기도와 도취 사이에서
2.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
3. 위험한 욕망의 그림자
4. 무대 위의 열정
5. 춤과 미술의 대화
6. 몸으로 몸을 지워나가는

참고 문헌

저자 소개 1

1969년 부산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10대학 대학원에서 미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서화에 관심이 많은 부모님 덕분에 어려서부터 문화와 예술의 세계를 동경했으며, 그림에 대한 글을 쓰고 우리말로 옮기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클림트, 황금빛 유혹》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반 고흐》 《어린이를 위한 그림의 역사》 《미술사 아는 척하기》 《화가로 보는 서양미술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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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05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296쪽 | 502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01066257

출판사 리뷰

춤추는 여자는 왜 위험한가?

여자가 몸을 흔들면 남자의 영혼이 흔들리는가?
빨간색 구두를 탐했기에 다리를 잘라내고 춤을 멈출 수 없었던 소녀가 있다. 《빨간 구두》의 카렌, 그녀는 공주가 신은 빨간 구두를 부러워했고, 견진성사를 위해 교회에 가면서 반짝이는 빨간 구두를 신었으며, 급기야 교회 대신 무도회장으로 달려가 버렸다. 그녀에게 춤은 죄인 동시에 형벌이었다. 그런데 이 형벌이 어찌나 집요하고 가혹한지, 사형집행인에게 부탁하여 다리를 잘라냈건만 잘린 다리가 저 홀로 춤을 추며 카렌을 위협한다. 빨간색과 무도회로 대변되는 화려함과 허영의 세계, 여자들이 품기 쉽지만 결코 품어서는 안 될 욕망에 대한 악의와 증오가 느껴지지 않는가. 어찌하여 춤이 그토록 잔혹한 처벌수단, 나아가 죄악 자체가 되었을까?
카렌의 죄는 여자의 춤을 바라보는 시선, 넓게는 여자의 몸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비롯된다. 어머니 여신이 지배하던 시대에는 신의 대리자도 여성이었고, 여자의 춤은 암흑에 잠긴 세상에 빛과 질서를 부여하는 신비로운 행위였다. 대지의 여신을 숭배하는 초기의 종교의식에서 으레 여자들이 춤을 춘 것은 그래서이다. 그러나 그 몸을 억제해야 할 천박한 욕망의 대상이라 본다면 여자의 춤은 죄 많은 행동을 유발하는 유혹이고 그 자체로 죄가 된다. 여자의 몸이나 춤이 달라진 게 아니라 누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춤의 의미가 달라진 것이다. 시선의 주체, 욕망의 주체가 남성으로 변하면서 여자의 춤은 늘 유혹이나 죄와 결부되었다.

춤추는 곳에 악마가 깃든다
“춤추는 곳에 악마가 깃든다.”며 가톨릭교회는 여자의 춤 혹은 여자와 함께 추는 춤을 경계했다. 여자의 춤은 곧 유혹의 몸짓이자 곧바로 죄와 연결되는 통로로 남자를 타락시킨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자의 춤을 경계한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춤추는 사람이 느끼게 되는 기쁨이 금지된 다른 욕망의 문을 열어놓을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물론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면서 얻는 순수한 기쁨과 성적 쾌감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춤을 출 때 느끼는 쾌감과 관능적인 쾌감 사이의 경계가 모호한 것도 사실이다. 몸에서 성을 떼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거기다 욕망 자체도 문제가 되겠지만 욕망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더 복잡한 문제를 야기한다. 욕망의 대상으로만 머물렀던 여자의 몸이 춤을 통해 스스로 욕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여자의 몸은 더 이상 침묵하는 몸, 수동적인 몸으로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여자의 몸은 위험한 무기이자 시끄러운 전쟁터
여자의 춤에는 억압하고 규제하고 심판하고자 하는 힘과 억압에서 벗어나 기쁨을 누리고 기꺼이 죄를 저지르고자 하는 욕망이 서로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다. 여자의 춤을 다룬 미술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도 바로 그 두 개의 힘이 어떻게 부딪치고 서로를 경계하면서 변해왔는지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와 공간에 따라 여자의 춤에 대한 시선은 끊임없이 달라졌는데 그 시선의 변천사는 곧 여자 몸에 대한 해방의 역사이자, 여권 신장의 역사와 그리 다르지 않다.

《춤추는 여자는 위험하다》 : 여자의 몸과 춤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천사?
춤은 인간의 문화 욕구 중에서 본능에 아주 가까운 쪽에 해당한다. 초기 인류의 흔적이 남아있는 동굴 벽화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원시시대부터 인간은 다른 것을 흉내 내거나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면서 즐거움을 얻고 원하는 것을 기원했다. 고대에는 수호신을 숭배하는 제의에서, 밀교의 비밀입문 의식에서 춤추는 모습을 볼 수가 있는데 이 시기의 춤은 개인의 한계를 넘어 거대한 신성함과 접촉하는 통로였다. 또 다른 문화권에서는 춤을 신성한 기도 의식으로 생각하던 것과는 달리 사악한 광기에 사로잡힌 질병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이렇듯 춤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 속에서 인간은 아주 일찍부터 춤의 위력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는데 이런 감정의 근원에는 분명 몸과 성에 대한 껄끄러움이 숨어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춤의 표현수단이 사람의 몸이고, 춤에 대한 시선은 몸에 대한 시선과 맞물리기 때문이다.

