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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의 비밀
나무에 새겨진
박상진
김영사 2007.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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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팔만대장경판의 숨겨진 이야기들

목판 인쇄의 새벽이 열리다
목판 인쇄, 해인사에서 시작되다|팔만대장경으로 승화시키다|일본이 달라고 조른 팔만대장경 인쇄본

나무, 석가모니와 만나다
석가모니의 탄생과 죽음을 지켜본 나무들|경판으로 나무와 다시 만나다|목판 대장경 새기기

자작나무 제작설의 진실 혹은 거짓
경판, 마법의 시작|경판 새김 나무의 조건|경판 나무 세포의 비밀을 찾아서|죽어서 경판으로 남은 나무들|팔만대장경판과 자작나무

다시 새기는 팔만대장경
경판 새김의 전말|팔만대장경의 이름과 내용|사용된 나무 양과 참가 인원|베어낸 나무 가져오기와 경판 만들기|대장경판 인쇄의 역사와 그 과정

경판의 탄생지를 둘러싼 미스터리
강화도 새김의 근거|강화도 새김의 의문|해인사로 언제, 어떻게 옮겼을까?|옮기는 과정의 미스터리|경판 자체에서 옮김의 흔적 찾기|강화도 이외의 새김 가능성|경판 새김 장소의 진실

처음 모습 그대로, 750년 경판 보존의 비밀
나무란 재료는 원래 잘 버틴다|판전을 지은 장인의 뛰어난 건축기술

옛 사람들의 완벽한 경판 관리 노하우?
경판꽂이|경판의 함수율|먼지|먹딱지|경판 보관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경판의 썩음|경판의 벌레 먹음|옛 사람들의 경판 보존|경판 보존의 취약점

8만 1,258장의 생존 기록
아예 일본에 주어버릴 생각도 했다|일본의 대장경판 약탈 모의|임진왜란과 대장경|일제 강점기의 반출 모의|한국전쟁 속의 팔만대장경|퇴암 스님의 실화 기록

저자 소개1

朴相珍

1963년 서울대학교 임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교토대학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산림과학원 연구원, 전남대학교 및 경북대학교 교수를 거쳐 현재 경북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목재공학회 회장, 대구시청 및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을 역임했다. 2002년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2014년 문화유산 보호 유공자 포상 대통령표창, 2018년 롯데출판문화대상 본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청와대의 나무들』, 『청와대의 나무와 풀꽃』, 『우리 나무 이름 사전』, 『궁궐의 우리 나무』, 『나무탐독』, 『우리 나무의 세계』Ⅰ·Ⅱ, 『우리 문화재 나무 답사기』, 『나무에 새겨진 팔만대장경의 비밀』
1963년 서울대학교 임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교토대학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산림과학원 연구원, 전남대학교 및 경북대학교 교수를 거쳐 현재 경북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목재공학회 회장, 대구시청 및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을 역임했다. 2002년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2014년 문화유산 보호 유공자 포상 대통령표창, 2018년 롯데출판문화대상 본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청와대의 나무들』, 『청와대의 나무와 풀꽃』, 『우리 나무 이름 사전』, 『궁궐의 우리 나무』, 『나무탐독』, 『우리 나무의 세계』Ⅰ·Ⅱ, 『우리 문화재 나무 답사기』, 『나무에 새겨진 팔만대장경의 비밀』, 『역사가 새겨진 나무 이야기』를 비롯하여 아동서 『오자마자 가래나무 방귀 뀌어 뽕나무』, 『내가 좋아하는 나무』가 있다. 해외 출간 도서로는 『朝鮮王宮の樹木』, 『木刻八万大藏?的秘密』, 『Under the Microscope: The Secrets of the Tripitaka Koreana Woodblocks』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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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05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255쪽 | 510g | 153*224*20mm
ISBN13
9788934925439

책 속으로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장경 인쇄본을 달라고 처음 요구한 것은 고려 말인 1388년 우리나라에서 잡아간 포로 250명을 돌려보내면서였다. 이후 《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는 내용만 보더라도 효종 때까지 80여 회에 걸쳐 끊임없이 요구했다.
대장경 인쇄본을 달라는 방법도 갖가지였다. 사신을 통해 일본 국왕 이름으로, 때로는 지방 호족들까지 대장경 인쇄본을 요구하여 조선은 항상 그 처리에 고심했다. 더 이상 불교를 숭상하지 않으므로 대장경을 인쇄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일본의 요구를 거절하기도 했지만, 혹시라도 행패를 부릴까 두려워 때에 따라 대장경 인쇄본을 주기도 하면서 그들을 달랬다. 시달림의 정도가 얼마나 심했던지 태종·세종 때는 인쇄본이 아니라 아예 대장경판을 주자는 논의까지 있었다. 또한 대장경 인쇄본을 얻으려는 수차례의 요구가 좌절되자, 일본은 사신이 단식투쟁을 하거나 군사를 동원하여 대장경을 탈취할 계획까지 세우기도 했다.

--- p.20

‘팔만대장경판은 자작나무로 만들었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심지어 해인사 수다라장의 관람 통로 안에 있는 경판 제작 표본 나무도 자작나무라고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팔만대장경판은 정말 자작나무로 만들어졌을까?

자작나무는 백두산 원시림을 비롯한 북한 내륙의 고산 지방, 중국의 북동부, 사할린에서 시베리아에 걸쳐 자란다. 추운 곳을 좋아하는 한대 수종이기 때문이다. 만약 자작나무를 베어다 경판을 만들었다고 가정한다면, 생각해볼 수 있는 지역은 북한 내륙의 고산 지방이다. 나무를 벌채하여 압록강이나 대동강에 뗏목을 띄워 황해로 내려와 강화도로 가져와야 한다. 대장경판을 새길 당시 수도 개성을 비롯한 육지는 몽고군에게 점령당한 상태였다. 따라서 이런 가정은 성립되지 않는다.

--- p.79

지금까지 팔만대장경판은 강화도에서 만들어져 해인사로 옮겨온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말은 사실일까? 먼저 경판을 새길 나무를 어떻게 조달하느냐가 문제로 떠오른다. 좁디좁은 강화도로 고려의 수도가 옮겨갔으니 수많은 사람들이 밥 해먹고 불 지펴서 추위를 피할 에너지가 필요하다. 산의 나무는 대부분 잘려 나갔을 것이다. 재질이 좋아 새김에 쓸 나무가 모두 없어져버렸을 테니 강화도 자체 조달은 불가능하다. 강화도에서 경판을 새겼다면 그 엄청난 양의 나무를 배에 실어 가져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강화해협을 사이에 두고 고려군과 몽고군이 대치하는 전쟁 상태에서, 더욱이 간만의 차가 커서 썰물 때면 십 리도 넘게 갯벌이 노출되는 강화도의 해변에 배를 대고 무거운 통나무를 운반했을까?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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