춤은 신에게 올리는 경건한 기도? 쾌락을 일깨우는 악마적 행위?
최초의 네 여인이 향을 밝히고 기쁨의 춤을 추자 동이 트면서 태양이 솟아올랐다.
- 마야 신화집 《포폴부》
신에게 감사의식을 올리며 추었던 기도와 도취의 춤은 악마와의 소통행위로 치부되었다가 또 인간을 타락시키는 욕망을 일깨우는 행위로, 그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어간다. 남녀가 짝을 지어 몸을 부딪쳐가며 춤추는 것을 곱게 보아 넘기지 못했던 16세기에, 화가 피터르 브뤼헐은 <결혼식 춤>(p.50)을 통해 흥겹게 춤을 추는 무리 속에서 여자와 춤을 추고 있는 세 남자의 성기가 불룩하게 솟아있는 것으로 그렸는데, 이것은 남녀가 함께 추는 춤에 대한 당시의 시선을 대변하는 듯하다.

거리낌 없이 춤에 대한 정열을 고백할 수 있는 시대가 오다!
춤에 대한 정열이 단점이라 해도, 솔직히 춤을 추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건 없어요.
머리가 무거울 때 한바탕 추고 나면, 모든 게 다시 좋아지거든요.
-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중에서
18세기에 여자들은 무도회장 한가운데로 나가 춤을 추었다. 왕족과 귀족 자제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교양을 쌓고 과시하기 위해 사교춤 교습을 받는 것은 보편적이었다. 또한 여성 무용수의 비중이 크게 확대되면서 이전에는 천박하게 몸을 노출했다고 비난 받거나 남자 흉내를 낸다고 조롱을 받았던 여성 무용수들이 남자무용수들이나 가능했던 도약과 힘찬 동작을 선보였다. 여자들이 사교춤과 극장 춤의 주역이 되자, 화가들의 그림에서도 춤추는 여자들이 전면에 등장했다. <라 실피드의 마리 탈리오니>(p.92), <파니 체리토>(p.97)를 보면 당시 추종자들이 히스테리를 일으킬 정도로 큰 인기를 끌던 여자 무용수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며 여성 발레 무용수의 전형이 된 얇고 가벼운 망사 천으로 된 치마에 꽉 조이는 상의, 가운데 가르마를 탄 머리 모양과 발레 기본 자세인 ‘아라베스크’등이 이때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춤추는 여자의 변신, 순결한 요정에서 유혹과 파괴의 여신으로
19세기 후반에는 관객들도, 화가들도 춤추는 여자에게서 욕망이나 정열, 유혹하고 파괴하는 힘 같은 전혀 다른 측면을 보았다. 남자의 환상을 먹고 영원한 삶을 누릴 것 같던 꿈속의 여자들, 순정을 바치다 사랑을 잃으면 생명까지 내던지던 요정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들은 욕망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땅으로 내려왔다. 작가 보들레르는 마네가 스페인 무용수의 자태를 그린 <발렌시아의 롤라>(p.115)를 보고 그림을 볼 때마다 자신의 욕망이 흔들리는 것을 발견했다고 고백했다. 쥘 셰레가 그린 공연 포스터(p.147) 속의 춤추는 여자는 발랄하고 경쾌한 매력이 넘치긴 하지만 품위 있고 순결한 요정이라기엔 너무 가볍고 천박해 보인다. 하늘을 떠나 지상으로 내려온 요정, 어찌 보면 당시 증가하던 대중오락물에서 춤추던 여자들에 대한 인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모습이다. 장 밥티스트 카르포는 오페라 극장에 춤추는 여섯 명의 여성을 조각했는데(p.118), 작품 속 여자들이 부도덕하고 음탕하며 술 냄새를 풍기는 것 같다며 기자들과 평론가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여자, 남자를 위한 몸을 버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다
19세기를 넘어오면서 여자들은 더 이상 수많은 남자 화가들이 입혀준 요정의 날개옷이 몸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성 미술가의 작품 안에서 춤추는 여자들은 여전히 여자의 몸에 대한 매혹과 거부, 동경과 두려움이라는 이중적 시선을 면하지 못했다. 그래서 로이 풀러나 이사도라 덩컨 같은 초기 현대 무용을 개척한 여성 무용수들은 남성이 만든 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단련된 몸’이 되기를 거부하며 의상, 동작 등에 의식적인 변혁을 시도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여성 무용수나 여성 안무가들을 중심으로 여자의 춤에서 성적 유혹이나 성적 봉사의 흔적을 배제하면서 동시에 성의 주체로서 관능적인 생명력을 과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가능성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한번 형성된 시선의 편향성은 쉽게 변하지 않지만 많은 여성 예술가들은 지금도 남자의 만족을 위해 만들어진 기존의 몸 이미지를 지워나가면서 여자의 몸을 다르게 움직이고 전시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망각의 운명을 극복하고, 순간을 붙잡는 예술 ‘사진’과 만나다
동작이 진행되는 과정을 모두 사진기에 담는다고, 춤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잡아낼 수는 없다.
사진작가는 춤의 가장 눈부신 순간을 포착할 줄 알아야 하며, 이 순간을 부각할 줄 알아야 한다.
- 바버라 모건(1900~1992)
미술이 춤을 이용하고 춤이 미술을 이용하는 관계는 무대미술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가장 주목할 만한 관계는 춤과 사진 사이에서 나타났다. 사진은 발명된 지 한 세기도 되기 전에 초상화의 한계와 단점을 보완하는 초상사진으로 예술적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사진이 무용수의 모습을 기록하는 수단을 넘어서 춤과 아주 특별한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정지한 피사체만이 아니라 움직이고 있는 피사체를 포착할 수 있게 되면서이다. 춤은 짧은 순간 지속되고 나면 시간의 뒤로 사라져버리는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을 영속화해줄 가능성을 사진에서 찾았다. 사진은 움직임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춤을, 춤은 망각 속에 묻히는 운명을 피하기 위해 사진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용수를 찍은 이전의 사진들은 대부분 오랫동안 정지해 있는 상태에서 찍거나 아주 간단한 동작을 취하는 모습을 찍은 것이었는데 당시 최고의 무용수였던 안나 파블로바를 찍은 사진작가 아널드 젠드는 이 사진을 찍은 후에 동작 중인 무용수를 최초로 찍었노라고 큰 자부심을 표했다. (p.228)

《춤추는 여자는 위험하다》를 보는 특별한 즐거움

춤추는 그녀들의 열정과 도취에 사로잡히다
춤추는 여자를 바라보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즐거움이다. 그들은 얼마나 아름답고 매혹적인가. 때로는 이 세상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천상의 요정으로, 때로는 뇌쇄적인 팜므 파탈의 모습으로, 그녀들은 천 가지 얼굴을 가지고 시시각각 모습을 달리하며 우리에게 다가온다. 피카소, 샤갈, 고갱, 쇠라, 뭉크, 마티스 등 유명화가는 물론, 로베르 두아노, 헬무트 뉴턴, 로이스 그린필드 등 현대 사진 작가들의 작품을 엄선해놓은 명작 컬렉션이라 할 수 있는 《춤추는 여자는 위험하다》를 통해 관람자이자 독자인 여러분은 춤추는 여자들이 발산하는 열정과 쾌감에 진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춤추는 그녀들만의 열정, 도취, 나아가 광기에 이르기까지 일상에서 쉽게 만나지 못할, 감정의 엑스터시를 맛보는 색다른 경험에 도전해보자.


‘탱고’라는 춤을 생각했을 때 많은 이들이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처럼 중후한 느낌의 멋진 신사와 아름답고 날씬한 숙녀가 만들어내는 우아한 춤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탱고는 어떨까? 뻥튀기 기계에 넣어 부풀린 듯한 몸집의 남녀가 추는 탱고(p.281)가 상상이 되는가? 탱고하면 ‘열정’, ‘유혹’같은 단어가 떠오르지만 그들의 탱고는 오히려 느긋하며 푸근하기만 하다. 또 발레리나가 없는 발레리나 그림을 본 적이 있는가? 프랑스에서 뉴욕으로 가는 대서양 여객선에서 관람한 발레 공연에 깊은 인상을 받고 화가 프랑시스 피카비아는 《대서양 여객선의 스타 발레리나》(p.226)라는 작품을 그렸다. 춤이라는 것의 속성이 한순간 존재했다가 시간의 뒤로 사라져버리기 때문일까? 아무리 이 그림을 뚫어지게 바라봐도 발레리나의 모습이나 그녀의 화려한 춤동작은 어디에도 없다. 발레복은 당연히 하얀색이어야 하고, 발레는 젊고 어린 무용수의 전유물이라 생각하는가? 검은색 발레 의상을 입은 비대한 몸집의 나이 든 여자들(p.286, 춤추는 타조들)의 발레는 어떨까? 이전의 발레 무용수들이 우아한 백조를 연상시켰다면 그들은 우스꽝스럽게도 날지 못하는 검은 새, 타조를 연상시킨다. 이렇듯 이 책은 그간 춤에 대해 가져왔던 통념을 깨는 그림을 보는 재미와 편견을 타파하는 신선함을 동시에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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